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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상 20장 5~6절, 사무엘상 21장 2절, 베드로전서 3장 10절
다윗이 요나단에게 대답하였다. "내일은 초하루일세. 내가 임금님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해야 하는 날일세. 그러나 내가 외출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하여 주게. 나가서 모레 저녁때까지 들녘에 숨어 있겠네. 그랬다가 만일 자네의 아버님이 내가 왜 안 보이느냐고 물으시거든, 그 때 자네는, 내가 우리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서 온 가족과 함께 거기에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되어, 급히 가 보아야 한다고, 말미를 달라고 해서, 허락해 주었다고 말씀드려 주게. <표준새번역>
다윗은 놉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렀다. 아히멜렉이 떨면서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물었다. "동행자도 없이 어떻게 혼자 오셨습니까?"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임금님의 명령을 띠고 길을 떠났습니다. 임금님이 나에게 임무를 맡기면서 부탁하시기를, 나에게 맡기신 임무를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하들과는 약속된 곳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표준새번역>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혀를 다스려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입술을 닫아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라. <표준새번역>
누구나 인생길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다윗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위기를 바라보면서 의문점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히려 훨씬 더 위협적이었던 골리앗은 두려워하지 않았던 다윗이 왜 사울왕을 그토록 두려워했을까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 끝까지 인정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장인어른이었기 때문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다윗은 사울왕을 너무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요나단이 아무리 안정을 시키려해도 안정되지 않을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사울왕이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것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던 다윗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순간에는 다윗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요? 왜 다윗은 그 순간 하나님과 그 어떤 소통도 하지 않을까요?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을까요?
인생길에서 만난 절체절명의 위기는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게 일단 최우선의 목적인듯 합니다. 망망대해에 나홀로 표류하는듯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위기는 언제나 '위험과 기회'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는 빠져나올 구멍조차 보이지 않고,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늘 외롭습니다. 그래서 더 두려워집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나를 도울 이가 없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하나님도 잊어버리게 되는가 봅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 전쟁마다 승승장구하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자신을 왕으로 택하신 하나님, 지금껏 자신을 인도한 하나님을 다윗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거짓'이 자신의 보호막이 되고, '거짓말'이 위기탈출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다윗이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내뱉은 2가지의 큰 거짓말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음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첫번째 거짓말은 '제사', 즉 '예배'를 핑계로 한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다른 종류의 핑계로 거짓말을 했으면 다행이었을텐데 다윗은 굳이 '매년제'를 사용하여 거짓말을 해버립니다.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예배'를 사용하여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매년제'에 갈 계획도 없었고, 설사 그 제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사울왕에게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계속 쫓기던 다윗은 그 '제사'를 핑계로 거짓말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안 좋은 것은 그 거짓말을 요나단에게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계속 기록된대로 요나단은 자신의 목숨보다 다윗을 더 아꼈습니다. 그렇기에 이 제안을 당연히 받아들였습니다. 다윗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삐뚤어진 우정은 둘 사이에서 끝날 수 있었던 거짓말을 결국 사울왕 앞에까지 가져가게 만듭니다. 요나단이 정말 다윗을 생각했다면 그 거짓말을 말려야 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제안하였다. "자네의 소원을 말해 보게. 자네를 돕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겠네." <사무엘상 20장 4절, 표준새번역>
이 거짓말의 결과가 너무 안타깝습니다.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던 부자(父子)관계를 완전히 깨뜨려 버리는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거짓말에 조금의 거짓말을 더 보태어 사울왕에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다윗이 저에게 베들레헴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습니다. 자기 집안이 베들레헴 성읍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자기 형이 다녀가라고 했다고 하면서, 제가 자기를 아낀다면 자기 형을 만나게 해 달라고, 저에게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지금 임금님의 식탁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0장 28~29절, 표준새번역>
요나단의 말을 들은 사울왕은 화가 끝까지 나고 말았습니다. 아들 요나단을 위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이 '왕'의 자리를 물려 주려고 했었던 아버지의 마음도 모른채 요나단은 끝까지 다윗의 편을 드니, 아버지의 분노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이 커져만 간 것입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런 녀석과 단짝이 되다니, 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 될 뿐이다. 이새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은, 너도 안전하지 못하고, 너의 나라도 안전하지 못할 줄 알아라. 빨리 가서 그 녀석을 당장에 끌어 오너라. 그 녀석은 죽어야 마땅하다." <사무엘상 20장 30~31절, 표준새번역>
그리고 자신에게 대들며 다윗의 편을 드는 요나단을 창으로 찔러 죽일 마음까지 생겨버린 아버지 사울이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부자(父子)관계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목숨을 살리고자 했던 거짓말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슬픈 거짓말이 또 등장합니다. 다윗의 두번째 거짓말입니다. 그렇게 사울로부터 도망친 다윗은 놉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났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집에 혼자 온 것을 안 아히멜렉은 당황하고 떨며 그를 영접했습니다. 아마도 사울왕과 함께 오지 않고 다윗 혼자 왔던 것이 처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꽤나 제사장 아히멜렉을 당황시키는 일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아히멜렉에게 다윗 역시 경계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또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임금님의 명령을 띠고 길을 떠났습니다. 임금님이 나에게 임무를 맡기면서 부탁하시기를, 나에게 맡기신 임무를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하들과는 약속된 곳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사장님이 혹시 무엇이든 가까이 가지신 것이 좀 없습니까? 빵 다섯 덩이가 있으면 저에게 주십시오. 그렇게 안 되면, 있는 대로라도 주십시오." <사무엘상 21장 2~3절, 표준새번역>
죽음의 위기 속에서 배마저 고팠던 다윗은 단순한 거짓말을 이제는 아주 스토리를 만들어내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히멜렉은 이 다윗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다윗을 도와주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도와주고 끝났으면 좋으련만 다윗을 도와주던 아히멜렉의 모습을 지켜보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하필 그는 사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사울의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이 그 곳에 있었는데, 그는 주님 앞에서 하여야 할 일이 있어서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도엑인데, 에돔 사람으로서 사울의 목자 가운데서 우두머리였다.) <사무엘상 21장 7절, 표준새번역>
왜 이 인물이 중요한가 하면 바로 이 인물이 나중에 다윗의 거짓말을 모른채 다윗을 도와주었던 아히멜렉을 죽이게 되는 사람, '도엑'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엑은 아히멜렉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사울에게 고자질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너무도 끔찍한 일이라 글로 적기도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을 도와주었던 아히멜렉의 집안은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을 제외하고는 사울왕에 의해 모두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적국의 전멸을 요구했을 때는 전혀 듣지 않았던 사울왕은 이번에는 너무도 잔혹하게 제사장 집안의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안타깝지만 다윗의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도엑에게 명하였다. "네가 달려들어서 저 제사장들을 죽여라." 그러자 에돔 사람 도엑이 서슴없이 달려들어서 그 제사장들을 죽였는데, 그가 그 날 죽인 사람은 모시 에봇을 입은 제사장만도 여든다섯 명이나 되었다. 사울은 제사장들이 살던 성읍 놉에까지 가서, 주민을 다 칼로 쳐죽였다. 그는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젖먹이, 소 떼나 나귀 떼나 양 떼를 가리지 않고, 모두 칼로 쳐서 죽였다. <사무엘상 22장 18~19절, 표준새번역>
성경은 제사상 여든 다섯명만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다 쳐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젖먹이, 동물들까지 모두 칼로 쳐죽이는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목숨을 살렸지만 말입니다. 다윗이 한 거짓말의 후폭풍은 성경에서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여러분, 순탄한 인생길에서는 우리가 거짓말을 할 일이 잘 없습니다.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직'이라는 것을 무의미하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그 때가 더욱 더 거짓을 멀리하고, '정직한 영'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때입니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만들고,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피해가지 못할지언정 '정직함'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직의 결과는 언제나 하나님의 인정이었습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잘'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욱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다윗 역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았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의 길을 선택했던 다윗의 거짓말은 관계를 깨뜨리고, 한 성읍을 멸망하게 만드는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내고야 말았습니다.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원하신다면 이것을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 어떤 절체절명의 위기일지라도 '거짓말은 거짓말'일뿐입니다. 아무리 그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해도 거짓말의 결론은 거짓말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라면 가슴에 꼭 새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거짓말을 애용하지 마십시오. 거짓말을 곁에 두고 살지 마십시오.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제자들 중 가장 큰 거짓말을 했던 베드로는 회심 후 베드로전서를 통하여 이렇게 우리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혀를 다스려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입술을 닫아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라. <베드로전서 3장 10절, 표준새번역>
그런데 이 구절은 베드로가 처음 한 말이 아닙니다. 신기하게도 이 구절은 이미 시편 34편에서 등장하는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34편의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또는 '<벌 주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제하고자 미친척까지 했던 다윗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 마음을 시편 34편에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두려운 마음으로 야훼 섬기는 길을 가르쳐주마. 즐거운 날을 보내고 싶으냐? 좋은 일을 보며 오래 살고 싶으냐? 혀를 놀려 악한 말을 말고 입술을 놀려 거짓말을 마라. 못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여라.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시편 34편 11~14절, 공동번역>
베드로도, 다윗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거짓말의 결과를! 그리고 우리에게 더 늦기 전에 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일뿐인 것을!
마지막으로 짧은 글을 마무리하면서 시편 말씀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부디 절체절명의 위기, 그 절박함 속에서도 '거짓'이 아닌 '정직함'을 유지하는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하시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저 역시 부끄러운 과거를 뒤로 한 채 앞으로 꼭 그렇게 살겠습니다. 하나님, 거짓 입술은 벙어리 되게 하소서!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시편 120편 1~2절, 개역개정>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을 벙어리 되게 하소서. <시편 31편 18절, 바른성경>
https://www.youtube.com/watch?v=zyg4KEtYvv8
https://www.youtube.com/watch?v=QlEoIMpgPaE
https://www.youtube.com/watch?v=fdLEn_LprIQ
https://www.youtube.com/watch?v=g1Uo_e2acdQ
https://www.youtube.com/watch?v=Bzde2DE96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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