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의 세금천(洗錦川)에는 천년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사력암질(砂礫岩質)의 자석(紫石.붉은 빛을 내는 돌)을 서로 끼워 놓은 뒤 상판을 놓는 방법으로 만든 국내 최고(最古)의 돌다리인 농다리(籠橋.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가 있기 때문이다.
농다리는 무인(武人)의 별자리를 본떠 당초 28칸으로 만들었으나 현재는 25칸만 남아 있으며 길이 93.6m, 너비 3m, 높이 1.2m 규모다.
농다리는 자연석을 얼기설기 엮었을 뿐 틈새를 석회(石灰) 등으로 보강하지 않았으나 오랜 세월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큰 손실 없이 보존되고 있어 신비로움을 주고 있다.
특히 겨울 저녁 노을에 비친 농다리 위의 백설(白雪)은 세속을 벗어난 신선의 놀이터인 듯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고 해서 예로부터 농암모설(籠岩暮雪)이라 불리며 `상산(常山.진천의 옛 이름) 8경' 중의 으뜸으로 꼽혀왔다.
물에 비친 햇살과 붉은 돌이 어우러져 빛을 발하면 농다리는 거대한 물고기를 연상시킨다.
돌을 얽어 만들었다는 뜻에서 농교(籠橋)라고 불려왔다는 이 다리의 축조연대는 정확치 않다.
문헌상에는 1932년 발간된 상산지(常山誌)에 `고려초 임씨 문중의 선조인 임장군이 농교를 건축했다'는 기록 등이 고작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고려 태조 때 병부령(현재 국방부장관)을 지낸 상산 임씨의 시조 임희(林曦.연대미상) 장군이 고려 건국을 전후한 9세기 말-10세기 초에 다리를 축조하고 고려말 임연(林衍.-1270) 장군이 증축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당시 건축기술로 볼 때 이 다리를 축조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원의 동원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당시 이 일대의 호족이었던 임희 장군이 축조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임희 장군이 이곳으로부터 5-6㎞ 떨어진 대모산성을 본거지로 해서 세력을 쌓았다는 학설도 있어 당시 진천-초평-증평으로 통하는 교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농다리를 축조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교각을 세우지 않고 돌들을 촘촘히 쌓아 올린 기법으로 미뤄 삼국시대인 7세기 중반께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세우고 있다.
어쨌든 농다리가 10세기 이전에 축조됐다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다.
천년의 역사와 함께 수려한 경관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농다리는 `모래시계' , `추억', `종이 학' 등 방송 드라마의 배경이 됐으며 지난해부터 매주 인근 마을에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촬영될 정도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도 `농다리 보존위원회(위원장 이상구)'를 구성해 2000년부터 `농다리 큰 잔치'를 열고 있으며 진천군도 관광객을 위한 주차시설을 마련하는 등 농다리 인근을 정비, 관광 상품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농다리를 답사하던 중에 만난 김민구(45.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씨는 '세금천을 흐르는 물소리에 파묻혀 오랜 세월의 두께를 더해가고 있는 고풍스런 다리를 보고 있으면 세파에 찌든 잡념들이 씻겨 내려가는 듯해 가끔씩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농다리 인근에는 붕어 낚시로 유명한 초평 저수지, 백곡 저수지와 김유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있는 길상사, 삼국시대 목탑 건축의 전통을 잇고 있는 보탑사 등이 있어 천년의 역사를 밟아보는 가족들의 나들이 코스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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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군사전문지에서 임희 장군이 축조했다는것이 설득력이 있다는데 큰 이미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