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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리산 청학동에는 단풍나무와 박달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곳 삼성궁에선 매년 시월 상달에 천제날을 받아 천제(天祭)를 올립니다. 올해는 제 19회 천제로서 열린 하늘 큰 굿을 아래와 같이 거행을 합니다 배달겨레의 아들 딸로서 민족성진의 터밭인 삼성궁에 오셔서 민족혼의 숨쉼을 가졌으면 하네요 언제 : 단기 4338년(2005년) 10월 23일(일요일) 오전 11시 어디서 : 청학동 배달성전 삼성궁 삼성궁은 배달 민족 성전으로 한배임, 한배웅, 한배검 및 역대 나라를 세운 태조, 각 성씨의 시조, 현인과 무장을 모신 신성한 성역이다. 뿌리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근원 없는 강물이 있을 수 없듯이 인류의 역사가 있음에 그 겨레의 조상이 있는 것은 하늘이 정한 아름다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수두라는 성역을 세워 하늘에 제 지내고, 배달 민족 고유의 정통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의 삼화경과 삼륜(三倫), 오계(五戒), 팔조(八條), 구서(八誓)의 덕목을 가르쳤다. 또한 수두에는 경당을 설치하여 국자랑(國子郞)들에게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 등 오상(五常)의 도를 가르치고 독서(讀書), 습사(習射), 치마(馳馬), 예절(禮節), 歌樂(가악), 권박(拳博) 등 육예(六藝)를 연마시켰다. 옛 수두를 복원한 지금의 삼성궁은 배달 민족 정통 도맥인 선도의 맥을 지키며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 고유의 도량으로써 오늘날 잃어 버린 우리의 위대한 얼과 뿌리를 천지화랑(天指花郞)의 정신을 바탕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한 민족 대화합의 장이다. 삼성궁의 취지 우리 배달 겨레는 일만 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며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한 단일 민족으로 찬란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왔다. 우리는 문화 겨레임을 자부하면서도 우리 겨레에 대한 역사인식이 없음을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문의 전통을 지키는 숭고한 정신은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지만, 겨레의 뿌리이며, 하늘을 여신 국조(國祖)를 잊은 지는 오래다. 지금까지 국조삼성(國祖三聖)을 봉안(奉安)해야 할 국조전(國祖殿)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국경일인 개천절을 거행해 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요즘 한국 사회는 다종교 사회이고, 외래종교 및 사상이 득세하니 민족의 주체성은 상실되었고, 정신은 부평초처럼 떠다니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스스로 배달 겨레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배달의 후예임을 인식하기 위하여는 종교와 사상을 초월한 배달 민족 고유의 성전을 세워야한다. 그리고 지구촌 시대를 맞이하여 민족정기 배양과 민족문화창달은 물론이고 도덕적, 윤리적 가치상실에 대한 문화적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민족 고유의 정통문화를 되찾고 민족정기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외래문물이 판을 치고 우리 전통문화와 그 창조적 재조명이 미비한 이 시대문화에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선조들의 '얼'을 탐구하려는 열기가 뜨겁게 용솟음치고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천우신조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 줄 배달 겨레의 성전인 국조 삼성전을 건립해야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뜻있는 국민들이 슬기롭게 한뜻 한 마음되어 배달 민족 성전건립에 참여한다면, 먼저 삼성전인 한인전, 한웅전, 단군전을 개별적으로 건립하고, 한웅시대 14대 천왕인 무성선사(武聖仙師) 치우천왕(蚩尤天王)을 모시는 치우천황전과, 역대 개국시조의 위패(位牌)와 영정을 나열봉안(羅列奉安)한 건국전(건국태조전)을 건립하며, 각 성씨별(姓氏別) 시조(始祖)의 위패를 나열봉안할 수 있는 시조전(始祖殿)과 역대 선사.성현들을 나열봉안한 성현전(聖賢殿)을 건립하고 각종 민족 문화 전시관과 향토박물관, 교육관을 건립하여 배달민족의 성지이자 민족교육의 도량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삼성궁의 역사 만덕진인(萬德眞人:1743~1840)의 제자 공공진인 (空空眞人:1807~1910)은 속명이 고상식(高上植)이다. 강원도 명주땅 석병산에서 수도하다가 구한말의 암울한 시기를 당하여 국운이 쇠함을 보고 고심하던 차에 제자 한빛(大光)에게 삼성(三聖)의 위패와 능운검을 포함한, 세 자루의 보검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 훗일 갑자(甲子)년이 되면 국운이 돌아와 새로운 시절이 도래할 것이니, 뒷일을 도모함을 게을리 하지 말라." 또한 홍암 대종사 나철에게 대종교 중광(1909)년 다음 해인 1910년 3월15일 어천절에 천진(단군영정)을 전하고 세상을 화천하였다. 한빛선사(大光仙師 : 1860~1945)는 어려서부터 공공진인(空空眞人)의 슬하에서 자라며 선도수업에 정진하였다. 단제(영정)를 가슴에 품고 서일 장군 부대에서도 한때 활동하다가 말년에 두류산으로 돌아와 화개동, 청학동, 고운동 등지를 다니며 낙천(樂天)과 동원(東園)을 수자로 삼아 교육하였다. 낙천선사(樂天仙師 1902~1984)는 삼성(三聖)의 위패를 모시는 삼성사(三聖祠)를 박달평전에 세우고 평생 삼법수행과 만행으로 일관하며 정진하였다. 이는 구월산 삼성사가 일제의 탄압으로 소실되어 그곳의 위패를 모셔 온 것이다. 삼성궁의 위치 지리산(智異山)은 백두산(白頭山)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흘러 섬진강에 와서 큰 봉우리를 이루었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 하였다. 옛부터 두류산은 영악(靈嶽)으로 東은 천황봉(天皇峰)이, 西는 반야봉(般若峰)이 중앙에는 영신대(靈神臺)가 있어 병풍같은 장막을 치고 있다. 영신대에서 남쪽으로 이어져 맥(脈)이 삼신봉(三神峰)을 만들고, 다시 동서로 맥을 이어 신선대, 삼성봉, 삼선봉, 미륵봉, 시리봉을 잇는 주위 사십 리의 청학동을 작국(作局)하였다. 이 청학동을 신라 최치원 선생과 도선국사(道詵國師)를 비롯한 역대의 선사들이 동방제일의 명지(名地)로 가르킨 곳이다. 이 천하의 명지에 배달성전 청학선원 삼성궁(倍達聖殿 靑鶴仙苑 三聖宮)이 위치하고 있다. 주소는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 터골 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이다. 출처 : Tong - anyanglove님의 경상도통 |
지금 지리산 청학동에는 단풍나무와 박달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곳 삼성궁에선 매년 시월 상달에 천제날을 받아 천제(天祭)를 올립니다.
올해는 제 19회 천제로서 열린 하늘 큰 굿을 아래와 같이 거행을 합니다
배달겨레의 아들 딸로서 민족성진의 터밭인 삼성궁에 오셔서 민족혼의 숨쉼을 가졌으면 하네요
언제 : 단기 4338년(2005년) 10월 23일(일요일) 오전 11시
어디서 : 청학동 배달성전 삼성궁
삼성궁은 배달 민족 성전으로 한배임, 한배웅, 한배검 및 역대 나라를 세운 태조, 각 성씨의 시조, 현인과 무장을 모신 신성한 성역이다. 뿌리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근원 없는 강물이 있을 수 없듯이 인류의 역사가 있음에 그 겨레의 조상이 있는 것은 하늘이 정한 아름다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수두라는 성역을 세워 하늘에 제 지내고, 배달 민족 고유의 정통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의 삼화경과 삼륜(三倫), 오계(五戒), 팔조(八條), 구서(八誓)의 덕목을 가르쳤다.
또한 수두에는 경당을 설치하여 국자랑(國子郞)들에게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 등 오상(五常)의 도를 가르치고 독서(讀書), 습사(習射), 치마(馳馬), 예절(禮節), 歌樂(가악), 권박(拳博) 등 육예(六藝)를 연마시켰다.
옛 수두를 복원한 지금의 삼성궁은 배달 민족 정통 도맥인 선도의 맥을 지키며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 고유의 도량으로써 오늘날 잃어 버린 우리의 위대한 얼과 뿌리를 천지화랑(天指花郞)의 정신을 바탕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한 민족 대화합의 장이다.
삼성궁의 취지
우리 배달 겨레는 일만 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며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한 단일 민족으로 찬란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왔다. 우리는 문화 겨레임을 자부하면서도 우리 겨레에 대한 역사인식이 없음을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문의 전통을 지키는 숭고한 정신은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지만, 겨레의 뿌리이며, 하늘을 여신 국조(國祖)를 잊은 지는 오래다. 지금까지 국조삼성(國祖三聖)을 봉안(奉安)해야 할 국조전(國祖殿)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국경일인 개천절을 거행해 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요즘 한국 사회는 다종교 사회이고, 외래종교 및 사상이 득세하니 민족의 주체성은 상실되었고, 정신은 부평초처럼 떠다니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스스로 배달 겨레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배달의 후예임을 인식하기 위하여는 종교와 사상을 초월한 배달 민족 고유의 성전을 세워야한다. 그리고 지구촌 시대를 맞이하여 민족정기 배양과 민족문화창달은 물론이고 도덕적, 윤리적 가치상실에 대한 문화적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민족 고유의 정통문화를 되찾고 민족정기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외래문물이 판을 치고 우리 전통문화와 그 창조적 재조명이 미비한 이 시대문화에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선조들의 '얼'을 탐구하려는 열기가 뜨겁게 용솟음치고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천우신조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 줄 배달 겨레의 성전인 국조 삼성전을 건립해야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뜻있는 국민들이 슬기롭게 한뜻 한 마음되어 배달 민족 성전건립에 참여한다면, 먼저 삼성전인 한인전, 한웅전, 단군전을 개별적으로 건립하고, 한웅시대 14대 천왕인 무성선사(武聖仙師) 치우천왕(蚩尤天王)을 모시는 치우천황전과, 역대 개국시조의 위패(位牌)와 영정을 나열봉안(羅列奉安)한 건국전(건국태조전)을 건립하며, 각 성씨별(姓氏別) 시조(始祖)의 위패를 나열봉안할 수 있는 시조전(始祖殿)과 역대 선사.성현들을 나열봉안한 성현전(聖賢殿)을 건립하고 각종 민족 문화 전시관과 향토박물관, 교육관을 건립하여 배달민족의 성지이자 민족교육의 도량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삼성궁의 역사
만덕진인(萬德眞人:1743~1840)의 제자 공공진인 (空空眞人:1807~1910)은 속명이 고상식(高上植)이다. 강원도 명주땅 석병산에서 수도하다가 구한말의 암울한 시기를 당하여 국운이 쇠함을 보고 고심하던 차에 제자 한빛(大光)에게 삼성(三聖)의 위패와 능운검을 포함한, 세 자루의 보검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 훗일 갑자(甲子)년이 되면 국운이 돌아와 새로운 시절이 도래할 것이니, 뒷일을 도모함을 게을리 하지 말라."
또한 홍암 대종사 나철에게 대종교 중광(1909)년 다음 해인 1910년 3월15일 어천절에 천진(단군영정)을 전하고 세상을 화천하였다.
한빛선사(大光仙師 : 1860~1945)는 어려서부터 공공진인(空空眞人)의 슬하에서 자라며 선도수업에 정진하였다. 단제(영정)를 가슴에 품고 서일 장군 부대에서도 한때 활동하다가 말년에 두류산으로 돌아와 화개동, 청학동, 고운동 등지를 다니며 낙천(樂天)과 동원(東園)을 수자로 삼아 교육하였다.
낙천선사(樂天仙師 1902~1984)는 삼성(三聖)의 위패를 모시는 삼성사(三聖祠)를 박달평전에 세우고 평생 삼법수행과 만행으로 일관하며 정진하였다. 이는 구월산 삼성사가 일제의 탄압으로 소실되어 그곳의 위패를 모셔 온 것이다.
한풀(大氣)선사는 어린시절 낙천선사(樂天仙師) 문하에 출가하여 선도(仙道)의 가르침을 받고 민족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을 비롯한 삼륜(三倫), 오계(五戒), 팔조(八條), 구서(九誓)를 공부하였으며 또한 삼법수행(三法修行)을 정진하여 우리의 춤과 노래, 그리고 선가무예(仙家武藝)인 선무(仙武)와 본국검(本國劍)을 사사받았다.
한풀선사는 어는 날 낙천선사로부터
"한풀아, 너는 앞으로 민족혼을 샘솟게 하는 우물을 파거라. 그러면 누군가 일부러 갖다 넣지 않아도 거기에는 작은 피라미가 생길 것이고, 미꾸라지나 붕어도 생기고, 못된 가물치나 메기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목마른 자들이 샘을 찾듯 뿌리를 잃은 수많은 자들이 쉬어서 목을 축이게 하라" 하는 말씀을 들었다.
스승에게서 이러한 유지(遺志)를 받은 한풀선사는 갑자(甲子)년인 1984년 음력 3월 16일에 삼성사(三聖祠)를 삼성궁(三聖宮)으로 개명하고, 선도(仙道)의 중흥을 꾀하기 위하여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다래넝쿨 등을 거두기 시작했다.
선도문화의 유풍에 따라 수두를 일으키기 위하여 기초적인 연장(낫, 괭이)으로 행선(움직이는 명상)을 하기 시작하였다.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폐허속의 원시림을 가꾸는 작업은 고해의 바다에 스스로 뛰어든 것과 같았다. 논밭은 묵어서 산이나 다름없고 식량이 없으니 생식을 하거나 벽곡을 해야했다.
울타리를 만들어 행인의 출입을 막고, 굴러다니는 돌을 모으고 연못을 파는 행선(行仙)을 했다.
전생의 습(習)이었는지, 누구에게 배운 일이 없어도 돌을 다루는 일을 스스로 터득하여 솟대돌탑을 쌓기 시작하니 매일같이 행선삼매에 젖어들곤 했다. 눈이 오면 겨울인 줄 알았고, 꽃이 피면 봄인 줄 알았으며, 잎이 지면 가을인 줄 알았다. 그야말로 산짐승처럼 홀로 몸부림치며 온몸을 던졌다.
무심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고뇌와 의지로 자신을 여는 한풀선사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자신을 열어야 남을 열 수 있듯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열어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더없이 신심(神心)이 일은 한풀선사는 용맹정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후리쳤다. 한무와 종철 두 수자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삼칠일(21일) 단식에 들어간 것이다. 87년 늦가을이었다.
토굴을 봉한 채 공부에 들어간 삼칠일 동안의 단식 고행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하게도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
' 나 자신을 열지 못하면 다시는 햇빛을 보지 않겠다.'
는 무서운 결심을 하고 토굴로 들어갔던 한풀선사는 또다시 삼칠일을 연장해야 했다. 짓물러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오장은 말라 비틀어졌다.
스스로 썩어가는 육신을 바라보며 한풀선사는 삶과 죽음의 처절한 무상함을 맛보았다.
그런한 속에서 두 번째의 삼칠일 고행을 끝냈지만 공부에는 별다른 진전이 오지 않았다.
처절한 절망감 속에서 한풀선사는 또다시 삼칠일을 연장했다. 이번에는 '공부'라는 생각자체도 '나', '우주'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놓아 버렸다. 애써 던지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그렇게 놓아져 버렸다. 아니, 이지러진 몰골과 반쪽이 된 몸으로 더 이상 붙잡고 버틸 힘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가운데 섣달 그믐달이 되었다. 그믐은 한풀선사를 무명(無明)으로 엄습하고 지나간 뒤 밝은 기운으로 통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한풀선사에겐 선악(善惡)도 없어지고, 후박(厚薄)도 없어지고, 청탁(淸濁)도 사라졌다. 때묻은 허물을 벗어던진 한풀선사는 새벽녘 봉황의 울음을 들으며 노래한다.
삼성궁으로 개명하여 민족성전을 일으킨지도 어언 20년이 흘렀다. 흙과 돌을 하루에 60톤 이상을 들지 않으면 선식(仙食)도 걸렀다. 솟대에는 벌써 이끼가 끼고, 연못에는 고기가 노닐며, 선원(仙苑)은 다듬어져 그동안 쌓은 솟대도 일천여개에 이른다.
삼성궁의 위치
지리산(智異山)은 백두산(白頭山)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흘러 섬진강에 와서 큰 봉우리를 이루었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 하였다.
옛부터 두류산은 영악(靈嶽)으로 東은 천황봉(天皇峰)이, 西는 반야봉(般若峰)이 중앙에는 영신대(靈神臺)가 있어 병풍같은 장막을 치고 있다.
영신대에서 남쪽으로 이어져 맥(脈)이 삼신봉(三神峰)을 만들고, 다시 동서로 맥을 이어 신선대, 삼성봉, 삼선봉, 미륵봉, 시리봉을 잇는 주위 사십 리의 청학동을 작국(作局)하였다.
이 청학동을 신라 최치원 선생과 도선국사(道詵國師)를 비롯한 역대의 선사들이 동방제일의 명지(名地)로 가르킨 곳이다. 이 천하의 명지에 배달성전 청학선원 삼성궁(倍達聖殿 靑鶴仙苑 三聖宮)이 위치하고 있다.
주소는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 터골 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 이다.
지리산 삼성궁 '널리 인간을 이롭게...' 배달민족의 성전
민족정기의 산실 백두산에서 발원한 백두대간의 종착점이자 부산 금정산과 영남 알프스의 주봉을 잇는 낙동정맥의 시작점인 지리산.
반야봉, 형제봉, 벽소령, 영신봉, 촛대봉, 연하봉, 천왕봉 등 수많은 영봉들이 솟아 깊은 계곡을 이루고 처처마다 맑은 물이 흐르는 비경의 명산, 이 가운데 한 봉우리인 영신봉 줄기를 병풍삼아 삼성궁(三聖宮)이 똬리를 틀고 있다.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린다).’
삼성궁은 국조 단군(檀君)의 건국이념에 따라 민족 주체성과 정기를 곧추세울 이상향을 표방한 배달민족의 성전이다. 매표소에서 돌로 쌓은 솟대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오르면 웃고 있는 장승과 토굴형태의 작은 나무문이 내방객을 맞는다.
입구에 놓인 징을 크게 세 번 울리면 수자(修者)가 문을 연다. 그의 안내를 받아 잠깐 동안 어두컴컴한 토굴을 지나면 ‘산중에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지었을까?’ 할 만큼의 넓은 내부가 펼쳐진다.
민족의 국조 환인과 한웅, 단군 영정을 모신 건국전을 중심으로 8각 정자와 와선형의 돌 기단위에 세워진 솟대돌탑, 연못 그리고 돌층계와 구조물들이 기하하적 구도로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다. 개량형 한복(고구려 복색)에 두건을 쓴 안내 수자는 삼한시대의 성역이었던 소도(蘇塗`하늘에 제사지내던 성지)를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초입의 발 아래엔 ‘배달길’이란 안내표지가 눈에 띤다. 이 푯말을 따라 오른편 아래쪽에서 삼성궁 둘러보기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태극문양을 본 뜬 연못이 나온다. 주변에 솟대돌탑과 맷돌 탑이 세워진 연못은 한반도와 만주를 상징한다. 연못 옆 숲길도 맷돌, 절구통, 다듬잇돌로 꾸며져 있다. 호기심에 숲 속을 따라 더 들어가자 계류가 흐르는 곳곳의 바위마다 크고 작은 원뿔형 솟대돌탑이 보인다. 하나같이 빈틈없이 쌓은 원뿔 돌탑 위엔 3단 혹은 4단형태의 첨탑을 더 쌓아 마무리 했다.
‘소도’는 솟대 또는 솟터라는 우리말의 음역이다. 따라서 소도를 본 딴 삼성궁에 솟대돌탑이 많은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닌 듯싶다.
배달길을 벗어나려 치면 어김없이 대나무가 가로 놓여져 있다. 출입금지 표시다. 겨레의 성전인 삼성궁은 한편으로는 민족 고유의 정통 선도(仙道)를 연마하는 도량이기도 하다. 많은 수자(修者)들이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지금도 행선(行仙)과 선무(仙武)를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행선은 삿된 마음을 끊고 하늘의 성품을 함양하는 지감(止感), 호흡을 통해 기를 운용하는 조식(調息), 삿된 접촉을 끊은 금촉(禁觸)인 삼법수행이 중심이다. 선무는 고대 선도문화를 지키며 산중무예로 비전하던 것이 실전되는 바람에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개발한 선가무예를 익힌다. 이들의 수행과 무예를 직접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1년에 한 번 삼성궁이 여는 개천대제 행사 때 일반인에게 무예를 공개한다.
배달길 숲을 벗어나면 또 다시 건국전 앞마당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 산중의 건축규모에 놀라 잘 보지 못했던 구조물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앞마당엔 주춧돌과 다듬잇돌, 절구통 돌들이 원과 직선으로 어우러져 있고 그 주위로 연못이 파져 있다. 국조전이 정면으로 보이는 마당 한 가운데에 서면 연못과 돌계단은 반원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연못은 마치 함부로 국조전에 범접하는 것을 막는 해자 역할을 하는듯하다. 오른편 와선형 기단의 솟대돌탑은 처음보다 더 웅장하게 다가왔다.
삼성궁을 둘러본 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모든 솟대돌탑과 건국전의 토대가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조성됐다는 점이다.
삼성궁의 선도수행과 무예를 지도하는 한풀선사(47`속명`강민주), 그가 주인공이다.
한풀선사는 1983년부터 지리산 자락 약 10만 평에 삼성궁을 지어왔다. 수행을 위해 그가 쌓은 솟대돌탑만 1천여 기가 넘는다. 현재 삼성궁엔 수행자들이 세운 솟대돌탑이 4만 기가 넘고 일반인에 공개되는 삼성궁은 전체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그는 “중국에서 외래(철기)문화가 유입되기 이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도맥인 선도와 한반도 정통의 고조선 문화를 중심으로 정신문명을 다시 세우기 위해 삼성궁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뿌리 없는 나무 없고 근원 없는 강물이 없듯 겨레의 조상과 전통 문화가 있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삼성궁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의 지리산 영신봉 서쪽 능성 해발 850m 지점에 있다.
◇삼성궁 가는 길=88고속도로 함양 분기점에서 내려 대전`통영고속도로로 길을 잡는다. 진주 방향으로 달리다 단성IC를 나와 톨게이트 앞 신호등을 지나자마자 우회전, 지리산 방향으로 약 30여 분간 직진한다. 한참을 가면 제법 긴 삼신봉 터널이 나타난다. 터널을 지나면 하동군. 이때부터 길 주변 지리산 산세는 더욱 깊고 높아진다. 10여 분 달리면 청학동/삼성궁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것을 따라 가면 삼성궁 매표소 앞에 도착한다.
◇맛집-삼선된장국집
삼성궁 가는 초입 길 왼편에 있는 식당. 된장찌개와 산채비빔밥을 세트로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죽염을 이용한 발효반찬이 여행길 입맛을 살릴만한 집으로 된장찌개는 짜지 않고 심심하면서 깊은 맛을 낸다. 산채와 콩나물, 무채 등을 큰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낸 상차림은 보기에도 깔끔하다.
문의:055)883-6085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작성일: 2006년 06월 29일
출처 : Tong - anyanglove님의 경상도통
출처 :땅 의 回 想 원문보기 글쓴이 : SHADHA
■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 부산과 대구 등에서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휴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24번 국도에서 오도재를 넘어 마천∼휴천 방면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한데, 겨울엔 드문드문 빙판 구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