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연구회 여섯번째 연구 모임이 지난 7일 대한의사협회 3층 동아홀에서 개최됐다. 이병기 운영위원(경기도의사회 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연구모임은 박인숙 울산의대 교수(전 울산의대 학장)가 '의료윤리와 의사의 자정노력'을 주제로 강의를 했으며 토론이 이어졌다. 박인숙 교수는 의료인의 면허재등록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온 바 있는데, 이날 강의에서도 이같은 주장의 배경과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 강의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의사면허 갱신제 도입 전 면밀한 준비 필요 의사 중심 정부·국민 참여하는 독립적 면허관리 기구 신설해야
강의 : 박 인 숙 울산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의료리더십포럼 대표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뉴스 중에는 의료계의 일그러진 부분과 관련된 기사가 일주일이 멀다하고 나오고 있다. 제약사 리베이트, 무면허 의료행위 등 사건의 뒤에는 비윤리적인 의료인이 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기사들은 비윤리적인 극히 일부 의사들의 문제이지만 이 때문에 전체 의료계가 매도당한다. 특히 의사가 저지른 일을 특히 더 문제삼는 분위기는 의사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높아서일 것이다. 문제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의사의 의사면허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의학교육평가를 거부하는 의대를 퇴출시키는 규정이 아직 없듯이 이처럼 의료인의 질적 관리를 위한 장치가 없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수련기간 말기 전공의들의 불성실한 근무 태도 △교수·학생 혹은 의사·환자간의 폭력 문제 △성희롱 △과잉진료 △의무기록 작성 소홀 △프로포폴 남용 △장애인 진단서 허위 발급 △공보의 민간병원 배치 △낙태 등 수많은 윤리적 문제들이 의료계에도 존재한다. 의사들이 자기 권익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하는 가운데도 윤리적인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일례로 몇년 전 의사단체가 대규모 집회를 열고 의료법 개악이 '국민건강'을 죽인다며 '국민건강'이라 쓰여진 관을 놓고 장사지내는 의식을 치른 바 있다. 의사의 억울한 입장을 국민에게 설득시키려고 했던 퍼포먼스인지는 몰라도 과연 그러한 장면을 보는 국민들이 의사의 입장을 이해했을까? 오히려 의사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위였다고 본다. 또, 의사협회 집행부의 잘못을 전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놓는 것도 역시 의사 스스로 품위와 신뢰를 끌어내리는 일이다. 의료기관의 경우 수술례 몇 백건, 몇 천건을 돌파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일이 흔한데, 이는 환자의 아픔은 생각하지도 않고 실적만 자랑하는 개념 없는 처사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일부의 문제임에도 의료계 전체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문제의 악순환 때문이다. 낮은 의료수가에서 비롯된 문제가 진료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지고 과잉·편법 진료와 리베이트를 조장함으로써 의료계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불신이 깊어진다. 언론과 정치권은 의료계의 나쁜 면만 강조함으로써 국민들은 의료계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는데 이에 따라 결국 국민도 피해자가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과잉·편법 진료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윤리강화·자정 활동을 통해 국민과 정부의 신뢰를 회복시키고 적정수가 보장과 진료권 확보로 이어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바꿔야 한다. 이를 현실성이 부족한 너무 이론적인 생각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결국 의사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지금 의사 스스로 해야할 일은 도덕성 회복이다. 의사가 나서지 않으면 언론 등 외부에서 나선다. 극히 일부 의사들의 부패를 그대로 묵인하고 공개하지 않으면 전체 의료계에 대한 국민 신뢰가 하락하게 된다. 의료계가 이런 문제를 스스로 공개하고 자율적으로 징계하는 방안을 확보해야만 한다. 미국의 경우 의사단체가 회원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고 자율징계권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문가 단체의 경우도 변호사협회는 회원 정보 공개를 하고 있고 자율 징계권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의사단체는 그렇지 못하다.
공직자 윤리에 관한 해외 사례 독일의 경우 공무원·정치인이 공적인 업무 활동을 통해 적립된 항공 마일리지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불법이라는 판결이 난 바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주지사가 공짜 야구표 5장을 받았다가 뉴욕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제소돼 벌금으로 7천 여만원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뉴욕주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경우 위원이 13명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은 공직자 뿐 아닌 각계의 인사들을 위원으로 위촉해 윤리성 검증에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의협의 윤리위원회도 이를 본받아 외부에서 덕망있는 비의료인을 포함시켜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의사·의료인 면허제도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인 면허 재등록제도가 없다. 이에 따라 의사 현황에 대한 통계도 없고,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의사도 많고 보수교육 미 이수자도 10%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인의 면허를 관리하는 기구를 신설하고, 의료인은 면허를 재등록 하면 된다. 면허 취득을 위한 시험을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정한 기간마다 등록을 새로 하자는 것이다. 이는 의료인의 취업 통계를 정확히 산출해 국가 의료정책 수립에 자료로 삼을 수 있고, 효율적인 보수 교육을 실시하고, 중앙회의 회원관리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며 이로써 국민건강 보호·증진도 도모하는 일이다.
외국의 의사면허 재등록 제도 미국은 주별로 1~4년마다 면허를 갱신하고 있으며 보수교육은 연간 최고 50시간까지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5년마다 면허를 갱신해야 하며 프랑스, 독일, 캐나다, 호주도 1~3년마다 갱신이 의무화돼 있다. 현재 한국, 일본, 중국의 경우만 재등록제도가 없다. 의사는 단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지식과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국민건강이라는 공공의 이익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도덕·윤리 교육도 필요하다. 미국 텍사스주의 의사면허 재등록제도를 예로 들어보자. 텍사스주는 2년마다 면허를 신청하고 재발급 받는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보수교육을 24시간 받아야 하고 이 중 최소한 2시간은 윤리 또는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책임에 관한 교육(아동학대, 약물복용, 가정폭력, 위험관리 등)에 관한 과정이어야 한다. 둘째, 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어햐 하며 셋째, 연회비를 납부해야 한다. 면허 재등록을 위한 신청서에는 △의료업 장소 △의료업 기관(단독개업, 집단개업, 봉직의, 대학, 군복무, 회사, 해외) △전문 분야 △의료행위의 형태(진료, 연구, 교육, 기타의 백분율 표시) △법적인 문제의 유무 △질병 유무, 건강 상태 △근무 형태(전임, 파트타임) 등의 항목을 기재하도록 돼 있다. 특히, 의료 면허 관리 기구인 면허국은 '면허 관리, 규율, 교육을 통해 국민들에게 질 높은 의료를 제공하여 건강, 안전, 행복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소비자가 제보할 수 있고, 의사의 면허관련 정보, 위법·징계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면허국의 위원은 총 19명인데 이중 12명이 의사이며 그 밖에 사업가, 은행가, 교사, 법학자 등의 다른 직역 종사자도 포함돼 있다. 임기는 6년이며 주지사가 임명하고 주 상원의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2개월마다 회의를 해야 하며 면허 신청자 면담 등의 활동을 해야 하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의료계가 미국의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진료권을 보장받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의 상황과 종종 비교하며 부러워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정도로 엄격하게 윤리적인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의사 면허제의 도입 논의 의사면허 재신고제의 도입에 앞서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 단순 보고 vs 조건 충족시 재등록 △ 대상 (진료하는 의사들만 vs 모든 의사) △ 보수교육·재교육 시간 △윤리 교육·기타 교육 추가 △면허관리 주관 기관 △보수교육·재교육 주관기관 △적용할 보건의료 직종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면허관리의 주관 기관은 공공성이 담보된 독립기관으로 해야 하며 의료계가 주축이 돼 정부, 민간도 참여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대다수 의사들은 법이 개정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으로 본다. 새로 시험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범법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소수 윤리적 문제가 있는 의사들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이와 같은 제도를 통해 국민들의 의사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 토 론 의대생, 교수 들의 생각과 개원의들이 느끼는 생각은 많이 다를 것이다. 의료계 문제의 많은 부분이 대학에서 비롯됐는데, 개원의들은 현실 속에서 딜레마에 빠져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내원한 만성질환 환자가 6개월치 약을 처방해 달라고 하길래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대학병원에서는 해준다고 따지는 현실이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너무나 많다. 의료윤리에 대해 대학에서 얼마나 가르치고 있는지 되짚어 보고, 의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 손을 들고 다짐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지금 우리 의료현실과 맞는가도 점검해봤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