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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교구는 일주 포장도로가 산 바로 밑까지 이어져 마치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연상시킨다. 이곳의 암질은 화강암이 주로 된 수직의 암봉이라 장평구와 달리 거의 등반시도가 없었다. 깎아지른 수직벽에서 등반선이 될 크랙이 잘 발달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벽의 길이는 1,500m 내외로 아주 어려운 인공등반이 필요한 산군이다. 몇몇 원정대가 등정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거의 미등봉으로 남아 있다.
오후 늦게 민박집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등반이 끝났는지 한 무리의 중국 클라이머들이 떠들썩하게 장비를 차에서 내린다. 요리를 맡은 조선족 전남철씨가 끓여준 맛깔스런 된장국이 먼지 속의 여행으로 칼칼한 목구멍을 개운하게 씻어 내렸다.
다음날 오전엔 관리사무소에서 내준 관광버스를 타고 아비산 밑 주차장까지 25km를 둘러보며 빙벽대상지를 찾았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빙벽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왼쪽은 설 이후에, 오른쪽은 설 이전에 등반하기 좋은 곳이라고 가이드인 당초가 설명해 주었다. 이곳도 지구온난화로 인해서인지 빙폭이 불량해 보였다. 주위엔 5,000m급의 산도 10여 개가 있는데, 중국정부의 허가를 받고 정상에 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오후에는 민박집 맞은편에 있는 빙벽을 첫 대상지로 잡고 도보로 30분 정도를 오르는데 호흡이 거칠어진다. 100m 로프 4동을 막끈으로 묶어 올린 포터 호화명이 이곳은 낙빙이 많으니 옆쪽(확인결과 슬랩 수준)으로 가자고 우겼으나 우리는 용감하게 낙빙을 피해가며 등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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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표 강사와 최원일 강사가 동시에 선등으로 오른다. 뒤에서는 수월하게 보였지만 숨이 많이 찬다고 했다. 이어서 원종민 강사와 필자가 촬영을 위해 위치를 잡았다. 거친 호흡을 내뿜으면서도 촬영한다니 모두들 열심이다. 이곳은 길이 약 45m로 고소적응을 위해 적합한 곳이다. 맞은편 산 중턱에 오색산(五色山)의 슬프고도 애절한 전설을 간직한 듯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염불주가 걸려 있다.
‘용의 숨결’을 ‘용의 눈물’로 개명
등반 둘째 날, 이 지역에서 가장 어렵다던 'Dragon's Breath'(용의 숨결) 입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1시간이나 허비했다. 할 수 없이 전날 산보삼아 봐뒀던 민박집 근처의 빙폭으로 향했다. 폭이 좁은 기둥형으로 40m에 달하는 난이도 있는 빙벽이다. 윤대표 강사가 선등하려는데 역시 준비를 마친 윤재학 강사가 가위 바위 보로 선등을 정하자고 하신다. 그 사이에 젊은 강사들은 두 분의 대화를 애써 외면하듯 재빨리 촬영 위치로, 확보 위치로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결국은 윤대표 강사가 줄을 내렸다. ‘휴! 다행이다.’ 등반을 끝내더니 내일은 양보하신다고 한다. 에그머니! 얼마나 어렵기에.
스크류만 남겨둔 상태로 선등을 시작한다. 해발 3,500m에서 계속 엔바디(N-Body)로 올라가자니 펌핑이 난다. 그래도 사진 잘 나오려면 참아야한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우리 등반을 지켜본 호화명이 중국 클라이머들을 모아 놓고 마치 자기가 등반한 것처럼 자세를 취하며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있다. 귀 기울이는 그들에게 교장선생님이 잠깐 아이스툴 손질 요령을 알려주니 존경심 백배의 표정을 짓는다.
다음날, ‘용의 숨결’ 맞은편에 위치한 빙폭으로 멀리서 보기에도 100m는 족히 됨직한 빙폭으로 갔다. 중간에는 5명 이상이 충분히 앉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구멍이 있다. 용의 아가리, 도가니 등을 운운하다가 ‘Dragon's Tears’(용의 눈물)이라 명명했다. 처음 확인했을 때 바깥쪽은 고드름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술병으로 고생했던 최원일 강사가 첫마디 선등을 나간다. 그의 몸짓은 언제 봐도 물을 만난 고기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두 번째 마디는 윤재학 강사의 선등이다. 얼음이 부실해 확보물 설치가 어렵다며 그냥 오르신다. 직접 올라가보니 뼈다귀만 남은 얼음으로 안쪽은 거의 비어 있었다.
중국에서 1월 대보름은 큰 명절로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며 폭죽을 터뜨린다. 저녁에는 동네 모든 사람들이 둘러앉아 양고기 바비큐를 걸어놓고 전통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데, 그 틈에 우리도 섞여본다. 마당을 몇 바퀴 도는데 어질어질하다. 이때는 무표정이던 운전기사도 너무나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일지라도 언제나 이 자리에 있으리!
우리 등반 수준에 중국 클라이머들 감탄
아쉬운 마지막 날이다. 윤재학 대표강사는 90m 벽 앞에 섰다. 쌍교구 계곡에서 가장 어렵다는 Dregon's Breath. 3년 전 미국 페츨팀의 크레이그(Craige)가 초등한 이후 작년 매드락클라이밍팀 이서구씨가 재등한 곳이다.
벽 앞에 선 선등자는 외로웠다. 그러나 주위엔 믿고 따르는 교장선생님과 후배들, 중국 클라머들이 지켜보고 있다. 막상 등반을 시작하니 외롭지 않았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응원의 목소리들 “스크류 하나 더 박으세요”, “멋지십니다”, “화이팅”. 우리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그동안 잠잠하던 용의 숨결이 거친 호흡을 내뿜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중간부분 용의 비늘 지대를 지나 마지막 기둥을 올라서더니 40분만에 선등을 마쳤다.
등반하면서 두 번이나 “이거 삼삼한데” 하신다. 앗! 이 말은 ‘느그들 죽었어’라는 뜻이 아닌가? 이어서 전양준 강사가 물과 간식이 든 배낭을 메고 물찬 제비처럼 빠르게 오른다. “지금부터 톱로핑으로 올라가는 데 등반시간 20분 준다”는 말에 최원일 강사는 입으로는 계속 “죽겠네, 펌핑나” 하면서 10분만에 오른다.
이곳은 이른 아침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음지로 꽤 춥다. 오랫동안 지켜보고 기다리던 중국 클라이머들에게 톱로핑의 기회를 주었다. 3분의 1도 못 올랐지만 우리들의 등반을 지켜봤으니 몇 년 정도는 한국 클라이밍 수준을 다른 산악인들에게 알릴 것이다. 애초 목이 뻣뻣했던 우리의 가이드 당초도 이제는 고분고분해지고, 중국 클라이머 몇 명은 내년 등산학교 동계반에 가입신청을 하겠다며 적극적이다.
손가락만한 술잔에 고량주를 채우고 무사산행을 축하하며 술잔을 부딪친다. 그리고 장평구 계곡의 아름다운 보름달과 함께 형형색색의 별들을 내 마음의 보석상자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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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교구 계곡의 빙벽은 약 370개로 220여 개가 등반이 가능하다. 그중 70~80개 루트가 30~200m 길이로 등반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알려진 가장 고난도 빙벽은 Dragon's Breath(용의 숨결·WI5)와 Russian's Face(러시아인의 얼굴·M6)로 2004년 미국의 페츨팀이 와서 초등했다.
등반시즌은 1-2월이 좋고 3월은 확보물 설치가 불량하다.
고도가 3,500m 이상으로 등반시 호흡이 거칠어지므로 빠른 등반은 자제하도록 한다. 두통약을 반드시 지참하고, 도착한 첫날은 되도록 많이 움직이지 말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한다.
사전에 사천성등산협회에 등반허가를 받는다. 지난 1월 10여 명의 한국팀이 허가 없이 등반하다가 장비를 압수당하고 거액의 벌금을 물었다.
민박집에서 숙식을 제공하지만 동계용 침낭과 밑반찬 등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휴대용 전기장판을 가져가면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등반종료지점에서는 4번(종료지점의 나무에 슬링)을 제외하고는 아발라코프식으로 하강해야 하므로 사전에 숙지하고 여분의 슬링을 가져간다. 1930년대 옛 소련의 뛰어난 등반가 비탈리 아발라코프가 고안한 이 확보물은 ‘얼음 모래시계’ 혹은 ‘아발라코프 샌드위치’라고 불리는데, 얼음에 V자 모양으로 작은 터널을 뚫고 코드나 웨빙을 꿰어 묶어 만든 확보물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설치된 얼음이 튼튼한 정도만큼만 튼튼하다는 점이다. 여러 개의 V자 관통 확보물을 만들어 균등화 방식으로 연결하면 더욱 튼튼해진다.
항공·교통·숙박편
아시아나 인천→성도 직항편(수·목·금요일)
중국민항항공 인천→성도 직항편(월·목·금요일)
칭두(成都)→쌍교구(236km, 10시간 소요) 요금 1인 60위엔(1위엔≒133원)
성도 버스터미널에서 쇼친(小金)행 대중버스 이용, 사파(沙坡) 혹은 쌍초커우(?橋?) 입구에서 하차, 쌍교구 관리사무소에서 운행하는 전용버스로 오색산 밑 민박집 쌍초투자춘(?橋度家村·주인 왕요메이)로 이동. 전화 135-4838-3036. 쌍교구 입장료 : 성수기(5~10월) 80위엔, 비수기(11~4월) 50위엔. 쌍교구 관리사무소→민박집(9km) 1인 80위엔.
쌍초투자춘 1박 숙박비 아침·저녁 2끼 포함 50위엔.
하루 차량 렌탈비 대당 150위엔
주요 빙벽등반 대상지
빙벽이름 / 등반길이 / 난이도 / 위치 / 비고
1. 니하오(Ni Hao) / 45m / 3급 / 민박집 건너편 도보 30분, 계곡 좌측. / 등반 첫날 고소적응하기에 적합.
2. Kolon Pencil / 40m / 4+ / 민박집에서 차로 10분, 도보 30분, 계곡 좌측. / 연필처럼 긴 기둥으로 형성.전형적인 N바디 자세.
3. Dragon's tears(용의 눈물) / 80m / 4+ / 차로 15분, 도보 40분, 계곡 우측. / 용의 숨결과 마주보고 있다. 용대리 매바위 상단과 비슷한 난이도로 확보물 설치 불량.
4. Dragon's breath(용의 숨결) / 90m / 5 / 차로 15분, 도보 45분, 계곡 좌측. / 차도에서 아이젠 착용하고 걸으면 수월, 원주 판대빙장 우측 100m폭과 비슷한 난이도(순수 등반길이 75m).
/ 글 고미영 코오롱스포츠챌린지팀
사진 코오롱등산학교 원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