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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선봉의 환상적 서리꽃 풍경에 羽化登仙하다
2021년 4월 4일
예수원 입구-장암밭목재-환선봉-자암재-큰재-황장산-댓재
날씨 : 비가 내리다 개고 구름
거리 : 14.6km
소요시간 : 5시간 9분
청명절인 4월 4일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 입구에 도착했다. 청명절기에 봄비가 내린다. 청명날에는 맑은 봄날의 햇빛과 봄바람이 살랑거려야 하는데 안개가 피어오르고 비는 애잔하게 내린다. 예수원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친 뒤 골지천의 외나무골다리를 건넌다.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렸는지 골지천의 황톳빛 물이 넘실거리며 흐른다. 검룡소에서 발원한 골지천이 정선 여량리에서 송천을 합류하여 조양강이라 불리고, 오대산 우통수에서 발원한 오대천을 합류하여 동강이라 불리며, 영월에서 평창강(서강)을 합류하여 남한강이라 불리게 된다. 남한강은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만나 한강이 되어 김포에서 임진강을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골지천은 한강의 최상류 하천이다.
골지천의 외나무골다리를 건너 외나무골길을 따라 오른다. 예수원 가는 길, 외나무골 계곡물이 환상을 깨우려는 듯 철철 아우성치며 흐른다. 예수원 창립자 대천덕 신부님의 추모비, 창립 44주년 기념비(2009년 건립), 레위기 25장 23절 일부를 새긴 빗돌 등 비석군을 지나 예수원 마을을 살짝 살핀다. 산비탈 건물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도와 노동을 중시하는 공동체마을의 식사 준비겠지? 샤머니즘을 비롯한 기복신앙과 모든 종교를 배척하지만, 지역과 이념, 종교를 초월한 평화의 사상을 실천하는 운동에 호기심이 이끌린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기네 신앙으로 빠져들 것이 너무도 뻔하며 평화의 실천은 깨질 것임이 확연히 보인다.
예수원에서 조금 오르면 구부시령 갈림목, 이곳에서 왼쪽 장암밭목재 방향으로 길을 잡아 외나무골 계곡을 가로질러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이곳이 금괭이눈 군락지임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노루귀꽃도 보인다. 금괭이눈과 노루귀는 자암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큰재 바로 위 숲은 흰노루귀 군락지임도 알게 되었다. 장암밭목재 쉼터에서 숨을 가다듬으며 사진을 찍었다.
짙은 안개가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안개가 나뭇가지에 차곡차곡 붙어 얼은 상고대가 환선봉 가는 산길에서 환상적 풍경을 연출한다. 한겨울에도 만나지 못한 진기한 서리꽃(상고대) 풍경을 청명날 삼척 환선봉 능선에서 만나는 행운을 누리다니. 눈이 호강을 누렸다. 서리꽃 풍경에 취하여 카메라를 개념없이 마구 눌러댔다. 아름다웠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현실을 잊은 착각 속에 그냥 걸었다. 서리꽃 풍경은 환선봉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다. 우리 일행은 모두 환선봉에서 신선과 선녀가 된다. 환선봉은 환상의 신선과 선녀가 태어나는 곳인가? 신선과 선녀를 환각하는 곳일까? 신선과 선녀를 환각하여 신선과 선녀의 안개로 피어나 날아가는 곳이 환선봉(幻仙峰)이라 생각하고 싶다. 환선봉 정상에서 우리는 모두 신선과 선녀를 환각하였고 신선과 선녀가 되었다.
비는 개었다. 오전의 어두침침 흐릿한 날씨가 조금 맑아져서 먼 곳의 풍경을 전망할 수 있게 되었다. 서리꽃이 뚝뚝 떨어진다. 어제는 서울에서 산화하는 벚꽃비를 맞으며 걸었는데 청명절인 오늘은 환선봉 능선에서 축복인 듯 시련인 듯 서리꽃 떨어지는 파편을 맞으며 걷는다. 봄날 꽃비와 서리비를 모두 경험하는 특이한 날이다. 자암재 내려가는 능선에서 방금 신선이 된 환선봉을 올려보니 서리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안개는 여전히 피어오른다. 몽환적인 풍경이다.
자암재에서 점심을 먹었다. 날씨가 맑아지니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 점심을 먹고 여유있게 출발한다. 자암재에서 오르는 숲길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얼음꽃 방울들이 맑게 빛난다. 얼음방울이 나뭇가지 새싹에 맺혀있다가 고드름처럼 녹아내린다. 이 얼음꽃 풍경은 몽환이 아닌 아주 맑은 정신의 풍경처럼 비친다. 흐린 것을 쫓아내는 풍경이다. 이 능선 아래에 광동댐 건설로 이주한 이주단지 마을이 보인다. 고랭지채소밭 위에는 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고 있다. 대간 능선은 이주단지 마을을 오른쪽으로 빙 둘러서 왼쪽으로 나아가다가 뒤쪽으로 이어진다. 뒤쪽으로 이어지는 숲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언덕에서 조망하는 풍경이 으뜸이다. 환선봉에서 여기까지 이르는 능선과 산봉들이 환하게 들어온다. 가슴이 뻥 뚫린다. 몽환 속을 걸어오다가 자암재에서 깨어나서 위치를 감각하며 여기에 이르렀다. 만사형통이다.
숲 속으로 들어가 큰재로 나아가는 임도가 내려다 보이는 등성이에서 앞을 전망한다. 청옥산이 우뚝하게 보인다. 모두가 앞서간 길을 뒤따라간다. 홀로선 나무 한 그루, 고독에 몸부림치지 않고 고독을 즐기며 당당한 모습 같다. 저 모습은 우주 삼라만상의 절대고독의 모습이다.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김현승의 '절대고독' 중에서)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더 가까이 다가오는 체온은 각자에게 다를 것이다. 산길을 홀로 걸으면서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분명히 감지한다. 때로는 외롭고 혹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 않은지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지만 나를 감싸는 '따스한 체온'은 내게는 '神'이 아니다. 나는 그 체온을 가슴에 품으며 내 사라지는 날까지 따스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큰재를 올라 내려가면 조선왕조의 뿌리인 준경묘 가는 길이 나온다. 아래쪽으로 4.8km 지점에 있다는 준경묘(濬慶墓)는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 이양무 장군의 묘라고 한다. 그의 묘를 찾으려 하였으나 찾지 못하다가 고종 때 삼척 땅 이곳에 묻혔을 것이라 보고 이곳을 추봉하여 새로이 단장했다고 한다. 그 뿌리를 찾아 왕조의 기틀을 더 튼튼히 하려 하였지만 어떻게 되는가? 망국의 길로 기울지 않았던가? 뿌리를 찾는다고 또 가문의 권세를 드높인다고 하여 선산과 봉분 단장에 열성을 다하는 가문의 풍습이 바람직하고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다.
준경묘 갈림목에서 산봉들을 오르내리며 황장산에 이르러 목을 축였다. 두타산과 청옥산이 눈 앞에서 묵직하다. 다음에 가게 될 두타산은 삼척의 진산으로 준경묘 텃자리는 두타산의 정기가 내리벋는 곳이라 한다. 머리를 때리며 시대를 고민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명당 묘자리 쓰는 것에 골몰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풍수지리의 명당은 고인이 평소에 원하고 지향하는 곳, 편안한 곳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풍수지리를 공부하며 명당 자리를 탐색하러 다니는 지관들이 줄어들어서 다행이다.
황장산에서 600m를 내려가면 댓재,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해발 810m의 댓재는 대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죽현(竹峴) 또는 죽치령(竹峙嶺)이라 이른다고도 한다. 댓재에 호랑이가 출몰하여 나그네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댓재에는 나그네들이 산적과 호랑이들로부터 무사히 통행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댓재에 새로운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조형물은 대나무 세 그루와 호랑이를 형상화하였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Healing 810 댓재' 문자를 활자화하였다. 해발 810m 댓재에서 치유의 시간을 즐기라는 조형물이다. 치유의 고개 댓재에서 삼척시를 조망하며, 현지 주민에게 위치를 확인했다. 삼척화력발소 건설로 주민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곳, 삼척시가지와 삼척의 주산인 봉황산 등을 설명 들었다. 치유의 공간에서 갈등의 공간을 내려보며 마음이 치유될까? 치유는 걷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치유를 위해 걸어간 해파랑길 삼척 구간을 떠올렸다. 동해에서 내려와 삼척 시가지를 걸어 수로부인 공원을 걸었던 2년 전의 추억을 되살리며 지리적 위치를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리니 마음이 열린다. 치유의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날아갈 듯 댓재에서 하장면 번천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오전에 태백시 하사미동 골지천 외나무골다리에서 출발하여 오후에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흘러내리는 번천의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오는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 번천 옆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오후 3시 54분이었다. 총거리 14.6km에 총시간 5시간 9분이 걸렸다.
대간 능선은 사진 맨오른쪽 산봉(1062봉인 듯)을 거쳐 왼쪽으로 이어진다.
홀로선 나무. 고독을 품은 삶, 고독한 삶, 이 풍경이 삼라만상의 절대고독을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맨 뒤쪽에 희미하게 둥두렷한 산봉은 청옥산이다.
준경묘는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묘소로 고종 때 추봉되었다. 조선왕조의 뿌리가 된다.
대나무가 많아서 댓재·죽현·죽치령, 호랑이들이 출몰하였다고 한다.
중앙의 하얀 곳은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 현재 발전소 건설 찬반 의견으로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음. 왼쪽 앞 봉긋한 산봉 뒤 왼쪽에 삼척의 봉황산과 삼척시가지가 살짝 보인다.
호랑이의 출몰과 산적으로부터 길손들의 안전과 무사통행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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