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동안, 숭산선사님은 전세계의 모든 불자님들이 와서 함께 할 수행할 수 있는 국제선원을 아름다운 계룡산에 세울 것을 계획해 오셨습니다. 계룡산의 여러 곳을 신중하게 살펴보신 숭산선사님은 마침내 1998년 말 현재의 장소를 선택하였습니다.
모든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듯이, 계룡산은 높은 영력으로 매우 의미가 깊은 산이며 동학사, 갑사, 신원사와 같은 많은 큰절들이 이 산에 창건되었습니다.
또한 경허 큰스님이나 만공 큰스님과 같은 한국의 많은 위대한 선사님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하셨습니다. 숭산큰스님께서는 이곳이 산의 주봉으로부터 내려오는 기의 중심점이라는 결론을 내리시고 이곳을 선택하셨습니다.
현재의 장소는 오래 전 700명의 위대한 스승들이 나타나 한국의 빛이 전 세계를 비출 것이라 예언되었던 국사봉의 바로 밑에 안착해 있습니다. 대봉스님과 저는 미국에서는 이동식 주택이라고 하는, 일종의 조립식건물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은 매우 좋습니다. 자그마한 불상이 있는 작은 법당이 있고 온돌식 난방과 수도, 전기 시설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동 화장실은 숙소와 조금 떨어져 바깥에 있는데, 아주 추울 때나 어두울 때만 아니면 그 또한 괜찮습니다.
가끔씩 산길을 올라오던 한국 사람들이 등산하다가 우리를 보고는 “미국스님!~”하고 외치면 신행을 하던 모든 사람들이 저희들을 돌아보며 즐거워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와 항상 함께 지내는 두 분의 동료가 있습니다. 현암거사님과 우리가 ‘전사장’이라 부르는 건설 책임자가 그들입니다. 현암거사님은 부산에서 오신 분으로 아주 열심히 수행을 하는 처사님이고 10년 넘게 대선사님의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그는 매우 훌륭하며 헌신적으로 공사감독을 하고 계십니다. 그는 이동식 주택에서 함께 지내지 않고, 대신 옆의 조그마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지내는데, 그곳에는 난방이나 수도 시설이 없습니다. 전기담요를 사용해서 밤에 다소 따뜻하게 지낼 수 있지만, 아침이 되면 항상 그 분은 웃으면서 방에서 전기담요를 제외한 다른 데는 꽁꽁 얼어붙었다고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또 다른 동료인 전사장님 역시 부산에서 오셨고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기를 고집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줄담배를 피워대는 것을 보면 일에 대한 부담감이 많은 듯 합니다. 그분은 일을 아주 잘하고 그의 노고와 빈틈없는 계획이 없었다면 첫 건물이 이렇게 순조롭게 제 모양을 갖추지는 못했을 겁니다.
제가 지난 가을 이곳에 왔을 때, 대봉스님은 혼자서 거의 두 달 동안 생활해 오셨습니다. 대봉스님께서 한국어를 못하시고 현암거사님과 전사장님은 영어를 전혀 못하시기 때문에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주 놀라운 수준으로 대화를 해 왔습니다.
첫 몇 달 동안, 그들은 보광식당이라는 한 동네 식당에서 매일 하루 세 끼를 해결했습니다. 이 식당은 신선하고 직접 만든 두부로 그 지역에서는 유명한 곳입니다. 내가 이곳에 와서 음식을 만들게 되자, 대봉스님과 현암거사님은 보광식당에 가지 않고 이제는 명행(스님법명)식당에서 식사를 하십니다.
지난 겨울, 우리는 화계사, 신원사, 그리고 한국의 다른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결제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결제를 시작할 무렵, 대봉선사님은 이번에는 ‘일하는 결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는데, 얼마 지나자 그 말씀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절을 많이 하고 참선 예불을 포함한, 화계사, 신원사와 똑같은 스케줄을 세웠습니다.
물론 좌선을 하다보면 가끔 창문 옆으로 커다란 기계가 지나가고, 착암기로 바위를 깨는 소리가 고막을 울릴 만큼 크게 나기도 하고 인부들이 밖에서 소변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일종의 ‘건설 결제’인 셈이지요.
이곳에서 제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가사를 돌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대봉스님께서 근처에 계실 때면, 저는 대봉스님께서 손님들이나 같이 일하시는 분과 담소를 나누는 것을 돕습니다. 또한, 창문에 와서 안으로 들어오고자 노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하는 일은 그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차를 대접하며 여기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현각스님의 책과 서양 두 명이 향한리에 살고 있다고 소문이 퍼져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가족은 현각스님의 책을 읽은 후, 단지 우리를 방문하기 위해 서울에서 5시간이나 운전을 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한두 시간 머물면서 우리에게 보시를 한 후 미소를 머금은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 지역의 많은 주민들과 친해져서 가끔씩 이곳에 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우리가 이곳의 지역사회와 원만한 관계를 갖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모든 이들을 안으로 초대해서 진지하고 헌신적인 마음으로 차를 대접하여 새로운 건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잘 대해주기보다는 차라리 앉아서 참선을 하고 싶을 때가 많기 때문에 항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또한 저의 수행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의 좌선수행과 일생생활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지요.
불사건축 현장으로부터 50미터 떨어진 곳에 한 나이 많은 보살님이 사슴목장을 운영하며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우리는 그 보살님을 사슴보살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분은 자신들의 이웃에 절이 생기고 많은 스님들이 온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 줘 늘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우리가 보지 않을 때 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곤 합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그 가족들 모두 매일 아침, 저녁에 참석을 하며 가끔씩 출가한 자녀나 손주들도 예불에 참석합니다. 그러면 절이라기보다는 놀이방처럼 되기도 하지요. 현암거사님은 두 소년과 인터뷰를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우리 식의 수행법을 포용합니다.
매일 밤, 저녁예불이 끝나고 난 뒤 “아이고!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사슴보살님의 환한 얼굴은 정말 보기에 좋습니다.
나는 매일 밤 비슷한 시간에 염불소리가 사슴보살님의 집 근처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 밤, 저는 그녀에게 그 소리가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사슴 밥먹는 시간이에요.”라고 하며 사슴들도 깨달음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반야심경 테잎을 들려준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봉스님도 건너가셔서 천수경을 독송해 주셨으니, 아마 이 사슴들도 내세에는 무상사에 와서 수행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제가 그 막내아들에게 스님이 되는 것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전에는 그 생각도 했었지만, 이제는 절이 바로 집 옆에 생겼으니, 그럴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무상사는 충남 두마면 향한리에 위치하고 있고 대지는 총 4,000평입니다. 첫 번째 건물인 ‘선원’을 짓는데 든 비용은 토지대금을 포함하여 12억 2천만 원입니다. 외국인들이 공사 계획에 드는 총 비용의 90%를 보시했습니다. 남은 10%는 신심이 두터운 화계사 신도님들이 보시를 해주셨습니다. 첫 건물은 2000년 2월 말 완공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3월 19일 오후 2시에 이 첫 번째 건물의 개원식을 가질 계획입니다. 숭산선사님과 조실 대봉스님께서 연설을 하실 것이고 개원을 축하하는 특별한 프로그램도 마련될 것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화계사 신도님들은 모두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건설공사가 마무리되면 계룡산국제선원 무상사는 모든 국제 불교신자들의 수행선원이 될 것입니다. 매 여름과 겨울을 우리는 비구, 비구니 스님과 신심 깊은 일반 신도들을 위해 한국식의 3개월 결제를 실시할 것입니다.
봄과 가을의 해제기간 동안에는 한국불교와 선 수행의 기본을 가르치는 강의와 연수, 단기 안거를 포함하는 다양한 교육 및 수행 프로그램을 가질 것입니다. 한국인들을 포함하여, 관심있는 모든 분들의 참석을 환영합니다.
미국과 많은 유럽 국가, 홍콩, 싱가폴,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 공화국, 호주의 불교 단체들은 10일~2주간의 무상사에서 수행하고 다른 유명한 사찰과 관광명소, 자연경관을 둘러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갖고 고국에 돌아가 강인한 한국전통불교와 아름다운 문화를 널리 알리고 그것을 온 세계로 교화해 나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