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어떤 철학책을 읽어야하는가?
철학과 교육과정에서는 아래에서 다루는 '철학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서술된 입문서 (대학 교양 수준), '철학사와 철학자를 중심으로 서술된 입문서 (대학 교양 수준), 원전, 교과서(대학 전공 수준)' 등을 모두 다룬다.
원전을 중시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입문서나 해설서는 대상이 되는 철학자에 대해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설서의 저자의 의견과 독자가 스스로 느낀 의견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해설서를 중시하는 이유는 오랜 기간 수많은 학자들이 원전을 연구해오면서 남긴 의미있는 재해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를 무덤에서 파내어 부활시켜서 물어볼 수 없기 때문에 철학자의 사상과 삶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의 재해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철학사를 중시하는 이유는 해당 문서 참조. 이 중에서도 '유명한 철학자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및 '철학적 난제에 대한 최신의 대답들' 중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철학사에 두어야 할 비중과 이용의 방식이 달라진다. 철학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문서 참조.
그런데 이 4종류의 비중을 어떻게 놓을지, 무엇을 소홀히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4종류 중 특정 부류를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설서 없이 원전만으로 철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해설서의 저자라고 하더라도 원전의 저자보다 더 그의 철학을 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전 없이 해설서만으로 철학을 공부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철학사를 공부할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철학사를 공부할 필요는 있지만 철학자가 직접 쓴 원전을 읽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철학 입문서들은 크게 다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한국에 출판된 각 분류에 속하는 유명한 입문서들은 다음과 같다:[1].
(i) 철학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서술된 입문서: 철학사나 특정 철학자가 아닌 윤리학, 형이상학 등의 구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책.
스티븐 로, 『돼지가 철학에 빠진 날』
최훈, 『위험한 철학책』
(ii) 철학의 역사와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술된 입문서: 시대 순으로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사상을 조망했거나, 혹은 특정한 철학자의 사상 체계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
윌 듀런트, 『철학 이야기』
김교빈, 『동양 철학 에세이』
슈퇴리히, 『세계철학사』
램프레히트, 『서양철학사』
프랭크 틸리, 『표준서양철학사』[2]
철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부터 접근하는 것이 좋다. 인기있는 입문서의 경우 서평이 많으므로 비교대조하여 책을 고르는데도 유리하다. 단점이 있다면 신뢰하지 못할 만한 입문서가 매우 많이 출시되어 있고 서평으로도 검증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팁이 있다면 자기계발서 작가, 학원 강사, 신흥종교 종교인이 쓴 철학 입문서는 저자가 정규 대학의 철학 박사인 경우 외에는 다 걸러도 무방하다
철학 원전
보통 철학과 커리큘럼에서는 처음 철학 입문을 할 때부터 철학자들이 직접 쓴 원전을 읽는 경우가 많다. 즉 플라톤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라 플라톤이 직접 쓴 국가론을 바로 읽는 것이다. 철학자의 원전을 힘들게 직접 읽어내는 것 자체가 철학적 연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사를 중시하는 교육 방식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몇몇 교수님들은 단순암기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지나고 보면 단순암기가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장점:
타인의 왜곡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
저자가 쓴 표현을 직접 접할 수 있다.
저자에 따라서는, 원전이라도 글이 매끄럽고 술술 읽힌다. 철학자들도 사람이니 만큼, 독자를 골려주려고 책을 쓰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공감받으려고 책을 쓰는 거다. 이를테면 플라톤의 국가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고 흥미로운 문학작품이다. 번역이 잘 되어있다는 전제하에, 원전에 따라서는 난이도가 낮다.
단점:
타인의 왜곡으로부터 안전하지만, 본인이 왜곡하기 쉽다. 철학 원전은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처음 철학을 접할 때 원전을 읽는 것은 대개 따분하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하이데거나 한나 아렌트나 헤겔을 꾸역꾸역 읽으려다간 아예 철학에 질려버릴 수도 있다.
일부 번역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외국어를 배워서 원어로 직접 읽을 게 아니라면 '타인의 왜곡에서 안전해진다'는 장점이 의미가 없는 셈.
일부 번역은 매우 읽기 난해하다. 차라리 영어나 일본어 번역본을 보는 게 더 이해하기 쉽다는 경우도 있다.
모든 학자는 자신의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익한 점이 무엇인가를 읽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좋은 선생님의 지도 없이 획득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일단은 저 사람 말이 맞다/틀리다라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보다 '저 사람말이 틀리기는(맞기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좋은(좋지 않은) 점이 있는가?'라는 형태로 접근하는 것을 권한다.[3]
여기 대해서 원전+강의(KOCW 등), 원전+해설서, 원전+논문 등의 방식으로 잘못된 이해를 줄이면서도 어려운 철학서를 스스로 읽어내는 내공을 기르는 방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