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명 : 거제 계룡산(566m)
---위 치 : 거제시
---일 시 : 2003년 9월 21일 (셋째주 일요일)
---출발시간 및 장소
---07:40-삼방동사무소 앞
---08:00-왕릉공원 앞
---08:10-내외동사무소 앞
---08:15-서김해 나들목 입구
---산행시간(약 4시간) 초보자환영
---등산코스
---인공암장-감실령고개-샘터-434봉-정상-통신탑-포로수용소잔해-
기독병원-계룡산온천
---회 비: 18,000원
---준비물: 중식, 여벌옷, 기타장비
---리 더: 산행대장 이태호
---문의처: 324-8848(경운산악회 사무실)
---회 장: 011-845-7476
---총 무: 011-564-3794
---계좌번호:182-18-25271-7(외환은행 장재기)
산 소 개
거제도의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어
동은 고현이요, 서는 거제구읍이다.
높이 566.0m로 높고 웅장한 숫닭처럼
닭벼슬 모양의 바위가 솟아있는
세바위를 가리켜 닭도 같고 용도 같다하여
계룡산(鷄龍山)이라 부르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용등과 같이 뻗은 계룡산 밑에는
용산마을이 있고 또한 계룡사(鷄龍寺) 절이 자리하였으며
그밑의 시내에는 계룡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계룡산의 머리는 북쪽을 향해 승천하는 기상으로
진해만의 광이바다를 희롱하는 듯하다.
산밑의 앞 바닷가에는 대섬과 유자섬이 쌍둥이 같이 있다.
여기 이 대섬에 1974년에 죽도조선소가(현 삼성중공업)
기공하여 이제는 용머리 같은 큰 배가 건조되어
세계의 오대양을 향하여 항진하고 있다.
계룡산의 중간인 용산마을에서 용트림하여
용소를 만들었고 옛날에는 명주실 한 구리를 풀어 넣으면
그 실끝이 광이바다로 나온다는 구전이 있다.
지금도 짙푸른 물색이 으시시해서 들어가기를 싫어한다.
산세가 용으로 형성하였으니 그 꼬리는
구천계곡에 닿아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못이 있고 맑은 물이 굽이굽이 돌아 흘러서
연담의 저수지에 모여져 20ha의 호수를 형성하였으니
이를 구룡호(九龍湖)라 부른다.
계룡산의 봉우리에는 신령을 모시던 영단이 있어
하늘과 신령님께 제사를 모시고
도민의 안녕과 태평을 빌었다는 곳이 있다.
최고봉의 바위밑에 거제를 내려보는
자리에는 서기 640년 신라 화엄종의 개조(開祖)인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의상대의 절터가
지금도 축대와 함께 높은 봉우리의 경관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신선대(神仙臺)가 있고
돌반석 위에서 장기와 바둑을 즐겼다는
바둑판의 흔적이 있으며
옛날에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고 갔다하여 신선대라 부르고 있다.
또한 정상 바로 밑에 샘터라고 이정표에
명기된 곳에는 주위가 온통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터가 남아 있고 약수터도 있다.
이 절은 옛날에 빈대가 하도 많아서
폐절하였다는 구전이 있으나 그 내력을 잘 알 수가 없다.
계룡산 일대에는 자작나무, 참나무 등
온통 잡목으로 우거져 있어 녹음과
단풍의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옛날에는 그 울림속의 소로를 따라
고현에서 거제로가는 길이 있었으나
산길이 험준하고 경사가 가파러서
통행에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1664년에 거제현아를 고현에서 거제로 옮긴 후
신,구읍간에 연락이 불편하여
25년후인 1688년 숙종 14년에
현령 김대기(金大器)가 부임하여
계룡산 중허리를 가로질러 한 길을 개설하였으니
이 길이 고현의 서문에서 10마지기골을 지나
거제의 사슴골에 이르는 길을 개통하다
주민들을 과도역사시킨다는
안염사(接廉使)에 의하여
현령 김대기가 파직을 당하였으나
뒤에 준공 개통하고 서문고개에다
「김현령치비」를 세웠다.
이 길을 방언으로 「김실령재 」라 한다.
6.25사변때에는 계룡산 밑에 UN군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설치하고
계룡산 정상까지 5자의 군사도로를 내어
GMC군용차가 올라가기도 하였으며
그 꼭대기에는 미군 통신대가 있었으니
오늘에도 그 건물의 돌담벽이 3동이나 보존되고 있다.
계룡산은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과 신도읍에 있는
산을 정감록(鄭鑑錄) 비결에 계룡산 구백만(救百萬)이란
풍수와 지리학설의 비록이 있다하나
충청도 계룡산은 그 후 아무런 사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거제의 계룡산은
고려와 이조때를 통하여 수다히 유수되어 살고 갔으며
임진왜란의 첫번째 대첩지인 옥포해전터와
노일전쟁때는 일본군의 승전 본거지였고
6.25사변 때에는 백만명을 구제한 것이
바로 거제의 계룡산이다.
6.25사변때에는 처음 인민군이 남침할 때
경남의 중부지방 5개시군에서 10만명의
긴급 피난민을 구제하였고 1.4후퇴때에는
서울과 이북 5도민 10만명을 수용구호하였고
육군 훈련소를 두어 후퇴시 교육기지였고
인민군과 중공군 17만3천명을 수용한 바 있으니
거제의 계룡산은 크게 구제하는
「거제」의 진짜 구백만(救百萬)의 계룡산이다.
1950년 11월 27일 UN군 포로수용소 설치로
주민이 소개하였다가 휴전으로 복귀할 때
소개민 복귀대책위원장이었던 신봉권(辛奉權)은
계룡산의 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거제 계룡산
계룡산 밑에 백만을 구한다는
정감록의 비록이
나라를 구한 것은 계룡산의
공덕이니 뉘가 의심 하리오.
충청도 계룡산은 이름만 세상에 날렸지만
이제와서 알고보니
거제 계룡산이 진짜 산이로다.
크게 구제한다는 거제의 이름은
뉘가 지었길래 이렇게도 맞을까
오늘날 나라를 구한 섬은 거제도로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