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녹내장도 수술이 되나요?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18.07.16 21:03:09 조회수 : 6,838
녹내장을 처음 진단 받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참 막막합니다.
보통은 녹내장치료 방침에 관한 큰 그림을 다음과 같이 말씀 드립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녹내장 진행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안압을 최대한 낮추는 것입니다. 안압을 낮추는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안약을 꾸준히 눈에 넣는 것입니다. 안약은 안압을 낮춰줄 뿐만 아니라 시신경을
보호하고 눈으로 가는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안약 한 가지로 치료 효과가 충분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여러 가지 안약을 섞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보통 세 가지 약까지
섞어서 사용해보고 그래도 효과가 충분하지 않거나 부작용 때문에 약을 쓰기 어려우면 레이저나 녹내장 수술을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말씀 드리면 대부분 깜짝 놀라면서 질문 합니다. “녹내장도 수술이 되나요?”
네… 수술 됩니다. 사실 녹내장을 전문으로 보는 안과의사가 하는 일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녹내장 수술입니다.
많은 환자분들이 ‘녹내장은 수술도 안 된다는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녹내장 수술을 해도 녹내장이
좋아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녹내장 수술을 통해서 안압을 잘 조절해서 실명의 위기를
넘긴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도 ‘녹내장 수술’이라 하면 생소합니다. 녹내장 수술은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힘들고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녹내장 수술을 해도 시력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수술은 환자 스스로 수술 후 좋은 점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시력교정술이나 백내장수술을 받게 되면 수술
후 시력이 좋아질 것이고, 눈꺼풀 수술을 받게 되면 눈뜨기가 편해집니다.
하지만 녹내장 수술은 환자가 느끼는 좋은 점이 없습니다. 안약 3가지를 쓰고도 안압이 25 mmHg 였던 환자가
녹내장 수술이 잘 되어서 수술 후 안약을 한 가지만 사용하고 안압이 12 mmHg가 되었다면 약을 적게 써서 편한 점은
있겠지만 녹내장이 없어지거나 시력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녹내장 수술을 받게 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시력이 수술 전보다 더 내려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저 담당
의사가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고, 안압이 좋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생각은 하겠지만 내심 실망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의사 입장에서 열심히 힘들게 수술 하고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물론 급성폐쇄각 녹내장, 신생혈관녹내장, 포도막염 녹내장처럼 ‘독한 녹내장’으로 수술 전 안압이 60-70 mmHg으로
아주 높았던 경우에는 수술 후 안압이 확 내려가면 통증이 없어지고 보이는 것도 더 맑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림 1. 녹내장 수술 장면입니다. 환자는 수술방 침대에 누워 있고, 눈 주변을 소독된 파란 포로 덮고, 의사는 환자
머리맡에 앉아서 수술 현미경을 보면서 수술을 진행합니다. 대부분 녹내장 수술은 국소마취로 눈에 마취 주사를
놓고 하게 되고,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둘째, 수술 후에도 계속 관리가 필요합니다
시력교정수술이나 백내장 수술은 한 번 수술이 잘 끝나면 재수술이나 추가 수술을 하는 일이 잘 없습니다. 하지만
녹내장 수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수술 부위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깁니다. 가장 흔한 문제는 수술 후 초기에
수술부위로 잘 흘러가던 물길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좁아지다가 막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안압이 오르게
됩니다. 안압이 오르게 되면 막힌 부위를 바늘로 구멍을 내서 물길을 내기도 하고(needling, 니들링, 주사침복원술),
수술 부위를 다시 열고 물길을 막고 있는 조직을 제거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예전 수술 부위 말고 다른
부위에 새로 수술을 합니다. 반대로 수술 후 안압이 너무 낮아도 문제가 됩니다(저안압). 안압이 너무 낮게 되면 바람
빠진 공처럼 눈이 쭈글쭈글 해지면서 시력도 함께 내려갑니다. 대부분은 일시적이지만 저안압이 지속되면 시력이
내려간 상태로 회복되지 않을 수 있어서 안압을 적절하게 맞추기 위해 추가 시술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녹내장 수술은
수술 후 꾸준한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 경제적 가치가 높지 않습니다
세상 어떤 수술이건 마찬가지겠지만 녹내장 수술에는 특히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이미 한 눈을 녹내장으로
실명한 환자들의 남아 있는 마지막 눈을 수술 할 때 긴장감은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겠죠. 나의 순간 실수가 누군가를
암흑의 세계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부담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의사나 병원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가치는 높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정해 놓은 녹내장 수술에 대한 수가가 낮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영의 측면에서,
같은 시간과 노력으로 골치 아픈 녹내장 수술 대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녹내장 수술에는 돈 욕심 같은 거 버리고 환자의 시신경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의사의 강한 신념과 끈기가
중요합니다.
많은 의사들이 가급적 녹내장 수술을 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땐 차라리 적극적으로 정면대결을
펼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상황에선 수술 밖에 방법이 없고, 한 번의 수술로 끝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시력이 더 내려갈 수도 있지만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으니, 그저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수술하는 의사
입장에서 수술이 예상대로 잘 되면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끼지만, 그렇지 못하면 엄청난 자책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환자들이 의사들의 판단을 믿고 따라와주시니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수술이 목표했던 대로 잘 될 수는 없습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수술을 해도, 누구는 아무는 합병증 없이
수 십 년간 안압이 완벽하게 조절되고, 또 누구는 몇 달 만에 다시 안압이 오르기도 하고, 오히려 수술 후 시력이
뚝 떨어져서 회복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술을 하게 될수록 수술 결과에 겸손해지게 됩니다.
그림 2. 군인의 제복에 달려 있는 훈장처럼 의사의 가운에도 보이지 않는 훈장이 있습니다. 수술 전후로 생기는
여러 가지 합병증을 경험하면서 생기는 훈장입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최고의 스승은 환자’라고들 합니다.
도움말: 김안과병원 황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