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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사교과서만 보아온 우리로서는 점차 다른나라의 역사서를 보면서
이상하다는 느낌이 자꾸 드는것을 누구나 느낄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의문을 모아봤습니다.
역사스페셜에 나온 내몽고의 고구려성과 고구려의 "유주자사 진"의 북경지역 통치...
이런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사실임이 분명합니다.
왜? 그런사실들은 모르는척하고 빼어버렸을까요? 당시에는 더많은 자료들이 있었을텐데요...
이러한 미스테리들이 많은데 일단 뒤로하고 다음의 의문을 간추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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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2. 중국의 '중국고금지명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고려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있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4. 삼국지의 위,촉,오 의 병력은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30만명 안팎이었으나
고구려 전성기 병력은 50만이 넘었다.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6. 삼국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없고.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적봉)가 발굴되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15. 고려의 무역 내역을 보면 일대가 보통2만으로 기록되어있고,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것들
을 수출하고 있다.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학계에서는 무시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사실로 밝혀졌다.
18. 이조개국시 전체 인구가 50여만으로써 고려인구의 3분에 1에 불과하였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장안(시안)과 일치한다.
20.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
고구려의 요동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내륙 요동을 말한다.
21.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고려땅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22.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23.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많은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24.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25.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26.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27.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28.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29.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있다.
30, 가야김씨의 족보를 보면 가야는 반도가 아니라 중국에 있었다.
31.강씨족보에 의하면 기황후였던 강씨가 고려의 원군이 오지 않음을 원망하며
몽고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참형(육시:몸을 6등분하는 형벌)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은 본래 형제의 나라이므로
군대를 보내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보냈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사람이라고 기록되어있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추장이 금이라는 이름의 신라인이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수십만의 기병이 바다를 건널 수 없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48.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49.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50.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51.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52.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여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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