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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그분이 계십니다. 노숙자로 말입니다.” 도로시 데이의 말입니다.
인천 동구 화수동 꽃섬고개(화도고개)에 조그만 민들레국수집이 있습니다. 조그만 오거리 골목길입니다. 오래 전부터 골목 전봇대 밑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어서 주변이 지저분합니다. 오전 열 시는 민들레국수집 문을 여는 시간입니다. 배고픈 우리 손님들이 근처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손님들이 그저 멍하니 쳐다봅니다. 며칠 동안 혼자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석배 씨가 자기가 조금 일찍 와서 쓰레기를 줍겠다고 합니다. 놀랍습니다. 석배 씨는 새벽 일찍 동네를 다니면서 재활용 물건을 수집합니다. 오전 열 시쯤이면 오륙천 원 정도 법니다. 찜질방에서 하루 잘 수 있는 돈입니다. 거기에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먹을 수 있는 돈을 더 벌면 행복해 합니다.
아침을 드시러 온 손님들의 옷매무새를 살펴봅니다. 몇 달 째 갈아입지 못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일 년도 넘게 신은 헌 운동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벽에 기대서 눈을 붙이고 있기도 합니다.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꼴찌부터 식사를 합니다. 꼴찌부터 식사한다고 해서 앞에 섰던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금세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식탁 여섯 개의 좌석이 꽉 차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자리가 나는 대로 손님들이 식사를 하게 됩니다. 꼴찌부터 식사를 하면 희한하게도 손님들이 다른 사람을 배려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해서 조금 빨리 식사를 하고 자리를 내어 줍니다. 밥이 한 그릇 정도 남았습니다. 서로 양보하는 손님을 봅니다. 서로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손님들에게서 세상의 희망을 봅니다.
민들레국수집은 간단한 뷔페식 상차림입니다. 손님들이 접시에 밥을 담은 다음에 반찬을 드실 만큼 담습니다. 몇 번이라도 더 드실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손님들이 음식에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전에 우리 손님들은 과일 샐러드를 거들 떠 보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접시에 듬뿍 담아 먹습니다. 브로콜리 데친 것도 좋아합니다. 상추쌈도 맛있게 먹습니다. 그래도 우리 손님들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불고기입니다.
요즘은 전철 무임승차 특별단속이 심합니다. 전철을 타야 인천으로 올 수 있는 손님들이 오질 못합니다. ‘하루 밥 세끼 먹고 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손님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노숙을 하면서 밥은 어떻게든 얻어먹겠는데 씻을 수도 없고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고, 잠을 편히 잘 수 없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 좀 모아보려고 기를 써 보지만 쪽방 하나 얻을 돈 마련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식사를 한 손님들은 민들레희망센터에서 빨래하고 샤워하고 책도 읽고 컴퓨터도 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간단하게 독후감을 발표하고는 독서 장려금 삼천 원도 받아 갑니다. 몸이 불편한 분은 찜질방 표도 얻어 갑니다. 그리고 민들레 옷가게에 들려 일하러 가고 싶다면서 작업복과 안전화도 부탁합니다. 갈아입을 옷을 부탁하고 특히 속옷을 부탁합니다. 팬티를 구하고 싶어 하는 분이 많습니다. 허리띠 없는 분도 많습니다. 세면도구도 구할 수 없는지 물어봅니다. 왜냐하면 노숙하는 분들은 빈털터리가 대부분입니다. 정말 천 원짜리 한 장, 백 원 동전 몇 개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 손님들을 위해서 터무니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노숙하는 손님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낮 동안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음악도 들을 수 있는 공간, 빨래를 하고 몸도 씻고 낮잠도 잘 수 있는 공간. 스스로 노숙생활을 그만두려고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 그러면서 저녁이 되면 다시 거리로 노숙하러 나가야 하는 그런 곳을 만들면 좋겠다는 꿈을 꿨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에 보건복지부와 인천교구의 도움으로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희망센터 건물을 2014년 초에 교구로 돌려주고 국수집 근처에 조그만 공간을 세 얻어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2015년 가을에야 겨우 지금의 민들레희망센터를 다시 마련했습니다.
노숙을 하다보면 감기에 걸린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지내면 감기가 쉽게 떨어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며칠만이라도 찜질방에서 지내게 하면 좋아집니다만 그렇게 하려면 준비해야할 것이 많습니다. 몸을 씻고 머리도 감아야 합니다. 속옷부터 겉옷과 양말 그리고 신발까지 새것으로 바꿔드립니다. 머리가 덥수룩하면 이발도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밥 든든히 먹고 감기약 챙겨주고서야 찜질방에 보내드립니다. 거의 대부분의 손님이 빈털터리입니다. 찜질방에서 가운을 빌려 입을 수 있도록 돈도 조금 드려야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분들은 대부분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손님들을 도울 길이 없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한 명씩 변신 프로그램’입니다.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우리 손님들이 행복해 합니다. 거기에다가 이삼일은 찜질방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 드리면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삶을 술술 이야기해 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도와드릴 방법을 찾습니다. ‘한 달에 한 명씩 변신 프로그램’을 합니다. 쪽방을 한두 달 얻어드리고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면 도와드립니다. 그리고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김**님은 부모님이 누군지 모릅니다. 고향은 선감도 수용소에서 살다가 도망 나왔다고 합니다. 성도 나이도 모릅니다. 고아원에서 지어준 이름입니다. 2004년 청송감호소에서 나와서 노숙할 때 처음 만났습니다. 알록달록한 옷을 좋아합니다. 밥을 맘껏 먹을 수 있는데 왜 감옥에 들어가요? 묻습니다.
이**님은 65세인데 전주가 고향입니다. 당뇨로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고물 수집으로 살아가는데 살 길이 여의치 않습니다. 자전거를 끌면서 재활용 고물을 수집합니다. 소주병이나 맥주병 빈병에 100원이라고 쓰인 것은 고물상에서 70원이나 80원을 쳐 준답니다. 그런데 빈병 줍는 것이 보물찾기보다 힘들다고 합니다. 방을 하나 마련해서 주소를 정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겨우내 옷을 갈아입지 못했답니다. 속옷과 겉옷 그리고 양말과 운동화까지 새것으로 드렸습니다. 생전 처음 새 옷을 입어 봅니다.
김*한님은 61세입니다. 부천에서 이곳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하루 두 번 식사를 합니다. 부천에서 선불로 세를 내는 쪽방에서 삽니다. 청주가 고향입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나왔습니다. 서른 살 무렵 막노동을 하다가 건축현장에서 추락해서 머리를 다쳤습니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장애 3급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방세는 내고 살지만 밥을 해 먹기가 어렵습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설빔을 입은 아기처럼 좋아합니다.
김**님은 56세입니다. 고향은 충남 논산이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공장을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옷 만드는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하다가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만 두고 안산에서 일당을 받고 막노동을 하다가 어깨와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때부터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여의도에서 노숙을 합니다. 아주 추운 날은 용산역이나 수원역에서 잔다고 합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했습니다.
박**님은 71세입니다. 부평역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한지 8년째입니다. 전에는 부평역 광장에서 무료급식을 했었는데 얼마 전에 없어졌답니다. 그래서 서울역도 가고 이곳저곳 찾아가서 먹는답니다. 오늘은 민들레국수집 오는 날입니다. 동인천역에 내려서 800여 미터를 걸어옵니다. 이제는 나이 때문에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길에서 만나서 함께 국수집으로 걸어오면서 물어봤습니다. 제일 먹고 싶은 것은요? 무엇을 먹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답니다. 다시 물었더니 백반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이*백님은 50세입니다. 동인천역 근처에서 노숙을 합니다. 전남 광양이 고향인데 어렸을 때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형제도 없는 혈혈단신 고아입니다. 단지 부모가 안 계셔서 고아원에서 살았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말았습니다. 스무 살에 고아원에 나와서 혼자 살아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쪽방 하나 얻을 수도 없습니다. 10년 전에 주민등록 말소되고 그냥 노가다로 거리에 삽니다.
박*호님은 58세입니다.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을 합니다. 드롭인 센터에서 밤을 보내지만 단체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고향이 경북 성주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중학교 중퇴.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프레스 작업 중에 왼손 새끼손가락과 약지 두 손가락을 잃어버렸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막노동을 하면서 엄마와 살았는데 몇 년 전에 치매에 걸렸고 형제들과 불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형제들과 절연하고 술로 지내다가 2년 전에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온몸이 떨립니다. 그때부터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이라도 하나 마련해서 혼자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명씩 변신 프로그램’에 이*백님과 박*호님을 돕기로 했습니다. 여인숙을 얻어 드리는 것이 월세 방을 얻어드리는 것보다 쉽습니다. 월세 방을 얻으려면 보증금이 있어야 하고 모든 살림살이를 마련해야합니다. 그런데 여인숙은 방세만 미리 내면 다른 여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고시원보다 지내기가 좋습니다.
두 사람에게 여인숙을 얻어드리기로 했습니다. 방 하나에 한 달에 20만원이라니까 돈을 아껴야한다면서 여인숙의 큰 방을 하나 얻어서 둘이 함께 살면 좋겠다고 합니다. 돈을 아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따로 그러나 옆방에서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좋다고 말렸습니다. 두 사람 주민등록을 살리고 여인숙 201호 203호를 얻었습니다. 20만원과 17만원에 한 달 계약을 했습니다. 이불과 세면도구 그리고 슬리퍼를 마련해 드리고 용돈도 만 원 드렸습니다.
“저기 그분이 계십니다. 노숙자로 말입니다.” 도로시 데이의 말입니다. 끝.
가난으로...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분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시는 민들레 국수집의
천사분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모두모두 건강 조심하시고, 늘 기도로 함께하겠습니다.
Have a lovely afternoon. Enjoy your day,
Dandelion neighbors love is a great way to get along,
which is quite wrong with the neighbors you see in others.
I learned what it is to be for a real neighbor and how to do it.
I truly admire Dandelion Friar and Veronica samonim,
I support you mindulle noodle house. Fighting!
매일 민들레 국수집을 가까이 하면서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을 깨닫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는 길인지 배웠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철이드나 봅니다.
언제나 가난한 이웃들 생각에 잠못드시는
민들레수사님과 베로니카님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Yellow Dandelion Noodle Collection is always a good place to talk with hope!
I feel that there is bright sunshine through the news of dandelion noodle collection.
Oh, sometimes I forget that hope for granted and sigh at the clouds. dandelion collection
Bring hope to my heart in sharing for generously poor and hard neighbors!
It's the first time I've had such a heart-wrenching realization while reading.
Thank you for the warm dandelion that makes you realize the meaning of life.
오늘도 민들레 국수집 안을 들여다 보며
소박한 인간미와 사람의 정을 듬뿍 느끼고 갑니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마음을 쓸 때,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
그것은 참으로 살아 있는 기도이며 희망임을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마을 풍경안에서 배웠습니다.
민들레 국수집 모든 VIP손님들을 응원합니다.
즐거운 성탄절 뜾깊은 연말되세요!
Thank you.
I learned love from a dandelion who always had a warm and delicate heart.
I read the dandelion soup diary every day, and it's all about what's important.
Deep and serious with a snerenity smile when I'm hard and hard
It's a great place to see dandelion soup that tells the story of life.
It's so nice to be able to smell people living inside Dandelion Noodle House.
I was able to learn how to live confidently and fruitfully at Dandelion Noodle House.
I will pray for Brother Dandelion and the Dandelion 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