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감영터(순교 사적지) : 박해로 숨어서 천주를 믿어야 했음에도 점점 확산되어 가던 경기지역의 신앙공동체는 1801년 신유박해때 큰 타격을 입었다.잡혀 온 경기 지역 신자들은 경기 감영으로 이송되어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받았다.가난하고 몸이 부실한 조용삼은 마지막 형벌때에 박해자들을 향해 "하늘에는 두 명의 주인이 없고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다.제가 원하는 것은 천주를 위해 한 번 죽는것 뿐이며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 고백하고 순교의 길을 걸었다
서소문밖 4거리: 조선시대 공식 사형 집행장으로 사직단 서쪽에 처형장을 두어야하며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칠패시장'이 있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잇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처형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신유박해때 신원이 확인된 이가 100여 명이 되고 순교복자 124위 가운데 27위가 순교하였다.
우 포도청 터(순교 사적지): 조선 중종 무렵 설치되어 1894년 까지 350여 년간 서울의 포도,순라기관으로 서울 서부,북부와 경기우도등을 담당하였다.한국 천주교회의 마지막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장소이다
의금부터(순교 사적지): 조선시대 왕명을 받을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맡아 보던 관청으로 천주교 신자들은 서울의 좌,우포도청과 지방의 각 진영과 군,현에서 문초를 받고 중죄인, 곧,주교와 신부.평신도 지도자들은 국왕의 명령에 따라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았다.
중림동 약현성당(순례지): 한국 천주교회가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이후 100년의 역사를 대변하는 성당이며,순교성인들 가운데 44명의 성인이 탄생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주변에 세워진 성지순례기념성당이다.
순교자124위 시복터(순례지): 광화문 광장은 조선 시대 의금부,포도청,서소문 형장 등 한국 교회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장소들과 가까운 곳으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순교자의 땅 한국에 와서 직접 시복미사를 집전하였다. 2015년 8워 ㄹ124위 복자 시복1주년을 기념하여 표석을 설치하여 서울대교구 순교자현향위원회는 축복식을 거행하였다.한글,영어,중국,스페인어로 새겨져있다
형조터(순교 사적지):조선시대 중앙 관서인 육조의 하나이다. 한성부 서쪽 적선방에 있었고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많은 교인들이 이곳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세종로 세종 문화 회관 앞 버스 정류장 바닥에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설치한 바닥돌이 매립된 자리이다
가회동 성당(순례지):최초의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794년 조선에 밀입극하여 1795년 4월 5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최인길 마티아의 집에서 첫미사를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성당이다.주문모 신부는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할 때까지 북촌에 있는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머물면서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하며 사목 활동을 하였다. 가회동은 주 신부의 사목 활동거점이며 한국 초기 교외의 신앙 중심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