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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노래자랑 有感
20기 성 병 조
오늘도 역시 적중하고 말았다. 중간은 몰라도 인기상과 최우수상 정도는 거의 알아 맞추는 내 실력을
또 확인시켜 준 날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음악에
조예가 깊다거나 노래를 잘 부르는 축도 못되면서 일요일 정오만 가까워오면 마음이 설레고 기다려지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가고픈 고장,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사회자의 재치로 요리해 내는데 맛을 들인지도 꽤나 오래된 것 같다. 젊은 출연자들에겐 아버지뻘이나 될만한 사람이, 그것도 일요일 대낮에 TV 앞에 한가하게 앉아 전국 노래자랑 (이하 전노자로 약칭)이나 즐긴다고 손가락질해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나는 전국 여러 곳을 두루
다녀본 경험이 있다. 그래선지 전노자 시간만 되면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의 도시들이 내 곁에 다가오고 그리운 연인이라도 만난 듯 정겨워 지는 것이다.
낯선 고장마다의 풍물을 익히고 옛 추억의 편린을
찾아 나서는데는 이 프로 만한 게 없다.
조금 전 끝난 강원도 양양군 편만 해도 그렇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가족이 함께
설악산에 올랐다가 들렸던 곳이 바로 의상대와 낙산사가 아니었던가. 짙은 숲속의 포장길을 따라 내려오면 당도하는 곳이 양양 해수욕장, 그곳에서 지금 내노라하는 노래꾼들이 모여 질펀하게 벌이는 향토 축제에 내 스스로가 함몰되어 버린 것이다.
개성있는 출연자들의 익살, 사회자의 수더분하고
맛깔나는 진행, 그리고 고장마다 선보이는 특산물의
향기까지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부러울게 없는 서민의
잔치 한마당이 되고 만다.
나는 이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전노자에 대한 과욕
때문에 얼마 전 고향 창녕의 문화공보실장에게 생트집을 부린 적이 있다. 지금까지 세 차례 정도 창녕군편이 방영되었다지만 내가 문제삼은 것은 작년 부곡온천에서 있었던 노래자랑 때문이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라도 나올까, 타지방에 비해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날 소개되는 코믹 연기는 어떤 각본으로 누가하며, 창녕홍보는 어떻게 전개될까?
창녕편이 있을 거라는 예고 때부터 설레이던 마음이
정작 시청한 후에는 허탈해지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대강 다음과 같다.
첫째, 창녕에 노래하는 인물이 그렇게도 없었던지
안타까웠다. 노래 수준이 형편 없어서 그런지, 자원
발굴에 소홀한 탓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타지방에 비해
출연자 수부터 턱없이 적었으니 첫 스타일부터 구겨
놓았던 거다. 그것도 변변찮아 인접한 밀양과 창원
등지에서 세 명이나 꾸어다 쓸 정도로 빈약한 형편이었는데다 솔직함만은 살아있었던지 원산지까지 친절하게 밝히는데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노래 실력이 딸리면 코믹연기나 특산물 소개에서라도 점수를 만회할 일이지 이것마저도 신통치
못했으니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줄려고 해도 줄 도리가 없다.
셋째, 사회자가 마이크를 근엄한 군수님에게 건냈을 때의 답변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전국 제일의 부곡온천, 갈대와 진달래로 유명한 화왕산, 국내 최초
최고의 양파 생산지, 진영보다 더 유명해진 창녕 단감, 2억년의 자연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우포늪, 진흥왕 척경비와 석빙고, 영산의 삼일 문화제와 사육신 성삼문의 위패를 모신 물계서원등 넘치는
자랑거리들을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지나친 그날은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진다.
고향을 가장 충실하게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이 지경으로 만든 원망의 염이 점점 부풀어올랐다. 한시간 프로를 광고효과로 환산하면 창녕군 예산의 몇%에 이를 만큼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섭섭함을 엉뚱한 사람에게 분풀이한 셈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전노자에 관한 한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감히 자부하고 싶다. 그 시간만 되면 만사 재쳐놓고 채널을 쫓아다닌 덕분에 얻은 영예스런 훈장이다.
전노자는 바로 내 고향의 소리요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향기에 다름 아니다.
농사일로 까맣게 그을은 얼굴, 주름진 이마, 어설픈 노래 가락으로 땡을 먹은들 어떠랴. 온갖 부끄러움과 체면을 뒤로한 채 내보이는 순수 그 자체면 족한 것을 ! 노래하는 사람이나 무대아래서 시름을 잊은 채 덩실덩실 춤추는 촌노들까지 모두 한가족이 되는 이만큼 신나는 프로를 어찌 국보급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노래자랑에 참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심이나 녹화장면을 직접 보고싶었는데 그 기회가 다가왔다. 2년 전쯤 아내의 미술작품이 전시되었던 세종 문화회관에 들렸다가 마침 별관에서 있었던 서울지역의 예심장면을 보고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행선지를 이야기 않고 잠깐 나왔다가 두 시간
가까이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으니 화가 날법도 했겠지. 토라진 아내를 달래느라 온갖 재롱을 다 부렸던
것도 전노자가 안겨다 준 웃지 못할 애피소드다.
이쯤되면 방송국에서도 내게 명예 심사위원 위촉장이나 열렬 시청자 감사장이라도 주는 게 도리일 성싶다. 아니면 좀 어렵더라도, 아니 두 번 세 번 울궈
먹더라도 (전국 순회의 계속) 전노자 프로만은 반드시 백수를 누려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 동의를 해 주던지 말이다.
그래야 사회자 선생님의 건강과 재담이 더욱 지속될
수 있으며, 항상 구수하고 은근한 미소를 띄우시는
악단장님의 밝은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2001년 12월 11일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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