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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모임 (보리수아래) 스크랩 나무의 꿈을 밟아가다-청오 김용회의 목다구전에 부치는 글
참사람 추천 0 조회 236 13.03.21 08:41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나무의 꿈을 밟아가다

-청오의 목다구전에 부쳐

 

 

긴 겨울 밤 이었다. 꿈속에 그가 왔다.

검은 산을 넘어서 왔다고 했다.

그에게서 밤새 풀잎을 밟아온 체취가 났다.

맑고 맑은 눈망울에 별이 총총 떴다.

부질없이 떠돌던 어린 맘을 내려놓고

그가 깃들어 사는 산엔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라는 나무가 산다고 했다.

날선 비바람의 도끼질에도

불타는 태양과 혹한의 겨울 눈보라에도 기죽지 않는

나무의 정신이 꼿꼿하다 했다.

버릴 것 다 버리고, 나누어 줄 것 다 나누어 준

그 나무의 풍모에

누구도 감히 도끼와 톱을 들이대지 못한다 했다.

나무는 정정한 직립의 정신 그대로

산의 일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 산의 날 등에 홀려

여러 날을 노닐다 만난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그가

남으로 남으로 더듬거리며 내려선 골짜기엔

한 겨울 눈발 속에서도 꽃피고 훈훈했다.

환하게 가슴이 열려있는 사람들이

때 묻지 않는 웃음으로 다독여준다 했다.

그가 꿈속에 왔다. 스물 몇 살이라고 했다.

보조개가 살짝 파이게 웃는 웃음이 햇살 같았다.

연두 빛 산자락엔

때 아닌 흰구름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청오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의 강하게 각인된 이미지 때문일까도 싶다.

세월이 묵어도 지워지지 않고 더욱 생생해지기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그 시절 보았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그 눈빛을 이즈음 다시 만났다.

 

 

그가 목다구전 木茶具展을 한다고 했다.

수 십 년 동안을 자신과의 질긴 싸움이기도 한 나무 다루는 일에 자신의 생애를 걸고 걸어가고 있다.

먼지 풀풀 나는 작업장에 박혀 잘도 버텨내며 남들이 가지 않는 새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자신과의 묵은 약속을 잊지 않으려는 듯 치루는 전시회 때마다 새롭게 진경을 개척하며 백척간두 진일보의 빛나는 예술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나무의 품세를 닮아가는 그가 찾아낸 새로운 경지를 함께 만나는 것은 늘 유쾌하고 행복한 일이다.

 

 

 

죽을 때까지 한자리에 붙박혀 한 생을 이루어낸 나무의 삶은 어쩌면 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구도자와 많이 닮았다.

이 지구별에서 의미 없는 존재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나무의 존재는 우리의 삶에 시사해주는 바가 많아서 차고 넘친다. 그만큼 인간과는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이어지는 그 질기고 질긴 상생의 존재인 나무의 생애를 놓치고 산다.

문명의 철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현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무의 생애를 들여다보고, 나무가 이승의 삶에서 이루고자 했던 생각의 갈피들을 넘겨다보는 일은 더욱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오 김용회가 하는 일도 그런 일이 아닌가 싶다.

그의 지난하기가지한 작업이 가족의 생계에 풀칠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무를 매개로 소통하며 대자연의 에너지를 현대인들에게 잇대어 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집과 너 댓 걸음 떨어진 곳에 최근 마련한 작업실에 그는 날마다 아내가 챙겨준 정갈하고 맛난 도시락을 매고 출근한다.

삼태기를 닮은 악양 형제봉 아랫자락 그의 작업실엔 건너편 산자락보다 더 일찍 산그늘이 찾아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더 게을러 진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의 순리와 함께하는 여유로움이 그를 또 다른 경지로 밀고 가는 것 같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그 공간에서 그는 대자연과 인간의 통섭의 묘를 발견해내고 있는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강은 흘러야 맛이고, 그 강물을 들이키고도 취하지 않는 바다는 수 천 년 흔들리며 출렁이는 것을 멈추지 않으리라. 그이의 삶의 근간은 이 대자연과 한통속이다.

그런 자긍과 배포가 그의 목다구 작업에 녹아들어 있다.

 

 

 

몇 년 전부터 그는 오래되고 묵은 생활 속 고재 古材에 심취해 있다. 아니다 처음부터 그는 그랬다. 나무와 인간과의 관계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400여년이 넘은 절집의 마룻장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나이테의 결을 하나하나 살려내던 그이의 안목은 대단하기만 했다.

아마 그 마룻장 위에 몇 천 번이고 무릎을 꿇고 엎드렸던 뭇 인간들의 하소와 하방 下放을 묵은 그 마룻장이 묵묵하게 받아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오랜 고대 속에 마련한 작업장엔 생나무보다 오래 묵고 묵은 나무들이 한 가득이다.

그 중 가장 상석에 자리한 나무들이 제주도에서 직접 골라온 고재들이다.

가시나무 등 난대수종의 그 고재들은 참 경이롭기만 하다. 청오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뛸 만도 했다.

뭍의 고재들이 여러 개의 판재들을 켜서 붙여 만든 것이라면 제주도의 것은 그렇지 않았다.

 

 

 

아름드리 통백이 나무로 만든 고재들은 고방이나 정지문으로 서서 수 백 년을 묵으며 제주도의 비바람과 소금기 간간한 햇살 속에서 미이라가 되었다.

가슴 속에 새겨놓은 세월의 결이 더욱 더 살아나는 고재에서 발견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의 의미로만 남았겠는가.

그 결은 나무가 만났던 세월의 결이었다. 물결과 바람결이었다.

 

 

 

햇살과 달빛의 결이고 옹이의 상처마저도 감싸 안아 다독이던 다정한 생애가 아로새겨진 것이었다.

나무가 살아냈을 생애의 결이 거세게 휘몰아치는 그 고재를 앞에 두고 감히 몇 개의 단어로 느낌을 형용할 수 없었다.

청오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싶었다. 그가 발견한 그 심오한 나무의 생애가 오래도록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그가 고재를 들여놓고도 몇 년을 멈칫거리며 작업이 더디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재로 목다구 작업을 하며 죽어도 죽지 않는 불멸의 꿈을 그는 꾸었는지도 모른다.

대패도 끌도 톱날도 들어가지 않는 그 단단하고 야무진 고재의 결에 그의 삶의 결도 어느덧 함께 녹아 접속되어 꿈틀거렸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그의 작업 속에 뒤틀려 틀어지고 오그라들던 나무들의 몸부림과 함께 여린 속을 파먹어 준 벌레들의 공력들이 가감 없이 들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용납한다는 것, 그것이 대자연의 쉼 없는 순환구조 속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에 다름 아님을 그는 이미 터득한 듯하다.

그런 중에 그는 어느덧 대자연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오늘도 고구마가 익어가는 난로가 달구는 작업장에서 선하게 웃으며 나비 한 마리를 찻상 위에 수놓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참 많이 그립다.

수도 없이 반복되는 사포질 속에서 반짝이는 나무의 얼굴을 찾아내는 지복에 잠겨 눈빛이 빛나고 있을 그에게 늘 가고 싶다.

 

 

그러면 그는 반가운 인사 대신 머리에 앉은 허연 먼지를 툭툭 털고 들끓던 물의 숨을 죽여 다독여서 맛난 차를 한 잔 내려줄 것이다.

물도 승하지 않고,

지리산 깊은 속내를 품은 녹차도 승하지 않고,

내어주고 받아주는 사람의 기운도 승하지 않는

상생과 통섭의 오묘한 기운을 그대로 살려서 건네주는

그 차를 나는 받아 마시고 길게 취할 것이다. 

 

 

글 /김경일(시인)

사진/정보석

 

 

청오 김용회의 목다구전

-오래된 나무의 생각

 

2012년 12월 5일(물의 날)~ 12월 11(불의 날)

서울 인사동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쌈지 스페이스 앞 골목)

오전 10시~오후 6시

 

청오 김용회 0109-4603-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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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3.21 08:41

    첫댓글 김경일입니다.함께 읽어보시면 절 조금 더 알 수 있으실듯한 글들 중...

  • 13.03.21 08:54

    '나무의 꿈을 밞아가다'..정말 멋진 제목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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