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영월암
이천의 진산은 설봉산이다. 이천에는 설봉이라는 이름을 딴 건물과 사업체, 혹은 장소가 저깆 않은데 그 이유가 바로 이천시를 바라보고 선 설봉산 때문이다.
설봉산(394m)은 이천을 수호하는 진산으로 부악, 무학, 부학산이라고도 하며 이천시내에서 약 2km 떨어져 있다. 설봉산은 경기도 이천에 위치하여 서울에서 가깝고 나즈막한 산으로 휴일 산행에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에 위치한 설봉산(394m)은 이천시가지를 감싸안듯 둘러싸고 있으며 험준하지는 않으나 오밀조밀한 운치와 주봉 부근 에 울창한 혼합림과 기암괴석이 볼 만하다.
설봉산에는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위해 작전계획을 세웠다는 성터인 남천정지와 봉화대지, 설봉서원지, 관고리 삼층석탑 등 유물과 영월암, 법왕정사 등 2개의 절이 있다.
또한 명소로는 주봉에서 동쪽 능선을 따라 약 1.5Km지점에 칼 모양의 날카롭고 거대한 칼바위가 있고, 영월암 동쪽에는 고깔 쓴 중이 바라를 진 모습을 한 고깔바위가 있다. 산중턱에는 여름철 피서지와 소풍지로 유명한 폭포와 약수터가 있어 휴식처로 유명하다.
설봉산 중턱에 자리잡은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영월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마애조사상(보물 제822호)으로 대웅전 뒤편 계단을 따라 30m쯤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10m 정도 높이의 이 마애상은 고려 전기에 만들어졌으며 자연석을 그대로 다듬어 만든 것이라 한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리없이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불과 2시간이면 정에 오를 수 있는데 정상에 서면 전망이 좋아 서쪽을 달리는 중부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보인다. 그 넘어로는 효자와 멧돼지의 설화로 알려진 도드람산의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이 들어오고 주변은 온통 오밀조밀한 야산뿐이다. 정상 주변에는 산성지가 2곳 있는데 삼국시대의 축성이라 구전되어 오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설봉산에 자리한 영월암은 풍수를 배우고자 하는 후학들에게는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이기도 하다. 이천에는 풍수를 배우며 둘러보아야 할 장소가 그리 많지 않은데 높지 않은 진산으로서 이천을 굽어보는 설봉산과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용월암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설봉산 중턱에 자리한 영월암은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경내에는 고려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9m, 폭 3m 정도의 보물 822호인 영월암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영월암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관고동(官庫洞)이다. 관고동은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동으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보물 822), 관고리 오층석탑(향토유적 5), 관고리 입상석불(향토유적 6), 설봉산 영월암(향토유적 14), 영월암 석조광배 연화좌대(향토유적 3)등의 유적과 유물울 가지고 있다. 관고동은 설봉산 일부와 설봉산 동쪽에 있으며, 준평원(準平原)에 가까운 낮은 구릉지를 이룬다.
동 이름은 조선시대 진상미(進上米)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마을에서 유래된다. 옛 지명은 관후리(官後里)였다.
설봉암을 오르기는 어렵지 않으나 겨울철에는 차량운영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중부고속도로 서이천IC로 진출해서 3번 국도로 나온 다음 우회전하여 3.8km를 달려 설봉 관고저수지로 올라간다. 혹은 영동고속도로 이천 IC에서 이천 방향으,로 직진하여 설봉 관고저수지로 올라갈 수 있다.
이천시에서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설봉 관고저수지에서 현충탑을 거쳐 제1주차장 방향으로 간다. 작은 절을 겇쳐 시멘트도로를 따라 영월암에 오를 수 있다. 단지 길이 급하고 경사가 심하므로 영월암 300여미터 아래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이 좋다. 경내에 가까운 주차장이 잇기는 하지만 가파르기 때문에 차를 이용해 올라가기는 조금 위험하며 겨울철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버스를 이용한다면 이천까지 온 후 이천시내 정류장에서 택시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설봉산 입구까지는 택시로 약 5분 정도 거리에 불과하다.
영월암은 산의 8부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설봉산영월암(雪峰山 映月庵)은 이천시 관고동 438번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계종 종단소속으로ㅛ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종무소와 대웅전, 아미타전과 요사채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천의 진산(鎭山)인 설봉산 주봉(主峰) 기슭에 자리잡은 영월암(映月庵)은 이천의 대표적인 고찰(古刹)로서 조선영조 36년(1760)에 편찬한 여지도서(與地圖書)와 1899년에 나온 이천군읍지(利川郡邑誌)에는 북악사(北岳寺)라 하였으나 그 이후는 영월암이라 불러오고 있으며 현재는 조계종에 소속되어 있다.
영월암 중건기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300년전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때 해동화엄종(海東華嚴宗)의 개조(開祖)인 으상조사(義湘祖師)가 창건하였다 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나 금석문(金石文)등 신빙자료가 없어서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내에는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광배(石造光背) 및 연화좌대(蓮花座臺), 그리고 석조(石槽)3층석탑 등의 유서 깊은 고찰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러한 유물 유적등의 조성년대로 미루어 영월암의 창건연대는 대략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초기까지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조선 후기인 영조 50년(1774)에 이르러서야, 영월 낭규대사(映月 郎奎大師)가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는 큰 불사를 주도, 중건하였으며, 1911년 보은(普恩)스님이 중건하고, 1920년에는 주지인 유신암(劉信庵)스님이 극락전(極樂殿)을 옮겨 세웠으며, 1937년에는 조언우(曺彦佑)스님이 산신각과 누각인 단하각(丹霞閣)을 중건하였다.
지금의 대웅전 건물은 1949년 청암(淸庵) 김명칠(金明七)스님이 이천향교 명륜당(明倫堂) 앞에 있다. 퇴락된 풍영루(風詠樓) 체목(體木)으로 옮겨짓다가 6.25동란의 발발로 중단된 것을 1953년 11월 당시의 주지 김해옹(金海翁)스님이 준공하였다.
현재의 영월암은 대웅전과 부속건물 3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석탑 석조광배 및 8각 연화좌대 등의 유물들은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오다가, 1981년 주지 송정해(宋正海) 스님이 고증을 받아 수습복원해 놓았으며, 1989. 8. 14 소실된 요사채를 1991년 여름에 법정(法淨) 강종래(姜鐘萊)스님이 전래한옥으로 복원하여 명실공히 전통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절 앞에 있는 일근이주(一根二柱)의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600여년을 헤아리는데, 이는 고려 말의 고승(高僧)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이 절에 머물 때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1988. 7. 27 전통사찰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사찰에 이르면 우선 요사체 앞에 있는 주차장 부근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불자이거나 불심이 깊은 신도라면 당연히 법당에먼저 들려야 하지만 풍수지리를 배우는 학인이라면 주변을 살피며 올라갈 것이다.
주차장에 오르기 전부터 둥근 산이 보이는 데 주차장에 오르면 길게 뻗어나간 맥을 볼 수 있다. 그 맥의 끝이 둥근 당판을 이르었는데 우선 방향으로 바위가 막고 있다. 전형적인 잉혈로 기맥을 차단한 바위가 앞권이다. 좌선방향으로는 길게 나간 용맥이 보이며 발가락을 연상시키는 돌이 세워져 있다.
시멘트가 깔린 길을 따라 경내로 오른다. 계곡을 막은 낮은 담장이 애교스럽고 웬지 가슴에 와 닿는다. 시멪 ㅡ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오른쪽 능선으로 요사체가 지어져 있는데 자시헤 실펴보면 풍수의 묘미를 잘 살려 정확한 기맥에 세운 건물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드디어 경내다.
첫댓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어진 마애조상이 아주 특별하게 보입니다.
국민학교 다닐때 소풍가던곳..기억이 새롭네요..
가 보고싶은 곳입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찾아 보겠습니다...
잘 보고갑니다..^^
영월암 등산로 중간에 설봉서원 풍수지리반이 10여년 넘게 개강중 등산 하실때 함 구경하세요.
현재 풍수지리반 수년째 교육생입니다.
영월암 등산로 중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진 右 영월암 오르는 등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