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코지와 5층탑 관람을 마치고 이제 야마구치현의 중심부에 위치한 아키요시다이를 향해 출발했다. 아키요시다이(秋吉臺, 추길대)는 석회암 지대에 나타나는 카르스트 지형이다. 석회암 지대가 빗물이나 지하수에 쉽게 용해되어 침식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지형을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한다는데,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많이 들어보았던 이름 같다. 어원은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경계에 있는 카르스트 지역이 이와 같은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카르스트 지형"이 보통명사화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이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낮 익은 풍경이다. 바로 제주도의 중산간 목장지대와 많이 닮았다. 이곳의 회색 석회암과 제주도의 검은색 현무암이 다르다면 다를 뿐 익숙한 전경이다. 아키요시다이 주변은 울창한 숲인데 이곳만 이렇게 초원지대로 남아있는 것은 제주도 목장지대와 마찬가지로 겨울에 산불을 놓아 덤불이나 나무들을 모두 태워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덤불이나 관목들을 태우고 나면 봄에 목초가 자라서 가축을 방목하는 목장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 제주도에서도 음력 정월이 되면 중산간 지대에는 가시덤불이나 나무들을 태우는 산불을 놓았다. 산불은 며칠 동안이고 계속 초목을 태우며 밤에는 섬 전체가 붉은 빛으로 뒤덮였다. 이제 생각해보면 신기하게도 한라산까지 산불이 번지는 일은 없었는데, 목장지대만 정확히 태우고는 저절로 꺼져서 봄부터 소와 말들의 천국인 방목지가 만들어 진다. 70년대부터는 적극적으로 산불을 금지하고 있어 이제는 들불 축제 때나 잠깐 만날 수 있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곳 일본에서도 이런 곳이 있었다니,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이나 관리 방법이 한눈에 이해가 간다.
들불을 놓아 초지를 인위적으로 조성해준 지역과 관목을 태우지 않은 자연적인 숲과의 경계가 뚜렷이 구분되고 있다. 1965년 이 일대 4,500 ha가 국정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이중 3분의 1 정도인 1,400 ha를 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은퇴 후에 나이가 드셔도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시는 해설사 할머니, 이곳의 특성과 인위적으로 이렇게 초지대를 조성하고 관리하는 내력을 상세히 설명해 주신다. 지금은 목초가 자라서 바위들이 잘 안보이지만 석회암이 많아서 보이는 것처럼 시원하게 말을 타고 달리는 그런 목장 지대는 아니라고 한다. 나이가 드셔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봉사하는 할머니,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도가 대단한 것 같다. 한국의 제주도에서 왔다고 하자 정말 좋은 데서 왔다고 하면서 반가워한다. 이름이라도 여쭈어 볼 걸 그냥 작별 인사만 하고 와버렸다.
이곳의 내력이야 어떻든 시원하게 뻗어 있는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는 것이 제격인 것 같지만 단체여행이 그렇게 여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이 아키요시다이 밑에 있는 석회암 속을 들여다 볼 차례다. 바로 아키요시 동굴(아키요시도)이다.
아키요시동굴은 아키요시다이에서 버스로 조금 이동하여 입구에 도착하였다. 아키요시다이와 같은 비슷한 이름인줄 알았는데 발음만 비슷했지 한자로는 추길대(秋吉台, 아키요시다이)와 추방동(秋芳洞, 이키요시도)으로 크게 연관성이 없는 이름이다.
화려하게 꾸며진 동굴 진입통로를 따라 동굴 내부로 들어가면 우선 동굴 내부의 거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주도에서도 길이가 몇 km 이르는 거대한 용암동굴들이 있지만 이 동굴이 훨씬 높고 웅장하다. 동굴 총 길이가 10 km, 동굴 폭이 가장 넓은 곳은 200m,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80m 정도라니 그 거대한 규모를 상상할 수 있다. 제주도의 몇 km에 이르는 거대한 용암동굴 들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짧은 시간에 생성되었지만 아키요시 동굴 같은 석회암 동굴은 몇 십만 년에 걸쳐 빗물이 바위를 녹이며 이렇게 커다란 동굴을 만들어내고 또 지금도 진행 중이다. 조금씩 흐르는 빗물이 이렇게 바위를 뚫고 거대한 동굴을 만들어 냈다니.... 자연의 경이로움은 그 끝이 없다.
때마침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내리고 땅으로 내려온 빗물은 굴속으로 스며들어 마침내 동굴 속 강을 이루고 있다. 웬만한 개울 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수량이나 유속도 만만치가 않다. 동굴 속의 또 다른 자연이다. 이렇게 동굴 속 강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총 10 km중 개방된 1 km도 채 못가고 도중에 돌아 와야 했다.
아키요시 동굴의 상징인 황금주(黃金柱), 정말 황금색의 아름다운 기둥이다. 어느 조각가가 이토록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 수 있을까? 높이가 15 m로 가까이에서는 전체를 한 화면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섬세하면서도 거대하다. 『황금기둥』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리아관음(マリア觀音)상, 『성모마리아관음보살』이런 뜻인데.... 천주교가 탄압받던 시절 마리아에 관음을 붙이면 뭔가 불교적인 이름으로 보이므로 국가의 탄압을 피할 목적으로 이렇게 타협적인 이름을 붙였다는데,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국가적인 자연유산에 이름을 붙이는 건 국가나 지방기관, 또는 책임 있는 학계나 단체일 텐데 그 험한 시절에 그런 기관에서 이런 이름을 붙이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냥『성모마리아상』이라고 부르기에는 정서적으로 친숙하지 않으므로 좀 더 일본적인 이름으로 바꾸어 『마리아관음(觀音)』으로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에게는 다소 황당할 수 있어도 일본인 들은 이렇게 자기들 나름대로 실용적으로 바꾸어 활용한다. 합성어 수준을 넘어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삼십만 년 동안 조금씩 떨어지는 빗물은 이렇게 섬세한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 낸다. 마치 여러 마리의 해파리들이 폭포를 올라가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폭포를 오르는 해파리(クラゲのたきのぼり) 』, 하긴 둥근 머리와 섬세한 촉수 등 해파리를 닮긴 많이 닮았다.
무엇을 닮으면 어떻고 닳지 않으면 어떤가, 기나긴 시간 동안 자연이 빚어낸 섬세한 아름다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엄굴왕(嚴堀王), 이 어두운 동굴을 지키는 조금은 무시무시한 마왕의 모습이다.
푸른 천장이라는 뜻의 아오텐조(靑天井), 실제로는 그렇게 푸른 것 같지는 않은데 조명발 때문인지 정말로 푸른빛을 띠고 있다.
일본에서는 곶감을 만들기 위해 볏짚으로 감을 싸서 말리는 데 이것을 스보가키(笣杮, 포시)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종유석을 『笣杮』라 했는데, 우리 눈에는 옛날 우리나라 소녀들의 댕기머리를 너무도 닮았다. 그렇다고 일본에 없는 댕기머리로 이름을 바꾸라 할 수도 없으니....
이 동굴의 경이로움은 그 끝이 없다. 마치 남해 다랭이 마을이나 발리섬의 산 등성이를 깎아 만든 다단식 논을 연상케 하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작은 석호들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마치 여러 장의 접시가 쌓여 있는 모습이라 하여『100장의 접시』(百枚皿, 햐꾸마이사라)라고 한다. 다단식 논을 닮으면 어떻고 접시를 닮으면 어떤가. 하나하나 완벽하게 수평을 이룬 작은 석호들인데 이들이 모여 또 하나의 경이로운 자연을 연출하고 있다.
완벽하게 수평을 이룬 이 작은 석호들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아마도 처음에는 스며든 빗물이 완만한 경사를 이룬 지대로 그냥 밋밋하게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 몇 십만 년의 세월동안 빗물에 녹아든 석회질 성분이 물이 많이 흐르는 곳에 많이 침적된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기울기가 낮은 곳은 물이 많이 흐르고 석회질이 많이 쌓여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자연적인 세공이 이루어 지다보니 이렇게 완벽하게 수평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그냥 단순한 호기심에 그렇게 추정해 본다.
햐꾸마이사라(百枚皿)보다 편편한 지대에 형성된 치마치다(千町田), “천개의 논밭”이라는 뜻인데 정말로 논이나 밭을 연상케 한다.
지팡이 모양의 석주, 『대흑주(大黑柱)』라 이름 붙였는데 그렇게 큰 기둥 같은 느낌은 없고 커다란 지팡이 모양 같다. 위에서 빗물이 떨어지면서 종유석이 생기고 바닥에서는 떨어지는 빗물에 포함된 석회질이 석순을 만들어 마침내 중간지점에서 만나 이렇게 하나의 기둥을 만든다. 이 기둥 하나 만드는데 30만년이란 기나긴 공사기간이 소요되었다.
지진이 많은 일본인데 만약에 이곳에 지진이 발생하여 지반 변형이 있었다면 이런 석주들이 많이 손상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곳만은 지진 발생이 적은 곳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래저래 축복 받은 지역이다.
그런데 예리한 사진작가 은형이의 카메라에 잡힌 중간부분이 살짝 떨어진 석주, 약간의 지각 변동으로 이렇게 30만년 동안 만들어 놓은 석주가 살짝 떨어졌다고 한다. 이 기둥을 다시 이어 붙이려면 최소 몇 천 년의 공사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사진 좌측의 산모양이 후지산을 닮았다 하여 “동굴속의 후지산”이라는 뜻의 『도나이후지(洞内富士) 』, 후지산을 좀 닮긴 닮았다. 후지산을 연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름답다.
이런저런 기묘한 형상들을 감상하고 감탄하다보면 온종일 있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여유를 가지고 한 번 더 찾아오고 싶은, 그런 아쉬움을 남기고 말이다.
이렇게 길 다면 길었던 오늘 하루 관광 일정이 끝났다. 이제는 하기시로 이동하여 하기 그랜드호텔에서 느긋하게 온천욕 즐기고 가이세키 요리를 맛보며 푹 쉬는 일만 남았다.
첫댓글 동굴은 볼만했어
지난 일이 새삼 기억나게 한다. 굉장한 작품을 만들었고 그리고 수고했고 고생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