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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 날짜가 빠져서 날짜 첨부해서 올립니다.
첫째 날
설렘과 걱정을 안고 공항에 도착했다. 약속장소에 가보니 ‘2006한중일아동동화교류’라는 종이가 기둥에 써 붙여져 있었다.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주위를 보니 친구들이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처음 만나는 것이라 서로들 어색했고 말도 잘 못 붙였지만 인터넷 카페에서 이미 서로의 사진들은 본 터라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짐을 맡기고, 입국심사를 받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족과 작별인사를 했다. 동생을 두고 혼자 가니 조금 마음이 걸렸다.
올해 몸수색은 매우 철저했다. 얼마 전에 영국행 비행기의 테러 위협 때문인지 신발, 허리띠까지 풀어서 수색했다. 심사 후에는 경북에 사는 지환이, 창원시에 사는 상현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비행시간은 2시간이었지만 짧게 느껴졌다.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도쿄 올림픽기념 청소년 종합센터에 버스를 타고 갔다. 도쿄 올림픽센터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가진 후, 저녁 식사를 하였다. 처음에는 일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특이한 음식은 없었다.
저녁식사를 한 후에 우리는 조 별로 목욕을 하러 갔다. 일본은 목욕 문화가 발달해서 그런지 이런 단체 생활에서도 목욕이 항상 있었다. 각 조에 배치된 일본인 리더가 있는데 우리 조는 원숭이를 닮아 별명이 ‘오사루’인 마음씨 좋은 형과 함께 하게 되었다.
잠을 자기 전에 일본, 중국 어린이들과 베개싸움을 하고 놀았다. 그런데 조용한줄 알았던 일본아이들이 가장 시끄럽고 장난을 많이 쳤다. 중국아이들도 지지 않고 재미있게 놀았다. 나와 한국인 친구 정혁이도 그 틈에 껴서 신나게 놀다 잠들었다.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창밖으로 본 주위 풍경은 아주 예뻤다. 아침 식사 후에는 각국의 특징을 살려 부채를 만들고 조 깃발도 만들었다. 부채를 만들고 깃발을 만들며 세 나라의 어린이들은 더욱 친해졌다.
점식 식사 후에는 국제 회의실에서 결단식을 가졌다. 동시 통역기를 쓰고, 외부 손님들이 참여해서 이 행사가 일본에서는 굉장히 큰 행사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기분이 좋아졌다. 주최자의 인사가 끝나고 각국의 대표적인 동화를 지도자 선생님들이 읽어주셨다. 중국, 일본에도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동화가 있어서 신기하였다.
2시간 정도의 결단식을 마친 후 우리는 국제 어린이 도서관을 견학하였다. 마치 책 박물관 같은 국제 어린이 도서관에는 세계 각국의 책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책들은 제 1자료실에 있었다. 약 500여권의 책이 있었는데 책들의 제목을 볼 때마다 어떤 책이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뚜렸하게 생각났다. 타국에서 본 한국책이 이렇게 반가울지 몰랐다.
견학 후 지친 우리를 반긴 것은 환영 저녁 식사회였다. 일본식 덮밥과 김밥, 중국식 딤섬과 한국식 깍두기와 불고기는 우리의 식욕을 자극했다. 한창 맛있는 뷔페를 즐기고 있을 때 거대한 사람이 무대 앞으로 나왔다. 전직 스모선수이자 가수 겸 탤런트로 활동하고 있는 코니시키의 무대였다. 하와이 출신이라 노래가 경쾌하고 신났다. 키와 뱃살 폭이 똑같은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우스웠다.
환영 저녁식사회가 끝나고 신나게 놀던 우리는 12시가 되어서 잠이 들었다.
셋째 날
아침 일찍 밥도 먹지 않고 우리는 신칸센을 타러 갔다. 신칸센을 타러 가는데 무거운 트렁크를 왼손으로만 끌고 가느라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신칸센을 타고 거의 6시간에 가까운 대장정을 떠났다.
신칸센에서 중국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퍼즐을 가지고 놀았다. 내가 평소 수학을 즐겨 하던 것이 도움이 되어 모두 6개의 퍼즐을 30분안에 다 만들었다. 일본 친구들도 잘 한다고 칭찬해 주고, 우리 통역사 선생님, 그리고 오사루도 칭찬해 주어서 어깨가 으쓱해졌다. 한창 재미있게 놀다가 지친 나는 책을 꺼내들었다. ‘태양의 아이’ 일본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가 지은 책이다.
드디어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야마구치현으로 갔다. 시모노세키라고도 불리는 야마구치현은 조선시대에 조선 통신사들이 부산에서 출발하여 도착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또 마침 우리가 야마구치에 도착한 날은 조선 통신사의 날 기념행사가 있었다. 비록 행사에 참여하지는 못하였지만 대신 가이쿄 유메 타워에 올라가 좋은 경치를 감상했다. 안개가 껴서 제대로 보지 못하였지만 산과 바다가 어울린 모습이 아름다웠다.
타워 관람도 마치고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수족관으로 갔다. 우선 돌고래 쇼를 보았다. 솔직히 돌고래 쇼의 수준은 우리나라에 못 미쳤다. 약간은 아쉬웠지만 돌고래 쇼를 감상하고 기념품을 사러 갔다.
넷째 날
넷째 날에는 시인 가네코 미스즈씨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바로 가네코 미스즈 시인 기념관에 가기 전에, 해변가로 잠시 놀러갔다. 원래는 크루징을 하기로 하였지만 태풍이 오고, 배가 작은 관계로 해변에서 잠시 놀기로 하였다. 말이 해변이지 주위는 산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산에서 본 바다는 참 멋있었다. 군데군데에 있는 섬들이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했다. 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거미였다. 우리나라의 거미는 대부분 작고 예쁜데 일본의 거미는 크기가 내 중지와 검지를 합친 정도였고 색깔도 우중충했다.
가네코 미스즈 시인 기념관에서 본 시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나와, 작은 새와 작은 방울과’라는 시는 모든 것의 조화를 노래하는 시여서 더욱 신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다음으로 간 아키요시 동굴은 우리나라의 다른 동굴보다는 조금 멋이 떨어졌다. 하지만 군데군데 늘어진 종유석과 불쑥 솟아난 석순이 보기 나쁘지는 않았다. 동굴에서 나오자 쇼핑 타운이 우리를 기다렸다. 참 예쁜 물건들이 많았는데 화석을 전문으로 취급 곳도 있어 내 눈길을 끌었다. 30만엔(!)짜리 암모나이트 군집 화석부터 50만엔(!!)짜리 돌 조각품까지 정말 기념품의 가격은 가지각색이었다.
매우 힘들었지만 점심은 우리의 노고를 풀어주었다. 바로 삼겹살!! 양념장에 살짝 담궈 재빨리 구워낸 삼겹살의 맛이란. 한국의 맛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삼겹살을 먹고 버스 안에서 잠이 든 우리는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일본식 북 공연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난타와 비슷하게 굉장히 신명나고 경쾌한 소리였다. 우리나라와 교류가 많이 있던 곳이라 그런지 곡도 굉장히 비슷하고 멜로디도 비슷했다. 절로 신이 났다.
다음으로 가수 지히로의 콘서트가 있었다. 그녀는 가네코 미스즈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는 활동을 해 왔다. 아름답던 시가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다섯째 날
아침 식사 후 바로 동화책 만들기에 돌입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한국의 호랑이, 중국의 팬더, 그리고 일본의 원숭이가 만나서 모험을 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나는 10개의 장면 중 제 2장, 즉 호랑이가 일본으로 가며 들뜬 장면을 맡았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 아이들과 더 친해졌다. 스토리 구성이 끝나자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원숭이 쇼를 보러 갔는데 너무 더워서 원숭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별 소득 없이 땀만 흘린 견학이었다. 너무 덥고 힘들었지만 돌아온 우리는 그림을 그렸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에는 그림도 잘 못 그리는 내가 완벽한 비행기 한대를 그린 것이다. 너무 좋아 미소가 절로 나왔다. 친구들도 잘 했다고 칭찬해 주어서 기뻤다. 드디어 우리 조의 스토리 및 그림이 완성되었다.
재미있는 동화책 만들기도 끝나고, 그룹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서로 각국 나라의 게임을 가르쳐 주고 놀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흔히 하는
‘짱, 깨, 뽕’은 일본어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 어린이들에게 ‘가위, 바위, 보’를 가르쳐 주었다. 참 재미있었다.
여섯째 날
드디어 동화책을 다 만드는 날이 되었다. 홀에 가보니 이미 우리가 그린 그림은 복사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들이 책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우리는 아주 멋진 책을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보물’은 우리조의 책 이름이다. 열심히 책을 만든 우리는 나가토시립 센자키 초등학교로 떠났다.일본의 초등학교는 어떤지 궁금했는데 막상 가보니 우리 초등학교와 거의 비슷했다. 가네코 미스즈 시인의 모교인 이 곳에서 지역 교류회를 하기 때문이었다. 점심 식사 시간에 우리는 서로에게 말도 걸며 친해졌다. 그리고 조금 후, 재미있는 피구 시합이 있었다. 다친 쇄골이 걱정 되었지만 다행히 힘들지 않았다. 열심히 피구를 하며 땀을 흘리니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피구가 끝나고 일본 친구들이 와서“에무비시(MBC는 내 별명이다) 최고예요”하고 말했다. 평소 조금씩 한국말을 가르쳤는데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두어서 기뻤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열심히, 잘 한 것 같았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파리로 갔다. 사파리에는 70종, 7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있었다. 가장 멋있었던 동물은 치타였다. 풀 위에 누워있는 모습이 매우 고귀해 보였다. 또한 한국의 마스코트인 호랑이도 늠름해 보였다. 가장 보고 싶었던 백호는 안타깝게도 우리 안에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간단히 샤워를 한 후 ‘사요나라 저녁 만찬’을 가졌다. 이별 전날 밤인 만큼 외부 손님들이 많이 참석했다. 저녁식사 후, 이번 동화 교류의 목적인 그림책 발표회를 가졌다. 떨렸지만 잘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숙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 때 일본인 친구인 카메타가 울기 시작했다. 가장 귀여운 아이가 울자, 나도 울고 싶었다. 그래서 울었다. 우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놀다가 로비에 내려와 전화를 했다. 집으로 전화하니 가족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와 대충 마무리를 하고 전화를 끝냈다. 내일이면 가족을 본다는 생각에 울음이 나왔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통역사 선생님이 매우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다. 내가 해산식 때 한국 대표로 선언문을 읽는다는 것이었다. 너무 기뻐 한동안 멍해 있었다. 통역사 선생님과 선언문을 썼다.
마지막 날
일찍 일어나 선언문을 연습했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떨었다. 하지만 친구 성훈이와 석준이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드디어 선언문 낭독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을 대표해서 나온 주민홍입니다. 우선 이번 동화교류를 개최해주신 한중일 아동 동화교류 사업실행위원회 총장 가와무라 의원, 히가시 야마 교장선생님, 그리고 오니시 선생님을 비롯한 주최 측 여러분들 덕분에 좋은 경험 많이 했습니다. 항상 저희 곁에서 지도해 주시고 저희가 안전하게 지내도록 도와주신 리더 여러분들과 원활한 소통을 도와주신 통역사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서 도쿄에 도착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기 야마구치에서 이별하게 되어서 아쉽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중국 친구들과 어떻게 지낼지 걱정되고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친구들의 따뜻한 배려와 중국 친구들의 친절한 미소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동화교류에서 동화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가 자는 모습, 먹는 모습, 노는 모습 모두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번 교류를 통해 서면상의 교류보다는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서툴지만 말도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좋은 경험을 한 저희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 분명 한국, 중국, 일본이 장래에 조화롭게, 우호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이별은 나중의 만남을 위한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겨우 앉았다. 다음으로 리더들의 인사가 있었다. 리더 한 분이 인사를 하는데 너무 슬펐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훌쩍. 훌쩍. 너무 슬펐다. 이 좋은 사람들과 헤어지다니.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오는데 1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가족들을 보니 너무 기뻤다. 안전하게, 무사하게 온 것이 기뻤다.
이번 교류에서 나는 우정이라는 값진 것을 얻었다. 내가 만난 99명의 친구를 이 지구에서 언젠가는 한번 만날 것이다. 꼭.
첫댓글 아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