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속 유럽문화사>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L'elisir d'amore>: 유럽 약장수 문화
작곡: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
원작: 외젠 스크리브의 오페라 대본 <묘약 Le Philtre>(오베르 작곡)
대본: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초연: 1832년 5월 12일 밀라노 카노비아나 극장
배경: 19세기 초, 이탈리아 농촌 마을
<주요 등장인물>
네모리노(Nemorino. 테너): 순진한 농촌 젊은이
아디나(Adina. 소프라노): 지주의 딸
벨코레(Belcore. 바리톤): 이 마을에 주둔한 군대의 중사
둘카마라 박사(Dulcamara. 베이스): 돌팔이 약장수
자네타(Gianetta. 소프라노): 마을 처녀
<주요 아리아와 중창>
1) 네모리노의 아리아 ‘Quanto e bella’(그녀는 얼마나 예쁜지!)
2) 벨코레의 아리아 ‘Come Paride vezzoso’(그 옛날 파리스처럼)
3) 아디나와 네모리노의 이중창 ‘Chiedi all'aura...’(산들바람에게 물어봐)
4) 약장수 둘카마라의 아리아 ‘Udite, udite, o rustici’(시골 양반들, 내 말 좀 들어봐요)
5) 네모리노, 벨코레, 아디나의 3중창과 합창 ‘Adina, credimi’(아디나, 내 말을 믿어줘)
6) 둘카마라와 아디나의 ‘뱃노래(Barcaruola)’ 이중창
7) 네모리노와 벨코레의 이중창 ‘Venti scudi!’(20스쿠디!)
8) 네모리노의 아리아 ‘Una furtiva lagrima’(남몰래 흘리는 눈물)
9) 아디나와 네모리노의 이중창 ‘Prendi, per me sei libero’(받아, 이제 너는 자유야)
<줄거리>
1막 1장
들판에서 일하던 농부들과 처녀들이 잠시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지주의 딸인 여주인공 아디나는 다른 쪽 그늘에서 책을 읽고 있다. 아디나를 애타게 사랑하는 네모리노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는 얼마나 예쁜지 Quanto e bella’라는 아리아를 노래한다.
마침 이 마을에 주둔하게 된 군대의 미남 장교 벨코레가 나타나, 아디나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꽃다발을 바치며 ‘그 옛날 파리스처럼 Come Paride vezzoso’을 노래한다. 벨코레의 자신만만한 구애에 아디나는 “난 급할 거 없어요” 하며 여유를 부리지만, 정작 다급해진 건 네모리노 쪽이다. 동네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아디나에게 다시 사랑을 애걸해보지만 아디나는 제발 희망을 버리라고 충고하며 클라리넷과 함께 ‘산들바람에게 물어봐 Chiedi all'aura...’라고 노래한다. 그러자 네모리노는 ‘시냇물에게 물어봐’라는 아리아로, 아디나를 향한 자신의 일편단심을 고백한다.
1막 2장
이때 이 마을에 약장수의 마차가 도착한다.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자신을 유명한 약학박사라고 소개하며 ‘모든 병을 고쳐주는 만병통치약’을 내놓는 약장수 둘카마라(‘시골양반들, 내 말 좀 들어봐요 Udite, udite, o rustici’). 그는 ‘혹시 옛 이야기에 나오는 것 같은 사랑의 묘약도 파느냐’고 묻는 순진한 네모리노에게 싸구려 포도주를 묘약이라고 속여 비싼 값에 판다.
가짜 묘약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네모리노는 아디나를 보고 “내일이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부대와 함께 다음날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벨코레가 급히 청혼하자, 아디나는 콧대가 높아진 네모리노를 골려주려고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 절망한 네모리노는 ‘아디나, 내 말을 믿어줘 Adina, credimi’라며 아디나에게 결혼 날짜를 하루만 늦춰달라고 애원한다.
2막 1장
아디나와 벨코레의 혼인잔치가 시작된다. 네모리노는 얼른 약효를 얻어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사랑의 묘약을 한 병 더 사려고 하지만, 이미 가진 돈을 약 사는 데 다 써버린 처지다. 입대하면 당장 현찰로 20스쿠디를 받는다는 벨코레의 말에 네모리노는 입대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돈을 받아 묘약 한 병을 더 사 마신다.
2막 2장
동네 처녀 자네타는 가난한 네모리노가 이웃마을 큰아버지의 죽음으로 거액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소문을 다른 처녀들에게 몰래 전해준다. 그 얘기를 듣고 동네 처녀들이 다들 네모리노에게 달려들어 아양을 떨자, 이 사실을 모르는 네모리노는 드디어 묘약의 효과가 나타나는 줄 알고 무척 기뻐한다.
한편 약장수에게서 ‘묘약’ 얘기와 네모리노의 입대 동기를 전해들은 아디나는 그 절실한 사랑에 마음이 움직인다. 한결같은 진심과 정열에 감동 받은 아디나의 눈에 후회의 눈물이 고이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며 네모리노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을 벅찬 마음으로 노래한다.
벨코레에게 돈을 주고 입대계약서를 되찾아 온 아디나는 네모리노에게 그 계약서와 함께 자유를 되돌려준다(‘받아, 너는 이제 자유야 Prendi, per me sei libero’). 사랑이 이루어지자 네모리노는 묘약의 힘을 더욱 믿게 된다. 약장수는 모두의 감사와 환호 속에 마을을 떠난다.
<감상 포인트>
1) 도니체티의 대표작: <비바 라 맘마>(1827) <안나 볼레나>(1830) <사랑의 묘약>(1832) <루크레치아 보르자>(1833) <마리아 스투아르다>(1834) <람메르모르의 루치아>(1835) <로베르토 드브뢰>(1837) <연대의 딸>(1840) <라 파보리타>(1840) <린다 디 샤모니>(1842) <돈 파스콸레>(1843)
2) 벨칸토 오페라: 18세기-19세기 초에 성악가의 아름다운 발성과 화려한 기교에 중점을 둔 bel canto 창법으로 노래하는 오페라. 벨칸토 오페라 가수들은 전체 성역(聲域)에 걸쳐 레가토(legato)를 소화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야하고, 노력 없이도 기교적인 패시지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3) 중세문학 <트리스탄>: 12-13세기 프랑스와 독일 지역에서 전승되어 문학으로 정착된 <트리스탄>을 토대로 만든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사랑의 묘약(Liebestrank)'이라 불리는 신기한 마법의 약이 등장한다. 명예를 위해 사랑을 포기했던 남자주인공 트리스탄과 그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자살을 결심했던 여주인공 이졸데는 함께 이 약을 마시는 순간 세상의 의무를 잊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중세 문학작품은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는 말로 이 묘약의 강력한 효과를 표현하고 있다. 바그너의 이 걸작이 탄생하기도 전에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 도니체티는 희극성과 진지함이 뒤섞인 멜로드라마 <사랑의 묘약>으로 이 중세의 트리스탄 전설을 패러디했다. 묘약으로 인한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만든 것이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의 이야기인 만큼, 묘약 역시 마법의 효력이 아닌 돌팔이 약사의 사기행각으로 풀이된다.
4) 19세기 초 유럽의 약장수: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의 주인공 피가로처럼, <사랑의 묘약>의 약장수 주인공 둘카마라는 시민사회의 발전에 힘입은 새로운 오페라 주인공이다. 더 이상 귀족이 사회의 주역이 아니라는 시대적 특성을 보여준다.
5) 음악적 특성: 감상적 멜로디와 희극적 리듬이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어, <사랑의 묘약>은 ‘멜로드라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분류상으로는 ‘희극’에 속한다. 2막 후반에 여주인공 아디나와 네모리노가 부르는 이중창 ‘Prendi, per me sei libero’(받아, 이제 너는 자유야)의 아디나 가창 부분은 기교 면에서 대단히 화려하고 어려운 ‘벨칸토의 난곡’으로 유명하다.
6) 로만차(romanza) ‘남몰래 흘리는 눈물’: ‘로만차’란 스페인 문학과 음악에서 간결한 이야기를 담은 유절 가곡을 뜻하며, 음유시인 풍의 소박한 가곡으로도 쓰인다. 원래 대본작가 스크리브는 이 처량한 멜로디의 아리아를 오페라에 넣는 것을 반대했으나 작곡가 도니체티의 강력한 주장으로 삽입하게 되었다. 초연 때는 이 아리아가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차츰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1) (음반) 존 서덜랜드/루치아노 파바로티 등/잉글리쉬 체임버 오케스트라/암브로시언 오페라 합창단(리처드 보닝 지휘, 1971년)
2) (음반) 안젤라 게오르규/로베르토 알라냐 등/리용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벨리노 피도 지휘, 1995년)
3) (DVD) 안나 네트렙코/롤란도 비야손/레오 누치/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등, 알프레트 에쉬베 지휘,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오토 쉥크 연출, 2005년 빈 국립오페라 공연 실황(한글자막)
4) (DVD) 미아 페르손/롤란도 비야손/로만 트레켈/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등, 파블로 카사도 지휘, 발타자르 노이만 합창단 및 앙상블, 롤란도 비야손 연출, 2012년 바덴바덴 페스티벌 공연 실황(한글자막)
(음악평론가 이용숙 rosina@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