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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와치라롱꼰 태국 왕세자
Maha Vajiralongkorn : The Crown Prince of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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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뎃 파 버러머 오라사티랏 짜오파 마하 와치라롱꼰 사얌마꿋 라처꾸만"(Somdej Phra Boroma Orasadhiraj Chao Fah Maha Vajiralongkorn Sayam Makutrajakuman, สมเด็จพระบรมโอรสาธิราช เจ้าฟ้ามหาวชิราลงกรณฯ สยามมกุฎราชกุมาร) 왕자는 1952년 7월 28일생으로, 그 칭호를 직역하면 "시암 왕국의 왕자이자 왕세자인 마하 와치라롱꼰"이란 의미이다.(주1)
그는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라마 9세) 국왕과 시리낏(Sirikit) 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 왕자로, 1남 3녀 중 전체로는 둘째 자녀이다. 그는 현재 태국의 왕세자(crown prince)로서, 국왕승계에 관한 법적 상속권자이다.
1972년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20세가 되면서 ""솜뎃 파 버러머 오라사티랏 짜오파 마하 와치라롱꼰 사얌마꿋 라처꾸만" 칭호를 제수받았고, 이로써 그는 왕세자이자 왕위계승권자가 되었다.
그는 호주 캔버라에 있는 "호주 육군사관학교"(Royal Military College, Duntroon)를 졸업했다. 태국군의 장교로 복무한 그는 호주, 영국, 미국에서 군사적 훈련을 받았다. 그는 전투기 조종사이며 헬리콥터 조종사이기도 하다.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1970년대에 "태국공산당"(CPT) 토벌작전에서 적극적 참여를 했고, 1980년대에는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 군대가 태국 영내로 넘어들어오는 것에 대한 작전들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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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초기
와치라롱꼰(Vajiralongkorn, วชิราลงกรณ) 왕세자는 방콕의 "두싯 궁"(Dusit Palace) 경내에 있는 "암바라 빌라"(Ambara Villa)에서 출생했다. 그는 방콕에서 초등학교를 마쳤고, 이후 영국 서머싯(Somerset)에 위치한 "밀필드 스쿨"(Millfield School)과 호주 시드니에 있는 "킹스 스쿨"(The King's School)에서 중등교육 과정을 마쳤다.
(사진) 방콕의 랏차담는 거리에 설치된
와치라롱꼰 왕세자의 초상화.
2. 성년기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호주 캔버라에 있는 "호주 육군사관학교"(Royal Military College, Duntroon)를 졸업했고, 그 기간 중에 방콕에 있는 "수코타이 탐마티랏 개방대학"(Sukhothai Thammathirat Open University, มหาวิทยาลัยสุโขทัยธรรมาธิราช)을 통해 문학사 학위도 취득했다.
1975년부터 그는 "왕립 태국군"(Royal Thai Army) 장교로 복무했다. 최초에는 "육군 정보국"(Directorate of Army Intelligence) 참모로 근무했고, 1978년부터 "왕실근위대"(King's Own Bodyguard Battalion)의 근위대장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태국 전통에 따라, 바로 그 해에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불교 승려로서 단기출가를 행했다.
(사진) 와치라롱꼰 왕세자의 상징 깃발.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상당한 기간을 해외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는 미국, 영국, 호주에서 특수전 타격훈련, 비전통적 교란전술, 첨단항법훈련 등을 공부했다. 그는 전투기 및 헬리콥터 조종자격을 갖고 있다.
태국 왕실에서 군사적 복무는 전통적으로 왕자들의 의무였긴 하지만,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자국의 군사부문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1970년대에 태국 북부 및 북동부를 중심으로 "태국공산당"(CPT) 토벌작전에서 적극적 참여를 했고, 1980년대에는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 군대가, 실각한 크메르루주(Khmer Rouge) 반군을 쫓아 태국 영내로 넘어들어오는 것에 대응하는 국경작전들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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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군복무 당시의 와치라롱꼰 왕세자(우측). |
3. 역할과 책임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왕립 태국 육군'(Royal Thai Army: RTA), '왕립 태국 해군'(Royal Thai Navy: RTN), '왕립 태국공군'(Royal Thai Air Force: RTAF) 각각에서 대장 계급으로 랭크되어 있다. 그는 "왕립 태국공군"의 F-16 전투기 조종사로도 등록되어 있다.(주2) 또한 보잉737 기종인 HS-HRH 호기(주3)와 HS-CMV 호기(주4) 조종사로도 등록되어 있다.(역주)
최근에 들어와 와치라롱꼰 왕세자의 군사적 역할은 점차 의전적인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부왕인 푸미폰 국왕이 노쇄해지면서,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부왕을 대신하여 왕실행사들과 대중적 석상에서 보다 주요한 위상으로 부각되고 있다(☞왕실농경제). 2007년에 태국 나콘 라처시마(Nakhon Ratchasima, นครราชสีมา) 시에서 개최된 '동남아시아 경기대회'(SEA Games)에서는 공식적으로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개막선언을 했다. 당시 이 행사는 푸미폰 국왕의 80세 탄생일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4. 여론 및 언론
태국의 <왕실모독처벌법>(lèse majesté law)으로 인해, 왕실 가족들에 대한 비판은 엄중하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공개적이진 않지만, 와치라롱꼰 왕세자의 사생활에 관한 내용들은 줄기차게 논란을 일으키는 주제가 되어왔다.
<파 이스턴 리뷰>(Far Eastern Economic Review : FEER) 지는 2002년 1월 10일자 기사에서, 와치라롱꼰 왕세자와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ทักษิณ ชินวัตร) 당시 총리 사이에 사업적 연관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태국 정부는 즉각적으로 이 잡지에 대한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고, 국가안보를 저해한다면서 <파 이스턴 리뷰>의 태국 특파원들인 숀 크리스핀(Shawn Crispin)과 로드니 타스커(Rodney Tasker)에 대한 비자연장을 거부했다.(주5)
2002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국왕에 비해] 존경을 덜받고 있다. 그의 선정적 사생활이 방콕의 가십거리로 도마에 오르곤 한다. (이에 비해 그의 누이동생 중 한 명이자 왕위계승권 제3위인 시린톤 공주는 대중적으로 대단히 존경받지만, 태국 역사에는 여왕이 등극한 예가 없다.) 하지만 푸미폰 국왕이 등극한 이래 55년간 이룩한 동일한 지위를 계승할만한 후계자는 보이지 않는다. |
2010년 들어와서도 <이코노미스트> 지는 --- 원래 태국에서 팔고 있지도 않지만 --- 태국 내에서 또 한번의 판매금지 조치를 당했다. <태국의 왕위계승 : 노쇠한 아버지와 싸움중인 자식들>이란 제목의 이 기사는,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광범위하게 혐오감과 두려움을 주고 있으며", "예측불가능한 기행을 일삼는" 인물이라 기록했다.(주6) 한편 온라인 저널인 <아시아 센터늘>(Asia Sentinel)은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괴퍅한 인물이자 통치능력이 결여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주7)고 보도했다, 그 직후 판금조치를 당했다.(주8)
2009년 1월 19일 호주인인 해리 니콜라이데스(Harry Nicolaides)가 사실적으로 묘사한 저서를 출판했다는 이유로 <모실모독처벌법>에 따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나중에 국왕의 사면령으로 풀려났다. 이 책에는 "만일 왕세자가 첩들 중 한 명을 사랑했는데도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다면, 그녀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그 이름과 가계는 물론 존재의 자취까지도 영원히 말살당하고 만다는 소문이 있다"(주9)(주10)는 소문을 담고 있었다. 세계적인 언론인 CNN조차도 이 부분의 문장을 방송하지 않은 채 보도를 내보냈다.(주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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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angkok Post) 연례 국가사열식에서의 왕실가족. 좌로부터 와치라롱꼰 왕세자, 시리낏 왕후, 푸미폰 국왕. |
5. 가족관계
1977년 1월 3일,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솜사왈리 끼띠야꼰(Soamsavali Kitiyakara, โสมสวลี กิติยากร: 1957년생) 왕자비와 결혼했다. 그녀는 왕세자의 외가쪽 첫번째 사촌이기도 하다. 솜사왈리 왕자비의 부친은 시리낏 왕후의 오빠인 아둔야낏 끼디야꼰(Adulyakit Kitiyakara) 전 대법원장이다. 이들 사이에는 1978년 태어난 외동딸인 파차라끼띠야파(Bajrakitiyabha) 공주가 있다. 그녀는 미국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방콕 검찰청" 검사로 일하고 있다.
(사진: Bangkok Post) 어린 시절 부왕인 푸미폰 국왕에게 섹스폰 연주를 배우고 있는 와치라롱꼰 왕세자.
1970년대 말부터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여배우 유와티타 뽈빠셋(Yuvadhida Polpraserth)과 동거를 시작했고, 몇명의 자녀들을 출산했다. 솜사왈리 왕자비는 수년 동안 이혼을 거부했지만,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1993년 1월 "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솜사왈리 왕자비가 부부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실모독처벌법>의 조항 때문에, 솜사왈리 왕자비는 반론을 펼 수 없었다. 이혼소송은 1993년 7월 종결되었다.(주12) 하지만 솜사왈리 왕자비와 장녀인 파차라끼띠야파 공주는 여전히 왕실행사에서 주요한 위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왕세자가 처음 유와티타 뽈빠셋을 소개받았을 때, 그녀는 야망에 찬 여배우였다. 그녀는 왕세자의 확고한 동반자가 되었고, 첫번째 아들인 쭈타와촌 마히돈(Juthavachara Mahidol, จุฑาวัชร มหิดล: 1979-8-29일생) 왕자도 출산했다. 이후 그녀는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더 낳았다. 1994년 2월 왕세자와 유와티타 뽈빠셋은 왕궁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푸미폰 국왕과 모친인 시나크린타(Srinagarindra, ศรีนครินทรา: 1900-1995) 왕대비도 이 결혼을 축복했지만, 시리낏 왕후는 축복을 하지 않았다.
유와티타 뽈빠셋은 결혼식을 올린 후, 평민출신 왕자비의 품계관행에 따라 "멈 수짜리니 마히톤 나 아유타야"(Mom Sujarinee Mahidol na Ayudhaya)를 제수받았다. 수짜리니 왕자비는 육군 소령 계급도 함께 받아, 와치라롱꼰 왕세자와 함께 군대의 행사들에도 참석했다.
1996년 수짜리니 왕자비가 자녀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망명하자,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왕실 주변에서 그녀가 공군중장인 아난 롯삼칸(Anand Rotsamkhan: 당시 60세)과 간통을 저질렀다는 소문을 흘렸다. 왕세자는 자녀들 중 딸을 납치한 후 태국으로 데려와 함께 살도록 했다. 이 딸은 나중에 공주 품계에 올랐지만, 수짜리니 왕자비와 아들들은 외교관여권도 말소되었고, 왕실 품계들도 모두 박탈당했다. 수짜리니 왕자비와 아들들은 나중에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다.
2007년 현재 수짜리니 왕자비는 여전히 "수짜리니 위와차라웡"(Sujarinee Vivacharawongse, สุจาริณี วิวัชรวงศ์)으로 불리고 있다.
2001년 2월 10일,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또다시 결혼했다. 상대 여성은 시랏 아콘뽕삐차(Srirasmi Akharaphongpreecha, ศรีรัศมิ์ อัครพงศ์ปรีชา: 1971년생)로 1992년부터 왕세자 사무실에서 근무한 비교적 양호한 배경을 가진 평민 출신이었다. 2005년 4월 29일 그녀는 티빵꼰 라서미촛(Dipangkorn Rasmijoti, ทีปังกรรัศมีโชติ) 왕자를 출산했고, "몸 시랏 마히돈 나 아유타야"(Mom Srirasmi Mahidol na Ayuthaya)라는 존호를 제수받았다. 이들이 낳은 왕자는 곧바로 왕자의 품계를 제수받았다. 한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이러한 조치가 상황을 조속히 안정시키고자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인용각주 필요)
와치라롱꼰 왕세자의 자녀들
○ 솜사왈리 끼띠야꼰 왕자비 사이의 소생
- 파차라끼띠야파 (Bajrakitiyabha) 공주 : 1978-12-7일생. |
○ 수짜리니 마히돈 왕자비 사이의 소생
○ 시랏 왕자비 사이의 소생
- 티빵꼰 라서미촛(Dipangkorn Rasmijoti, ทีปังกรรัศมีโชติ) 왕자 : 2005-4-29일생. |
화보집
2007년 1월 5일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직접 여객기를 운항한 자선비행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왕세자가 직접 "태국항공"(Thai Airways) "왕실자선 비행 TG 8870편"(Royal Charity Flight TG 8870)을 조종하여, 방콕의 수완나품 국제공항(Suvarnabhumi Airport)에서 출발하여 "치앙마이 국제공항"(Chiang Mai International Airport)까지 가는 행사로, 남부지방 주민들을 위한 의료시설 기금마련 목적을 갖고 있었다. 이 행사에는 "2006년 군사쿠테타" 이후 과도정권의 수장으로 임명됐던 수라윳 쭐라논(Surayud Chulanont) 총리와 그 부인인 쿤잉 찟라와디(Khunying Jitravadee) 여사, 그리고 시랏 왕자비와 티빵콘 왕자, 그리고 2번째 부인 소생의 딸인 시리완나와리 나리랏(Sirivannavari Nariratana, สิริวัณณวรีนารีรัตน์) 공주도 승객으로 탑승했다.
[출처] 이하의 모든 사진은 "파타야 메일"(www.pattayamail.com)에서 공개한 것이다.
(사진) 조종석에 앉아있는 와치라롱꼰 왕세자(좌).
(사진) 출발 직전 포즈를 취하는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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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왕세자가 출발 전에 부기장과 함께 비행스케줄을 점검하고 있다. |
(사진) 객실에 탑승한 수라윳 쭐라논 총리와 그 부인. 썩 즐거워보이지는 않는 표정이 이채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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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치앙마이에 도착한 직후 트랩을 내려오는 왕세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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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좌로부터 시랏 왕자비, 티빵꼰 왕자(아기), 와치라롱꼰 왕세자, 시리완나와리 나리랏 공주. |
참고문헌
Paul M. Handley, The King Never Smiles, Yale University Press, 2006. |
* 심층 참조용 게시물
- "[논문]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Andrew MacGregor Marshall 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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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왕실모독죄처벌법 때문에 왕세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겠네요. 아버지인 푸미폰 국왕이 장기간 왕위에 있으므로해서 왕세자는 국민으로 부터 신비감이 떨어졌을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의외로 경력을 보면 상당히 보통 인물은 아닌듯합니다.. 다만 왕세자로 성장하다 보니 자존심이 강한 다혈질 성격인 것 같고,.. 사생활에서 일단 문란하긴 해보입니다만.,. 그게 태국의 뒤로 호박씨까기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가십거리가 되겠지만, .. 태국인들이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하는 진실과 무관하게.. 이 사람이 바로 다음 국왕이 될 확률이 현재까지는 95% 이상인데, .. 그저 가십 내지는 생각지도 않으려 하니... 토론 부재의 태국사회의 허점을 볼 수 있죠...
그리고 일찍부터 근위대를 장악해서.. 태국 사회 뒷얘기들로는.. 상당히 가공할만한 뒷얘기들이 있습니다.. 가령 뭐 경호원들을 동원해서.. 뭐 그런건데.. 하여간 현재 나이가 있기 때문에, 등극을 해도 그의 치세가 길어야 10여년 내지 20년 안쪽이 아닐가 생각되는데.. 의외로 다른 건강상의 소문들도 있으니 알 수가 없죠.. 그런 정보들은 믿을 수는 없지만, 대충 뭐 에이즈 때문에 다른 나라로 가서 일주일에 한번씩 피를 갈아넣는다.. 등등 그런겁니다...
그리고 여성 문제로 해서, 일단 눈밖에 나면, 가혹한 보복을 한다는 소문은 무성한듯 합니다... 한때는 도박에도 몰두해서, 왕실 소속 바라문들의 점괘까지 동원하며 라스베가스에서 바카라 게임을.. 좀 크게 베팅을 했다는 이야기들도 존재합니다... 물론 과거에 보도된대로 조폭 연관설도 있었고 말이죠.. 일단 댓글 속의 이러한 내용들은 비교적 태국 국민들이 널리 회자하는 이야기들인데.. 쉬쉬하면서 말하죠... 근데 공식적인 토론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런 소문들의 진실도 저는 한 50% 선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