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정부의 2003년도 마약대책에 대한 평가
조흥국
1. 만연하는 마약
2002년에 태국에서 마약을 불법적으로 사용한 자들은 최소한 700만 명이었다. 그 한 해 전에는 1,000만 명이었다고 추산된다. 인구 6명 당 1명 꼴인 셈이다. 2002년도의 경우, 마약 중독자는 전체 인구의 4.3%인 265만 명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태국에서 마약이 이처럼 만연하게 된 것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 요인이 중요하다. 첫째, 19세기 이후 대규모로 이주ㆍ정착하기 시작한 중국인들의 아편 복용. 둘째, 베트남전쟁 기간 미군들로 인한 매춘업의 발달과 마약 복용의 확산. 셋째, 1970년대부터 시작된 관광산업의 발달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에 의한 마약 소비의 증대.
구조적으로 볼 때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이 중시되어야 한다. 첫째는 태국이 한 때 세계 최대의 헤로인 생산지였던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의 세 나라 중 하나라는 점이다. 이것은 태국이 마약 공급지에 인접해 있다는 외적인 지리적 요인이다. 반 세기 동안 ‘황금의 삼각지대’의 미얀마 땅에서 생산된 마약은 국경을 넘어 태국 도처에 유통되었다. 둘째는 저임금의 노동구조를 바탕으로 한 태국의 수출지향적 산업화와 이와 더불어 추진된 관광산업의 발달이라는 내적인 경제적 요인을 들 수 있다.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특히 태국의 공장들의 많은 근로자들과 건설인부들과 화물트럭 운전수들은 누적되는 육체적 피로를 잊기 위해 태국에서 “야바”(ya ba)라고 불리는 메탐페타민과 “야 에”(ya e)라고 불리는 엑스타시 등의 값싼 자극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메탐페타민(methamphetamine)은 중앙신경계를 자극하는 각성제의 일종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히로뽕”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에서는 “스피드”(speed), “크랭크”(crank), “아이스”(ice) 등으로 불린다. 메탐페타민은 주로 정제나 분말 형태로 코로 흡입되거나 주사로 삽입된다. 이 마약은 사용자들의 몸의 신진대사를 증가시키고 황홀감과 기민함을 주는 등 감각기관을 예민하게 만들고 에너지를 증가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마약 복용은 또한 관광산업에 편승하여 확산된 매춘업과 이와 연계된 각종 향락산업에 종사하는 숱한 사람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야바를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자들 중에는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일하거나 힘든 노동을 하거나 가난한 자들이 많다.
2003년 1월 태국 경찰이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 학생들이 마약을 복용하는 장소로 빈민가가 48.1%로 1위였고 2위가 유흥가로 47%였다. 경찰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빈민가 63.9%, 유흥가 23.7%의 순이었다. 2002년도 마약 중독자의 지역별 분포 조사에서 태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북부가 80만 명으로 가장 많은 마약 중독자를 배출한 지방인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태국은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와(Wa)족의 와족통일군(UWSA)이 생산하는 메탐페타민의 최대 수요지가 되었다. 태국에서 야바의 사용은 계층과 지역을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퍼져, 아편과 헤로인을 제치고 태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마약이 되었다. 2002년도 태국 전체 마약 중독자의 약 91%인 242만 명이 야바에 중독되어 있을 정도이다. 아편의 소비자가 30세 이상의 연령층에 많다면, 야바 사용은 15-24세의 청소년 층에 집중되어 있다.
태국에서 야바 문제의 심각성은 이것이 학생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태국 경찰청에서 2003년 1월 초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생들의 약 73%가 친구의 마약 복용을 목격했으며, 학생들의 22%가 마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하고 있었다. 태국 교육부에 의하면, 태국 학생들의 5%가 마약 중독자이거나 마약 딜러이다.
태국 보건부의 조사에 따르면, 5-9세 어린이의 4%가 야바의 밀거래에 연관되었거나 심지어 복용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학생들간 마약 거래는 복도, 화장실 등에서 이루어지며, 최근에는 호출기나 휴대폰이 동원되어 보다 직접적으로 그러나 은밀하고 확실하게 거래가 성사된다.
마약 거래는 이제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농촌 경제의 암울한 상황과 전망에 좌절하는 농민들 중에는 마약에 중독된 자들이 있는가 하면, 틈틈이 마약을 팔아 생계수단의 일부로 삼는 자들도 있다. 이처럼 마약 문제로 태국 사회는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까지도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야바는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태국에서 구하기가 용이치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태국 도처에서 쉽게 살 수 있다. 태국 경찰은 2003년도에만도 10억 개의 야바가 미얀마에서 밀수될 것으로 추산했다. 태국 당국은 태국 내에서의 마약 거래에는 태국 군과 경찰과 공무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고 본다. 이들은 마약 밀수꾼과 마약 딜러로부터 뇌물을 받은 대가로 마약 밀수와 밀매를 눈감아주고 때로는 배후에서 보호해주기도 한다.
2. 태국 정부의 솜방망이 마약 단속
태국 정부는 그동안 마약 단속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태국에서 마약 문제는 20세기 중엽까지만 하더라고 대개 아편과 관련된 것이었다. 1922년에 제정된 마약법도 주로 아편에 관한 것이었다. 1934년에는 대마초를 통제하기 위한 대마법이 제정되었다. 1975년에는 마약법에서 규제하지 않는 향정신성 물질을 단속하기 위해 향정신성물질법이 발표되었다. 1979년에는 기존의 마약 관련 법들을 통합하여 마약류를 총괄적으로 단속하려는 취지에서 새로운 마약법이 제정되었다. 1979년 마약법은 1961년의 마약에 대한 국제적 협약에 근거를 둔 것으로 태국도 이 협약에 가입되어 있다. 1999년에는 태국 정부가 돈세탁방지법을 제정했는데, 이것은 마약 단속의 효율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인 조치들은 지난 수십년간 상황을 볼 때, 마약 퇴치에 있어서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원인으로는 첫째로 무엇보다도 위에서 언급한 바 마약 딜러와 군ㆍ경 및 공무원간 상호 공조의 결탁관계를 들 수 있다. 둘째는 태국 당국의 법집행력이 전반적으로 미약하고 부실하다는 측면이 있다. 태국에는 마약을 거래하거나 사용하거나 이것을 방조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마약단속법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 딜러들이 마약 거래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은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는 긍정적인 인센티브가 그것이 적발될 가능성과 그 때 받을 처벌을 감안한 부정적인 인센티브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약 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부정적인 인센티브를 더욱 크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3. 탁신 정부의 강력한 마약근절 대책
2003년도 초에 태국 국왕은 만연된 마약을 퇴치하고 마약 거래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국왕은 비록 입헌군주로서 헌법상으로는 실권이 없는 상징적인 국가의 수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태국 민족의 구심점으로서 태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해오고 있다. 민주주의와 같은 국가의 본질적인 정치적 문제나 환경오염과 교통체증과 같은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중요성을 갖는 사회적 문제가 대두될 때, 국왕은 종종 전면에 나서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환기시키고 정부가 그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곤 한다.
탁신(Thanksin) 총리도 마약의 폐해를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2001년 2월에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마약 단속을 정부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라는 것을 천명했다. 탁신 정부는 초등학생들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마약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기존의 향정신성물질법을 강화하여 암페타민과 암페타민의 유도물질인 메타페타민과 텍사페타민 등을 종전의 2급 마약에서 헤로인과 같은 급인 1급 마약으로 분류하고, 이같은 물질을 생산ㆍ밀수ㆍ밀매하거나 판매 목적으로 20g 이상 소지하는 자에게는 최하 징역 20년에서 최고 사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2003년 1월 14일에는 마약 밀수꾼과 딜러들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고, 1월 28일에는 마약 거래에 대한 절대적인 진압 의지를 보여주는 총리령 29/2546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2월 1일 향후 3개월간의 기한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탁신 총리는 3개월의 캠페인 기간 중 마약 문제 해결이 개선되지 않는 주지사나 경찰 책임자를 해임시킬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마약과의 전쟁’이 끝난 5월 초 태국 경찰청은 지난 3개월간 총 2,275명의 마약사범이 사살되었으며, 그 중 태국 경찰이 자기방어적 차원에서 사살한 자는 51명이고, 나머지는 마약 거래에 관여된 자들끼리 상호 고발과 보복의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밖에 체포된 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탁신 총리는 ‘마약과의 전쟁’이 승리로 종결되었다고 자축했다.
4. 탁신 정부의 마약 캠페인에 대한 평가
탁신의 마약 캠페인은 그러나 태국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태국의 상원의원들 중 일부는 이번 마약퇴치 캠페인을 정의의 탈을 쓰고 자행된 인권침해라고 규정했다. 야당 지도자인 추안 릭파이(Chuan Leekpai) 전총리는 정부가 서방 선진국들로부터 마약퇴치 자금을 받아 태국 내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위선적이라고 비난했다. 인권단체들은 2,000명 이상의 죽음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당국이 경찰들에게 사법권을 벗어나 즉결재판식으로 사살하도록 고무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한 추측의 근거 중 하나로 시신들에 대한 부검이 허락되지 않는 점을 들기도 한다. 그들은 시신들에서 총알이 이미 제거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탁신 정부에게는 결과적으로 볼 때 잔혹한 측면을 보여준 마약근절 캠페인을 정당화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즉 마약거래가 만연하는 것을 방치함으로써 수백만 명에 이르는 태국 국민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보기보다는 몇 천 명의 마약 범죄자들을 사회에서 제거하는 것이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논리이다.
1970년대 중엽 태국에서 공산주의가 확산되면서 민주주의 체제가 위협을 당하고 있었을 때, 당시 태국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낏띠우토(Kittiwuttho)라는 스님은 공산주의자를 죽이는 것은 악업에 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의 관점은 살생을 원칙적으로 금하는 불교의 계율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그 이후 태국 사회에서 불교와 정치간 관계에 대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의 마약 캠페인에서도 몇몇 불교승려들은 마약 범죄자들은 모두 죽어도 마땅하다고 말했다.
마약 범법자들에 대한 탁신 정부의 과격한 대응은 자유민주주의의 개인적 인권 존중의 원칙을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집단적 안전을 보다 더 중시할 것인가, 혹은 이념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실용을 우선시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적 고민의 세계에서 평가받아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번 단속은 절차와 과정 상에서 인권침해와 관련된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다.
외부 관찰자들에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태국 정부의 과격한 마약 캠페인에 대해 항의하는 태국인이 의외로 적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몇 가지 측면에 대한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태국 사회에는 마약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어느 정도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태국 국민들의 인권에 대한 민주주의적 의식이 아직 성숙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1992년에야 군부권위주의 체제에서 문민정부 체제로 넘어온 태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아직 일천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셋째로, 탁신 정부가 태국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아스마 자항기르(Asma Jahangir)는 태국 정부가 과격한 단속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독립적인 기관에 의한 조사를 요구하자, 탁신은 태국이 자신의 집을 청소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요청을 거부했다.
5. 근절되지 않는 마약
2003년 마약 캠페인 시행 이후 마약과 관련하여 다른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다. 마약의 밀매가 과거에는 전문적인 마약 딜러들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이들이 강력한 단속의 대상이 되자 이제는 일반 시민과 학생들 중에도 마약을 파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방콕 시내의 도처에서 야바 밀매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공급 루트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생겨난 또 다른 현상은 마약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야바의 공급 라인도 미얀마 국경 지역에 대한 통제의 강화로 이제는 다른 루트로 옮겨 갔다. 특히 태국 국경 부근의 캄보디아 마을들에서 마약 생산이 최근 늘어났다. 태국-캄보디아 국경의 통제가 매우 허술한 점을 이용하여 캄보디아의 마을들에서 은밀히 제조된 야바가 손쉽게 국경을 넘어온다. 숱한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오후 5시경에도 통제하는 사람은 두서너 명에 불과하다. 태국에 들어오면 대개 태국인 딜러의 손에 의해 방콕이나 기타 큰 도시까지 운반된다.
마약 문제가 2003년 초 탁신 정부의 캠페인으로 해결된 듯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문제가 공급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 측에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 층에서 마약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는다. 이로 볼 때 이제는 무력적 해결책보다는 문화적, 교육적 캠페인이 필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Collins, Stephen A. “The hole world is watching.” (Bangkok Post, 2003/03/16) “Drug manufacturing picks up.” (The Nation, 2003/07/09) Johnson, Christopher. “Thailand’s bloody battle to eradicate drugs.” http://www.atimes.com, 2003/03/06) “Slaughter of the drug dealers.” (The Economist, 2003/02/20) Swearer, Donald K. The Buddhist World of Southeast Asia.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5. “Thailand declares itself ‘drug free?– sort of – as human rights watchdogs condemn anti-drug campaign.” (http://stopthedrugwar. org/chronicle/314/sortofdrugfree.shtml, 2003/05/12) “Timeline of Thailand’s ‘War on Drugs’” (Human Rights Watch, 200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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