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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리 찾아 다시 쓰기
- 소록도 미시사를 중심으로
이 대 영*
Ⅰ. 미시사의 글쓰기
거대구조와 담론에 대한 해체의 흐름은 문학에서도 하나의 글쓰기 기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미시사 또는 미시문화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우선 역사학의 ‘큰 줄기 변화’라는 언어의 묶음으로부터 화두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0세기 서양 사학의 흐름은 1970년대 이전까지 거대구조와 이론을 토대로 한 역사 인식과 서술방법이 주류를 이루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나 독일의 사회 구조사, 프랑스 아날학파 등이 그러한 흐름을 주도해 온 중심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역사인식의 틀로서는 구조에 기반 한 거시적 역사를, 연구방법으로는 계량화를 중시하는 사회과학적 역사를 지향하면서 인간의 물질적, 제도적 측면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구명하고자 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역사적 리얼리티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고려할 때, 거대한 해석의 틀과 계량성의 절대의존에 대한 의문과 함께 놓쳐버린 역사를 찾아 세밀하게 다듬고 정교화 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문화 분석이 의미를 추구하는 해석과학임을 제창하고 인간행동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의 문화이론은 미시사 연구가들에게 주목을 받은 것으로 평가 된다. 그리하여 클리퍼드 기어츠의 영향을 받은 나탈리 지몬 데이비스(Natalie Zemon Davis)와 프랑스 아날학파의 망탈리테(Mentalites)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엠마뉴엘르 르아 라뒤리(Emmanuel Roy Ladurie)등의 문화사(cultural history)연구, 카를로 진즈브르그(Carlo Ginzburg)와 까를로 포니(Carlo Poni), 지오반니 레비(Giovanni Levi)등이 주축이 된 이탈리아의 미시사(microstoria)연구, 알프 뤼트게(Alf Ludtke), 한스 메딕(Hans Medick)이 중심이 된 독일의 ‘일상성’에 대한 연구 등으로 학문의 영역이 구분, 확장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미시사 혹은 미시문화사는 사회적․경제적 행위들을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적 텍스트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구체적 개인이란 창을 통해 역사적 리얼리티의 복잡 미묘한 관계망을 이해하고자 시도 한다. 그 특징은 익명의 거대 집단과 평균적 개인의 존재 형태보다는 어떤 소규모 집단에 속하는 개개인의 이름과 그들 간의 관계를 추적하는 ‘실명적․집단전기학적 역사’, 종래의 지나치게 좁고 엄격한 실증방식 보다는 보다 더 넓은 의미의 입증방식을 포용하는 ‘가능성의 역사’, 딱딱하고 분석적인 문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의 전말을 말로 풀어나가는 듯한 ‘이야기로서의 역사’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말에 주목을 요하게 된다. 아울러 소설과 역사, ‘역사소설’과 ‘소설로 쓴 역사’ 등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
‘역사’를 ‘이야기화’ 하느냐, ‘이야기’를 ‘역사화’ 하느냐는 리얼리티의 재현과 의미부여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서사 방법의 측면에서, 과학적 역사 서술이 효과적인가, 아니면 문학적 역사서술이 합리적인가라는 논제가 주어질 수 있다. 신화가 집단성과 익명성 그리고 구전성을 특징으로 한 이야기라면, 역사란 실명의 역사탐구자가 객관적 합리성을 토대로 구성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서양인들의 역사서술에 대한 관점은 기존의 공동체적 전승의 이야기라는 시각에서 19세기 랑케(Leopold Von Ranke)의 실증주의 역사관의 영향을 기점으로 과학의 한 분과로 인식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미시사 연구가들을 주축으로 하는 근래의 포스트모더니즘이론가들은 문학적 역사라는 전통적 역사담론으로의 회귀를 주창한다. 또한 역사의 문학적 속성을 인정하면서 역사의 문학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실재론적 역사인식론이 전환된 것은 20세기 후반의 후기구조주의의 언어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인지되고 있다. 진실은 어떤 ‘객관적 리얼리티’에 내재된 것이 아니고, 어떤 대상을 의미화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의미란 어떤 자율적이고 기호 체계 내의 관계들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체계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리얼리티를 상정하고 그것을 의미의 기초로 삼는 역사 관념은 사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과학적 역사서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서술의 소재와 주체 즉, 담론과 서술자를 중심에 둔 사고이다. 역사란 언어를 통해 시간의 추이 속에 진행된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의미화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역사는 일종의 담론이며 서술자는 과학자이기보다는 의미창조의 주체자라 할 수 있다. 서술주체와 언어적 특질의 강조는 이야기체 역사의 부활을 의미하는데 이는 대중화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역사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기된 것이었다. 우리 인간은 그 정체성을 객관적 인과관계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존재로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에 대해 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 이야기하고 의미화 하는 것이 역사의 본원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결과론적으로 역사의 문학화란 과학화를 통해 손상된 인간학적 의미를 복원하는 것이었으며 모든 사람을 역사를 이야기하는 행위의 주체로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시사 기술의 특징과 이야기체 역사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논의를 진행해 왔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문학과 미시사 또는 이야기로서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그 가능성의 문제를 논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이야기로서의 역사’로 평가되는 카롤로 진즈부르그(Carlo Ginzburg)의 치즈와 구더기 The Cheese and the Worms와 내틸리 제이먼 데이비스(Natalie Zemon Davis)의 마르땡 게르의 귀향 The Return of Martin Guerre)을 일별(一瞥)하고‘소록도’의 미시사와 소설로서의 가능성을 개진해 보고자 한다.
Ⅱ. 조각난 역사 모으기
정말, 구더기는 치즈로부터 생성되었을까? 주관적인 종교관과 우주관으로 삶을 살다가 교황청의 명에 의해 화형당한 메노키오(Menocchio)의 죽음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 카롤로 진즈부르그의 진술대로 메노키오의 행적과 두 차례의 재판기록을 통해 우리는 과연 ‘종속계급문화’ 또는 ‘민중문화’의 일부를 복원할 수 있을까? 메노키오와 같은 한 개인의 사상과 신앙이 가지는 당대 문화의 대표성은 어디까지인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지각과정으로 도출 된 미시사의 결과를 일반 역사가들이 어떻게 수용을 할까? 그리고 혼란스런 ‘민중문화’의 개념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이러한 일련의 작업적 성과는 무엇일까?
미시문화사는 새로운 역사해독과 기술을 위한 방법론이기에 이와 같은 많은 의문과 가능성을 포함하고 출발한다.
미시사 방법론의 선구자로 명명되는 카롤로 진즈부르그는 과거 과학적 세계인식의 방법론을 수용하여 기술되던 역사방법론과는 달리 구체적 개인의 일상과 세계관을 통해 조각난 역사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그리하여 당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각종 기록들을 살펴봄으로써 거시사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역사의 진실성을 복원하기 위한 ‘실마리 찾기’를 시도해 왔다. 그 대표적인 저서가 치즈와 구더기 The Cheese and the Worms이다.
이 책은 이탈리아 동북부 프리울리(Friuli) 지방에 살던 메노키오(Menocchio)라는 한 방앗간 주인, 도메니코 스칸델라(Domenico Scandella)의 세계관을 추적, 고찰하여 당대 종속문화의 특징을 구명하고 있다.
메노키오는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마을 촌장의 직책을 맡은 바 있으며, 글의 해독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1582년 51세의 나이에 이단 혐의로 피소되고, 이후 투옥과 방면을 거듭하다가 1599년 말에 화형에 처해졌다. 그의 이단 혐의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메노키오는 삼위일체와 마리아의 처녀성, 교황과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며, 하느님과 일체의 것들이 혼돈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우주 생성론을 주장한다. 책의 제목인 치즈와 구더기는 메노키오의 우주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태초의 모든 것은 흙, 공기, 물, 그리고 불이 섞여있는 혼돈이었다고 본다.
이 혼돈으로부터,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듯, 물질 덩어리가 형성되어 구더기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천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관은 기존의 창조론 즉, “태초에 혼돈이 있었느니라”(창세기 1장 1절)라는 내용에 “혼돈은 스스로 움직입니다”라는 과학적 창조의 사고가 뒤섞인 것이다. 또한 영혼의 불멸성을 집요하게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철저하게 부인함으로써 그동안 정신적 근간으로 자리해왔던 중세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부인한다.
이는 중세의 전형적인 사고관과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라는 혼란의 시대에, 변화하고 있는 민중적 사고의 반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다. 이에 진즈부르그는 메노키오의 독자적 사고방식의 형성에 영향을 준 관련 서적들과 여러 종파와의 관계를 고찰한다. 그 결과 메노키오의 사고는 지금까지 역사학이 소홀히 여겨온 민중문화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물질주의적 우주생성론의 사유적 뿌리를 고대 인도의 베다 전통으로까지 소급시키고 있다. 진즈부르그가 메노키오의 재판기록을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은 사료의 ‘진실성’이 아니라 사료의 담론 속에 간직된 ‘민중문화’이다. 즉, 푸코의 용어인 ‘권력의 담론’이면에 은폐된 진실성을 찾아 ‘가능성의 역사’ 또는 ‘조각난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와 함께 내틸리 제이먼 데이비스(Natalie Zemon Davis)의 마르땡 게르의 귀향 The Return of Martin Guerre) 또한 미시사를 거론할 때 언급되는 주요 저서이다.
이 책은 아내와 가정을 버리고 아무 말도 없이 떠났던 마르땡 게르가 다시 귀가하여 성실한 가장으로 살아가던 중 실제 남편이 나타나 재판에 회부, 처형당하는 이야기이다. 가짜 마르땡 게르(아르노 뒤 틸)는 숙부에게 집안의 재산 중 자신의 몫을 요구하게 되고, 재판과정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해 나가지만, 실제 마르땡 게르가 귀향함으로써 재판에 회부,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아르노 뒤 틸이 신성한 결혼의 질서를 모독하여 사형이 집행된 반면, 베르트랑드는 고의성이 드러나는 증거가 없다는 판결로 사면을 받는다.
여기서 데이비스가 주목하는 것은 두 남편과 같이 살았던 아내인 베르트랑드의 행동과 사고이다. 그는 아르노 뒤 틸의 정체가 가짜임이 밝혀졌을 때 비로소 귀환한 남편의 입장에 선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두 남자들 사이에서 고뇌했을 베르트랑드가 생각했던 진정한 사랑의 의미, 그리고 남편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판결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문화 등을 추론하게 한다. 결국 데이비스는 16세기 중엽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실제 일어났던 재판사건을 토대로 평범한 한 여성 을 통해 당대 여성들의 행동방식과 가치관, 여성들에 대한 남성 또는 제도권의 시각 등을 탐색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는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와 데이비스의 마르땡 게르의 귀향을 읽는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는 진실성 못지않게, 주인공들의 행위에 끊임없는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떻게 본다면 메노키오나 베르트랑드와 같은 주인공의 심리가 미시사 연구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서, 당시 그들이 서민문화의 대표성을 어느 정도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탐색형 소설의 형태를 지니게 하며, 역사의 소설화를 통해 대중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에 제기되는 쟁점은 바로 문화의 대표성과 재현성의 문제이다. 즉, 메노키오가 민중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농민이냐는 것이다. 미시사 연구가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미시사 연구의 특징을 대변한다. 즉 미시사의 사료가 거대하거나 대표성을 갖는 정형이나 전형이 아니듯이, 메노키오 역시 틈새와 간극의 인물로서, 상층문화와 민중문화가 교류하는 경계에 놓인 인물로 본다. 이 경계 사이로 드러나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둘러싼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역사적 구조체를 추적해 나가는 것이 미시사의 특징이자, 진즈부르그 또는 데이비스와 같은 미시사 연구가들의 실마리 찾기 방식이다.
Ⅲ. 소록도의 미시사
한국의 인문학에서도 미시사의 영향력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미시사의 본역인 역사학계에서는 미시사에 대한 학술적 토론과 역사소설에 대한 재평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후삼국을 주도했던 궁예, 견훤, 왕건 등을 중심으로 한 ‘후삼국 역사의 해체적 읽기’와 재평가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조선후기 민중문화를 미시사의 관점으로 접근하여 새로운 성과들을 얻고 있다.
문학에서도 ‘황진이’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페미니즘문화 고찰, 박경리의 토지에 대한 미시문화사적 접근, ‘심청이’를 통한 조선시대 장애인들의 삶, ‘애니깽’의 삶을 통한 식민지시대 이주민사와 그 내용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소록도’라는 한 작은 섬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모아 조각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그 의의를 논하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듯하다.
소록도는 지형적 특징으로 ‘사슴을 닮은 작은 섬’이란 애칭도 있지만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 격리 수용소라는 특성으로 ‘천형의 섬’이라 명명되어왔다. 이 섬이 최근에 일본에서의 ‘한센인 보상 청구소송’이 기각됨에 따라서 한국인들 및 인권단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일본 도쿄(東京) 지방법원 민사 3부는 소록도 갱생원에 수용되었던 한국 한센인 11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거부한 행정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측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일명 ‘문둥이’로 지칭되었던 한센병환자들의 미시문화사를 탐색하면서 우리는 가슴 뭉클한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애틋한 사연 속에서 가슴 에이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 만큼 한센인들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인간이면서도 축생도의 길을 따라야 했던, 두 발과 두 손을 지닌 인간이었으면서도 열 발가락과 열 손가락을 온전히 보전할 수 없었던, 지난하면서도 비굴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삶은 살점을 에이는 듯한 아픈 서정을 지니는 것이기에 시 또는 소설 작품으로 형상되곤 했다. 다음은 소설화 된 그 예이다.
* 소록도 또는 한센병 관련 작품
․ 류영국, 유령의 자서전, 실천문학사, 2003.
․ 김남식,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대한예수교장로교회, 2003.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지성과 문학사, 2000.
․ 공세동, 분홍섬, 정민, 2000.
․ 김두영, 몰래 익은 포도송이, 도서출판 신애, 1992.
․ 이숙자, 문둥이의 딸, 모음사, 1991.
․ 존 패로우, 문둥이 성자 다미안, 정신세계사, 1991.
․ 윤정모,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 성현출판사, 1990.
․ 정소성, 아테네 가는 배, 고려원, 1987.
․ 윤정모, 섬, 도서출판 한마당, 1983.
․ 남지심, 솔바람 물결소리, 동아일보사, 1982.
․ 심전황, 소록도 반세기, 전남일보 출판국, 1979.
․ 박용규, 사슴나라 사람들, 혜성문화사, 1973.
․ 김지연, 사슴의 마을, 은영사, 1970.
<출처 - www.sorokdo.go.kr>
문학인이라면 누구나 비운의 역사 또는 주인공들을 작품화하고픈 창작욕을 지니게 하는 곳이 소록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한하운을 비롯한 많은 시인들의 작품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최근에 간행된 김남식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와 류영국의 유령의 자서전을 통해 문학을 통한 소록도 미시사의 복원 가능성과 그 의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소록도의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1.5배인 4.42㎢로, 1916년 일본 명치천황이 하사한 기금으로 설립한 ‘자혜원’이 있었던 작은 섬이다. 이 섬은 소록도 1번지와 2번지로 나뉘어져 있으며 1번지에는 소록도병원 관계자들이 기거하는 관사와 종교 및 공공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센인들이 거주하는 2번지에는 일제 강점기 때 6천 여 명이 거주했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700여 명만 남아 있으며, 평균연령이 78세 정도로 고령화 된 촌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소록도의 미시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복원되고 있다고는 하나 일제시대에 자행된 강제노역과 인권말살, 그리고 한센인들의 지난한 삶의 이력과 그들의 생활상은 여전히 불투명하게 남아 있다. 이에, 우리는 소록도에서 과거의 아픈 상처를 위무하며 살고 있는 체험자들의 증언을 통해, 또는 여러 기록을 통해 소록도의 미시사, 더 나아가 식민지하의 민중사를 복원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게 된다.
김남식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는 소록도의 순교자인 김정복 목사의 삶을 기술한 전기이다. 김정복 목사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출생으로, 대한제국 전주부 진위대에 입대하여 곡호대(曲號隊) 곡호수로 근무 한 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이주하여 세례를 받고 귀국,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종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는 전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사역하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종교 탄압에 의해 고흥경찰서에 구속, 광주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한다. 그는 해방 후 소록교회를 재건하여 초대 목사로 사역하다 인민군들에 의해 고흥경찰서로 압송, 순교한 참된 종교인이다.
우리는 김정복 목사의 전기를 통해 미시사의 여러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저자 김남식은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역사는 기록을 통하여 전승된다.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설화가 되어 구전으로 전달될 뿐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자의적 해석과 왜곡이 있게 마련이며, 실체보다 허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곧 한국 기독교사 또는 소록도사의 이면에 놓여진 미시문화사에 초점을 두어 이 책을 기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가 김정복 목사를 ‘역사 속의 존재’로 그리기 위해 거시사를 많이 인용함으로써 미시사보다는 거시사가 전기의 주요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사, 구한말의 역사, 여수 순천 반란사건, 6.25전쟁에 대한 거시사적 기술 등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미시사의 주요 자료들을 발견 할 수 있다.
김정복 목사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체험은 이주민사의 생생한 기록이다. 또한 귀향 후, 충남 서천군 지역의 생활환경은 식민지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자서전은 작가가 직접 기술한 것이 아니기에 미시사 보다는 거시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김정복 목사 주변인의 삶과 의식을 초점화 하기 보다는 하와이 이주민사와 식민지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기존의 자서전 기술방법과는 다르다는 면에서 눈길을 끈다. 즉, 기독교사를 언급하면서 각종 기록물을 인용하거나 소록도의 일화를 언급함에 체험자의 수기를 전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작가는 ‘순천노회사건’을 기술하면서 ‘노회록’과 구속자 명단 및 판결문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한, 소록도 실존인물이 쓴 ≪小鹿≫ 제1권 1호에 발표한 ‘소록도 환자 학살사건의 전말’을 전재하여 전기의 현실성을 살리기도 한다. 아울러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기독교에 대한 탄압정책을 알 수 있는 소록도에서의 미시적 사건들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정귀단’이 김목사의 ‘양녀’가 되기까지의 일화를 기술한 부분은 둘 사이의 플라토닉적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센인 환자들이 겪어야했던 외로움을 대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가 거시사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지만, 일화 및 기록물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기적 기술태도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
류영국의 유령의 자서전은 한센병환자로 지난한 삶을 살다 간 김민주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스물여섯에, 한센병 환자라는 이유로, 가문과 후손을 위한다는 명분에 의해 사망신고자가 되어야했던 김노인의 이력을 탐색해 나가고 있다. 미시사적 측면에서, 우리가 유령의 자서전을 주목하는 것은 소록도라는 폐쇄된 시․공간 속에 존재했던 인물들의 의식구조를 통해 식민지하 조선의 현실과 조선인의 의식을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 관료와 관리직원, 한센인의 의식구조에 주목하게 된다.
소록도가 한센병 환자들의 특수치료를 위해 일제에 의해 설립되었고, 강제적인 격리 수용이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자리한 한센인들의 강제노역과 열악한 치료환경, 인권유린의 실태 등은 은폐되어 왔었다. 이러한 미시사의 내용은 민주화라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소재의 선택이 자유로워졌고 그에 따라 문학인들의 주요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즉, ‘진실성 찾기’의 주요 내용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령의 자서전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관점에서 미시사적 가치를 지니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소록도에 강제 또는 스스로 들어갔던 한센인들이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탈출 장소는 신생리 성경학교 뒷산으로, 뱃사람들과의 교섭을 통해 녹동항으로 들어갔다.
② 감금실 내의 인권탄압이 가혹했다는 사실이다. 감금실의 구조, 고문의 방법, 시체를 해부실에서 부검 후 처리했다는 점, 변론이 허용되지 않는 부당한 판결 등의 부조리
③ 수간호장 사토의 전횡과 강제노역을 통한 중앙공원 조성
④ 이춘상의 수호원장 살해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다. 즉, 이춘상에 대한 사토의 폭행이 적의를 키웠고 사토를 대신하여 수호원장을 살해했음을 재판기록을 인용, 기술하고 있다. 또한, 황국신민의 충성을 외치며 동료들을 탄압했던 ‘이춘성’의 이길용에 의한 죽음의 내용
⑤ 해방 이후 소록도의 여러 사건 기록
- 신사 파괴, 환자들을 노예 취급했던 동생리 담당 간호수 박진격의 죽음 등
⑥ 섬의 운영권을 놓고 전개된 살인과 보복으로 84명의 원생이 살해된 사건 내용
⑦ 한센인들의 은신처와 구걸방법, 거지들과의 관계 등
이러한 내용들은 소록도의 일화 정도로 취급하여 거시사에서는 취급되지 않던 내용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식민지사와 권력의 담론적 시각에서 기록되었던 과거의 역사서술이 간과한 많은 것을 접할 수 있다. 즉, 일제의 한센인에 대한 소록도의 격리수용이 진정한 환자 치료책이 아니었다는 것, 한센인에게까지 황국신민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강제노역은 물론 전쟁 물자를 수용하기 위해 희생을 강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소록도 역시 식민지 시대, 피지배자들이 경험했던 부조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한센인에게 온갖 폭행을 일삼다가 죽음을 당한 박진격의 심리를 역사적 상황에 적용, 해석을 시도하기도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 여순반란 사건이며 제주도의 4.3사태, 그리고 6.25가 왜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냈던가. 나는 이 기회에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인간을 인간 이하로 대한 데에서 비롯된 보복이었다. 몇 대조 선대의 벼슬을 내세워 가문 자랑하던 사람들이 천민을 대하는 태도가 그랬고, 일제시대에 과잉충성한 자들이 동족인 조선 사람들을 그러한 태도로 대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자기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 같은 벌레나 짐승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빼앗아다 일본 사람에게 바치고 매질을 했다.
우리는 소록도라는 한 작은 섬의 계층구조를 통해 역사를 반추하고, 그 동일성에 대한 검증과정을 통해 새로운 역사전개를 위한 유추와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일본인, 한센인, 친일파 한센인으로 구성된 소록도의 계층구조는 어쩌면 식민지하 조선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인권유린과 강제사역, 친일적 행각에 의한 살인과 그에 대한 보복의 순환, 섬의 운영권을 놓고 벌이는 싸움 등이 그러하다.
Ⅳ. 다시 쓰기의 필요성
우리는 유령의 자서전을 통해 ‘극단적인 경우가 대표성을 지닐 수 있다’는 미시사의 관점에 주목한다. 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고백한 메노키오가 ‘농민문화의 산 증인’이었다면, 16세기 프랑스 농촌생활 및 법의 가치와 관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베르트랑드는 당시 농촌여성의 전형적 사고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다.
진즈브르그나 데이비스는 랑케의 실증주의적 사고를 전수한 아날학파의 전통적 역사서술형태에서 벗어나 ‘여러 재료를 모아 맞추어 붙이기’ 또는 ‘조각난 역사의 실마리’를 찾아 ‘다시쓰기’에 힘을 보탠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고문서 자료를 이용하여 혈연관계, 상속법, 농민이주, 혼인계약, 마을의 관습, 사법절차 등을 상세히 조사해 나간다. 그리하여 거시사에 가려졌던 미시사의 여러 측면들을 재발견하여 진실성을 밝히고, 이를 통해 역사의 다시쓰기를 시도해 나가고 있다.
김남식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에서, 우리는 김정복 목사가 하와이 사탕수수 이주민의, 그리고 소록도 기독교사의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김목사의 사고와 그와 직접 생활했던 하와이 이주민들 그리고 소록도 한센인들의 의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복원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한 연구는 미시사 및 진실된 역사를 복원하는 주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류영국의 유령의 자서전을 통해 한민족의 심리 및 인간 근저의 잠재심리까지 연구의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다. 또한 한센인들에 대한 정부 또는 일본의 처우가 어떠했으며, 실제로 그러한 정책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여러 기록물을 통해 복원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는 전기문의 새로운 기술방법을, 유령의 자서전은 소설쓰기의 새로운 방법론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들로 평가된다.
일상사와 미시문화사에 대한 근래의 관심들은 어찌 보면 문학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시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서술이 지나치게 실증사관 또는 권력의 담론으로 서술되어 왔음을 인정한다면, 미시사의 글쓰기 작업은 역사의 진실성을 찾거나 재검증 작업에 반드시 거쳐야할 절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