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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온전한 하나님, 온전한 사람
히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브리서 2장은 우리 주와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큰 구원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복음에 더욱 유념함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말라는 히브리서 기자의 촉구를 따르는 중입니다. 실제로 복음을 등한시하면 위험해진다고 그는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다루는 주제는 예수 안에 있는 큰 구원으로서, 우리는 그 구원의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구원의 목적이 사람을 대속하여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 거하고 계신 영광의 높이까지 끌어올리시려는 데 있음을 고찰했습니다. 구원이 이런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과 본성과 성품 때문이라는 사실, 이런 방법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하다는 사실도 알아보았습니다. 이 구원을 위해 치르신 대가, 주님이 세상에 와서 사시는 동안 당하고 견디신 고난도 살펴보았습니다.
그가 당하고 견디신 모든 일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육신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의 위격부터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점이 이것입니다. 예수를 생각하라라는 것입니다(히 12.3). 히브리서의 전적인 목적은 그가 이전 모든 사람, 모든 것보다 뛰어나신 분임을 밝히려는 데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 비밀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히브리서 2장의 여러 진술과 표현에 여러분의 주의를 집중시키고자 합니다. 9절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었다고 하며, 10절은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합니다. 11길은 "거룩하게 하시는 이-그리스도-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 우리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났다고 하는데, 이 말의 의미를 반드시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롯하여 자신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말도 나옵니다. 14절에는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샀다는 구체적인 진술이 나오며, 17절에는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는 진술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18절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2장은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해 많은 진술을 하는데, 이제부터 그 의미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이 진술들에 접근하여 해석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히브리서 기자가 2 장에서 사용하는 논거를 살펴보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 논거는 이는 확실히 천사들의 본성을 입으려 하심이 아니요 아브라함 자손의 본성을 입으려 하심이라 라는 것입니다(히 2:16. KJV). 이 구절의 흠정역 번역이 좋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이 구절이 말하려는 바는 예수께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느냐 천사의 본성을 입으셨느냐가 아니라 그가 붙들어 주시는 대상이 전사들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을 붙들어 높이 끌어올리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천사들이 아닌 인간을 위해, 인간과 함께 이 일을 하셨다는 점을 히브리서 기자는 상기시킵니다. 성육신을 살펴볼 때 반드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사실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또 다시 큰 비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인간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짓고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인간이 지어지고 창조되기 전에, 일부 천사들이 이미 타락했습니다. 마귀는 이처럼 타락한 천사로서, 성경은 다른 천사들도 그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함께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타락과 죄와 악을 고찰할 때 인간의 측면에서만 살펴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주 놀라운 사실을 놓치게 됩니다. 인간도 타락하고 일부 천사들도 타락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깜짝 놀랄 메시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들이 아닌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구원해 주시고 대속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믿음의 자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히 1:14). 그렇다면 천사들은 왜 구원하지 않으셨을까요? 성경은 왜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그들을 보존해 둔다고 말하는 것일까요?(벧후 3:7) 우리 앞에 있는 이 일은 큰 비밀입니다. 그러나 제 관심은 이 일의 놀라운 메시지를 깨닫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붙들어 주시는 대상은 천사들이 아닌 저와 여러분, 아브라함의 자손, 타락한 인간들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다름 아닌 저와 여러분의 본성을 입기로 작정하시고 결정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에 대한 설명이요 성육신에 담긴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의 이 진술들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이 진술들은 예수께서 이제껏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른 유일무이한 분이요 완전히 구별된 분임을 각인시킵니다. 붙들어 주신다는 개념을 보십시오. 이 말 자체가 우리를 돕기 위해 외부에서 누군가 우리 세상으로 찾아왔다는 사실, 어디에선가 우리 곤경을 보고 찾아와 무언가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육신에 대한 신약 가르침의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히브리서 1장은 전체적인 배경을 설명하며 그리스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상한 진술을 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1-3).
히브리서 2장의 다른 진술들도 보십시오.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다는 구절을 다시 보십시오(히 2:7, 9).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기에 그가 겪으셔야 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혈과 육에 속한 자녀들과 “같은 모양이 되셨다는 비상한 구절도 보기 바랍니다(히 2:14).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이 두 진술”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와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에는 그와 우리 사이에 원래 유사성이 없다는 사실, 오히려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공통의 인성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외부에서 찾아와 우리의 인성에 참여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뇌심이 마땅하다"라고 말합니다(히 2:17). 이모든 진술에서 유일하게 끌어낼 수 있는 합리적인 결론은 그가 우리와 다른 분이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에서 나오신 분이 아니요 인성 안으로 들어오신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인성에서 나왔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비롯한 모든 사람은 인간의 본성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닙니다. 그 외부에서 인성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본성을 덧입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에 관한 비밀의 중심에 이르렀습니다. 신약성경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야말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본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누구와도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찾아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여느 사람들처럼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처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은 아들을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다는 구약성경의 노래를 인용합니다(5절).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복음서는 이 점을 아주 분명하게 밝힙니다. 전사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눅 1:34). 요셉도 마리아처럼 이 소식을 듣고 고민하다가 천사를 통해 이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이야기가 마태복음에 나옵니다(마 1:19-20).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기 위해 놀답고 신비한 방식으로 지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이처럼 그가 영원한 세계에서 찾아오셨다는 놀라운 생각을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힘과 육을 입으시고 영과 육에 속하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아들이 이처럼 자신을 낮추셨다는 진리, 베들레헴의 아기야말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진리,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이 높고 존귀하며 놀라운 진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와 다르신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평범한 인성에서 나온 분이 아니요 인성 안으로 들어오신 내려오신 분입니다 그래서이 비밀이 그토록 큰 것입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실제로 그는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고통을 당하실 수도 있고 죽음을 당하실 수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고난을 통해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의 인성과 관련된 말입니다. 또한 우리는 "거록하게 하시는 이와 거록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라는 비상한 진술도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난해한 구절로서 각기 다른 해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필연적인 결론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한 본성을 지녔다는 것. 우리의 대속을 확실히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입으시야만 했다는 것, 우리를 자신에게로 끌어올리시기 위해 우리에 게로 내려오셔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 비상한 가르침에는 놀라운 위로와 위안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형제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살펴보기 바랍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이 여러곳에서 확인해 주는 사실입니다 14절에는 그가 혈과 육을 지니셨다는 구체적 진실이 나옵니다. 17절은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다고 하며 18절은 세상에 계신 동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이 구절들의 단순한 주장은 그가 참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참 사람이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사람들이 이 점에서 종종 어긋난 길로 갔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신성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지 않는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참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2장의 진술들은 신약성경의 대표적 주장으로서 하나님이 그저 사람처럼 보인 것이 아니었음을 –즉 일종의 허깨비 몸을 지닌 것이 아니었음 상기시킵니다. 예수는 일종의 육신의 막 내 덮개를 쓰고 세상에 나타나셨던 것이 아닙니다. 또는 육신으로 계신 동안에만 사람이셨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은 그가 참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참 사람이 셨다고 가르칩니다. "혈과 육은 이 점을 단번에 확증해 주는 표현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며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성경에서 “혈과 육”은 인간 본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위대한 고백을 하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0.17) 이처럼 혈과 육은 인간 본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중대한 주장도 기억합시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50절). 이것은 우리가 변해야 한다는 뜻이며, 우리에게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도 히브리서 2장에 쓰인 표현과 같은 표현이 쓰이고 있습니다. 예수는 인성의 외양만 입으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지니셨습니다. 의 주목할 만한 진술도 다시 보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다”. 이 서신에서 '범사에는 한정적 의미를 갖는 말입니다. '범사에 같이 되셨다고 해서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 본성까지 입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15절에 나오는 대로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악이 없었습니다. 그의 본성은 성결하고 완전했습니다. 여기에서 '범사에 죄와 무관한 인간의 상대와 조건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이처럼 2장의 진술들을 보면 그가 참 하나님이 뿐 아니라 참 사람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들을 이해하고 붙잡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예컨대 성경이 육신의 차원에서 그에 대해 하는 말들을 보십시오. 성경은 그가 연약함에 시달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다고 말합니다. 연약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말합니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목마름이 무엇인지, 피곤함이 무엇인지 아셨다고 말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간 동안 지치고 피곤하여 우물가에 앉아 계신 모습이 나옵니다. 타고 가시던 배 안 고물에서 잠이 드신 적도 있었습니다. 물리적 의미에서 육신을 가진 인간이 겪는 일을 주님도 한 인간으로서 겪으셨습니다. 허깨비 몸으로 겪으신 것이 아닙니다. 실제 혈과 육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의미에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정신의 측면에서도 보십시오. 성경은 그의 지성이 발달하고 지혜와 키가 자랐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가 참 하나님이실뿐 아니라 참 사람으로 한 어린 아이로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가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하며 배우셨던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또한 그는 마리아와 마르다와 그의 형제 나사로를 사랑하셨고 젊은 부자 관원을 사랑하셨으며 “사랑하시는 자”라고 불렀던 사도 요한을 사랑하셨습니다(요 13:23). 그는 만인의 구주셨음에도 요한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개별적으로 좋아하신 이들이 있었던 것 또한 그가 인성을 지니신 표시입니다 성경을 보면 놀라시거나 이상히 여기셨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처럼 그는 참 하나님이시면서도 참 사람이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비통해 하시고 슬퍼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가 우시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라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습니다(막 14:34). 이 또한 정신과 육신을 지닌 참 사람이셨다는 표시입니다. 그가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논거로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성경을 읽고 마음을 쏟아 묵상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쓰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그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고 놀라운 모습이 히브리서 2장에 나옵니다. 13절에서 예수는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요 동등하신 분이면서도 한 인간으로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보다 더 놀라운 모습이 있습니다. 그의 기도생활을 보십시오 성경에는 그가 새벽 미명에 일어나 홀로 산에 가서 기도하셨다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특별한 제자들을 택하시는 막중한 일을 앞두었을 때는 밤새워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가 기도하신 이유는 오직 한가지 인간의 한계 안에서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 도움에 기대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참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참 사람이셨습니다.
성경은 또한 그가 순종을 배우셨다고 말합니다 복음서를 읽어 보면 "내 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내 일도 내 생각으로 하거나 나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계속 말씀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 들으신 것을 그대로 반복해서 사람들에게 전하셨습니다. 그가 하신 모든 일은 아버지께서 명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을 받아 그 힘으로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히브리서에는 그가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셨다는 놀라운 말이 나옵니다(히9:14) 그가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셨다는 표현을(히2:9) 비롯한 히브리서의 모든 표현은(히 5:8도 보십시오) 그가 실제로 한 사람이었음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성육신의 기이한 비밀입니다. 한 분이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 되셨습니다. 한 분이 두 본성을 가지셨습니다 구분된 별개의 두 본성을 가지셨습니다. 이처럼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또한 참사람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사시는 동안에도 여전히 하나님이셨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의도적으로 인간처럼 사셨습니다. 신의 특권을 사용치 않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그가성령을 받으셔야만 했던 일의 의미도 알 수 없고 그의 기도생활이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셨던 일 또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기이한 낮추심의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본성을 입고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우리 구원의 창시자가 되셨습니다.
동정녀 탄생은 이 모든 일에 꼭 필요한 요소였습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으면 죄 있는 인간의 본성을 입으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롬 8:3). 이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아는 사실은, 성령이 정결케 하시고 깨끗케 하신 인간의 본성을 마리아를 통해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깨끗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마리아들 통해 입으신 인간의 본성이 깨끗해지고 완전해지며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고, 둘째 아담이 되셨으며(8:29). 그 결과 우리 구원의 창시자요 지휘관이요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인간을 붙들어 주시고 속죄하시기 위해, 완전한 제사를 드리시기 위해, 만인을 위한 죽음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을 만족시키시기 위해 성육신과 동정녀 탄생이라는 이 신비한 일 - 한분이 구분된 별개의 두 본성을 지니시는 일 - 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표하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직분입니다. 율법은 우리와 같은 형제를 대제사장으로 세울 것을 명합니다. 그래서 예수도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성육신하여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동정하시는 대제사장, 충성되고 자비하신 대제사장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살아 보셨기에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십니다(히 4:15). 그는 친히 시험을 받으셨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인생의 시련을 아시며 육신의 필요를 아십니다. 믿었던 친구에게 실망한다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다. 친히 이 모든 일을 겪으셨습니다. 그는 완벽한 지휘관이요 지도자십니다. 악을 정복하신 강하고 능한 분임에도 우리를 동정해 주십니다. 그처럼 강한 분임에도 우리 연약함을 이해해 주시며,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어 주십니다.
이 모든 일을 하신 또 다른 이유에 대한 암시가 히브리서 2장에 나옵니다. 그가 인간이 되신 것은 마귀를 영원히 잠잠케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자녀들은 현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 2:14). 하나님은 이 방법으로 마귀를 멸하시며 영원히 잠잠케 하십니다. 마귀는 고소자입니다. 혹시라도 다른 방법으로 용서하셨다면 그의 거룩하신 성품을 들먹이며 "당신 같은 분이 어떻게 이런 자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있습니까?"라고 반발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마귀에게 내놓으신 영원한 답변입니다. 이제 원수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 육신을 통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지 않고 인간을 대속하셨다면 "율법이 이처럼 훼손되었는데, 어떻게 율법도 지키지도 않은 인간을 의롭다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따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간으로 사심으로써 이 점에서도 그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간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심으로써 하나님 자신께 순종하셨습니다. 어떤 지점에서도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성육신과 삶과 고난과 죽음이 마귀를 잠잠케 했고 그의 일을 했으며, 결국 영원한 형벌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히브리서 2장의 주장입니다. 오 우리가 이 일을 마땅히 이해해야 할 만큼 이해한다면! 하나님이와 여러분을 이처럼 사랑하여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영원하신 아들이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고 혈과 육을 입으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태에서 나시고 구유에 누우신 것은 비밀 중에서도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직 우리를 붙들어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 지옥과 영원한 저주에서 구해 주시기 위해 우리를 일으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기 위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원한 엉광을 누리도록 준비시켜 주시기 위해 영원히 자신과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당하셨습니다. 오, 저와 여러분을 그러한 영광으로 끌어울리시기 위해 이처럼 내려오신 일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