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또한 회심을 방해하는 것도 살펴보았다. 회심이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회심을 바로 아는 것 역시 중요하다. 물론 우리의 회심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밝혀 질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우리는 회심에 증거를 살펴볼 수 있다.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참된 회심의 표지이다. 이에 대하여 피터 마스터스의 가르침은 매우 유익하다. 이에 마스터스의 논지를 중심으로 함께 살펴 볼 것이다.
회심의 표지를 살펴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회심의 표지도 없으면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터마스터스는 현대 복음주의가 죄와 회개를 경시한 채 복음의 혜택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였는데 이 말은 우리에게도 매우 적절하게 들린다. 오늘 한국 교회 역시 성장에만 몰두 한 나머지 개인의 죄와 회개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을 볼 수 있다. 죄와 회개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되면 교회는 친목단체로 떨어지고 영혼의 구원받음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면 회심하였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결국 이것은 심각한 영적 불행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행을 피하기 위하여 회심의 바른 표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의적인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드러난 것이다. 특별히 초대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죄에 대한 확신이다,
사도행전 2:37-38절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받고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복음을 듣자 마음이 찔린 것이다. 이 말은 죄에 대한 수치심과 근심과 용서를 구하는 진정한 애통이 있음을 의미한다. 죄에 대한 확신은 죄에 대한 회개로 나가게 한다. 회개는 강렬한 감정이다. 회개는 죄에 대해 깊이 근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받음에 대한 큰 부담을 느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마스터스는 강조하기를 “자신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은 비극적인 환상에 불과하며 ,성경이 말하는 회심과 전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성공을 위한 간증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회개는 마음의 변화 혹은 역전, 죄에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게 되면 죄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고 죄를 떠나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갈망하게 됩니다. 죄에 대하여 슬퍼하고 죄가 가져다주는 것에 대하 비통함을 갓을 때 비로소 회개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죄에 대한 슬픔이 없다면 결코 죄를 회개하는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아는 자는 죄가 가져다주는 슬픔으로 인하여 회개의 자리에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심한 자가 보여주는 첫 번째 표지이다.
두 번째 표지는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다.
참된 회심자에게 나타나는 것은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며 그 말씀에 순복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고정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게 된다. 회심한 자에게 나타나는 것은 성경에 대하여 기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어서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재미있어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성경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열려있다는 것이다.[고전2:14] 그래서 말씀을 배우는 것을 너무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회심자들은 말씀을 사랑하는 일에 지속적이라는 사실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빨리 뜨거워 졌다가 쉽게 식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참된 회심의 표지라고 볼 수 없다. 결국 참된 회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보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