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이제 완연한 가을로 들어선 듯합니다. 사실은 지난여름의 열기가 한참동안 우리 곁에 머뭇거리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은 마치 변심한 애인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습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청신한 바람, 그악스럽게 울어대던 매미의 울음 대신 풀벌레들의 합창이 드높아지게 된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모르긴 해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가운데 가을처럼 별칭을 많이 갖고 있는 계절은 없을 것입니다. 머잖아 코스모스가 한창일 테니 ‘코스모스의 계절’임은 물론이요,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고 했으니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자 온갖 곡식과 과일이 익어 마지막 수확을 서둘러야 하는 ‘추수의 계절’이며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마음으로 어머니와 고향을 생각하는 ‘그리움의 계절’이라는 것 등 그 이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름들에 한 가지를 더하라고 한다면, 가을은 아무래도 ‘당김의 계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여름 내내 발길 아래 놓여 있었던 이불을 끌어 올려야 하니 거기에도 ‘당김’이 있으며, 삼복더위에 잃어버렸던 입맛도 돌아올 테니 여기에도 ‘당김’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당김’이라는 말은 동사 ‘당기다’의 명사형입니다. 문제는 우리 국어 화자들이 ‘당기다’를 제대로 쓰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때로는 ‘땡기다’로 써야 할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땅기다’와 혼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이 그 예입니다.
⑴ㄱ. 그녀가 요즈음 왠지 “단 게 땡긴다.”라고 말했다.
ㄴ. 이에 박진영은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땅긴다.”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여기에서 쓰인 ‘땡기다’는 표준어가 아니며, ‘땅기다’는 ‘당기다’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당기다’와 ‘땅기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동사 ‘당기다’의 의미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의미
용례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저절로 끌리다.
그 얘기를 듣고 바짝 호기심이 당겼다.
· 입맛이 돋우어지다.
감기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도 아이들이 해 놓은 오므라이스를 보니 입맛이 당겼다.
· 물건 따위를 힘을 주어 자기 쪽이나 일정한 방향으로 가까이 오게 하다.
황지안은 이리저리 뒤적이며 이불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 정한 시간이나 기일을 앞으로 옮기거나 줄이다.
6월로 잡았던 결혼 날짜를 5월로 당겼다.
여기에서 보듯이, ‘당기다’는 자동사 혹은 타동사로서 네 가지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땅기다’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의미
용례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다.
· 건조한 날씨 탓에 얼굴이 몹시 땅긴다는 옳은 표현입니다.
· 조금이라도 땅긴다싶을 땐 종류 불문하고 무조건 마스크를 얼굴에 덮어야 해요.
바야흐로 짧았던 밤이 점차로 길어지면서 야식을 찾는 이들이 많아질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리하여 ‘천고마비’가 ‘천고인비’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하겠지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우리의 입맛만큼은 ‘땡기거나’, ‘땅기는’ 것이 될 수 없음을 잘 기억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