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극락전 복돼지는 왜 만들었을까?
불국사 극락전의 편액 뒷쪽 공포 위에는 한마리의 돼지상이 있다. 사람들은 이 돼지를 복을 가져다주는 '황금돼지' 또는 '복돼지'라 부른다 이 돼지는 길이 50㎝ 가량에 나무로 다듬어져 있으며 황금빛을 띠고 있으나 뾰족한 입, 날카로운 눈매가 금방이라도 뛰어 나갈 듯 역동적인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입가에는 송곳처럼 생긴 흰색 이삘이 있어 집돼지라기 보다는 야생 멧돼지에 가까운 형상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불국사가 전소되었을 때 이 극락전도 함께 불탔고 중건된 것은 조선 영조 때인 1750년이니 아마 이 돼지상도 중건 당시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편액 뒤에 꼭꼭 숨어 있다가 257년만에, 불국사를 찾은 한 관람객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극락전은 1750년 이후에도 몇 번의 보수를 거쳤는데 어떻게 발견이 되지 않았을까?
돼지상이 발견된 것은 황금돼지의 해로 떠들석했던 2007년 2월이었다.
불국사에서는 이 돼지를 복돼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돼지는 재물의 풍족함을 주는 길상의 동물이며 돼지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었다. 복덕과 다산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집단의 생존과 결부되는 다산은 노동력과 영토에 대한 지배력을 뜻하기 때문에 새끼를 많이 낳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 불교의 교리나 사상과는 어떤 상관 관계에 있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일반적으로 장식되는 용, 주작
보통 사찰의 외벽 공포에는 주작이나 용의 형상으로 장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특이하게 공포를 장식한 예로는 화엄사 구층암 천불보전에 거북이 등 위에 토끼가 앉아 있는 '토끼와 거북상'이 있고, 강화도 전등사에 벌거숭이 여인(또는 원숭이상이라고도 함)이 두 손으로 처마를 받치고 있는 '나부상'이 있으나 이처럼 돼지형상으로 공포를 장식한 것이 발견된 적은 아직 없다.
화엄사 구층암 '토끼와 거북상' 전등사의 나부상
극락전에는 어떤 이유에서 돼지를 만들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인터넷상에만 여러가지 설이 떠돌고 있다.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이 토함산에 자주 사냥을 다녔는데, 곰을 사냥한 그날 밤 꿈에 곰이 나타나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았는데 너는 왜 나를 죽였느냐'고 항의를 받은 후 살생을 삼가고 불가에 입문했으며 불국사를 창건하면서 다시는 살생을 하지 않기로 맹세하기 위해 몰래 처마밑에 돼지형상을 만들어 숨겼다는 것이다.
목경찬님이 지은 '들을수록 신기한 사찰 이야기'라는 책에는 "이 사찰을 중수하던 장난끼 많은 스님이 내림마루나 추녀마루 밑에 용이나 봉황을 만들어 넣는 대신 현판 뒤 처마 밑에 몰래 이 돼지상을 만들어 숨겼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어떤 이는 사찰 수호를 위해 서유기에 나온 저팔계를 수호신장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는 경주 최씨의 시조인 최치원이 금돼지의 자손이라는 전설까지 연결하기도 합니다." 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위에서 저팔계를 수호신장으로 만들었다고 주장에 대해, 많지는 않지만 사찰에도 잡상이 있는 경우가 있다. 밀양 표충사의 대광전이나, 흥국사의 대웅전과 만월보전의 지붕 내림마루에 잡상이 있다. 잡상가운데에 저팔계라는 돼지의 상이 있기는 하지만 잡상에 나오는 저팔계는 독립상이 아니라 손오공 등 서유기에 나오는 여러 동물들이 함께 놓여있기 때문에 극락전의 돼지상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 돼지상과 관련된 사찰들이 있을까?
청도군 각남면 대산사의 원통전과 돼지탑
청도군에 각남면에 대산사라는 절이 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신라 흥덕왕5년(830년)에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목지국(目支國)에서 남해상에 표류해온 천수관음(千手觀音)불상 3구중 한 구를 이곳에 봉안하였다고 하는 절이다. 1930년에 도적 떼들의 방화로 법당은 사라지고 불상은 반소 된 것을 봉안해오다가 주변 땅에 묻었다고 전해오고 있었는데, 2000년 여름 사찰경내 밭에서 천수관음(千手觀音)을 발견하여 지금 모시고 있는 절이다.
이 절이 있는 월은산(月隱山)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제비가 알을 품는 연소형국((燕巢形局)으로 많은 새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풍각면 덕양리에서 대산사(臺山寺)로 오르는 산길이 뱀의 모양과 같아서 뱀이 제비 알을 훔쳐 간다고 생각해 이것을 막기 위해서 비보책(裨補策)으로 만든 것이 돼지탑이다.
대산사 삼층석탑과 돼지상이 있는 지대석
원통전 앞에 있는 작은 탑은 네모난 자연석 위에 이층기단과 삼층석탑의 형식을 갖추었으나 3층 지붕돌이 없어져 얼핏 보면 이층탑처럼 보이기도 한다.
멧돼지는 뱀을 잡아먹는 천적이므로 멧돼지의 힘으로 뱀을 억누르고 제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옛날 사료가 귀했던 시절 농가의 돼지우리에 뱀을 먹이로 던져주었던 기억은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아직도 아련한 기억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 탑의 영험함 때문인지 지금 대산사에서 뱀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창원 불모산 성주사의 돼지상
창원 불모산의 성주사 계단 위에도 두마리의 돼지가 세워져 있다. 오래된 것은 아니고 근간에 조성해 놓았지만 조성 배경은 대산사와 비슷하다. 성주사 절터의 형상이 제비집 모양인데, 절 앞산이 제비를 노리는 뱀의 머리와 같고 실제로 이곳에 뱀이 많아서 뱀들이 두려워하는 돼지 석상을 만든 비보책(裨補策)을 세웠다는 것이다.
십이지지에서 뱀은 사(巳)이고 돼지는 해(亥)이다. 뱀인 사(巳)는 오행상 화(火-불)가 되고 돼지인 해(亥)는 오행상 수(水-물)가 되는데 이 두 글자는 서로 만나면 충(沖)이 된다. 오행의 원리상 물이 불을 이겨서 돼지가 뱀을 제압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뱀의 독니는 두꺼운 돼지의 피하 지방층을 뚫지 못하고 뱀이 물었다해도 뱀의 독은 돼지의 지방에 중화되어 버린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돼지상은 사찰을 수호하거나 기복신앙의 대상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두 사찰 모두가 뱀을 막기 위한 비보책으로 돼지상을 조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극락전의 돼지상은, 불국사가 앉은 토함산이나 불국사로 들어오는 들길에 뱀이 많았거나 또는 주변에 뱀의 형상을 나타내는 지형지물이 있었기 때문에 비보책으로 돼지상을 만들어 둔것이 아닐까?
극락전 기단의 명문
돼지상을 이야기하다보니 극락전과 돼지와의 관련된 작은 사실이 있어 적어본다. 돼지상이 있는 극락전의 기단 우주(기둥돌)에 <?蓋石橋重修學煇 己亥>라는 글씨가 세로로 2줄 음각 되어 있다 "기해년(己亥年 조선 효종 10년 1659년)에 학휘스님께서 극락전 기단부의 개석과 석교를 중수하였다는 기록이다 기해년이라면 바로 돼지해가 아닌가? 임진란 이후 거의 폐사된 채 있던 불국사를 효종 10년에 처음으로 중창하면서 중창한 해의 간지(년도)가 돼지띠이므로 이를 표시하기 위해 돼지를 새긴 것은 아닐까하는 헛된 생각도 해본다
근래에 만들어 세운 복돼지상이다
연화 칠보교, 안양문, 석등, 극락전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돼지상 (일반 사찰에서는 탑이 놓여야 할 자리이지만 원래 극락전 앞은 석탑을 조성하지않기 때문에 석탑이 없다)
극락전 석등 배례석 앞에는 최근에 만들어 세운 극락전 복돼지상이 있다. 극락전 편액 뒤에 있는 목조 돼지상은 높아서 만져볼 수 없으므로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황동으로 모형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새로 만들어 놓은 이 복돼지상에 대해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극락전으로 가는 길은 연화교 칠보교를 올라(지금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안양문을 지나고 석등을 지나 극락전 아미타불로 이른다. 사찰에 있어서 <계단-문-석탑-석등-본전>으로 이어지는 직선길은 변할 수 없는 공식적인 구조이다. 이 사이에 다른 어떤 방해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불국사측에서는 불교사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돼지상을 그 직선상의 통로에 만들어 놓아 사찰의 구성 원칙을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부처님의 진리를 구현하는 신성한 가람의 마당에 속물을 설치해 놓았다. 거기다가 연화대좌는 부처님만이 앉을 수 있는 성스러운 자리인데 돼지를 연화대좌 위에 얹어 놓았다.
불국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참견하기도 전에, 금동으로 만든 돼지 앞에 절을 하고 복 받기를 바라며 쓰다듬고 있다. 부처님에 받아야 할 복을 돼지에게 받게 한다니 이런 미신적인 일이 과연 사찰에서 있을법한 일인가?
사찰은 스님들의 수행처요 법문을 지키는 부처님의 영토일 뿐 관광지화 되었다해도 관광지는 아니다. 신성해야 할 법당을 관광지처럼 만드는 이런 일이 과연 타당한지 묻고 싶다 아무리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지만 꼭 그 자리에 돼지상이 있어야 할까? 만약 돼지상이 꼭 있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지금의 자리가 아닌 곳으로, 통로를 벗어나 회랑 앞쪽 등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설치하여도 되지 않을까?
대웅전 앞면의 왼쪽 공포 위에 있는 동물상
돼지상과 같은 동물상은 극락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웅전 처마 밑 공포에도 이와 비슷한 동물상이 새겨져 있다. 돼지 같기도 하고 노루같기도 한데 색깔은 황금돼지와 달리 화려하지 않으며 적갈색의 단색에 주둥이에만 희게 칠해져 있고 몸통에는 검은 색으로 털을 그렸다. 주둥이 옆의 털 자욱으로 보아서 돼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조각된 형체가 애매하여 무슨 동물로 보아야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동물상 역시 일반적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형상이다 만약에 돼지상이라면 극락전 돼지와 연결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학술적인 연구가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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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함산솔이파리 원문보기 글쓴이: 솔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