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6장1절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hwp
제목: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히 6:1-8)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1)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2)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3-1)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3-2)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1)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완전한데는 성숙함을 말합니다. 5장의 ‘장성한 자’와 같은 수준을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말씀 안에서 완전에 근접하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인자(人子)께서 당신의 생애에서 완전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그들의 생애에서 완전하여야 한다”(소망, 311)
2)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타락한 “ 이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회개가 불가능한 것을 안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그가 떨어져 나갔던 그 경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없는 사람의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성경주석, 히 6:6)
잃는 양은 교회 출석을 중단하고, 성경 읽기를 멈추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의 입술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타락한 자와는 다르다. 희망이 있는 사람들이다.
타락한 자들(fall away), 당시는, 4세기경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 내에서 아무런 법적 지휘가 없었다. 그들은 예배 장소를 짓도록 허용 받지 못해서 가정교회를 가졌고,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체포되고 심문받고, 처형될 수 있었다. 박해가 계속해서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했다. 박해가 심해질 때 몇 그리스도인들이 가이사를 신으로 여겨 그에게 분향하거나, 가이사는 주님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다. 그리스도에게서 떠나 가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신사참배,
“신사참배는 국민이 당연히 통행할 국가의 의식이요, 종교가 아니라고 한 것을 인식하셨을 줄 압니다. 그런고로 어떤 종교를 신봉하든지 신사참배가 교리에 위반이나 신앙에 구애됨이 없는 것을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1936년 4월 10일 감리회보, 총리사 양주삼)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에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성령을 모독하는 죄(막3:28:29)
(막 3:28-29)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이 베푸신 이적들과 귀신을 쫓아내신 일을 사단의 권세로 돌리는 종교 지도자들을 배경으로 나온 말씀이다. 그들은 구조의 봉사에 기름 부은 성령을 거절하였으며, 그것에 의하여 죄의 깨달음과 회개와 구원의 근원이신 분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킨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일은 성령을 모독한 것이고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를 짓게 되었다.
일요일 예배
주후 132년 로마제국에 대한 유대인들의 애국적 반란이 3년간에 걸쳐 일어났는데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9 백여개 마을이 초토화 되고 무려 백여 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곧 이어 로마황제 하드리안은 그 보복조치로 ①모세오경, ② 할례의식, ③안식일예배 등을 금지시키면서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반포했다. 더 가혹한 박해가 유대인 뿐 아니라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예수님 승천 이후 생겨난 소수 기독교인들에게까지 임하게 된다. 기독교인 일부가 토요일 예배를 버리고 태양신을 섬기던 로마인들을 따라 일요일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변절자들로 손가락질 당했는데 나중에 그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지면서 입장이 바뀌게 된다.
기독교인으로 위장개종을 선언한 콘스탄틴 로마황제의 토요일 예배 말살 계획이 주후 321 년 봄(3. 7)에 성공하게 되는데, 아른 바 일요일 공휴일화에 따른 강제 휴업령까지 선포된 기독교 사상 최초에 계명 변개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4년 후에 태양의 날인 일요일을 부활절로 성수하라는 니케아종교회의를 거쳐 364년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마침내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성별하자는 악법이 제정되었다.
용서 받지 못할 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을 예배일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양심,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고, 다른 예배일을 만들어서 예배하게 한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씀을 왜곡시키고 무리들을 오류로 인도한 죄는 성령을 무독한 죄이다. 타락이고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박해에 굴복하여 그리스도를 버리고 우상을 참배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들을 보고 이탈을 막기 위해서 바울사도가 주신 말씀이다.
3) 바울의 권면 - 합당한 채소를 내라
3-1) 땅이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의 말씀이 심어지면 땅은 합당한 채소를 내야 합니다. 땅은 우리 마음을 비유합니다.
3-2)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하나님의 말씀을 심었는데도 땅은 합당한 채소를 내지 못하고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합당한 채소를 내지 않고 다른 것들을 내 놓은 것입니다.
성경의 인유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말씀에서 끌어와 비유해서 말할 때는 인유라고 합니다. 인용은 성경 말씀을 직접 인용해서 말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유한 근거 성경절>>
(창 1:11-12, 개정)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3:17-18, 개정)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
(마 13:2-9, 개정)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교훈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땅은 저주를 받아서 다시는 스스로 채소와 과일을 내지 않는다.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농부가 원하는 결실을 거두게 된다. 히브리서는 창조의 기사와 예수님의 비유를 인유해서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땅과 같은 우리 마음도 타락하면 이와 같으니, 그러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려고 해야 한다는 바울의 권면이다.
시골농사
일요일에 시골에 가서 이랑을 만들고 아내가 고구마 한 이랑, 땅콩 한 이랑을 심었습니다. 토마토 세 그루도 심고 지주대를 세워서 묶고, 해 걸음에는 물을 한 번 주고 올라 왔습니다. 아들은 물통을 나르고 나는 물 조리로 물을 주었다. 그리고는 다음 날 밤에 비가 와서 얼마나 고마운지! 한 번쯤은 물을 더 주고 싶은데 또 갈 수 없고 아쉬운 마음이 있는데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창조 때는 땅이 식물을 내 주어서 거두어 먹으면 되었다. 다시 그 나라로 우리가 돌아가야 이 노동의 수고에서 졸업하게 됩니다. 그 희망으로 삽시다.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의 나라가 있으니 힘들더라도 인내하고 주님 믿고 살자고 소개합시다.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