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8일(화), 그리스 아테네 순례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순례여정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크루즈가 오후 5시에 출항을 하게 되어있어 오늘의 모든 일정을 오후4:30분까지 마쳐야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지난 번 성지순례 초기에 올림피아 유적지를 다녀온 까닭인지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든다. 오늘 낮 최고온도는 26도, 하늘은 옅은 구름이 덮인 맑은 날씨이다.
지금 크루즈 배는 그리스의 피라에우스(Piraeus)항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다녀갔던 떠났던 고린도지역과 아테네 유적지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30년 전에 이곳에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분께서 가이드로 동행하게 되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그리스와 고린도, 아테네 지역에 대한 안내를 차분하게 해 주었다.
그리스의 경제위기
최근 그리스는 EU 경제위기의 진원지이며, 지금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고 있다. 이런 경제적 위기가 초래된 이유를 현지에 살고 있는 가이드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는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이다. 예를 들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시키고 심지어 외국 유학생에게도 학비는 무료라고 한다. 얼마 전 정부당국에서 학생들에게 주는 교과서 대금을 학부모로부터 받으려고 하다가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져서 철회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스 국민들은 공짜로 받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 복지 혜택을 줄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복지분야에 대한 과도한 재정지출이 계속되는 한 IMF로부터의 탈출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는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정부의 정책이 전체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이해집단에게 편중됨으로 인하여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총선을 치르는 과정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복지 공약을 내세우는 것이 염려스럽다. 복지란 마약과 같아서 한 번 받으면 결코 후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BC 8세기 그리스에서 일어난 세 가지 역사적인 사건
첫째, 그리스(헬라) 문자가 만들어졌다. 지금의 알파벳으로 시작되는 그리스 문자가 만들어지고 정착되었다.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에서도 그리스 문자가 많다. Δ(델타), Σ(시그마), Ω(오메가) 등이 그리스어의 알파벳이다. 그리고 스타디움(원래 운동장이란 뜻이 아니라 올림픽 경기 중 달리기 경주를 하는 거리를 표시하는 단위였다고 한다.)이란 말과, 나이키, 르까프와 같은 상호도 그리스 문자에서 나왔다고 한다.
둘째,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었다. BC 776년에 최초로 시작된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 이전에 전쟁을 그치고 제우스신을 중심으로 단합하며 평화를 누리기 위한 취지로 시작되었다. 모든 행사 중 운동경기가 가장 하이라이트였으며, 도시국가간 단합과 평화를 위한 제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셋째, 신전을 건축한 것이다. 각 도시마다 수호신이 있으며, 그 수호신을 섬기기 위한 신전이 곳곳에 건축되었다. 가장 오래된 신전은 BC 7세기에 건축된 헤라신전이다.
고린도 지역
고린도는 고대로부터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그리스 남북 육상교통의 요충지이며, 이오니아해(海)와 에게해(海)를 잇는 해상운송의 중심지로서 고린도 운하가 건설되어 수많은 배가 왕래하였다. 고린도 운하의 건설로 430km의 뱃길을 단축시키는 경제적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으로 자연스럽게 모든 물자가 모이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당시 아테네, 스파르타와 함께 그리스 3대 도시 중의 하나였으며, 가장 부요한 도시 그리고 가장 음란한 도시로 정평이 나 있었다.
실제로 고린도에 와서 장사를 하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빈털터리가 되어 집으로 갔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린도에서는 반드시 고린도지역의 화폐만 사용하도록 하여 엄청난 환차익(換差益)을 남겼고, 여관과 술집, 창녀 등이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것은 예사였다. 그러다보니 고린도에 와서 장사를 해서 남은 돈은 모두 고린도에서 탕진하고 빈털터리로 집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고린도사람’이라고 하면 남자의 경우 포주, 여자의 경우 몸을 파는 창녀라는 나쁜 의미로 인식되었다.
BC 146년 로마가 고린도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BC 44년 도시가 재건되어 번영하였으나 AD 521년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어 중세 이후 쇠퇴하였다. 1858년 지진으로 구(舊) 고린도지역은 폐허가 되었으나 가장 많은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리스 정부에서는 신(新) 고린도를 개발하여 그곳에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고린도 유적박물관
우리 일행은 고대 고린도의 유물이 보관되어있는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에 소장되어져 있다는 의미는 과거의 모습 뿐 아니라 영광도 사라지고 없다는 의미이다. 과거 고린도지역이 물질적 풍요를 누렸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은 박물관에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뿐이 아닌가? 박물관 내에는 온갖 우상숭배와 문란한 성적타락의 유물들이 눈에 띈다.
그곳에는 남자 성기 모양의 술잔도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여자들의 노리개였다고 한다. 그리고 신체 부위 중 병들었다가 치료받은 부분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는데 발, 팔도 있었고, 젖가슴과 남자성기 등도 있었다. 이는 당시 성적인 타락상과 이로 인하여 성병이 크게 유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당시의 석관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유골과 함께 매우 간단한 부장품만이 관 속에 들어있었다. 애굽의 거대한 피라미드에 비하여 석관이 매우 간소한 것은 저들에게는 내세의 부활에 대한 신앙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시간이었고, 육체적인 쾌락에 탐닉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에 사용하던 청동거울도 전시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하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당시에 사용하던 청동거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청동으로 만든 거울은 아무리 깨끗하게 닦아도 얼굴의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성경 속 소품의 실물을 확인하는 것이 참으로 유익했다.
박물관 마당에 보라색과 흰색으로 된 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이 꽃을 부활꽃이라고 부르는데, 부활절 때가 되면 이 꽃이 만개한다고 한다. 이 나라에도 다시 한 번 영적 부흥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아테네
그리스 아테네는 그리스 본토 남동부 살론만의 아티카 평야에 위치하고 있으며, 2개의 강을 끼고 동,서,북의 3방향이 산으로 둘러 싸여있으며, 남쪽은 아테네의 피레우스로 향하여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곳에 있는 도시국가’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BC 8세기에 성립하여, 세계최초의 민주주의가 행해졌고, BC 5세기경에는 최고의 전성기인 페리클레스 시대를 맞이하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활약하고 파르테논 신전이 건립되었다. 그 후 마케도냐와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학문과 문예의 중심이 쇠퇴하였고, 고대 유적도 많이 파괴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소중한 문화와 유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이 있다. 현재 세계유산은 전 세계 151개국이 보유하고 있는 911점(2010.8월 현재)이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제1호로 등재된 것이 이곳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이다.
파르테논 신전
고대 도시국가에는 저마다의 수호신이 있으며 저들의 수호신을 섬기기 위한 신전이 건축되었다. 파르테논 신전도 저들의 수호신인 아테네 여신을 섬기기 위한 신전이다.
이 신전은 규모가 매우 웅장할 뿐 아니라, 당시 건축술에 대하여 후대 사람이 크게 놀란다고 한다.
이 신전의 건축에는 2가지 중요한 기술이 도입되었는데, 중력분산과 착시현상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중력분산에 대하여 말하면, 이 신전에 사용되는 돌이 직선 또는 직면이 아니라 모두 곡선과 곡면으로 구성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로 상승할수록 폭이 조금씩 좁아지도록 건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계속 건물의 높이가 상승한다면 지상에서 3.9km 상공에서 만나도록 설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둥 46개를 포함한 대리석의 엄청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중량을 분산시키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착시현상인데, 같은 두께의 기둥을 세우는 경우 윗부분은 작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둥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들어 멀리서보면 기둥의 위에서 아래까지 일직선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건축된 신전 안에는 높이 12m 아테네 신상이 상아와 황금으로 만들어져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여신상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였던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옮겨갔다가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파르테논 신상은 역사의 변천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기 전에는 아테네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이후에 우상의 잔재를 없앤다는 이유로 모든 조각은 파괴되고 성 소피아 교회로 사용되었다가, 15세기 터키가 이 지역을 지배한 후 회교사원으로 사용되었다. 17세기에는 베네치아 군대와 전쟁을 할 때 화약고로 사용되었다가 베네치아 군대의 포격으로 크게 파괴되고 말았다.
아레오바고 언덕
파르테논 신전 옆에 작은 언덕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아레오바고 언덕이다. 아레오바고란 이름은 ‘전쟁의 언덕’이란 뜻인데, 살인, 강간 등 중죄인을 재판하는 법정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도행전 17:16-32절에 이 언덕이 소개되는데, 사도 바울이 아덴(아테네)에 도착하여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이 가득하였다. 그래서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만나고, 장터에서 사람들과 만나 격론을 벌였다. 당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이던 중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저들이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야기였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논쟁하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바울에게 이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발언할 기회를 주었다. “내가 보니 당신들은 종교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저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많은 회심자를 얻지 못하였으며, 당시 법정 판사 중 한사람이었던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몇 사람이 바울의 전도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이 언덕 바로 아래 아고라 즉 옛 장터가 있다. 바울이 사람들을 만나 논쟁을 벌였을 것이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열정을 가지고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던 바울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일찍 자리에 누웠다. 여행의 피로가 조금씩 쌓이고 있다. 잇몸에 치통이 느껴진다. 약을 먹어도 근본적인 치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주여, 남은 순례의 일정을 지켜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