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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나는 오늘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는 말이다.
“현주야! 오늘 시내 가자!”
이 말을 나는 분명히 들었지만 대꾸를 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용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말하기가 싫었다.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달린 것이다. 우리 집은 넉넉하지 못하다. 아니 못 산다고 말해야 정확하다. 그렇다 우리 집은 못 산다. 집도 다른 애들 사는 데에 비하면 무척 좁다. 남들은 넓은 거실에서 푹신한 소파에 앉아 TV를 하하 호호하면서 보는데, 우리 집은 그런 큰 거실도 없다. 주방 겸 거실에서 작은 TV를 본다. 나는 6학년이 되어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없다. 내 친구들은 넓은 집에 자기 방이 있고, 그 방에는 예쁜 침대도 있고 인형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방이 있지만 짐들이 가득 찼고 나 혼자 누우면 딱 맞는다. 그런 집을 친구들에게 공개할 수는 없었다.
집으로 가니 아무도 없었다. 동생은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을 것이고, 엄마랑 아빠는 일하고 있을 시간이다. 우리 엄마는 상가에서 식당을 하신다. 우리 아빠는 회사에 다니시는데, 다른 아빠들처럼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게 아니라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신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고치고 만드는 일을 하신다. 우리 엄마아빠도 다른 애들 엄마아빠처럼 예쁘고 멋있는 옷을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 또 돈 많이 벌어서 용돈도 많이 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으면 좋겠다. 학교에 가면 애들이 자랑을 한다.
“현주야, 나 어제 엄마아빠랑 레스토랑 가서 스테이크 먹고 왔다! 그리고 옷도 샀어! 이것봐봐 . 예쁘지?”
이렇게 나에게 자랑을 하면
“ 나도 주말에 엄마아빠랑 레스토랑 가기로 했어. 옷도 사주신대. 신발도 같이.”
나는 이렇게 거짓말을 해버린다. 나는 한 번도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도 본 적도 없다. 애들한테 솔직히 말하기가 자존심 상한다. 특히 윤지한테는 말이다. 윤지네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넓은 데에서 살고 예쁜 옷만 입고 온다. 이런 건 나와 상관이 없다. 그런데 꼭 옷을 사면 나한테 와서 자랑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럽지만, 부러운 티를 내지 않고 옷을 칭찬해준다. 칭찬을 안 하면 칭찬 할 때까지 옆에서 쫑알 쫑알대기 때문이다.
엄마아빠가 집에 오시려면 한 참 남았다. 동생과 나는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내가 해주는 김치볶음밥을 동생은 좋아했다. 이렇게 저녁마다 내가 밥을 한다. 사실 하는 건 없다. 아침에 엄마가 해놓고 간 밥과 반찬을 꺼내서 제시간에 동생과 먹는 거 밖에. 엄마아빠는 그런 날 기특해 하신다. 하지만 난 착한 아이가 아니다. 오늘도 친구들한테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거짓말한 게 마음에 걸려서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니게 하려고 생각 중이다. 오늘 엄마아빠와 레스토랑 갈 약속을 하고 옷 사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만 하면 난 거짓말한 게 아니다. 오늘따라 시간이 더디게 간다. 오늘은 10시가 다 되어서 엄마와 아빠가 돌아오셨다. 피곤한 얼굴이지만 나는 엄마아빠한테 레스토랑 가자고 졸랐다.
“엄마, 나도 레스토랑 가보고 싶어.”
“얘는. 갑자기 웬 레스토랑이래~ 호호호 ”
웃으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 엄마가 하고 싶지 않거나 힘들 때 쓰는 기법이다. 웃으면서 말을 돌리는 거다. 이에 굴하지 않고 나는 다시한번
“엄마! 나도 스테이크 먹고 싶단 말이야! 윤지가 스테이크 먹고 자랑했단 말야. 옷도 새로 사서 자랑하고 . 엄마는 모르지? 내가 얼마나 비참한지!”
“ 현주야. 엄마아빠 좀 생각해줘...... 지금 너무 힘들어. 요즘 아빠 일거리도 없고 엄마 가게 손님도 줄어서 예전보다 더 힘들어.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현주는 혼자서도 잘하고 착하고 그치? 조금만 참자 현주야?”
“ 싫어! 얼마나 더 참아야해?”
“현주야...”
“언제까지 더 참고 살아야하냐고! 이렇게 사는 거 너무 구질구질해! 찌질하단 말야!”
“현주야! 갑자기 너 왜 이래!”
“진짜 짜증나! 나도 다른 애들처럼 예쁜 옷 입고 싶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싶다고! 윤지처럼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아?”
“현주야!”
“아빠랑 엄마가 학교다닐 때 공부 열심히 했으면 이렇게 안 살 거 아냐! 나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왜 낳았어?”
“이현주! 너 한 번 혼나봐야 정신을 차리지? 지금까지 오냐오냐 했더니 이젠 엄마고 아빠고 안 보여?
“몰라! 엄마아빠 다 미워!”
소리를 꽥 지르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두운 방에는 동생이 누워있었다. 자는 줄 알았는데 깨어있었다. 동생이 말을 걸어왔다.
“언니, 레스토랑 가고 싶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울고 있다는 걸 현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언니 내가 맛있는 거 사줄까? 현지 돈 많은데”
“됐어...”
“언니 뭐 먹고 싶어? 말만 해!”
“몰라~언니 잔다.”
꿈에서 나는 예쁜 옷을 입고 우리 식구들과 레스토랑에 갔다. 가서 스테이크도 먹고 파스타도 먹고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꿈 속에서도 이것이 꿈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깨고 싶지 않았다.
꿈에서 깨고 나니 아침 10시였다.
“으악!!!!!! 지각이다!”
옆에서 현지가 웅얼거리면서 자고 있다. 잉? 시간을 잘 못 봤나?
“맞다. 오늘 일요일이지?
엄마는 일요일에도 가게에 나가시고, 아빠도 회사에 나가신다. 집에는 현지와 나, 이렇게 둘 뿐이다.
방으로 나와 TV를 켰다. 일요일인데 재미없는 프로만 하고 있었다. 영화를 안 보는 나에겐 영화란 그냥 동영상과 같다.
영화소개프로그램을 넘기고 다른 채널로 돌리니 맛집을 소개해 주는 프로가 나왔다. 오늘은 킹크랩이었다.
킹크랩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계속 보고 있자니 킹크랩이 너무 먹고 싶어져서 TV를 꺼버렸다.
"에이. TV본다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더 먹고 싶어지기만 하잖아? 밥이나 먹어야지"
밥상을 펴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밥을 푸욱 펐다. 혼자서 아침을 먹고 있으니까 어제 일이 생각나 짜증이 났다. 드라마에 보면, 엄마아빠랑 동생이랑 다같이 하하호호웃으면서 밥을 먹는데, 우리 집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은 명절말고는 없는 것 같다. 왜 우리집만 이러는 걸까? 세상은 우리집만 괴롭히는 이유가 뭘까? 이해할 수가 없다.
밥을 다 먹고 방으로 돌아가 책상을 살폈다.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는데, 내 방에 있는 책들은 다 읽고 독후감 썼던 것들이다. 베란다에 책을 보관해두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베란다로 가서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책장을 뒤졌다. 옛날 책밖에 없었다. 온통 한자로 쓰여져 있어서 무슨 책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다 옛날 책이잖아. "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내 눈엔 노란 색의 작은 책이 들어왔다. 가을에 떨어지는 은행잎색의 표지에 겨울연습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이게 뭐지?"
나는 노란 책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그건 우리 엄마의 일기였다. 결혼했을 때부터 일기가 담겨있었다. 중간 중간 촌스런 사진도 끼워져 있었다.
"엄마 젊었을 땐 이랬구나. 많이 촌스러운데? 그래도 예쁘다."
엄마의 젊었을 때의 옷을 보고는 웃음이 났다. 아까의 짜증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초록색 머리띠에 흰 티셔츠, 청바지. 그리고 요즘 유행하고 있는 레깅스를 우리 엄마는 그 때부터 입고 있었다. 엄마의 패션 센스에 웃음이 났다.
"우리 엄마 패션리더였네." 큭큭 거리면서 한 장 한 장 넘겼다.
또 다음 장으로 넘겼는데, 까만 배경에 작은 게 있는 사진이 나왔다.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다. 이건 바로 뱃속 아기 사진이다. 그 밑에 엄마의 일기가 있었다.
오늘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했다. 아기가 아주 건강하댔다. 올 가을이면 아기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빨리 우리 아기를 만나고 싶다. 예쁜 공주님일까 아니면 멋진 왕자님일까? 건강하게 만났으면 좋겠다.
"음...내 얘긴가?"
다음 장으로 넘기니까 뱃속의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다.
안녕, 아가?
엄마는 우리 아가가 정말 예쁘고 고마워. 어디에도 견 줄 수가 없는 존재란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사랑한다.
또 한 장 넘기니까 이번엔 애기 사진이 나온다. 얼굴크기는 몸통이랑 비슷하고, 눈은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작고 얼굴은 술 먹은 아저씨처럼 새빨간 색인 아기다. 그 밑엔 우리 엄마의 글이 써있었다.
우리 아가는 예쁜 공주님이다. 이 날 공주를 만나려고 얼마나 힘을 썼는지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 듣기론 현주아빠는 예쁜 딸 낳았다고 온 동네에 전화해서 자랑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다 똑같은 아기로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이다.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아가야, 엄마아빠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줄게. 사랑해
엄마의 일기를 보면서 내가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봤다. 이렇게 못 생긴 딸이 나왔는데도 우리 엄마아빠는 예쁘다고 온 동네에 자랑을 한 게 너무나도 웃기다. 다른 사람들이 나 보러 왔을 때 속으로 얼마나 실망을 했을까. 그래도 나를 이렇게 예뻐하고 좋아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다.
또 넘겨보니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갑자기 년도가 마구 바뀐다. 음 내가 5살일 때로 훌쩍 넘어갔다.
오늘은 현주가 밖에서 인형을 사달라고 졸랐다. 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 때 여유가 없었다. 현주아빠 월급날까지 이 돈으로 살아야하는데, 월급날까진 너무나 많이 남았다. 현주가 우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다른 아이들처럼 예쁜 옷에 예쁜 인형을 많이 사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현주는 어려서 엄마 마음을 이해 못하겠지만, 좀 더 크면 이해해줄 거라고 믿는다. 현주야 사랑한다.
엄마의 일기를 보고 눈물이 났다. 어렸을 때도 엄마 속을 많이 썩였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마지막 줄에 엄마 마음을 크면 이해해줄 거라고 믿는다는 말에 더 슬펐다.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나 됐는데도 엄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투정만 부리고 떼를 썼다는 것이 창피했다. 엄마가 해주기 싫어서 안 해준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어서 못 해준 건데 알면서도 엄마한테 짜증을 내고 화를 낸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오늘 밤엔 내가 엄마한테 편지를 써야겠다. 우리 엄마가 나중에 보고 감동할만한 편지를 말이다.
첫댓글 잘 썼네. 가난을 소재로 한 것도 따뜻하고. 구성도 잘 짜여져 있다. 다만 주제가 너무 뻔해서.... 다른 이야기라면 더 잘 쓸 수 있겠다. 그러니 쓰기 전에 더 많이 생각하고. 새로운 얘기를 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