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학의 학맥을 찾아서는 크리스찬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글로서 한국교회의 교파 중 예장 합동과 통합, 그리고 감리교의 주요한 영향을 끼친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교인 웨스트민스터, 프린스턴, 드루 신학교등이 실려있습니다. 연재순으로 올립니다.
한국신학의 학맥을 찾아 >1<프린스톤신학교
보수/개혁, 다양성 존중 학풍 형성
크리스찬신문 이혜자 기자
한국신학은 지금까지 서구신학의 절대적(?) 영향하에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서구에서 학위를 받아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신학자들이 수많은 신학교 가운데 영미 지역에 있는 몇몇 학교들에 편중돼 학위를 한 것 또한 한국신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신학은 어떤 특정한 신학적 명제나 사조에 국한되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신학자들이 국내에 돌아와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학위를 한 신학자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그동안 어떤 분야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리고 하고 있는지를 그들이 학위를 한 신학교별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학교선정은 한국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미국, 독일신학교들을 중심으로 했으며 이들 신학교들의 초기 모습과 최근의 동향을 함께 알아볼 예정이다.
개신교의 전래와 함께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프린스톤신학교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교회와 신학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쳐왔다. 이는 프린스톤에서 수학한 수많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장로교 안에서 그리고 장로교 밖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 초기 한국사회 지도자 중 많은 수가 프린스톤에서 수학을 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초기 선교사들 중 상당수가 프린스톤 출신이었던 것.
1920년대 프린스톤에서 수학한 한국교회 지도자들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박사이자 최초의 신학교 교수였던 남궁혁(1924, Th.M), 연세대 초대 총장이었던 백낙준(1925, Th.B), 광복 후 한국 기독교연합회의 초대 회장, 총무와 기독교교육협회의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던 김관식(1926 Th.M), 서울장로회신학교 교장, 총회신학교 교수 및 교장직을 역임했던 박형룡(1925, Th.B),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창립자이자한신대학 명예학장을 지낸 김재준, 전 영락교회 담임목사이자 숭실대학 학장을 지냈던 한경직(1929, Th.B), 독립운동가였던 윤하영과 송창근 등을 들 수 있다.
이 당시 프린스톤은 선교의 열정에 불타올라 외국 학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세계교회의 성장과 일치를 위한 지도자들을 양성하는데 힘썼는데 이러한 학교의 분위기는 한경직, 백낙준 목사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1940~60년대는 신사훈(1942~43, 45~46), 전경연(1949, Th.M 신약학 한신대 명예교수), 전성천(1951, Th.M 기독교교육 예장 성남교회 원로목사), 한태동(1953, Th.M 56, Ph.D 교회사 연세대 명예교수), 이영헌(1953, Th.M 교회사 장신대 은퇴교수), 이종성(현 기독교학술원 원장), 박상증(1957, Th.M 현 갈현성결교회 담임목사) 문동환(1955), 문익환(1956), 황성규(Th.M 한신대 명예교수) 등이 프린스톤에서 수학했다.
프린스톤신학교는 학생들에게 항상 말씀을 상황과 함께 상고하며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상황에의 관심은 도식화되어가기 쉬운 전통적 장로교회와 그 신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는데 한국에서는 특히 문동환, 문익환 목사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 이 시기에 한태동 박사가 우리나라 신학생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린스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60~70년대 프린스톤에서 수학한 사람들로는 오태환(1960, Th.M 부산신학교 은퇴교수, 금광교회 원로목사), 정경숙(1963, Th.M 한일장신대 은퇴교수), 곽선희(1964, Th.M 현 소망교회 담임목사), 김병서(1964, Th.M 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나학진(1968, Th.M 75, Ph.D 서울대학교 은퇴교수), 박종삼(1968, Th.M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교수), 김용복(1969, Ph.D 한일장신대 전 총장), 박조준(1969, Th.M 현 갈보리교회 담임목사), 홍성현(1972, Th.M 75, Ph.D 현 수송교회 담임목사), 심상권(1973, Th.M 현 상담문화연구원 원장), 나채운(1974, Th.M 장신대 은퇴교수), 장상(1977, Ph.D 현 이화여대 총장) 등이 있다.
한편 프린스톤에서 수학한 현직 신학과 교수로는 강남대 김흡영(M.Div·Th.M 조직신학), 계명대 오우성(M.Div 신약학), 그리스도신학대 김문형(Th.M 신약신학), 나사렛대 유승원(Th.M 신약학), 대전신대 배정훈(Th.M 구약학),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전용란(Th.M 신약학), 부산장신대 박만(Th.M 조직신학), 서울여대 문영빈(Ph.D 과학과 신학) 장경철(Th.M, Ph.D 조직신학) 최재덕(Th.M 신약학) 황영훈(Th.M, Ph.D 목회상담학), 숭실대 박종삼(Th.M 기독교문화), 연세대 박준서(Ph.D 구약학), 영남신대 김영도(Th.M 교회사), 이화여대 정희성(Th.M 목회상담학), 장신대 김도일(M.Div 기독교교육학) 윤철호(Th.M 조직신학) 임성빈(Ph.D 기독교윤리학) 임창복(Th.M 기독교교육) 조숙자(MRE 교회음악) 현요한(Th.M, Ph.D 조직신학), 전주대 이신형(Th.M 조직신학), 총신대 심창섭(Th.M), 한남대 이달(Th.M 신약학), 한신대 김영일(Th.M 실천신학) 이병학(Th.M 신약학) 장일선(Th.M 구약학) 황성규(Th.M 신약학), 한일장신대 구춘서(Th.M 조직신학), 박종기(Th.M 신약학) 호남신대 차종순(Th.M 역사신학) 등이 있다.
이밖에 강석렬(1980 Th.M 기독교교육 서울장신대 은퇴교수), 서경석(84 M.Div 서울조선족교회 담임목사), 최두열(1990 Th.M 소망교회 부목사), 서정오(1991 Th.M 동숭교회 담임목사) 등도 프린스톤에서 수학했다.
현재 프린스톤신학교에는 현재 전세계 25개국에서 온 74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중 여성은 270여 명. 한국학생은 전체 학생의 10% 정도이며 그 중 반은 한국인 2세들이라고 한다. 전학생의 80%가 장학금을 받으며 특히 박사과정은 수업료 전액이 면제돼 생활비만 필요하다. 도서관에는 신학분야에 관련된 도서만 70여만 권에 이르러 학문을 위한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신대 임성빈 교수는 “프린스톤은 장로교 전통이 강하지만 동시에 에큐메니칼 적”이라고 전제한 뒤 “보수적인 것부터 진보적인 것까지 포용적으로 받아들인다”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프린스톤신학교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최근 프린스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현숙씨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학생들이 많다보니 서로 경쟁적 따뜻한 분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 흠”이라며 “입학하자 마자 토론수업까지 영어로 소화해 내야 하기 때문에 어학 준비를 철저히해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프린스톤신학교는
미국 장로교 최초의 신학교인 프린스톤은 1812년 창립되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역사는 17세기 전반에 펜실베니아에서 시작됐던 로그 칼리지(Log College)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로그 칼리지는 1746년 교조적인 정통주의의 보루가 되어버린 하버드와 예일대학에 비해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장로교회를 위한 목회자를 양성하겠다는 취지 아래 지금의 프린스톤신학교의 전신인 ‘뉴저지대학](The College of New Jersey)을 설립했다. 그러나 뉴저지대학이 거센 근대화의 학문성에 치우쳐 복음적인 목회자 양성과 근대학문의 수련이라는 종래의 설립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 장로교단은 독자적인 신학교 설립을 심각히 고려하게 된다. 이러한 고려는 제2차 대각성운동의 선교열기와 그에 따른 본격적인 목회자의 양성이라는 시대적인 긴급성에 의해 구체화되어 결국 1812년 오늘날의 프린스톤신학교가 설립되게 되었다.
프린스톤의 신학적 전통은 칼빈과 녹스(Knox)에서 비롯되는 개혁교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초대학장인 알렉산더 이후의 100여 년은 구 프린스톤 신학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과 교회쪽에 관심을 편향했던 구 프리스톤의 보수적 전통은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함으로 진통을 겪게 된다. 논란 끝에 프린스톤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흐름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프린스톤 신약학 교수였던 메이첸 교수는 이에 강력히 반발, 1929년 프린스톤과 결별을 선언하고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토신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프린스톤신학교는 이후 상황(현장)에의 관심, 즉 정치 사회적인 관심을 포괄하는 제반윤리의 문제에 개혁신앙의 전통을 바탕으로 참여하려는 노력을 펼쳐왔다.
프린스톤신학교에는 현재 57명(2001년 기준)의 교수가 있다. 대부분이 장로교 출신이지만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침례교 로마 카톨릭 그리스도교회 그리스도연합교회 개혁교회 등 타교단 교수들도 상당수. 현재 한국인으로는 이상현 교수가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다. 프린스톤는 명문 신학교답게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교수들이 많다.
우선 구약학에는 탄탄한 성서언어의 지식을 배경으로 본문비평을 추구하는 로버트(Roberts), 세우(Soew) 그리고 본문비평과 함께 양식사 등의 제반 방법론들을 망라해 성서에 보다 신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밀러(Miller), 전통적인 접근방법들의 지평을 여성신학의 입장에서 새롭게 넓혀 보려는 스캔펠드(Sakenfeld) 등이 있다. 신약학에는 누가와 사도행전을 문학비평적으로 접근하려는 가벤타(Gavenbta)와 공관복음서를 문화해석학적으로 해석하려는 블런트(Blount),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의 권위자인 찰스워쓰(Charlesworth)가 활동하고 있다.
초대교회사의 맥베이(Mcvey), 칼빈과 초대교회사의 맥키(McKee), 미국교회사의 무어헤드(Moorhead) 등도 역사신학 분야의 거장들. 또한 전통적인 철학적 입장에서 기독교철학을 전개하는 알렌(Allen), 금세기 들어 가장 각광받는 인물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조나단 에드워드 해석의 권위자인 이상현 교수, 신진 바르트 해석자인 맥코믹(McComack), 인정받는 틸리히 해석자이자 문화인류학적 배경을 가지고 해방신학, 여성신학, 포스트 모더니즘 등을 해석하려는 테일러(Taylor), 미국윤리학회 핵심을 이루고 있는 레흐만(Lehmann)의 수제자로서 그 해석의 권위자이자 의료윤리에 관심이 많은 더프(Duff), 미국 윤리학계의 중도적 입장을 대표하는 중견 윤리신학자인 스택하우스(Stackhouse)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실천신학 분야에서는 미국 기독교교육계의 한 계보를 이루는 로더(Loder)와 그의 라이벌(?)인 플라워(Flower)의 직제자인 오스메르(Osmer), 새로운 목회상담의 영역을 추구하는 캡스(Capps) 교수 등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