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1.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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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의 전개과정>
백산에서 격문을 발표하고,
황토현에서 관군에 승리하였다.
→
전주성을 점령하고, 관군과 화약을 체결하였다.
→ (가) →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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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을미사변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②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을 추진하였다.
③ 조병갑의 탐학에 맞서 고부 관아를 습격하였다.
④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정답: ②
* 동학농민운동의 전개과정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되었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층은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맞서 봉기하여 관아를 일시 점령하였으나 후임 군수 박원명의 회유에 의해 해산하였다.
그러나 안핵사 이용태에 의한 정부의 동핚농민 탄압에 저항하여 4월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내세우며 다시 봉기하였다(1차 봉기: 무장 기포 -> 백산 봉기). 이후 황토현(5.8), 황룡촌(5.25)에서 각각 감영군과 경군에 승리하며 전주성을 점령하고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였다.
한편 정부의 요청에 의해 청군이 출동하고 톈진조약에 의해 일본군도 출동하자, 6월 정부와 농민군은 전주에서 화약을 맺고 폐단이 많은 정치를 개혁하기로 합의하고(전주화약),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53개 군에 자치행정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여 개혁을 실천해 나갔다.
그러나 7월 일본군이 청·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경복궁을 점령하며 내정을 간섭하자,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은 10월 다시 봉기(2차 봉기: 삼례 집결)하여 남접과 북접의 농민군이 연합부대를 형성하고(11월 초, 논산에 대본영 설치), 외세를 몰아내기 위하여 서울로 진격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파견된 우세한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농민군은 12월 공주 우금치에서 패하고,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이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① 민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을미사변(1895.10)과 을미개혁의 단발령에 방발하여 항일의병이 일어났다.
④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의 지나친 내정간섭과 경제침략에 반발하여 김옥균 박영효 등의 급진 개화 세력은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틈타 근대국가를 세우기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1884.12). 그러나 청군의 진압으로 3일 만에 실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