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는 온 몸 가득 작고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의 전령이다.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는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가 되면 온 마을이 노란 산수유꽃으로 뒤덮인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산자락에 이르기까지 십리 마을길 주변에 산수유가 빼곡해
여행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 무렵 이곳에서 산수유축제가 열려 상춘객을 불러 모은다.
의성에서 산수유마을 구경을 겸해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금성산金城山(530m)을 추천한다.
의성을 대표하는 진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奇巖이 많아 보는 즐거움 큰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성산에서 비봉산飛鳳山(671m)으로 이어진 긴 산줄기는 종주산행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도 인기다.
서쪽에 솟은 금성산이 전형적인 육산이라면 동쪽 비봉산은 험준한 바위산이라 분위기가 다른 것도 흥미롭다.
변화무쌍한 풍광을 즐기며 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금성산은 정상에 묘를 쓰면 3년 안에 후손들이 큰 부자가 된다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산소를 쓰려는 사람과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의 줄다리기가 긴 세월 동안 계속되어온 곳이다.
이번 금성산 산행에 의성 금성면 출신인 크로니산악회 이시종씨가 동행해
이 일화와 관련된 실감나는 이야기를 들려 줬다.
“가뭄이 들면 너나 할 것 없이 금성산 정상에 올라서 땅을 파헤치곤 했습니다.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실제 저도 산에 올라가서 땅을 팠습니다. 지금처럼 정상부가 펑퍼짐해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비가 내릴 때까지 동네 주민들이 몰래 쓴 묘를 찾기 위해 정상 일대를 파헤치다 보니
지금처럼 넓은 공터가 생긴 겁니다. 예전보다 어른 한 키 정도 산이 낮아졌습니다.”
금성산에 전해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
등산로는 넓고 부드러워 큰 어려움 없이 진행이 가능했다.
금성산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보통 ‘조문국’에서 병마를 훈련시켰다는 ‘병마훈련장’을 거쳐 정상을 오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성산의 명물 중 하나인 ‘용문바위’를 경유하는 코스로 방향을 잡았다.
“용문바위는 내륙의 화산火山인 금성산의 속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활동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가며 커다란 문처럼 생긴 바위가 형성된 곳입니다.
높이 20m가 넘는 큰 규모로 웅장한 모습이 정말 볼 만합니다.”
주변 풍광 좋고 웅장한 용문바위
능선 코스와 사면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허리길을 통해 용문바위로 이동했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을 통과해 서서히 바위지대로 접근하니 어느새 커다란 바위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이름 그대로 굳게 닫힌 듯한 거대한 바위 문이 그곳에 있었다.
주변 나무를 정리하고 전망데크를 조성해 탐방객이 편하게 용문바위를 구경할 수 있게 해둔 것이 눈길을 끌었다. 경치도 좋아 건너편 비봉산 방면의 조망도 뛰어났다.
용문바위 밑에서 보니 반짝이는 볼트가 곳곳에 박혀 있었다. 누군가 자유등반용 암장으로 개척한 모양이었다.
직벽과 오버행이 혼합된 제법 난이도가 높은 루트들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루트에 대한 설명이나 안내판은 찾을 수 없었다.
아직 미완의 암장이거나 등반이 허락되지 않은 곳인 듯했다.
용문바위를 둘러보고 왼쪽의 계단을 통해 ‘병마훈련장’으로 올랐다.
훈련장으로 보기엔 너무 좁은 작은 공터에서 숨을 돌린 뒤 곧바로 정상으로 향했다.
금성산 정상은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지였다.
이시종씨의 말대로 여기저기 파헤친 흔적으로 보이는 고랑이 눈에 띄었다.
조망을 보려면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바위지대로 나서야 했다.
철책이 설치된 전망대에 서니 금성산 서쪽 평야지대와 조문국사적지가 발아래 깔린 것처럼 내려다 보였다.
산자락 금성면 일대에 자리한 수많은 저수지가 생선 비늘처럼 반짝이는 모습 또한 특이했다.
이 금성산 자락의 저수지는 ‘의성 전통 수리 농업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2018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0호로 등재되었다.
“의성은 강수량이 적어 오랜 옛날부터 저수지를 이용해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체계를 갖춘 곳입니다.
금성산에서 흐르는 물을 계단식으로 조성한 저수지로 잡아두며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조문국 시대부터 2,000여 년 동안 6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저수지를 축조해 농사를 지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유산입니다.”
금성산 정상에서 휴식을 마치고 비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랐다.
밖에서 보면 산자락에 바위가 가득해도 주능선은 고즈넉한 숲길의 연속이었다.
도중에 왼쪽 길로 내려가 기둥처럼 솟은 ‘건들바위’를 보고 돌아와 다시 주능선을 따랐다.
그래도 간간이 이끼가 두텁게 덮인 바윗덩어리들이 운집한 모습이 이채로웠다.
바위 많은 비봉산 능선길 경치 뛰어나
“금성산과 비봉산은 화산 분출로 형성된 산이라 곳곳에 주상절리 같은 기암이 산재해 있습니다.
중생대 백악기 말 경상분지를 중심으로 화산활동이 활발할 때 생성된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곳입니다.
말굽처럼 생긴 주능선이 전형적인 분화구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주능선 상의 ‘영니산 봉수지’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간식을 먹었다.
멀리 보이던 비봉산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오후로 접어들며 슬슬 마음이 급해졌다.
비봉산을 넘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까지 이어진 거리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성산~비봉산 주능선에는 탈출이 가능한 갈림길이 곳곳에 나 있어 부담이 덜했다.
수정사 방면 등산로를 이용해 하산하면 주차장으로 쉽게 원점회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봉산 직전의 수정사 갈림길에서 잠시 하산을 생각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경치가 좋다는 ‘여인의 턱’과 ‘남근석’은 봐야 이번 산행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긴 오르막을 단숨에 통과해 비봉산 정상에 오른 뒤 곧바로 ‘여인의 턱’으로 이동했다.
정상을 지나니 바위지대가 연이어 나타나며 시원하게 조망이 터졌다.
숲이 짙은 금성산과 달리 비봉산은 주변을 관망하는 즐거움이 컸다.
그리고 멀리서 본 금성산의 산세가 예상 외로 수려해 놀랐다.
능선은 숲 우거진 육산이지만 사면은 바위벼랑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기 때문이다.
금성산은 겉과 속이 무척 다른 산이었다.
‘여인의 턱’ 위에서 절벽 코스로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남근석’ 팻말이 보였다.
남근석을 제대로 보려면 팻말 뒤편의 작은 암봉을 올라야 했다.
벼랑에 걸린 멋진 소나무와 남근석이 정면으로 보이는 장소였다.
절벽을 우회하는 숲길을 이용하면 비봉산의 명물 남근석은 볼 수 없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반드시 남근석 전망대를 방문하는 것을 권한다.
여인의 턱을 지나 내려서니 수정사로 연결되는 마지막 갈림길이 나오는 안부에 도착했다.
여기서 계속 능선을 따르면 602m봉과 산불감시초소를 거쳐 주차장 근처의 테마공원으로 하산할 수 있다.
바위가 많은 능선 구간으로 좋은 전망을 즐기며 산행이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오르내림이 심해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릴 수 있다.
전망 좋은 능선 풍광이 욕심나긴 했지만, 일몰시간이 가까워져 어쩔 수 없이 수정사로 방향을 잡았다.
수정사는 금성산과 비봉산 사이 골짜기 깊숙이 자리한 사찰로 신라 신문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했다는 곳이다.
산길이 끝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수정사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랬다.
이제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오늘 산행은 모두 끝난다.
금성산과 비봉산은 겨울보다는 훈풍이 불고 봄꽃 필 때 찾으면 좋을 곳이다.
오히려 산수유꽃 구경이 보너스다.
산행가이드
주차장 기점의 원점회귀 산행이 주류
산운생태공원 인근 79번지방도(금성현서로) 갈림목에서 금성산과 비봉산을 바라보며
동쪽으로 2.5km가량 들어서면 왼쪽에 금성산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금성산 정상까지는 줄곧 오르막이다.
금성산~비봉산 능선산행 코스는 갈림목마다 안내판이 서 있어 길 찾기가 쉽다.
종주산행 도중 체력이나 시간에 따라 용문정이나 수정사 쪽으로 내려설 수 있다.
비봉산 정상을 지나면서 산길이 조금 험해지지만 길이 양호해 큰 무리 없이 산불감시초소까지 갈 수 있다. ‘
여인의 턱’에서 약 500m 거리에 위치한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수정사로 내려선다(0.8km).
갈림목에서 된비알을 올려치면 602m봉에 올라섰다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434.7m봉으로 내려서고,
이어 산길은 오른쪽으로 꺾어져 테마공원으로 이어진다. 총 9.5km 거리로 산행만 5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의성행 고속버스가 1일 6회(07:30, 09:30, 12:30, 14:30, 17:30, 19:30) 운행.
3시간 30분, 2만6,900원.
문의 ARS 1688-5979, www.ti21.co.kr. 의성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의 버스정류장에서
의성여객 시내버스가 하루에 16회 운행한다. 약 1시간 소요.
승용차의 경우 각 방면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
북의성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5번국도~28번국도~탑리삼거리 좌회전~79번지방도(금성현서로)~산운생태공원~좌회전 순으로 접근한다.
산운생태공원에서 금성산 입구 공원 주차장까지 약 2.5km 거리.
숙식(지역번호 054)
금성면 소재지의 금성모텔(832-2228)이 금성산에서 가장 가까운 숙박시설이다.
금성산 입구 산운마을 고택에서 운영하던 민박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산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옥산면의 금봉자연휴양림(833-0123)의 숙박시설을 이용해도 좋다.
휴양림은 사곡면 의성산수유마을에서 멀지 않아 꽃구경 가기 좋은 위치다.
통합자연휴양림 예약사이트 숲나들e(www.foresttrip.go.kr)에서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다.
금성면소재지에 수정골맑은한우(832-3753), 금성장터식당(834-1366), 금
성내고을명가(833-8777) 등의 음식점이 있다.
의성읍내 경동숯불갈비(832-9680)는 마늘한우를 취급하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