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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1)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1)
오늘은 12월의 넷째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은 올해 마지막 주일이고, 마지막 날이지요.
올해를 보내면서 먼저 교회에서 올해 부족한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감리교 법에 따라 70세에 은퇴하고 이제 은퇴로부터 10년이 되어가는데 지금도 통일선교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2023년은 특별히 바쁘게 달려왔습니다.
올해는 정전 70년의 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70년이 되는 해에 귀환했습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0절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 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며 올해 한국교회는 통일선교와 관련된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정전협정 1조에 의해 DMZ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DMZ 기도회가 많이 열렸습니다.
저는 올해 그 일로 DMZ에 열두 번을 갔습니다.
용산교회의 사랑과 기도가 큰 힘이 되어 제가 이렇게 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님과 성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요즘 교회에 오면 활기가 넘치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아 참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요즘 한국교회의 형편이 참 좋지 않습니다.
「기독교사상」이라는 잘 알려진 잡지가 있는데 이 잡지 12월호가 2023년 한국 사회와 교회를 돌아보는 특집을 꾸몄습니다.
필자 가운데 한 분이 한국교회의 2023년을 돌아보면 두 개의 단어가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그 두 단어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하나는 ‘수축’ 하나는 ‘내리막길’입니다.
그 분이 쓴 글 가운데 “한국교회의 상황을 계절로 비유하면 겨울일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겨울 가운데에서도 지난 며칠과 같이 추운 겨울인 것 같습니다.
신학대학 교수(백석대 장동민 교수) 한 분이 그 특집에 쓴 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대한민국과 함께 교회도 소멸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인데 용산교회는 활기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참 반가운 일입니다.
반가운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설교에 이런 말을 넣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요즘 주일예배 후의 점심에 특별메뉴가 등장하는 닐이 많더군요.
혹시 오늘도 그런가요?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대림절 첫째 주일부터 앞의 모니터에 촛불 영상이 나오는데 오늘은 촛불 네 개가 나왔습니다.
이 촛불들은 각기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주일의 촛불은 소망, 둘째 주일은 준비, 셋째 주일은 사랑, 그리고 오늘 넷째 주일은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소망과 준비와 사랑과 기쁨이 넘치기 바랍니다.
대림절에는 강대상 보(褓)와 목사님의 스톨, 드림천이 보라색입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색들을 예전색(禮典色)이라고 하는 데요, 이 색들에는 각각 의미가 있습니다.
보라색의 의미는 수난, 참회, 준비입니다.
수난, 부활절 앞의 사순절에도 보라색을 사용합니다.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수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회, 이 기간에 우리는 참회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오늘은 대림절의 마지막 주일이고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은 성탄절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특별히 잘 해야 합니다.
그러면 대림절을 잘 보낸 것이 될 것입니다.
끝을 잘하면 전부를 잘 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워계신 곳 앞에 다다라서 이제 막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된 동방박사와 같은 마음으로 오늘을 보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서 구유에 누우셨는데 우리 마음이 구유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이 아기 예수님을 맞아들이기에 합당한 구유가 되도록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주보 4면 “교회소식” 란 두 번째 소식의 제목이 “대림절 셋째 주”였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금주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절 셋째 주로 지킵니다. 이천 년 전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겸험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에게 참 평회를 주실 주 예수를 기다립니다. 기다림 속에서 구원과 평화의 은혜가 날마다 충만해지는 대림절 셋째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대림절 마지막 날, 기다림 속에서 구원과 평화의 은혜가 최고로 충만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일, 성탄을 큰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1월부터 이 시간에 로마서를 가지고 은혜와 교훈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이 열한 번째 시간인데 로마서에 대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로마서는 중요한 성경이다’하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 번 말씀 드렸지요.
신약성경 스물일곱 권을 다섯으로 분류합니다.
복음서, 역사서, 바울서신, 공동서신, 계시록으로 분류하는데 그 가운데 바울서신은 열세 권입니다.
바울서신 열세 권 가운데 로마서가 제일 앞에 있습니다..
로마서를 왜 제일 앞에 두었을까?
제일 먼저 기록되어서일까?
아닙니다.
제일 먼저 기록된 것은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중요한 성경이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여러 번 읽는 가운데 뜻을 알게 되고 은혜를 받게 됩니다.
목회 초년병 시절에 설교 세미나에서 들은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정해졌으면 그 본문을 백 번 이상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설흔 번쯤 읽으면 설교의 테두리가 잡힌다는 것입니다.
그 반의 반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설교 준비의 기본이라는 것을 늘 체험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는 말씀이 있지요.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바르게,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 대해서 꼭 기억해야 할 일 또 하나는 ‘의인(義認)’이라는 말입니다.
의인,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뜻인데요,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들이 여럿 있습니다.
득의(得義), 의롭다 함을 얻는다,
칭의(稱義), 의롭다고 일컬음을 받는다,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은 곧 구원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득구(得救)’라고도 합니다.
모두 같은 뜻입니다.
의인과 함께 꼭 알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성화(聖化)’라는 단어입니다.
로마서는 6장부터는 성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참고하고 있는 성경주석은 로마서 6장 주석에 “성화와 죄”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목사님, 로마서 6장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성화>라는 말이 없는 데요’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로마서 6장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도 성화라는 말은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요한 말들 가운데는 성경이 기록된 다음에 만들어진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원죄’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성화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서 ‘성화(聖化)’라는 말을 찾아보았더니 세 가지 풀이가 나와 있습니다.
① 성인이나 임금이 덕행으로 사람이나 백성을 바람직하게 변하게 함
② 성스럽게 함
③ 신의 은총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됨
이 세 번째 풀이, 참 잘 풀어놓았는데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찾는 성화라는 말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은혜로, 의롭다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져야 합니다.
의롭다 인정함을 받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까 성경주석 이야기를 했는 데요, 그 성경주석에서는 성화란 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화는 하나님과 이웃과 자신 앞에서 ‘하나님의 의’를 삶으로 고백하고 증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감리교회는 성화를 특별히 강조합니다.
감리교를 시작한 웨슬리 목사님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 칭의, 성화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의인과 성화가 감리교회의 양대 교리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감리교회의 기본인 <교리와 장정>에서도 성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리와 장정의 교리 편에서는 감리교 신앙의 강조점 일곱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 선행적 은혜 ② 칭의와 확증 ③ 성화와 완전 ④ 믿음과 선행 ⑤ 은혜의 수단과 교회 ⑥ 선교와 봉사 ⑦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선행적 은혜, 칭의와 확증에 이어 ‘성화와 완전’이 나오는데요, ‘성화와 완전’을 감리교 교리에 있는 그대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회개와 칭의를 통해 죄사함 받은 우리는 계속해서 성화와 그리스인의 완전을 목표로 성장하게 된다. 성화의 목표인 완전은 인간의 본래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의미에서의 완전이다. 또한 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로 우리 마음 속에 부어주시는 순결하고 완전한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 죄와 정욕의 권세는 서서히 정복된다.
성화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의 깨우치심으로 죄에 대해 더욱 예민해지며, 유혹과 시함을 이기는 힘을 얻게 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성화의 은혜에 응답함으로써 구원의 역사에 동참한다. 성화에 있어서 인간의 능동적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지만, 왼전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은사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며 다시 죄로 인한 타락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을 인정한다. 웨슬리는 이 세상에서 순간적인 완전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소망과 기대를 통해 목표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1946년, 해방 다음 해에 평양에 성화신학교란 이름을 가진 감리교신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과 동시에 분단이 되었습니다.
북한은 공산정권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공산정권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북한의 교회들은 공산정권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6·25 전까지는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북한에 교회가 2,000개 좀 넘게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감리교회는 400개 쯤 되었습니다.
38선 때문에 교역자들이 북으로 갈 수 없게 되어서 북한에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를 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금 김일성 광장 부근에 신학교를 세우고 이름을 성화신학교라고 했습니다.
학생은 600명이었습니다.
교장은 기독교교육학 학자인 배덕영 목사님이었습니다.
1949년 성탄절을 앞두고, 12월 16일, 성화신학교에서 헨델의 메시야 합창 공연을 가졌습니다.
신학교 부근에 남산현교회라고 큰 교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분단 후 북한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려퍼진 메시야 합창이었습니다.
모두 감격했습니다.
배덕영 목사님은 그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둠 속에서 나타난 보위부원들에게 납치되었습니다.
소식이 끊어졌는데 순교를 당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성화신학교는 공산정권으로부터 핍박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성화신학교 출신으로 순교를 당한 분들이 파악된 분들만 열 명이 넘습니다.
성화신학교는 1950년 초에 평양에 있던 장로교신학교와 강제로 합병 당했다가 바로 폐교당했습니다.
북한에서 목회하시던 감리교 교역자들이 많이 월남하셨는데 이들을 ‘성화파’’라고 불렀습니다.
신학교 이름을 성화신학교라고 정한 것을 보아도 감리교회가 ‘성화’라는 말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감리교인들은 ‘성화’라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화의 삶, 하나님과 이웃과 자신 앞에서 ‘하나님의 의’를 삶으로 고백하고 증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죄로부터 자유를 얻은 삶,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삶,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삶, 영적인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성화”라고 정하고 뒤에 느낌표를 붙였습니다.
설교 제목을 ‘성화의 삶’이라고 할까 하다가 이렇게 바꿨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오늘 설교 본문과 제목을 문자로 알려드릴 때 “목사님, 느낌표를 꼭 넣어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성화란 말이 중요합니다. 성화란 말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하는 뜻으로 느낌표를 붙인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쓴 『기독교강요』라는 책이 있습니다.
칼빈은 장로교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고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책 제3권 14장의 제목이 “칭의의 기원과 그 계속적 전진”입니다.
칭의 이후 그 계속적 전진을 ‘성화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칭의의 기원과 그 계속적 전진”에서 칼빈은 사람을 네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는 해당돠지 않습니다.
둘째는 말씀을 받고, 성찬에도 참여하면서도 생활이 불경건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입술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명목상 크리스천이라고 하지요.
사이비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크리스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는 외식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외식(外飾)은 겉만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을 말하는데요, 자신의 믿음이 약한 것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위선적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크리스천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성경에 외식하는 사람들을 꾸짖는 말씀이 스물다섯 군데나 나옵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중생함을 받고 참 성결을 목표로 삼고 힘쓰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칼빈이 말한 이 네 번째의 사람, 하나님의 성령으로 중생함을 받고 참 성결을 목표로 삼고 힘쓰는 사람이 바로 성화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란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화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합하여”라는 말, “연합”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3절을 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여기 “합하여”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는 “에이스(είς)‘인데 ”안으로 들어간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nto’입니다.
3절과 4절에 세례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의 세례를 물로 씻는 의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5절을 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여기 연합이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는 “쉼푸토이(συμφυτοί)‘인데 ’함께 자라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5절과 6절은 나무의 접붙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라는 나무의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 죄를 떠나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나무에서 영양분을 공급 받으며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죄에 대해 죽은 우리“라는 말, 그와 같은 뜻을 가진 말이 여러번 나옵니다.
2절을 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마지막 절, 12절을 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성도 여러분, ’나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인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합하여져 있는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삽니다.
성경을 보면 오늘 본문의 소제목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이라고 성경을 쉽게 풀어서 새롭게 번역한 성경이 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오늘 본문의 제목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다“라고 하였습니다.
『공동번역성서』라고 천주교와 공동으로 번역한 성경이 있습니다.
『공동번역성서』는 오늘 본문의 제목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라고 붙였습니다.
『새한글성경』이라고 지금 신약과 시편만 나왔고 내년말에 모두 나오기로 되어 있는 성경이 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오늘 본문에 ”죄에서 끊어져 죽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우리“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모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사는 삶, 이것이 성화의 삶입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어느 소설에 나오는 크리스마스이브 이야기를 하고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찰스 디킨스이라는 영국 소설가가 1843년에 발표한 ”크리스마스캐롤“이라는 소설입니다.
그 내용은 거의 모두가 아실 것입니다.
예전에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 작품이 실려 있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롤“ 주인공이 누구지요?
그렇습니다.
스크루지 영감입니다.
아주 인색한 구두쇠이지요..
소설의 앞부분을 보면 스크루지 영감에게 구걸하는 거지가 없었다고 나옵니다.
스크루지 영감은 크리스마스를 싫어했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에 회사 직원이 조금 일찍 퇴근하는 것을 허락하면서 큰 생색을 냅니다.
그 크리스마스에 세 유령이 스크루지 영감을 차례로 찾아옵니다..
과거의 유령은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스크루지의 젊은 시절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유령은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스크루지 조카의 집을 찾아가서 가서 가족이 즐겁게 보내고 있는 광경을 보여 주지요.
마지막으로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은 스크루지가 죽은 뒤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비참한 광경을 보여줍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깨어난 스크루지는 크게 참회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육점에 가서 제일 큰 칠면조를 사서 직원(이름이 밥이지요)의 집에 보냅니다.
전날 자선사업을 하는 분들이 찾아와서 기부를 요청했는데 면박을 해서 쫓아 보냈지요.
길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는데 큰 돈을 기부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조카의 집에 찾아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냅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아침 직원이 출근하자 월급을 올려줍니다.
스크루지 영감은 유령을 만난 다음에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스크루지 영감보다 더 크게 변회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변화되고, 계속해서 변화되는 삶,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화의 삶을 살기에 더욱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고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저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류의 역사가 BC에서 AD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바뀌었는데 우리의 삶도 그와 같이 바뀌게 하여 주옵소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어 성화의 삶을 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하여 주옵소서.
한국사회에도 변화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갈등과 짜응나게 하는 말싸움이 복음으로 화평과 협력으로 바뀌게 하여 주옵소서.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 당에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