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칠지우(望七之友)
후당 전보규
영국의 유명한 등반가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는 “산이 거기 있어 산을 오른다.”고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같은 물음을 던져 온다면 “친구가 좋아 함께 산을 오른다.”고 대답하련다. 예순을 넘긴 친구들. 지금까지 앞만 보며 쫓아온 인생 여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자연의 숨결을 맛봐도 될 나이가 아닌가? 관포지교(管鮑之交)는 아니더라도 대학 동기들 중 경북에서 관리자로 근무했던 막역지우들이 봄가을 두 차례 점심 한 끼에 정담을 나누던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 내가 회장을 맡고서는 연 4회의 등반 행사로 바꾸었다. 달포 전부터 일일이 전화로 어렵사리 일정을 조정해 지난 11월 초하루 자연의 숨결과 선현의 지혜가 서린 가야산국립공원을 등반키로 하였다. 드디어 등반일, 우리는 예정된 시각에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성주가 낳은 청백리 형재 이직 선생의 「까마귀 검다 하여 백로야 웃지마라.」시비(詩碑)가 있는 백운동 주차장으로 모여든다. 어디 사는 까마귀든 뭘 하는 백로이든 모두가 40년 지우이니 어찌 정겹지 않으리. 멀리 인천에서 칩거하던 친구는 새벽에 출발해 예정된 시각보다 남 먼저 도착했고, 몇 년 동안 허리 통증에 시달리던 약골과 교회의 중책을 맡아 오랫동안 참석 못하던 독실한 신자도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와 주었다. 회장의 인사에 이어 대구에서만 근무했던 초청 친구가 축사까지 곁들여 분위기를 띄운다. 총무가 준비한 먹을거리를 배낭에 넣어 메니 어느 새 마음은 부자만 싶다. 예순을 넘긴 나이들이라 기력도 예전 같지 않아 산행도 역량에 맞게 두 코스 중 택일하도록 했다. 하나는 4시간 남짓한 험난한 만물상. 다른 하나는 2시간 반 쯤 걸리는 완만한 서성재. 과신의 망령이 앞을 가려 아직도 청춘인양 착각하는지 모두가 난코스로 발길을 옮긴다. 역시 이 길은 초장부터 녹녹치 않다. 가파른 등반로는 온 몸을 땀으로 범박케 한다. “아이고!”를 연발하며 10여분 남짓 기어오르니 어른 키보다 작은 마애불이 천년의 미소를 잃지 않고 우리를 반긴다. 가쁜 숨도 가눌 새 없이 한 평 남짓한 좁은 공터에 서로 몸을 부대껴가며 너 나 할 것 없이 다소곳이 합장하는 모습을 보니 아직도 여생에 담고 싶은 소원도 많은가 보다. 역시 가야산은 영남의 영산(靈山). 태곳적부터 비바람과 눈서리에 백태를 드러낸 기암절벽은 장엄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예부터 시인 묵객들이 산세가 천하의 제일 절승(絶勝)이라 극찬하며 조선팔경의 하나로 꼽았고, 오대산, 소백산과 함께 임란(壬亂)의 전화(戰禍)도 피해갔으니 삼재(三災)가 들지 않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중에도 단연 빼어난 만물상. 기암괴석의 향연장이다. 계곡 전체는 오색 실로 수놓은 한 폭의 산수화이다. 화폭에는 웅장하고 기이한 군상이 장사진을 친 자태는 말로만 들은 금강산과 견줄만할까? 우리는 황홀한 비경에 도취해 넋을 잃는다. 보는 이에 따라서 이들이 여러 형상으로 느껴진다니 이것 또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아닐는지……. 그 중에서도 기도하는 여인상, 합장한 부처상은 옥황상제가 빚은 회심의 걸작이라 무딘 초노의 눈에도 감탄의 신음을 연발하며 멈춘 발걸음을 재촉할 줄 모른다. 더구나 만물상의 자연 경관을 보존코자 26년간 등산로를 폐쇄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개방되었다니 우리야 말로 선민(選民)의 영광을 함께 누린 벗이니 자축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능선의 또 다른 절경은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솟아오른 바위 새로 홀로 뿌리를 내린 노송. 오랜 세월을 온갖 풍상과 싸워 이겨온 꿋꿋한 기백의 상징이다. 저 건너편 산등 넘어 엷은 운무로 드리운 홍제동 계곡. 신라 말 난세를 비관하며 한을 달래기 위해 입산하였다가 선화(仙化)한 고운 최치원선생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으로, 먼발치서나마 옛 선현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구슬땀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철책로. 마주치는 길손마다 모두들 이웃 같아 건네는 인사말에는 미소가 피어나고, 흐른 땀도 훔칠 겸 잠시 쉴 틈에 풀어놓는 재담으로 웃음꽃이 지지 않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 시간의 등정 끝에, 우리는 우거진 송림사이로 넓적한 공터에 진을 치다. 풀어놓은 점심은 시장이 반찬이라 입맛을 돋운다. 경기도 포천 이동막걸리를 준비한 애주가. 손수 담근 과실주를 내놓는 주당파. 텃밭에서 지은 땅콩을 삶아온 신농씨. 포터에 뜨거운 커피를 가득 담아와 한 모금씩 돌리는 친구의 넉넉함은 환호의 박수를 받기가 충분하다. 그중에도 소시절의 끼가 발동해 옆자리의 낯선 부녀 등산객에게 짓궂은 농을 걸며 술잔까지 권하는 넉살 좋은 친구는 주위를 웃음바다로 이룬다. 이것 또한 망칠(望七)의 여유요, 넉넉함이 아니겠는가. 즐거운 점심시간도 잠시, 몸을 추슬러 다시 숲을 헤치며 걷다보니 가야산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 이곳이 바로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제단을 차려놓고 옥같이 맑은 계곡물에서 목욕재계한 후 천신 이비가지(夷毗訶之)에게 구애했던 전설의 러브 스토리가 묻혀있는 상아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나래 옷을 휘감은 모주가 하강할 듯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우리들의 발길도 이제 정점에 이른다. 임란 후 유정선사(惟政禪師)가 전란으로 피폐한 강토의 복원과 도탄에 빠진 민초들의 울분을 달래주고자 고행했던 서성재. 이제 하산 길로 접어드니 발걸음도 가볍다. 하늘은 더없이 맑다. 가을이 엎질러 놓은 때깔 있는 물감으로 마구 휘저어 놓은 단풍은 불에 타는 듯 이글거린다. 이순(耳順)을 넘어 내일 모레이면 종심(從心)일 우리가 자연의 품속에서 빠져 헤어나지 못함도 물아일체(物我一體)가 아니던가? 계곡을 타고 백운교 아래로 고인 듯 흐르는 명경지수는 가을 경치는 또 다른 극치이다. 붉은 단풍 밑에는 붉은 물이 흐르고, 노란 단풍 밑에는 노란 물이 흐르니, 우리네 마음도 덩달아 곱게 물들어 흐른다. 이것도 아마 나이 탓만 아닐 것이다. 오후 3시가 넘어 경관에 혹하고 우의에 취한 우리들은 가야산 자락에 자리 잡은 가야관광호텔의 온천수에서 몸을 담근다. 냉온ㆍ열탕을 오가며 서로 등을 밀어주는 투박한 손길에도 도타움이 묻어난다. 산행의 피로와 속세의 홍진까지 벗겨내니 십년은 젊어진 듯하고, 탈의장 거울에 비친 나신을 뽐내는 친구들의 모습이 또한 가관이다. 로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인근 식당으로 옮겨 저녁과 함께 박주 일 배를 곁들이며, 풀어놓은 얘기꽃에 일어날 줄 모른다. 석별의 아쉬움도 우정의 발로던가! 모두들 식지 않은 여운을 뒤로 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갈 길을 재촉한다. 오늘 행사는 다른 때와는 달리 별다른 여운을 남긴다. 이제는 100세 인생, 인명은 재천이라 하지만 누군들 천수를 누리고 싶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좋은 벗을 가까이하는 것도 노후일락(老後一樂)이라니 오늘 만난 친구가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산이 좋아 오르는 것 보다는 벗이 좋아 함께 오르는 것처럼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망칠지우(望七之友)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생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만남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마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돌아가지 않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