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홍은전의 <그냥, 사람>에서 발견한 우리.
-신옥진
살다 보면 늘 한두 명씩 섞여 있는, 잊을법하면 길에서 마주치는, 눈에 띄게 다른 생김새의 사람이 있다. ‘장애인, 장애우’라고 배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장애OO’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그 ‘다른 사람들’은 드러난 모습이 다를 뿐이다. 서로가 각자만의 특징을 가진 것이지, ‘장애’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다르니까 서로 돕는 것이 당연하지, 꼭 그렇게 무엇이 옳다는 기준을 정해서 이름을 정해서 편을 갈라야 하는 걸까. 다만 어느 특징을 지닌, 다수인 사람들과 소수인 사람들의 싸움처럼 보였다.
이 세상은 다른 것들이 큰 그릇 안에 담겨서 비벼져 있는 비빔밥과 같다. 다르지만 결국 함께이면서 하나라는. 홍은전의 <그냥, 사람>이란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그러했다. 노들장애인야학, 세월호 유가족, 형제복지원, 선감도 선감학원, 꽃동네 사람들, 노숙인, 장애인 차별철폐연대, 길고양이, 축산공장의 동물들 등등 다른 존재들의 이야기로 채워진 이 작은 책은 무척 무거웠고, 그 어떤 산보다도 높았다. 하지만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읽는 내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이고 똑같다.’는 맥락은 안타까운 와중에도 묘한 안도감을 줬다.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존중하는 글쓴이의 배려가 그렇게 이끌어낸 것 같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인터뷰 당시 느꼈던 감정을 풀어내었다.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데, 진짜로 그당시를 살았었던 누군가의 이야기란다.
요즘 <우와한 비디오>라는 유투브 동영상을 구독하고 있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영상이다.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사연이 있다. 어린 시절 얼굴에 입은 화상을 60대가 되도록 치료를 받지 못한 할머니 이야기이다. 남편과도 사별하고 집안에서 화문석 돗자리를 만들어 팔면서 홀로 아들을 키우셨다. 그 아들이 결혼하고 곧 첫아이가 태어나는데, 할머니 스스로 아기가 놀랄까 봐 만나지 않으려 하니, 뒤늦게 성형수술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과거 한스러운 이야기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얼굴이 다 일그러져서 세상 사람들 이목이 불편하고 힘들어, 50여 년 동안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배척하고 구분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예쁜 외모를 가졌었고 사고를 당해 일그러진 외모로 변했으나, 그 영혼은 바뀐 바가 없다. 그저 드러난 모습이 변했을 뿐이다. 다치기 전과 다르게 돌변한 사람들 태도에 처음엔 얼마나 당황하고 기가 막혔을까.
나는 장애를 얻은 사람들의 기분과 가난으로 세상에서 소외되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그와 닮아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당신들’과 ‘나’라는 선이 만들어졌겠다. 그래도 묵묵히 주어진 삶을 지키고 화문석을 짜면서 겨우 세상과 소통하며 살았던 할머니는 꽤 씩씩하고 덤덤했다. 취재진들을 대하는 태도가 당당했고, 그 아들은 대단히 밝았다. 이웃사람들은 그 할머니의 모습에 무덤덤하거나 친절했다. 할머니가 이웃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짐작이 되었다. 나는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의 태도로 나를 짐작하고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는 겉으로 판단되는 것과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 다를 때의 괴리감 때문에 자아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편견과 오해를 맞서 당당하게 살아오셨을 그 삶이 참 멋있고 아름다웠다.
<그냥, 사람>은 제목처럼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각자 다른 외모와 경험과 생각을 지녔을지라도 그냥 사람이다. 또 다른 우리들이 묵묵히 걸어온 삶의 가치를 짚어내고,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을 있는 그대로 집중하고 있다. 사람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이 정말 다양하다. 각자가 겪었던 불행과 행복은 감히 비교할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주어졌고, 그냥 살다가 보니까 그냥 우리들이 된 것이다. ‘그냥’이라는 단어에 이렇게 세련된 느낌을 받은 것이 처음이다. 영어의 ‘just’로 해석되지만, 절대 같은 단어가 아니다. 우리의 정서여야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부드럽고 따뜻해서 있는 그대로를 포용해줄 것만 같은 기대도 생긴다. 나도 그냥 사람이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첫댓글 화문석을 짜면서 살아가시는 할머니 이야기 소개가 좋았습니다.
마지막 단락에 "또 다른 우리들이 묵묵히 걸어온 삶의 가치를 짚어내고,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을 있는 그대로 집중하고 있다" 이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냥, 사람>이란 제목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이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아요. 책은 그냥 사람이 될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는데 나도 그냥 사람이어야겠다는 마무리가 서로 충돌 되는 거 같습니다. ㅜㅜ 제가 이해를 잘 못하는 걸 수도요 .
안녕하세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존중받을 사람을 느꼈습니다. 누가 잘났고 못났고, 슬프고 기쁘고를 떠나서 똑같은 인간의 삶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옥진.경북성주월항댁 ㅎㅎㅎ옥진 샘, 넘 재밌으세요.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댓글이라니ㅎㅎㅎ
예를 들어,
'각기 다른 외모와 경험과 생각을 지녔을지라도 -> 장애를 가지고 가난을 짊어졌을지라도 '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둥그렇게 표현하다보니, 의미의 혼선이 올 수 있겠다 싶어서요.
마지막 문장은.. 음.. 무슨 말인지 이해는 돼요. 따뜻하고 포용력있는 '그냥'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제목을 새로 해석하신 거네요, 책의 주제에서 자유로운 글이라 생각하면 납득되고요. 마지막 문장을 '나도 그냥 사람이고 싶다.' 정도로 맺으면 어떨까 싶어요.
모두 다른 모습이지만 큰 그릇에 함께 담겨 있는 비빔밥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습니다. 각 단락마다 또 다른 글로 쓰여질 수 내용인 것 같았습니다. ^^
우와한 비디오라는 채널 소개도 받아서 좋네요. 소개하신 사연도 아프지만 따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