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1장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였습니다. 1,2절에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유다 자손, 베냐민 자손980명과 베레스 자손 468명, 제사장 중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820명, 족장 240명, 큰 용사들 128명, 레위 사람 284명, 성 문지기 170명이었습니다. 그럼 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의 이름과 숫자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였을까요? 그것은 모두 예루살렘에 살기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약800m 되는 산지입니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축도 할 수 없습니다. 매년 절기 때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돌아가기 때문에 쓰레기가 많았고 특히 매 절기 때마다 희생동물의 가죽과 피와 내장 처리 제사에 사용되는 물과 나무 등 힘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베레스 자손과 제사장, 레위인들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기꺼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였던 좁은 길로 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하였던 곳이며,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7:16)고 약속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느헤미야는 그들의 수고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의미에서 이름들과 숫자를 기록하였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고 하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해 좁은 문을 선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 사랑과 수고를 격려해야 합니다.
2절에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하였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축복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주님을 의해 수고와 희생하는 성도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며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고 하였습니다.
셋째, 영적인 예루살렘인 하나님 나라를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 122편에서 다윗이 고백하기를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6,7)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14:1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성도들의 숫자를 세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