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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아테네 콜롬비아
우 석 자
해발 2,652m에 자리한 시파키라에는 암염을 캐내는 소금광산이 있다. 이곳의 암염은 2억 5,000만 년 전 바다 밑에 침전됐다가 안데스가 융기하면서 해면 위로 솟아오른 것이다. 소금성당은 과거 이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성모께 안전을 빌기 위한 장소를 갱도 안에 만들면서 시작됐다.
식민지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시파키라 소금광산과 소금교회 등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역사 유적으로 선정된 곳이다. 시파키라의 소금산에는 거대한 터널이 있고, 터널은 나선형으로 휘감기며 지하로 내려가는데, 지하에 다다르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운 건축물인 소금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산속으로 거의 200m 들어간 곳에 있는 소금 성당은 가장 깊은 곳에 조각된 교회로 높이 솟아오른 웅대한 지붕과 기둥, 세례를 주는 분수, 설교단, 그리스도 수난상을 갖추고 있다. 새하얗게 빛나는 소금 벽에서 나오는 투명한 빛이 가득하고, 깊이 파인 공간 덕분에 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리고, 성당으로 내려가는 통로에는 열네 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이는 ‘십자가의 길’을 상징한다.
산 내부에 처음으로 성스러운 장소를 조각한 것은 에메랄드를 채취하던 광부들이었으며, 광부들에 의해 1954년에 첫 번째 성당이 완성됐다. 이때까지도 광산이 계속 운영됐고, 성당의 구조적 안전성에 대한 염려로 1990년 광산은 문을 닫게 되고, 이 지역의 건축가인 호세 마리아 곤살레스가 원래 성당에서 수백m 아래쪽에 새로운 성당을 1991년부터 조각하기 시작했다.
4년이라는 힘든 작업 끝에 완성돼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났고, 100명 이상의 조각가와 광부들이 동원됐다. 소금성당은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영묘하고 영감이 깃들어 있으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그 믿음에 관계없이 감동을 준다. 남미를 찾는 이들에게 성지순례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해발 2,652m에 자리한 시파키라에는 암염을 캐내는 소금광산이 있다. 이곳의 암염은 2억 5,000만 년 전 바다 밑에 침전됐다가 안데스가 융기하면서 해면 위로 솟아오른 것이다. 소금성당은 과거 이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성모께 안전을 빌기 위한 장소를 갱도 안에 만들면서 시작됐다.
식민지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시파키라 소금광산과 소금교회 등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역사 유적으로 선정된 곳이다. 시파키라의 소금산에는 거대한 터널이 있고, 터널은 나선형으로 휘감기며 지하로 내려가는데, 지하에 다다르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운 건축물인 소금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산속으로 거의 200m 들어간 곳에 있는 소금 성당은 가장 깊은 곳에 조각된 교회로 높이 솟아오른 웅대한 지붕과 기둥, 세례를 주는 분수, 설교단, 그리스도 수난상을 갖추고 있다. 새하얗게 빛나는 소금 벽에서 나오는 투명한 빛이 가득하고, 깊이 파인 공간 덕분에 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리고, 성당으로 내려가는 통로에는 열네 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이는 ‘십자가의 길’을 상징한다.
산 내부에 처음으로 성스러운 장소를 조각한 것은 에메랄드를 채취하던 광부들이었으며, 광부들에 의해 1954년에 첫 번째 성당이 완성됐다. 이때까지도 광산이 계속 운영됐고, 성당의 구조적 안전성에 대한 염려로 1990년 광산은 문을 닫게 되고, 이 지역의 건축가인 호세 마리아 곤살레스가 원래 성당에서 수백m 아래쪽에 새로운 성당을 1991년부터 조각하기 시작했다.
4년이라는 힘든 작업 끝에 완성돼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났고, 100명 이상의 조각가와 광부들이 동원됐다. 소금성당은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영묘하고 영감이 깃들어 있으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그 믿음에 관계없이 감동을 준다. 남미를 찾는 이들에게 성지순례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여행 경험이 많은 여행 고수라 해도 남미의 콜롬비아는 쉽게 가기 어려운 곳이다.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네 번째로 큰 나라로 카리브해와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품고 있다.
남미 대륙의 최북단 나라 콜롬비아는 태평양과 대서양에 해안선이 있으며 중미의 파나마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1595년 스페인 이주민이 정착한 이후 스페인 식민지가 됐다가 1810년 독립을 선언한 뒤 1886년 콜롬비아공화국이 됐다.
우리에게 콜롬비아는 중남미 국가 중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일한 나라이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나라다.
아메리카 대륙 최대의 유전지대를 가지고 있고, 전 세계 에메랄드의 8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사탕수수로 바이오 가솔린을 만들고 세계 3위 커피 생산지이기도 하다. 다양한 얼굴의 콜롬비아가 그동안 우리의 고정관념의 그늘 속에 가려져 온 것이다. 풍부한 자원은 돈줄이 되면서 미술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커피와 에메랄드가 유명한 남미의 보석 콜롬비아로 여행을 떠나보자.
콜롬비아 ‘보고타’는 해발 고도 2,611m의 안데스 산지에 위치하고 있는 고원지대답게 선선한 느낌을 주는 도시다. 원주민인 보고타족에서 지명이 유래됐으며 비옥한 토양과 철강을 바탕으로 경제력을 갖춰 중남미 지역 중 가장 안전한 나라다.
세계 유일의 에메랄드 박물관, 황금박물관, 볼리바르 광장의 대성당 등 남미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건물들이 많아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콜롬비아 관문인 보고타는 남미 문화의 보고다. 구도심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있다. 보고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몬세라테 언덕은 케이블카나 푸니쿨라(산악열차)로 오를 수 있으며 전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보고타의 랜드마크다. 탁 트인 파노라마 전경이 압권이다. 도시의 야경은 너무 아름답다.
전차같이 철로 위를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는 지붕이 유리로 돼 있어 주변 전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걸어서 오른다면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울창한 숲은 여우와 족제비, 벌새 등 다양한 동식물의 보금자리다.
정상에는 성당과 함께 두 개의 레스토랑이 있어 야경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겨도 좋겠다. 언덕과 성당의 이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외곽의 몬세라트산에서 가져왔다.
콜롬비아 볼리바르 광장은 대성당, 의회, 대법원, 시청, 대통령궁 등 상징성을 가진 주요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독립을 이끈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광장이다.
보고타 시내 중심부로서 스페인 시대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는 공간으로 광장을 중심으로 콜롬비아 대통령궁, 의회, 대법원, 보고타 시청 등이 위치해 있어 이곳을 찾아온 여행들이 도보로 걸으면서 쉽게 주요 시설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게 특색이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구시가지 골목을 거닐다 보면 한 번씩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진한 커피 향기 때문이다. 콜롬비아에서는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인 ‘후안 발데스 카페(Juan Valdez Cafe)’처럼 멋들어진 커피숍을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단돈 몇백 원이면 거리 수레에서 훨씬 질 좋은 커피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컵에 따끈한 커피가 가득 담기면 갓 튀긴 콜롬비아 국민 간식 부뉴엘로(Bunuelo)를 함께 곁들이자. 부뉴엘로는 동그란 반죽을 납작하게 만든 뒤 기름에 튀겨 낸 도넛이다.
콜롬비아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커피 생산국이다. 친치나, 마니살레스, 살렌토 지역은 커피 농장 지대로 유명하다. 기계를 이용하여 대량 생산하는 브라질과는 달리 일일이 손으로 따고 말리는 과정으로 인해 품질면에서는 세계 최고로 친다. 시내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후안 발데즈 커피 전문점이 좋다. 아메리카노라 메뉴에 적혀 있으니, 주문도 편리하다.
볼리바르 광장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에 황금박물관(Museo del Oro)과 보태로 박물관이 있다.
1959년 문을 연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국제공항의 이름은 '엘 도라도'(El Dorado)다.
남미 대륙에 국경이 생기기 전, 지금의 콜롬비아 지역에 황금을 몸에 바른 사람 혹은 황금의 제국이 있다는 전설이 퍼져 수많은 이들이 황금을 찾아 나서면서 '황금빛이 나는 사람'이라는 뜻의 엘 도라도는 막대한 부의 상징과 같은 단어가 됐다.
실제로 현재 보고타 근처의 과타비타 호수에선 과거 원주민 무이스카(Muisca) 족의 족장이 황금 가루를 몸에 바르고 즉위식을 열었다고 하며 이 무이스카 족장은 진정한 '엘 도라도'로 여겨졌다.
지금은 연간 금 생산량 세계 10위에도 들지 못하는 콜롬비아지만 황금에 얽힌 과거의 전설과 영광은 과타비타 호수와 보고타 황금 박물관(Museo del Oro)에 남았다.
1968년에 개관된 황금박물관에는 현재 3만 6,000여 점의 금과 합금세공품 및 2만 5,000점의 도자기, 석기, 뼈 도구, 패각, 직물 등의 아름다운 전통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황금박물관은 무이스카 뗏목 외에도 금속 공예, 스페인 도래 이전 콜롬비아의 사람들과 황금, 우주의 기원과 상징, 의례용 제물 등 네 가지 주제로 나눈 상설 전시실을 두고 콜롬비아에서 발견된 다양한 황금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엘도라도의 전설이 전해지는 보고타 인근의 구아타비타 호수에서는 온몸에 금을 바르거나, 금으로 온몸에 차장을 한 원주민의 제례의식이 수천 년 동안 행해졌는데, 이러한 의식을 본 스페인 점령군들이 이 지역의 금을 수백 년에 걸쳐 강탈해가서 엘도라도의 전설이 전설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애니메이션 <엘도라도(The Road to El Dorado)>는 2000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에 가게 된 두 명의 스페인 노름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구아타비타 호수와 연관성이 있다.
뚱뚱하고도 과장된 인체 비례로 유머와 낙천적인 남미 특유의 유쾌함을 화폭에 담아낸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그의 걸작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보테로 미술관(Museo Botero)은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2000년 그의 작품 123점과 다른 작가의 작품 85점을 기부해서 세워졌다. 세기의 역작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귀엽고 발랄한 12살의 소녀로 재해석하는 등 옛 거장들의 작품을 독특하게 패러디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권위주의와 시대상을 풍자한 작품들로도 대중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콜롬비아 서북부의 도시 메데진(Medellin) 출신으로 라틴회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의 그림은 마음이 따뜻해지고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콜롬비아 제2의 도시인 메데인은 꽃과 미인이 많은 패션 도시로 유명하다. 요즘엔 세계적인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도시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안티오키아 미술관(보테로 뮤지엄)과 그 앞의 보테로 광장엔 보테로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관광객들이 보테로의 작품을 보기 위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한 예술가가 한 도시의 문화 아이콘이 된 셈이다.
보테로의 작품을 포함해서 보테로가 기증한 세계 저명작가 작품들이 소장된 미술관이다. 보테로는 자신의 작품을 팔아서 세계 저명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였다.
미술관 전시 작품들엔 콜롬비아의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 속에 파리가 날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는 문제가 생기거나 일이 잘 안 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싸늘하게 식은 커피 위로 검은 연기가 드리워진 것은 부부간에 싸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직자나 군인, 정치인의 생활방식을 우화적으로 그린 작품들에선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읽힌다. 메데인의 풍성한 꽃과 열대과일도 그렸다. 그림의 대부분이 안티오키아 지역의 풍경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적도 지역이지만 1,500m 고원에 위치한 메데인은 늘 봄 날씨 같다. 상춘의 도시답게 꽃이 많아서인지 여인들마저 아름다워 패션과 디자인 산업이 발전했다.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보고타 여인들보다 메데인 여인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들이 모델 같은 메데인 여인들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린 이유다. 미인의 도시답게 중심가(비아 데 콜롬비아)엔 콜롬비아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만든 의상이나 액세서리를 파는 상점들이 화려하다. 파리의 패션 거리를 걷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메데인은 이제 패션과 꽃, 문화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유명한 수출품의 하나가 바로 꽃이다. 튤립뿐만 아니라 무궁화 종류의 다양한 꽃들이 미국과 유럽에 대거 수출되고 있다. 커피와 바나나도 브라질에 비해 질이 좋아 해외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치키타( 귀여운 소녀)’라는 상표의 바나나가 유명하다. 말을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로 산지 지형이 많은 메데인의 말은 족보가 좋은 경마로 정평이 나 있다. 산지 지형에서 단련돼 지구력에 속도까지 갖췄다. 보테로는 여기에 문화도시 이미지를 보태고 있다. 한 작가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를 메데인은 보여주고 있다.
해발 2,652m에 자리한 시파키라에는 암염을 캐내는 소금광산이 있다. 이곳의 암염은 2억 5,000만 년 전 바다 밑에 침전됐다가 안데스가 융기하면서 해면 위로 솟아오른 것이다. 소금성당은 과거 이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성모께 안전을 빌기 위한 장소를 갱도 안에 만들면서 시작됐다.
식민지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시파키라 소금광산과 소금교회 등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역사 유적으로 선정된 곳이다. 시파키라의 소금산에는 거대한 터널이 있고, 터널은 나선형으로 휘감기며 지하로 내려가는데, 지하에 다다르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운 건축물인 소금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산속으로 거의 200m 들어간 곳에 있는 소금 성당은 가장 깊은 곳에 조각된 교회로 높이 솟아오른 웅대한 지붕과 기둥, 세례를 주는 분수, 설교단, 그리스도 수난상을 갖추고 있다. 새하얗게 빛나는 소금 벽에서 나오는 투명한 빛이 가득하고, 깊이 파인 공간 덕분에 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리고, 성당으로 내려가는 통로에는 열네 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이는 ‘십자가의 길’을 상징한다.
산 내부에 처음으로 성스러운 장소를 조각한 것은 에메랄드를 채취하던 광부들이었으며, 광부들에 의해 1954년에 첫 번째 성당이 완성됐다. 이때까지도 광산이 계속 운영됐고, 성당의 구조적 안전성에 대한 염려로 1990년 광산은 문을 닫게 되고, 이 지역의 건축가인 호세 마리아 곤살레스가 원래 성당에서 수백m 아래쪽에 새로운 성당을 1991년부터 조각하기 시작했다.
4년이라는 힘든 작업 끝에 완성돼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났고, 100명 이상의 조각가와 광부들이 동원됐다. 소금성당은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영묘하고 영감이 깃들어 있으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그 믿음에 관계없이 감동을 준다. 남미를 찾는 이들에게 성지순례지로도 유명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