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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은 바다로 흐르지 않는다 ⑭
이 대 영
❚ 요령소리
동화 속의 설국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자정부터 퍼붓기 시작한 눈은 새벽까지 내려 사람 발목을 덮었다. 동이 트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조등에 반사된 눈은 사람들을 깨웠다. 길을 벗어난 곳곳에는 문상객이 싸놓은 오줌이 누런 문양을 이루며 흩어져 있었다.
아침이 되자 방에서 구겨 자던 가족들이 하나둘 몸을 펴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바깥 풍경에 감탄했다. 그러면서 출상을 걱정했다. 다행히 눈은 더 내릴 것 같지 않았다. 붉은 해가 사마산 위로 오르자, 눈은 쏜살같이 햇살을 받아들이며 산과 들로 번져나갔다.
부지런한 사리원댁은 식솔들을 데리고 부엌과 마당을 오가며 아침밥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빗자루를 들고나와 집 안팎을 쓸었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소주병과 병뚜껑만 열어 놓은 음료수가 전날의 흥성함을 보여주고도 남았다. 바깥마당에 피웠던 모닥불 불씨는 용케도 살아남아 사람들을 계속해서 불러 모았다. 사람들은 상가에 도착하면 안마당 차양 밑으로 기어들어 아낙들이 나눠주는 육개장으로 몸을 풀었다. 그들 곁에는 얼마나 닦달하여 끌고 왔는지 잠이 덜 깬 아이들이 코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아이들도 몸속으로 달려드는 칼칼한 고기 냄새에 취해 칭얼대던 소리를 멈추고 밥을 욱여넣었다.
발인 시간이 되자 요령잽이를 비롯하여 소리꾼 모두 안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지급된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거나 어깨에 두르고 흰 장갑을 꼈다. 공수원 육동에 사는 청년으로 조직된 상조회원들이었다. 남 서방이나 황 서방은 그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어제 상여놀이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와중에도, 광재는 언제 얻었는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자랑스럽게 마당을 오가고 있었다.
이윽고 요령잽이가 앞에 서고 소리꾼들이 그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섰다. 정확하게 안방에 걸린 붕알 시계가 아홉 번을 울릴 즈음이었다. 망자에게 절을 마치자, 병풍이 걷히고 여섯 명의 소리꾼이 운구를 위해 각자 자리를 잡았다. 요령소리가 울리자 소리꾼들이 관을 들고 일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딸랑!“ 하고 소리가 울릴 때마다 소리꾼들은 동서남북으로 돌며 관을 이용하여 인사를 했다. 이른바 ‘방충맥이’라 하여 후손들을 위해 부정한 것이 있으면 다 가지고 가겠다는 의미의 행위였다. 소리꾼이 관을 들고 방문턱을 넘으려 할 때 광재가 마당에서 바가지를 깼다. 액운을 물리치는 소리치고는 작은 소리를 냈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황 서방이 소심하다며 광재에게 핀잔을 했다.
관은 대문 밖에 놓인 상여 위에 올려졌다. 그러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상여 앞에 병풍을 치고 영좌를 설치한 후 제상을 차렷다. 이때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작은 소란이 났다. 집안 담벼락에 붙여 집을 짓고 키우던 토끼가 열린 문을 나와 탈출한 것이었다. 다행히 큰 토끼가 아니라 한 달 전에 태어난 작은 놈이었다. 담벼락 밑에 있는 수로를 빠져나와 돌아다니던 토끼가 마을 아이들 눈에 띈 것이었다. 자력으로 눈 쌓인 산을 오를 수 없는 토끼는 누군가의 손에 잡혀 집안으로 옮겨졌다. 해는 벌써 동쪽에 놓인 상여 위에 떠 있었다.
상주는 제상에 분향한 후 술잔을 따랐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축문 읽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축관 갓바위 이 서방이 “영이기가(靈輀旣駕) 왕즉유택(往卽幽宅) 재진견례(載陳遣禮) 영결종천(永訣終天)” 하며 발인축을 올렸다. 평소에 촐싹대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엄숙한 자세였다. 이어 상주, 안 상주, 딸, 친척 등이 고인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하며 곡을 쏟아냈다. 마지막으로 늦게 문상을 온 방문객들이 절을 올렸다. 그중에는 삼거리 주막 놀음판에서 이 행수와 어울렸던 돼지 장사도 있었다. 그를 외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리원댁만큼은 그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조치원에서 지금도 장사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리원댁에게 보란 듯이 손을 탈탈 털어 노름판에서 손을 뗐다는 표시를 했다.
발인제가 끝나자 운상에 들어갔다. 요령이 요란하게 흔들리자 상여꾼들은 다시 자기 자리로 들어갔다. 요령잽이가 선소리로 ‘어허 어허’를 외치자 상여꾼들 또한 ‘어허!“를 두 번씩 주고받으며 일어설 준비를 했다. 이어서 요령이 연이어 울리자 상여꾼들은 ’우여 우여 우여‘를 외치며 무릎을 세우고 일어섰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사설을 메기고 받는 동안 상여꾼들은 몸에 균형을 잡으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요령이 떠나기를 재촉하자 상주의 울음소리도 점점 높아갔다. 상여 앞에는 명정, 공포, 만장, 영정이 자리했다. 너비 두 자, 길이 아홉 자 홍포에 분가루로 행수전주이공지구(行首全州李公之柩)라고 쓴 명정은 양 서방 큰아들이 들고 선두에 섰다. 자기 아들이 친구의 명정을 들고 길잡이를 하면 좋겠다는 양 씨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무 글씨도 적혀 있지 않은 삼베로 만든 공포는 선뜻 들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런 삼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정적이었거니와 그럴싸한 글씨도 없는 맹탕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장터주막 박 씨의 셋째아들 몫이 되었다. 홍·천·백 등 여러 색으로 이루어진 만장은 모두 육동 청년회원들이 나누어 들었다. 서로 복을 나누어 가지라는 의미였다. 만장의 개수는 망자의 신분과 부를 가늠하는 것이어서 염 사장이 십여 개를 만들어와 그 행렬이 볼만했다. 만장 속에는 ‘근조승천용봉(謹弔昇天龍鳳)’이라고 쓴 유구 이 회장의 서체도 들어 있었다. 용봉은 이 행수의 이름이었다. 영정은 전에 서울 둘째 아들이 가져와 안방에 걸어 놓았던 사진을 썼다. 영정은 당연히 맏사위가 들고 그 뒤를 만장이 따랐다.
어허 어허어어 어허 어이 어허야
어허 어허어어 어허 어이 어허야
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보고 웃지마라
어허 어허어어 어허 어이 어허야
천하일색 양귀비도 낙화가 지면 허사로다
어허 어허어어 어허 어이 어허야
저승길이 멀다더니 문밖이가 저승이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하직이네 하직이요 정든 동네 하직이요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요령잽이가 사설을 메기면 상여꾼들이 후렴을 받는 선후창 형식의 3소박 4박자의 느린 진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요령잽이의 선창과 상여꾼들의 후창이 자아내는 오묘한 울림은 주위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었다. 그날따라 참새나 까치도 상여 행렬에 놀랐는지 어디론가 날아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 개들만이 자기 주인 곁을 맴돌며 나대고 있었다. 아이들은 상주의 울음이 주는 침울함과 상여에 대한 두려움으로 멀찌감치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이 행수의 큰며느리와 작은 며느리, 그리고 큰딸 옥분의 자지러지는 곡소리가 동네 사람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사리원댁은 곡을 하다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여러 사람이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요령잽이의 신호에 따라 상여꾼들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상주와 복인, 조객이 따라나섰다.
우지마라 마누라야 눈도 붓고 목도 쉰다
에헤 에헤 어허넘자 어허
두고 가는 나두 섧다 우지마라 아들딸아
에헤 에헤 어허넘자 어허
서운 눈물 접어두구 정든 집을 떠나갈 제
에헤 에헤 어허넘자 어허
가기 싫다 안갈소냐 꾀를 사려 피할소냐
에헤 에헤 어허넘자 어허어
유소와 사롱이 흔들리자 꽃상여는 마치 하늘로 날아갈 듯 움직였다. 뚝 그쳤던 눈발이 하나 둘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길이 미끄러워 요령잽이는 진소리를 이어갔다. 명정을 들고 앞서가던 양 씨 아들이 미끄러져 넘어지자 공포를 든 박 씨 아들이 바로 뒤에서 깔깔거리다 이내 웃음을 멈추기도 했다. 다행히 만장을 든 사람들에 가려 뒤에 따라가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발견하지 못해 다행이었다. 마지막 만장꾼이 남 서방 집 담 모퉁이를 돌아 나갈 때쯤 요령잽이는 앞수부가 잡은 단강을 잡고 멈추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상여꾼들은 알았다는 듯 일제히 제자리걸음을 이어갔다.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마을 안길을 넓힐 때, 하천을 복개하여 다리를 놓은 곳이었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상주님들 앞으로 와요 절안받고는 못건너겄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못가겄네 못가겄네 노자가 없어 못가겄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상주님들 내말들어 절받어야 떠나겠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바깥마당에서 길로 나가지 못하고 망자를 배웅하던 여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길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상여가 다리를 건너기 위한 것이라며 여자들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만류했다. 여자들은 집에서 의례를 마치면 상여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 이곳의 관례였다.
요령잽이의 사설에 따라 맏상제인 이 행수의 큰아들이 앞으로 나서 단강과 앙장을 연결한 줄에 만 원짜리 지폐를 끼워 넣었다. 이어서 맏사위가 예를 표하고 봉투 두 장을 양 줄에 끼웠다. 이어 부르지도 않은 이 행수의 친구 양 씨가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줄에 끼웠다. 친구에게 노잣돈을 주는 좋은 친구라며 마을 사람들이 양 씨를 칭찬하자, 요령잽이가 씩 웃고는 다시 요령을 잡았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가세가세 외나무다리 가세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간다드니 왜 또 왔소 울고 갈 길 왜 또 왔나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가세가세 외나무다리를 가세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속도를 낼 것 같던 상여는 생각보다 아주 느리게 이동했다. 눈을 쓸었다고는 하나, 여덟 명의 상여꾼이 보조를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십여 미터를 내려와서 요령잽이가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이 행수의 둘째 아들 집에서 멈추려던 생각을 바꿔, 더 아래로 내려갈 심산이었다. 바로 밑에 마을 정자와 갓바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령잽이는 상여를 멈추게 한 뒤 앞수부를 갓바위 쪽으로 돌려 예를 갖추게 했다. 마을의 수호신 격인 바위에 이 행수가 올리는 마지막 인사였다. 바위는 눈이 쌓여 하얀 형체로 서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평소에도 시루떡과 청수를 마련하여 바위에 치성을 드리곤 했던 안 씨 내외는 주변 사람들을 독려하며 바위에 절을 올렸다. 그러자 요령잽이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호명하며 바위에 절을 올리도록 했다. 빨리 떠나자는 상여꾼들의 재촉에도 요령잽이는 급할 일이 없었다. 서두르다가 자칫 상여라도 미끄러지면 큰 낭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가던 만장꾼들이 어서 가자는 듯 심술궂게 깃발을 휘두르자 요령잽이도 알았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요령잽이도 심술을 한 번 부려볼까도 생각했지만, 삼거리 주막에서 이 행수의 지인들이 문상을 와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을 받아 그만두었다. 요령이 다시 울리면서 상여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망자의 지인들이 삼거리에서 기다리고 계시다니 이번에는 짝소리로 하여보세.
그리고 땅이 미끄러우니 잔걸음으로 가세.“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임을 따라서 나는 간다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인제가면 언제오나 오실 날이아 일러나주오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요 월출동녁에 저 달이 솟네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북망산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북망이라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나 진다고 서러를 마라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에헤야 에헤 에해 에해
상여는 눈길을 따라 마을 입구에 자리한 삼거리 주막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갔다. 주막은 이 행수 생전에 놀이터 역할을 했던 곳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소였다. 부친이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 행수도 이 주막에서 사람들을 만나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몇 가마니의 언어를 풀어 놓은 곳이었다. 노름으로 계약했던 논을 사지 못하고 돈을 날리기는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생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곳도 이 주막이었다.
주막 옆에 있는 공터는 노제를 지내기에 제격이었다. 상여가 땅에 내려지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염 사장과 사환이 돗자리를 깔고 병풍을 세운 뒤 제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부고를 접하고 문상을 온 공주 우체국장과 교도소장도 나란히 절을 올릴 준비를 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주막으로 들어가 상가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상여꾼들은 상여를 매려면 술을 그만 먹으라고 서로 충고하면서도 연신 술잔을 돌렸다.
이 행수도 우체국장과 교도소장이 주는 술도 받아먹고, 주막에서 자신에게 문상을 온 사람들과도 술을 마셨다. 이러다가는 장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취할 일이었지만, 어차피 상여꾼들이 있으니 오늘보다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날도 없을 듯했다. 광재와 서촌에 살았던 돼지 장사는 오랜만에 해후하여 안부를 주고받으며 연신 술을 마셨다. 광재가 들었던 만장은 상여로부터 십여 미터 앞 길가에 꽂혀 나팔거리고 있었다. 이날만큼은 광재보다 오랜만에 나타난 돼지 장사가 더 인기가 있었다. 소주 막걸리를 가리지 않는 돼지 장사는 죽은 형님 덕분에 술을 마음껏 마신다며 좋아했다.
요령소리가 끊어지고 소식이 없자, 장지에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궁금함을 못 이겨 하나둘 주막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연신 시계를 보며 요령잽이를 재촉하는 사람은 염 사장이었다. 떡이나 과자를 얻어먹고 기다리던 만장꾼들도 ‘기가 차다’는 듯 주막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 보면 내일 먹거리를 장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술과 음식에 달라붙는 것을 탓할 수도 없었다. 애경사를 치른 집들이 제일 우려하는 것이 행사 후 “그 집 인심 한번 야박하더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찾아온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조문객도 끊기고 요령이 다시 울리자 상여꾼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명정, 공포, 만장, 영정이 일자로 늘어서고 요령잽이의 선창이 울리자 다시 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달려 나온 돼지 장사가 상여 앞을 가로막으며 대성통곡하는 바람에 몇 발짝 나가지 못하고 멈춰서야 했다. 돼지 장사가 상여의 단강을 잡고 형님에게 용서를 빌었다. 지난날, 소 장사와 함께 놀음판 돈을 싹쓸이하고 도망갔던 것에 대해 사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보다 주막 안에서 돼지 장사에게 형님에게 용서를 빌지 않으며 너는 돼지만도 못한 놈이라고 윽박지른 광재의 영향도 컸다. 광재의 조언에 그도 가슴에 남아 있던 복잡한 속내를 울음으로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난감한 요령잽이는 상여를 멈추게 하고 소리로 풀어갔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친구야 이행수야 내가 여기 왔건마는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오는 줄을 아시는가 가는 줄을 아시는가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오늘날로 이별을 하면 언제 다시 만날거나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옛 정리를 생각하여 노자나 많이 걸어주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돼지 장사는 광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상여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만 원권 지폐 두 장을 사람들에게 흔들어 보이며 줄 사이에 끼웠다. 아이들은 그의 행동을 따라 손을 흔들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상여는 다시 출발하여 이 행수의 논 근처에서 또다시 멈추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알뜰살뜰 돈을 모아 산 논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얼핏 보아도 다섯 필지의 논이 이 행수의 소유였다. 요령잽이는 상여가 지체하는 것을 막으려는 듯 상여꾼들에게 제자리걸음을 몇 번 시킨 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장지에 가까이 오자, 몸을 녹이려 밭에 피운 불 근처에서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상여를 맞이했다. 그러나 땅이 미끄러워 상여는 느리게 전진했다. 이미 하관 할 준비를 마친 인부들은 하루 전에 설치한 악좌(幄座)에서 음식을 먹으며 상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여가 장지 아래에 있는 밭으로 들어서자 요령잽이가 상여를 재촉했다. 상여가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후미에 두세 명이 더 붙어 밀기 시작했다.
가세 가세 바삐 가세
어허 어허
북망산천 찾아 가세
어허 어허
우리 담여꾼 잘 모시네
어허 어허
앞 수부와 뒤 수부가
어허 어허
인생험로 올라보세
어허 어하
어허 어하
발이 눈에 푹푹 빠지거나 미끄러지면서도 젊은 사람들의 힘과 우렁찬 후렴으로 상여는 뒤뚱거리면서도 잘 올라갔다. 오히려 뒤따르는 상주들이 미끄러지거나 멀어졌다. 상여를 뒤따르던 문상객들은 눈 덮인 경사지를 오르는 상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상여가 장지에 올라서자 요령잽이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어허 어허 어허넘차 어허
어허 어허 어허넘차 어허
먼데 사람 보기 좋고 가까운 사람 듣기 좋게
어허 어허 어허넘차 어허
잘 모셔라 잘 모셔라 우리 이 행수 잘 모셔라
어허 어허 어허넘차 어허
우여 우여 우여 우여
상여가 멈추고 땅에 자리를 잡자 상여꾼들이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잠깐이었지만, 비탈길을 오르느라 힘들었는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솟았다. 상여꾼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젠 한물갔다’고 자책하기도 하고, ‘어젯밤에 마누라하고 뭐 했느냐’며 놀리기도 했다. 상여꾼들이 악좌로 들어가 막걸리를 청하는 사이, 요령잽이는 새끼줄에 걸린 돈들을 빼내어 주머니에 챙기고 있었다.
가는 모래가 널방에 뿌려지자 사람들이 상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하관 시간이 임박한 것이다. 남 서방과 오 서방이 해체한 상여를 한쪽에 모아 불을 질렀다. 제일 먼저 양장과 청사초롱이 불타오르고, 이어 용과 봉황이 불길을 따라 승천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이 행수의 다리 같은 장강과 팔 같은 단강이 타버리면 상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상여꾼들은 지관의 지시에 따라 관을 해체했다. 이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황 서방과 권 서방이 두 짝씩 널을 잡아채어 뒤로 달아났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흰 이를 드러냈다.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다. 널을 서로 가지려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시체가 담겼던 목재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널을 집에 가져가면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광목 끈을 시체 밑으로 넣어 양편에 세 명씩 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하관을 시작했다. 그러자 막내아들이 슬픈 소리를 내며 널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를 사람들이 만류하고, 둘째 아들이 그를 데리고 뒤로 물러서자 이 행수도 편히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시신 위에 명정을 덮고 동쪽에 검고 붉은 현훈(玄纁)이 채워졌다. 그런 후 마사토가 뿌려지며 금방 널방이 채워졌다. 이어 달공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하나둘 다시 악좌로 돌아갔다. 평토 후 산신 축문을 읽을 때까지도 상여꾼과 문상객들은 악좌나에 들어가 술을 마시거나 장작불 곁에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망자의 곁을 지켰다. 성분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래질과 삽질로 봉분을 만들고 잔디를 심는 것도 문제였지만, 중간중간에 사람들은 장작불로 와서 손을 녹여야 했다. 힘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술기운으로 일을 했다. 대부분은 이 행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활개와 봉분을 만들고 배수로 작업이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둘 밭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배를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음식을 다져 넣고 떠들썩하게 소리를 내며 멀어져갔다. 작업을 마치자 염 사장과 사환은 서둘러 제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인부들은 추위를 녹이기 위해 천막으로 들어가거나 장작불로 달려갔다. 장작불도 기세가 꺾여 그 화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상이 차려지자 축문은 축관이 읽어 나갔다. 그도 추운지 발음이 힘을 잃고 신통치 않았다.
유세차정미정월초구일
고자이수철(維歲次丁未正月初九日 孤子李洙哲)
감소고우(敢昭告于)
현고학생부군 형귀둔석 신반실당 신주기성(顯考學生府君 形歸窀穸 神返室堂 神主旣成)
복유존령 사구종신 시빙시의(伏唯尊靈 捨舊從新 是憑是依)
축문을 어느 신령이 알아듣고 얼마나 이 행수를 챙겨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제를 올렸다는 산 자들의 위안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날씨가 너무 춥다며 작업 도구를 천막 안으로 밀어놓고 다음 날 가져가기로 했다. 겨울철에 특별히 할 일도 없기에, 내일 다시 술판을 벌일 건수를 또 하나 만드는 셈이다.
이 행수는 이제 사위의 손에 들린 사진으로 귀가하는 영혼이 되었다. 헝겊으로 칭칭 동여맨 그의 귓가에 사람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는 이 한 세상 정말 짧았노라고, 꿈과 같았노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