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종말론과 비슷한 사이비가 장차 144,000에 들어가고
장차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간다고 떠들고 있는데 이건 수준문제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름만 교회일 뿐 수준이하입니다만 고린도전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전2장을 보면 고린도교회나 현재 교회의 수준을 알 수가 있습니다.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하나님의 증거는 고상한 말과 지혜로 전해서는 안 됩니다. 뛰어난 웅변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 희한한 신조어를 만들어 인기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교회는 목사가 만든 신조어가 그들의 신앙의 표준이 된 것같이 말하더군요.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증거할 때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이 똑 같은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사람치고 성령의 감동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막의 기구를 만드는 기능공까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듣고 믿음으로 따라가는 회개와 세례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은
자리로 옮겨 앉아 주님으로부터 성령의 선물을 받는(행2:38) 비결을 터득해야 합니다.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바로 복음의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 분이 이루신 대속의 사역을 전해서 그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고 그 말씀에 합일 시키는
순종 곧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영접을 통해서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다 거짓말입니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사람의 말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으세요 하고 전도지를 주기에 예수를 어떻게 믿는지 아세요?
하고 물으니 우물쭈물하고 대답은 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냥 믿으면 되지 별스럽다고
생각했을 테지요. 또 예수를 영접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영접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분이 일하신 사역의 내용을 전부 믿고 수용하고 따르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를 두고 믿어 순종이라고 말합니다(롬1:5) 예수 믿고 말씀을
순종하면 천국에 간다 또는 천국에 상급을 쌓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나를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 놓으시고 복음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하시므로 이를 믿음으로
그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 바로 믿어 순종이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시인하는 것이 바로 거듭남이며 영생을 얻은 믿음이 됩니다.
3절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증거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자세입니다.
내시가 오직 임금의 말만 듣고 전하기 위해 서 있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증거하려는 주의 종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죄로 인해 죽었던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산자가 되었다는
이 사실은 인간의 지혜로는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참 힘듭니다.
고린도교회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나 육신에 속한 성도들은 성령세례라고 하면
밖으로 나타나는 은사에 고정이 되어 참 성령세례(고전12:13)를 전하기 힘이 듭니다.
4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4)
말(호 로고스)과 전도(케르그마)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증거하는 말씀과
그 분의 사역을 설명하는 복음 전파 곧 설교를 지혜의 말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내적 능력을 의지해서 전했다고 바울은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진리의 비밀을 가져야 합니다.
이 시대의 교회에 가장 절실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제도나 조직
또는 형식을 개혁하려고 하지 말고 이 복음의 내용을
신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신학교 강의를 할 때에 기독교교육학교수가 제게 왜 신학생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있느냐고 따지듯 말하기에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준적이 있습니다.
그의 지론은 학생들을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독교교육은 지성교육이 아니라 성령께서 진리를
알게 하셔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므로 본성이 서서히 변하는 것입니다.
5절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요즘 목사들이 강단에서 인문학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습니다.
교육학 관점으로 성경을 공부하므로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죽고 나서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 사람은 일단 이 부류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지금 그리스도 안에 발견이 되어
그 피 안에 하나가 되고 십자가로 화목하게 되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엡2:11-18)
그로 인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아 하나님이 거하실
집이 되어 가는 겁니다(엡2:22) 이런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을 걱정할까요?
144,000에 포함되지 않아서 안절부절 할까요? 저는 144,000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그게 바로 나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와 한 떡이 되고 한 몸이 되고
한 영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서 떼어 낼 존재는 상천하지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까닥하면 신앙이 슬며시 철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철학은 인간의 본성적인 기질과 떼어내려 해도 뗄 수 없는 체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글들과 설교가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는데 그 중에 화려한 내용들이 대부분 이런 부류에 속한 내용들입니다.
바울의 권면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훈련을 반복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과정을 따라가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의 역사를 의지하는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 곧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이 되어 주의 부활의
능력을 맛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십자가에 드려 주의 영과 생명의
내주 역사 충만하심을 사모하며 쉬지 말고 달음질을 해야 할 겁니다(빌3:9-12)
첫댓글 아멘입니다. 진리를 아는 자만이 진리를 따라 하나님 아버지 보좌앞에 나아갑니다.
심령에 은혜가 방전이 될때 모든것을 잠시 내려놓고 기도골방에 들어가 주님을 집중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시군요 군대에서 통신보안이라는 말이 있듯
기도는 나 기도했어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토브님처럼 골방에서 은밀하게
보시는 주님께 기도보안을 지키며 진리를 따라 그 비밀 통로를 따라 올라가는 것이 맞습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