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5장12-16절 칭송받는 교회VS 욕먹는 교회 260511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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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는 사도들의 손을 통해 민간에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던 역동적인 공동체였습니다. 믿는 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고, 세상은 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백성들이 칭송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주께로 나오는 남녀의 큰 무리가 더해졌으며, 심지어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병자들이 다 나음을 얻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표적과 기사: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가리키는 이정표
초대 교회는 거친 풍파를 지나왔습니다. 핍박과 풍파, 감옥에 갇히는 답답한 시간 속에서도 성도들은 위축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한마음을 지켰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과 같은 내부의 불행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부흥의 큰 물결을 계속해서 열어주셨습니다. 본문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다고 증언합니다.
성경에서 '표적(Sign)'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표지판'과 같습니다. 경주 내남면으로 들어올 때 "이제부터 내남입니다"라는 팻말이 내남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을 보고 우리가 목적지에 왔음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하시는 목적은 예수를 믿지 않거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예수가 진짜 구원자다"라는 사실을 확증해 주기 위함입니다. 반면 '기사(Wonder)'는 초자연적인 놀라운 일들을 통칭합니다.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 중 몇 가지만 골라 '표적'이라 부른 이유는, 그 사건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인류의 죄를 대속할 분임을 보여주는 랜드마크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 이러한 표적과 기사를 통해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2. 칭송받는 교회VS 욕먹는 교회
부흥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은 '솔로몬 행각'에 모였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성전 내부의 쉼터와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120여 명이 모였던 마가의 다락방은 몰려드는 성도들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좁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전 안의 넓은 쉼터를 새로운 터전으로 허락하셨고, 주일마다 그곳에 모여 예배하니 그 쉼터가 곧 거룩한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역 현장도 이와 같습니다. 장례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 식당이 꽉 차서 다른 공간까지 개방하여 손님을 대접하듯, 초대 교회도 장소의 한계를 넘어 함께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당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형수의 길을 걷는 것과 같아 세상에 두려움을 주었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교회를 칭송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는 이유는 복음이 가짜여서가 아니라, 믿는 자들의 삶 즉 '행색'이 복음과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부도덕함이 세상과 다를 바 없다면 세상은 교회를 외면합니다. 지금은 국가의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교회의 구제 사역만으로는 세상에 감동을 주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의 '순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학교가 인재를 길러낼 때 칭송받듯, 교회는 죄인이 거듭나고 예수 안에서 새 인생을 살아가는 '변화의 현장'이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인생의 고난을 겪는 자들이 교회에서 해답을 찾고, 목회자와 성도들이 정직한 삶을 지켜낼 때 세상은 다시 교회를 주목하고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3. 베드로의 그림자에도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은 폭발적이었습니다. 3,000명, 5,000명을 넘어 이제는 헤아릴 수 없는 무리가 주께 돌아왔습니다.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는 베드로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에게 충만했던 성령의 아우라(Aura)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서는 영적인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저 또한 젊은 시절, 이러한 영적 능력을 갈망하며 몸부림쳤습니다. 훌륭한 멘토 밑에서 사역을 배우며 밤샘 철야와 금식 기도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지하 개척교회 시절, 잠과 싸우며 기도하고 밥 한 끼 굶는 것도 힘들어하던 연약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환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한 시간을 넘기며 간절히 매달리자 불치병이 낫는 이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은사가 나타나는 기쁨도 잠시,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사탄이 예수의 형상으로 속이고 들어온 영적 전쟁터에서 저는 깊은 혼란과 유혹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저는 영성 서적들을 통해 '전이(Transfer)'와 '역전이'의 원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영적 사역 중에 어둠의 권세가 사역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고, 그제야 제 안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단순히 신비한 은사에 집착하는 사역보다 더 본질적이고 안전한 길, 즉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4. 영광이 임하는 원리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성도를 살리는 길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십자가 복음의 영광입니다.
피 묻은 십자가 앞에 우리가 정직하게 서면 하나님이 직접 일하십니다. 사람의 수단이나 기교가 필요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보좌에서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곁에서 십자가의 권능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질병을 생명으로 바꾸고 계십니다.
둘째,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입니다.
자신의 인생 운전대를 주님께 완전히 맡겨드리는 '로드쉽(Lordship)'이 필요합니다. 내가 주관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주님의 개입을 요청할 때 진짜 영광이 나타납니다.
셋째, 교회 공동체의 연합입니다.
하나님은 각 지체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지체들이 연합하고 은사가 결합될 때,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온전하게 공동체 위에 임합니다.
넷째, 영광의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영력이 깊은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인간은 연약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 능력이 강해질수록 교주처럼 군림하거나 인격을 상실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통해 나타났던 성령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합니다. 신앙생활의 연수가 오래되었다고, 혹은 작은 은사를 받았다고 교만해지지 맙시다.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겸비하게 내려놓고 "주님, 저는 제 일을 할 테니 주님은 주님의 일을 행하시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정직하게 머물 때, 부활의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과 교회 가운데 풍성한 표적과 기사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표적과 기사가 충만했던 예루살렘 교회의 영광을 봅니다. 주님, 우리 교회에도 우리 각자의 그릇에 맞는 부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남 땅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가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상처 입은 자들의 위로자가 되며, 천국 길을 안내하는 진정한 가이드가 되게 하옵소서. 인생의 폭풍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한 상담소가 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치유하는 영적 병원이 되도록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하시기를 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