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4.
청자와 백자
걸작이다. 국보 제270호로 고려시대 작품이다. 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원숭이 어미와 새끼의 형상이다. 어미의 품에 안긴 새끼의 오른손과 눈동자는 감탄을 자아낸다. 어미의 왼손에 받쳐진 새끼의 엉덩이 촉감이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내 경험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로서 가지는 지극히 당연한 동질성이다. 우리 부부는 도자기나 국보를 이야기할 때는 기승전 원숭이 연적이다. 재치 있게 표현된 세련된 작품으로 청자연적 가운데서 가장 훌륭해 보인다.
강진청자축제 현장을 찾았다. 벌써 53회째라고 한다. 강진군 대구면 고려청자박물관 일원에서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열흘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500여 년간 청자 문화를 꽃피운 강진에서 낮에는 천년의 전통을, 밤으로 환상적인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축제라고 적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북새통일 거란 생각에 일부러 월요일 오후에 들렀지만, 임시주차장조차도 빈 곳이 몇 안 된다.
대구 간송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손가락 끝을 살짝 스쳐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보물들이 가득했지만, 넋을 잃고 바라만 봤다. 여럿 중에서 국보 제68호로 지정된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은 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상감 기법을 이용하여 병의 표면에는 상서로운 구름 사이로 학이 69마리나 날고 있다. 고려청자 중에서도 최고의 명품이며, 한국 도자기의 최상품이다. 고려청자박물관 전시실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리며 설렘으로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내가 아는 청자와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보물들이 즐비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바라는 만큼의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켜 주진 않았으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은 차가운 날씨다. 물레를 돌려 성형하는 프로그램에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북적거린다. 먹거리 장터에 시식을 즐기는 여행객이 줄을 잇고, 공연장에는 트로트 열풍에 맞춰 쉼 없이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40여 개의 청자 업체들은 제각기 온갖 작품들을 전시하여 비취색 도자기의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자그마한 찻잔 하나를 품어올까 하여 두리번거렸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나는 청자보다 분청사기가 좋다. 아니 청자나 분청사기보다 백자가 무조건 좋다.
마음에 간직한 백자가 하나 있다.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조선 후기인 1700년대 전반에 만들어졌으며, 국보 제294호로 지정된 청화백자다. 병을 빙 둘러 국화와 난초가 피어 있으며 벌과 나비들의 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난초는 청화, 국화는 진사, 국화 줄기와 잎은 철사, 벌과 나비는 철사 또는 진사로 채색하여 화려하기가 극에 달한다. 실물을 보고 자지러질뻔했다. 눈을 몇 번 끔벅이고는 그냥 쳐다만 봤다.
절세미인보다 더 아름다웠다면 지나친 거짓이 될까? 아직 청자나 백자 등의 도자기류를 이해할 심미안을 갖추지 못한 탓에 "멋지네", "대단하다" 라고 영혼없는 말들만 뇌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