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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불의한 자에게 속지 말라[5]
말 씀 베드로후서 2장 13-22절
세상과 사단은 성도들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도록 미혹하고 있지만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봐야만 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출애굽 하는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들이 잘 사는 것을 보게 되더라도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신앙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물론 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이 풍족하게 사는 것을 보게 된다면 마음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택된 선민이라는 것을 잊지만 않는다면 가나안도 그들의 믿음을 돕는 도구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성도들도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면 말씀대로 살기 힘들지만 물질과 권세가 성도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힘있게 하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는 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것들을 이용해서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사망 가운데 떨어진 죄인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사망을 이겨 주셨다는 것만 믿고 있으면 사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 죄의 값을 치러주시고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생명을 사망 가운데 던지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사망이 왕 노릇하며 인간이 사단의 종으로 살도록 위협했지만 이제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들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사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에게 있어서 육체의 죽음은 잠시 자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단은 성도들을 다시 사망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몰래 들어온 이단들은 예수님의 대속사건이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만물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한 것이라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며 돈을 쏟아 부어 더 큰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는 창조론보다 거짓말로 진리를 가려야 하는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의 연구결과를 번복해 가며 계속 다른 연구결과를 내 놓고 있습니다.
자신은 늘 동일한 사람인데 옷만 바꿔 입으면서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피조물이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증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진화론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진화론자들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긴장해야 합니다.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매스컴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진화론을 주입시키고, 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에게 진화론을 교육시킨다면 언젠가는 창조론보다는 진화론이 훨씬 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예는 일본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오랜 세월 동안 세계에 알리자 세계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사단도 일본과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이 일본 땅이라고 우길 때 한국의 입장은 굳이 우기지 않아도 독도가 우리 땅인데 설마 일본에게 빼앗기겠나 안일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의 생각처럼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전했어야 했고, 우리 땅이라고 확실하게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일본과 동일하게 소리를 내야만 세계가 두 나라의 목소리를 같이 듣고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이라도 해 볼 것입니다.
이단이 거짓복음으로 말씀을 희석시킬 때 교회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진리를 더 전해야 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세주라는 것을 바르게 선포해야만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진리를 변질시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신학교들이 자유주의신학을 가르치고 있고, 성경말씀보다는 철학이나 사람의 논리를 더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변질 된 학문을 배운 신학생들이 목회자가 되자 교회는 자연스럽게 진리보다는 잘못 된 복음을 성도들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는 세상이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자 변질된 목회자들이 종교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며 분별력이 없는 교인들을 동참시키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과 재림이 설교의 요지가 되지 못하고 세상의 복이 중심에 서자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자기의 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죄인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마음에 찔림을 주는 진리보다는 세상의 축복을 전하는 목회자들을 찾아 철새처럼 교회를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성도가 아니라 교인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자신의 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우상숭배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을 담보로 천국에 가려는 뱀과 같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것으로 하나님과 끝인 것입니다.
지금 버린 양심의 죄값으로 사후에 영원한 지옥불을 만나게 될 것이며, 세상에서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버린 죄로 사탄과 함께 영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장 편한 삶을 택하고 있으며, 지옥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단이 구원을 방해하기 위해서 고난을 조금만 주어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하는데,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지옥에 떨어진다면 죽을 수도 없으므로 여러분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의로워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둠이 없는 곳에서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천국에서는 세상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기뻐하며 즐겁게 사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옥은 세상에 있었던 고민과 근심과 사람이 모두 기억되는 곳이므로 세상의 근심과 고통위에 지옥의 고통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받았던 근심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데 지옥에서 사단이 가하는 핍박은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아무리 후회하면서 세상에서 기회가 있을 때 믿음으로 살 걸 그랬다고 지옥에서 한탄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그 자체가 자기에게 이제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통이 배가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부자가 자기 집 문 앞에서 구걸하는 나사로를 보았지만 그는 버리는 음식조차 거지 나사로에게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부자와는 달리 나사로는 거지처럼 살았지만 그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 품에 안긴 것을 보면 그는 믿음을 가진 성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 중에는 부자처럼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나사로 처럼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외모만 보기 때문에 부자는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나사로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죽었을 때 서로 가는 길이 다른 것을 보면 세상의 소유만 보고 믿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에게 지옥에 떨어진 부자가 물 한 방울만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거지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유대인들은 예수님보다 아브라함을 인정하며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구원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그 믿음을 비판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자기의 집으로 보내서 형제들을 구원해 달라는 잘못된 신앙관을 유대인들이 가졌기 때문에 죽은 자는 절대로 세상에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한번 죽으면 절대로 다시 세상에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성경에 책망 받는 대상이나 칭찬받는 대상이 모두 성도인 것을 보면 부자 역시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왕들이 입는 호화로운 자색 옷을 입을 정도로 재산이 많고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할 때 베옷을 입는 것처럼 부자도 고운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하나님께서 흩어 구제함으로 영적으로 더욱 부요케 되라고 큰 축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난한 믿음의 성도에게 나누어주기는커녕 자기만 호의호식했던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금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욕심이 앞서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세상의 법정에 목사와 장로가 고소장을 내고, 목사가 마음대로 재정을 사용하며, 성폭행 같은 어두운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사람들과 쾌락을 즐기고, 사기를 치며, 교회를 함께 비판하는 죄를 짓기 때문에 세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두 목회자나 성도들이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며,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욕심에서 생긴 일입니다.
성도의 수가 많아지면 목회자는 그 수를 자기의 능력으로 삼아 사단이 주는 생각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처럼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성도들은 목회자의 학벌과 교회건물의 크기와 교인 수가 자신의 믿음인 것처럼 생각하며 자기가 믿음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사단이 꾸준히 일한 결과입니다.
목회자가 세상의 권세 자처럼 타락하고, 성도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원하며, 세상의 성공을 자랑하기에 바쁜 것은 사단이 원하는 바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이렇게 사단의 동역자가 되고도 그것이 죄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복음을 담대히 선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위에서 하나님의 법과 말씀을 가지고 어둠을 비춰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와 성도는 세상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들은 오로지 진리만 전해야 하며 성도들이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바로 가르쳐 준다면 성도들은 세상에 동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부자처럼 하나님께 세상의 능력을 받은 성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께 세상의 힘을 받은 교회와 성도는 그 힘을 남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부자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산다면 재물의 축복이 축복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저주가 될 것입니다.
13절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 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불의를 행한 사람은 결국 자신이 저지른 그 죄로 인해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자가 자기가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것처럼 교만하게 자색 옷을 입고, 늘 회개하는 신앙을 가진 것처럼 고운 베옷을 입어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불의한 행동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받는 핍박을 인내와 믿음으로 이겨내는 성도를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십니다.
이런 믿음의 자녀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며 영원히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6-9절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불의한 자에게는 불의 값으로 심판하시고, 믿음을 지킨 성도에게는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분이 바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기가 행한대로 상급도 받고 심판도 받는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발락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면 많은 재물을 주겠다고 하자 거짓선지자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막으셨지만 그 말씀을 끝까지 거역하고 발락왕에게 갔습니다.
발람은 자기가 타고 있는 나귀가 사람의 말까지 하면서 죄를 짓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발락왕에게 많은 재물을 받기 위해서 몇 번이나 저주의 제단을 쌓게 하였고, 발람은 발락왕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절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길을 떠난 발람의 최후는 이스라엘백성의 칼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중심은 변하지 않았고, 세상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처럼 예수님의 희생으로 세워진 교회가 진리보다 세상의 복과 성공을 전하는 것은 발람과 동일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너무 많은 교회가 진리를 선포하지 않고 세상에서 잘사는 것이 복인 것처럼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점점 변질될 것을 안 사도들은 거짓복음과 거짓교사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성도들에게 주의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염려하던 일이 지금까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사단의 역사는 쉬지 않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목숨을 다해 진리의 말씀대로 살지 않자 사단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예수님의 십자가는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거짓말을 전했습니다.
진리를 믿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들이 대속의 사건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거짓말을 듣고 흔들리는 악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어떤 나라이든 가정이든 심령이든 복음이 전해지면 그 나라와 가정과 심령이 빛을 내며 부강하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현상입니다.
복음을 영접하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그것을 보고 목회자가 하나님을 믿으면 잘 산다고 전한다면 그 역시 하나님을 올바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살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까지도 하나님께서 먼저 보호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17절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갈증이 난 사람이 넘쳐 흐르는 샘을 찾은 것처럼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인간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비슷하게 만들어도 생명수를 대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짓교사들이 진리와 비슷한 말을 해도 그들은 물 없는 샘과 같기 때문에 진리를 갈망하는 심령을 흡족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흙으로 창조하시고 직접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치료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기 때문에 진리만이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단에서 아무리 열심히 전한다고 해도 그 설교에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와 천국과 영생이 없는 설교는 바로 물 없는 샘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잘 산다는 설교를 듣게 되면 잘 살고 싶은 욕심에 교회에서 헌신하지만 자기 생각처럼 빨리 성공하지 못하면 예수님까지 버리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복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은 바로 불신앙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는 성도의 마음에는 늘 생명수가 흐르지만, 헛된 거짓복음을 듣는 성도의 마음은 안개가 덮은 것처럼 어두워집니다.
세상의 복을 위해서 살아온 성도의 마음을 채우고 있던 안개가 어떤 순간 광풍에 밀려가는 것처럼 그 모든 희망이 헛된 세상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육의 생명이 있는 한 죄의 자리에서 돌이키는 것이 가장 빠른 선택이며 지혜입니다.
20절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 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인간의 자존심과 자랑은 쓸데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인내하는 사람이 크게 성장하고 성공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존심을 내 세우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몰라서 첫번째 순종을 하지 못했다면 두번째 기회를 주실 때 무조건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현실에 맞게 가장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축복의 틀을 만들어 놓고 그대로 주시지 않으면 불평하며 세상 길로 떠나 버립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충성하기만 하면 분명히 가장 좋은 것으로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응답을 믿지 못해서 스스로 낙심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자녀를 먼저 놓아 버리시는 법은 없습니다.
여러분께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바꾸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는 아무리 깨끗하게 씻겨줘도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 것처럼 진리를 모르는 자는 결국 어둠속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말씀으로 붙들어줘도 진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빛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던 영혼은 세상의 악함이 훨씬 더 어둡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영혼은 더 비참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아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진리를 아는 성도는 회개한 심령에 썩은 열매를 넣지 않으며, 진리의 말씀으로 성숙한 성도는 세상에서 안식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로 씻겨주셨지만 돼지처럼 다시 세상의 구덩이에 몸을 누이는 죄를 짓는다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스스로 지옥을 택한 것이므로 핑계대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어둠의 세력이 여러분을 덮지 못하도록 막아 주실 것이므로 언제나 믿음만 붙드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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