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저금통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지휘자 정명훈은 스스로가 말보다 음악을 먼저 배웠다고 말할 정도로 음악 속에서 자라났다. 일찌감치 음악 공부를 하고 있던 형과 누나들 덕분에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피아노 앞에서 살다시피 하고 재능을 타고났다고는 하지만 그에게 항상 피아노가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정명훈이 15살이 될 무렵,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이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이 피아노 연주에 매달려야 하는 자신의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피아노 연습에 소홀해지고 레슨을 빼먹기 일쑤였다. 그의 예전 같지 않은 모습에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아들에게 야단을 쳐서 억지로 피아노 앞에 앉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어머니는 아들이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그랜드 피아노를 사 주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7남매나 되는 대식구를 돌보아야 하는 집안 형편으로는 당시 천 달러나 하는 그랜드 피아노를 살 돈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랜드 피아노를 살 돈을 모으기 위해 식당에 웨이트리스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팁으로 받은 동전을 커다란 저금통에 매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기 시작했다. 일년 동안 모은 돈이 칠백 오십 달러나 되었지만 아직 그랜드 피아노를 사기에는 모자랐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아들이 피아노에 흥미를 되찾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 저금통을 아들에게 선물했다. “너는 엄마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고 싫어했지. 하지만 나는 네가 제일 가지고 싶어하는 그랜드 피아노를 사 주기 위해 하는 일이라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아직 이백오십 달러가 모자라지만 곧 채워질거야.” 그 선물을 받아든 명훈은 벌써 그랜드 피아노를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그날 밤 피아노 앞에 앉은 명훈의 연주는 여느 때와는 분명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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