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회복과 근대적 시형의 모색
각 시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시대적 감수성을 공유하면서 이를 현대성으로 인식한다. 앞으로 100년 후를 살아갈 사람들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동시대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 우리 시대를 포괄한 현대성의 관념을 갖게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그때에도 여전히 우리가 현대인으로서 기억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성은 역사의 어느 시기에 고정되지 않고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인식되며 변화한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현대시라는 용어 역시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리가 동시대적인 것으로서 경험하는 시들이 우리에게는 현대시로 인식된다. 만약 후대에 이 시들이 더 이상 동시대적인 것으로 공감받지 못한다면 그때는 또 다른 현대시 개념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 근대 초기로부터 민족주권을 되찾게 된 1945년까지 대략 30여 년에 걸친 일제강점기의 시들은 현대시 중에서도 앞선 시대의 것들이자 공감의 가장 먼 경계에 있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들에는 현재의 독자들도 공유하고 있는 ‘현대적 감수성’도 있지만, 근대인으로서 새로운 시대적 경험을 해야 했던 시인들의 당혹감도 있다. 전례가 없는 관념들과 감각, 나만이 느끼는 감정들, 내 상상 속의 세계, 자신의 몸을 이끄는 리듬감과 호흡들을 담아내는 형식을 찾기 위해 시인들은 고뇌와 황홀의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 현대시들은 시대의 아픔을 공유했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지켜냈으며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경계를 확장했다. 그렇기에 이 시기의 작품들은 오늘날 독자인 우리에게는 현대시의 기준선으로서 작용한다. 살아 보지 못한 시대의 읽어 본 적 없는 시 작품들을 교과서에서 대할 때, 시인들이 새로 펴낸 시집을 구해 읽을 때, 혹은 학생이나 생활인일 따름인 친구나 동료, 심지어는 나 자신이 어쩌다 써 본 습작들에 감상을 이야기해 줄 때는 이 기준선이 작용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시기의 시 작품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2024. 3. 28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