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정대상지 |
훈련장소 |
훈련목표 |
테미네이터 |
소승폭,대승폭,소토왕폭 |
소승폭 1일 3회 연속등반(6시간이내) |
위핑 필라 |
토왕폭,실폭,구곡폭 |
토왕폭 2회 연속등반(6시간이내 |
폴라써커스 |
명성산 무명폭A |
빙벽등반증 비박 |
5. 훈련장소별 실행목표
훈 련 장 소 |
실 행 목 표 |
소승폭포 |
* 1일 5회 등반(2인 1조), 1일 3회 연속등반(6시간이내) |
대승폭포 |
* 1일 2회 연속 등반 |
실 폭 |
* 야간등반, 중단에 하강용 볼트 설치 |
토왕성 폭포 |
* 1일 2회 연속등반(6시간 이내) |
소토왕성 폭포 |
* 박빙등반 훈련, 중단에 하강용 볼트 설치 |
잦은바위골 100m폭 |
* 가장자리 박빙등반 훈련 |
구곡폭포 |
* 등반훈련 |
명성산 무명 A폭 |
* 등반훈련 |
장수대 유격장터 |
* 스키 보행훈련 |
설악동 <-> 권금성 |
* 강설후 급경사지역 럿셀 훈련 |
옥녀탕 <-> 안산치마바위 |
* 암.설.빙 혼합지역 등반 |
6. 훈련수칙
* 조기 기상 및 취침(일출전 조식완료)
* 절주. 절연 - 체력훈련 병행(구보 및 체조)
* 훈련일지 기록 및 토론
* 오물 처리 철저
- 세제사용 절재
- 부패성 오물 : 계곡에서 20m이상 격리, 지표에서 30cm이상 매몰
- 비부패성 오물 : 소각 및 수거
* 양보와 솔선수범의 미덕 함양과 실천
8. 훈련 일정계획
일 지 |
훈 련 장 소 |
훈 련 방 법 |
캠 프 |
비 고 |
12/28토 |
50m, 100m폭 |
서울->잦은바위 100m |
100m 하단 |
*설악산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는 대원은 구곡폭, 명성산에서 훈련 |
1/3 금 |
소승, 대승. 실폭 |
잦은바위->소승이동 |
소승폭 |
*캠프정리 |
1/13 월 |
토왕폭, 소토왕 |
소승폭->토왕골 입구 |
토왕골 입구 |
*강설수 3일 이내
|
1/26 일 |
소승, 장수대 |
토왕->장수대,소승 |
소승. 장수대 |
*옥녀탕->안산(비박) *강설이 있을시 스키보행 훈련(1-2일) *강설이 없을 시 4일 |
부근호
91년 12월 31일(화) 맑음 - 출발준비
오후 7시 상계동 회장님댁에 전원이 모여 형수님에게 푸짐한 저녁식사를 대접받고 훈련에 들어가 사용할 장비를 점검하는 중 버너를 한 개도 지참하지 않아 종선형님한테 혼줄이 났다. 종선형 말대로 치밀한 계획 없이 대충 대충 장기훈련을 치루어 내려다 혼줄이 나고 말았다. 장기산행을 준비해야 할 때 식량, 장비, 운행 등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습관을 후배들이 열심히 실천해야 하는데, 요즈음은 거꾸로 선배가 챙겨야 함에 죄송스러울 뿐이다. 내가 신경써서 챙겨야 하는데 괜히 금석이형까지 혼이 났다. 급한대로 두 개의 버너를 빌리고 후에 입산하는 회원이 보충시켜 빌린 버너와 교체하기로 하였다. 밤 8시경에 상계동을 나와 설악산 장수대로 향한다.
92년 1월 1일(수) 맑음 - 소승정찰
우리는 새벽 1시경 장수대에 도착. "CA"의 서브를 넣자 미리 와있던 운회형과 형수님이 어둠속에서 나타났다. 캠프를 설치한 후 간단히 식량과 장비를 정돈하고 라면과 커피를 마시며 형님들은 고스톱을 즐긴다. 새해 첫날 상엽이형님은 운수대길 인것 같다.
오전 7시 정필이가 부시럭 대는 소리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기활형님, 종선형님, 금석이형, 종민이형, 운회형, 향미누나, 정필이, 나 그리고 조선배님 내외분이 함께 소승폭 정찰을 떠났다. 올해 첫 대면한 소승폭은 만만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흉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훈련대원이 아닌 형님들은 금석이형과 나를 불쌍하고 측은한 듯이 "얼음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 이런 흉칙한 모습을 하고 잇는 것이지 아마 몇일후에는 등반이 가능할 거야"라며 위로를 한다.
원정대원을 중심으로 여러자세의 기념촬영을 마친후 소승폭 입구에 주차한 정필이의 탱크(코란도)가 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앞바퀴에 체인을 걸고 빠져 나온다. 캠프로 내려와 점심을 하고 종민이형, 운회형, 형수님, 정필이가 서울로 돌아 갔다.
실폭에는 아침부터 각지에서 온 클라이머들이 줄을 서서 쉴새없이 오른다. 결빙 폭이 좁아 한사람씩 겨우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다. 내일 새벽에 후다닥 실폭을 오르자고 완용이형이 제안한다.
설악동으로 나들이 갔던 동건이형/형수님은 차가 막혀서 양양에서 다시 캠프로 돌아왔다. 사용치 못한 나들이 비용 2만원을 식량보조비로 내놓으셨다.
*소승정찰시 캠프를 지킨 사람은 혜영이누나 였는데,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97년 1월 2일(목) 맑음 - 실폭등반, 소승이동
일찍 일어나 실폭을 등반하기로 하였으나 늦잠을 자는 바람에 7시에 기상하여 조선배님, 금석이형, 완용이형, 향미누나와 함께 실폭으로 향하여 등반준비를 하고 보니 3팀이 벌써 등반중이고 우리뒤로 한 팀이 대기하게 되었다.
얼음상태를 보니 결빙량이 적고 등반자가 몰려 반계단이 형성되어 있다. 상단 완경사는 얼음이 떨어져 나가 완전히 믹스 클라이밍을 해야 한다. 완전한 금석이형 스타일이다.
등반을 마치고 캠프로 돌아와 보니 형님들이 캠프를 소승으로 이동하기 쉽게 거의 정리를 해 놓으셨다. 식사도 물론 준비되었다. 빈속에 등반을 하고 아침을 먹으니 완전히 거지식으로 먹어 치워 버렸다. 차량 2대를 동원하여 형님들이 합심하여 짐을 소승폭앞까지 옮겨 놓았다. 몸 건강히 잘 있으라는 형님들을 뒤로하고 금석이형과 나는 캠프지를 선택하였다.
소승폭 전면 우측에 텐트를 칠 정도의 자리를 찾아 눈을 치우고 캠프를 설치하여 짐 정리를 마친다. 참치와 돼지고기를 응용한 찌개로 근사하게 저녁을 먹였다. 오늘 나의 찌개는 거의 예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외모와 달리 식성이 까다로운 금석이형도 참으로 맛있게 드신다. 식사를 마치니 밖은 바람을 동반한 약간의 눈이 내린다.
여러 가지 소재로 야부리(금석이형의 표현)를 풀다가 금석이형이 토왕 야빙을 하자고 한다. 아이고! 앞으로 고생문이 훤하다.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하다. 내일 아침에는 오늘의 예술을 다시 재탕해서 먹어야지. 여기는 오가는 사람도 없고 완전히 금석이형 말대로 우리는 유배를 온 것이다. 그래도 소승이 앞에 버티고 있으니, 지금 이순간 소승의 느낌이 온 마음에 가득 차 있다. 금석이형도 이심전심일 것이다.
금석이형은 아까부터 새로 구입한 워크맨을 매만지고 있다. 워크맨 덕으로 우리는 무지크를 들으며 작은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자연과 동화된 산행에는 어긋나는 스타일이지만... 하기야 이 시대에 어떻게 완전한 타잔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92년 1월 3일(금) 맑음 - 소승폭등반
전날은 거의 12시에 잠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늦잠을 즐기고 12시에 기상. 아침으로 전날의 예술을 재감상하고, 장비를 챙겨 소승등반 준비를 한다. 소승밑 스타트지점에 도착하여 등반을 시작하여 하는데, 이게 왠일인가? 로프를 가져오지 않았다. 다시 내려가 로프를 챙겨오니 금석이형이 준비 완료해 기다린다. 얼음의 모양이 영 이상하게 생겼는데 지나가는 말로 금석이형에게 "제가 할께요"했더니 "그래랴!"하신다.(속으로는 자신이 선등하고 싶으면서도....)
등반을 시작. 날씨가 푹해서 낙수가 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낙수는 없었다. 트레버스를 하는데 동작이 약간 이상하여 한스�\ 내려오니 자세가 잡힌다. 40m정도 오른 후, 스크류를 3개 치고 올라오는 금석이형을 빌레이 본다. 합류하여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등반을 계속할까 하였으나 시간이 늦었고 하여 여기서 하강하기로 한다.
금석이형이 굳이 록하켄을 치고 하강하자기에 불안할 것 같다고 말을 하니, 박던 하켄 하나가 빠진다. 아이스 스크류 2개와 록하켄 하나를 박고 위에 등반루트를 확인한 뒤 텐트로 내려왔다.
텐트를 다시 잘 정돈하고 저녁을 먹으며 불고기양념으로 고기를 재워 놓으며 내일 등반이야기를 한다. 불고기는 너무 짰다.
92년 1월 4일(토) 맑음 - 소승폭 등반
어제는 10시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금석이형은 곧 잠이 들었는데, 나는 왠지 소승생각에 11시 정도에 잠이 들었다. 6시에 일어나려 했는데, 7시에 눈이 떠졌다. 8시에 장비를 챙겨 소승으로 출근 첫 도장을 찍었다.
어제와는 달리 금석이형이 이 제안한 왼쪽으로 스타트를 하였으나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과감하게 빽을 하여 금석이형이 출발하고 거침없이 첫 번째 난관이라 판단한 곳을 가볍게 올라간다. 오버행 밑에서 스크류를 설치, 오르기가 수월치 않아 보인다. 금석이형이 몇번을 시도해 보지만 여의치 않아 내가 교대하기로 했다. 처음 내가 후퇴한 곳을 톱로핑으로 오르니 부담없이 통과하고, 오버행 밑에 도착하니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 자세밖에 나올 수가 없었다. 밑에서 오버행을 돌파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왔는데, 못 올라가면 안되지 하는 생각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과감하게 몸을 끌어 올려 제로X를 오보행 위를 던졌다. 잘 박혀 준다. 다시 몸을 올려 가지다를 박고 하여 오보행을 돌파하고 직벽밑에서 스크류를 설치한다.
해가 들어 땀이 난다. 오버미튼을 벗고 목장갑만으로 등반을 계속 고드름통을 오르는데 매우 힘들고 어렵다. 자기낙빙을 맞으며 어거지로 오른다. 스나그 설치, 물흐르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얼음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몸을 픽켈에 의지하고 등반을 계속할 것인가, 내려갈 것인가 신속한 판단을 내리려고 애써본다. 얼음상태나 기온으로 보아 내려가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 스크류 2개를 치고 하강한다.
금석이형에게 기온이 높아 밑에서 보기와는 달리 얼음이 무너질 것 같아 내일 등반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애가 겁주고 그래"하신다. "형! 몸 사려야지요. 긴긴 겨울인데요."해서 자일을 왼쪽 바위지대로 끌고와 하켄을 설치하고 고정시킨다.
텐트로 돌아와 라면을 먹는데 웬 사람소리가 들린다. "아니 여자 아니야" 하나, 둘, 셋, 넷 아이고 사내도 하나 있네. 사내가 우리 텐트로 다가와 이화여대팀인데 위킹 왔다가 들렀다고 말을 건다. 자기는 시립대팀이라고 한다. 우리는 청악이라고 하니 잘 모르는 눈치다. 아니 이 사람은 월간지도 안보나?
사람들이 사진 촬영 후 내려간 다음 5시경에 꽤 큰 낙빙이 두차례 계속되었다. 우리 캠프를 덮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금석이형이 녹음기로 훈련기록을 하려고 하지만 자동응답전화에 놀란 사람처럼 주저거리기만 한다. 오늘은 서울에서 지원조가 밤늦게 도착할 것이다. 12시는 되어야 오겠지. 긴긴 밤을 뭐하나!
92년 1월 5일(일) 흐림 - 소승등반
전날 밤에는 지원조가 12시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여 10시에 잠을 잤다. 아침 햇살이 텐트사이로 비치는데, "근호야! CA!" 서브가 온다. 침낭속에서 "CA!" 금석이형이 꽤나 놀랬을 꺼다. 텐트문을 열고 보니 정필이와 합승이형이 보인다. 뒤를 이어 조선배님과 아주머니가 보인다. 이른 아침부터 캠프는 활기가 돌고 김치볶음밥을 아주머니가 맛있게 만드신다. 이야기를 들으니 새벽 1시에 소승폭 입구에 도착 도로옆에 차를 세우고 잠을 잔 다음 아침에 올라온 것이라 한다. 조선배님 내외는 민박을 하시고 올라 오셨단다. 어제 자일을 픽스한 곳을 금석이형이 눈꼽이 떨어지지 않은 눈으로 유심히 관찰하신다. 아침을 들고 합승이형이 굳이 설것이를 하겠다 하며 빨리 등반준비를 하라신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형!'
등반준비를 마치고 금석이형이 오르신다. 전날 올랐던 오버행을 가볍게 오르고 고드름 직벽밑에 도착하여 짧은 루트파인딩을 한 다음 스크류 한 개를 치고 계속오르기를 반복, 금석이형이 폭포위로 넘어 간다. 조금후 빌레이를 풀고 등반자일을 맨다. 오버행을 넘고 고드름을 등반하며 선등할때는 취할수 없는 과감한 동작을 시도해 본다. 피크를 박지 않고 살짝 살짝 걸치며 올라 본다. 역시 후등은 부담이 적다는 것을 실감한다. 정상에 도착 금석이형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며 양쪽나무에 자일을 고정. 서로 외줄하강을 한다. 조선배님이 션트등반을 시작하셨다. 한동작 한동작 굉장히 침침하게 움직이신다. 오버행을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르신다. 고드름밑에 도착 하강을 하신다는 말에 아주머니가 "꼭대기도 못올라 갔으니 밥을 안주겠다."고 하신다.
조선배님이 하강을 한 후 합승이형과 아주머니가 해 놓은 수제비를 맛있게 먹고 원통으로 장을 보러 나갔다. 금석이형은 캠프를 지키시고 우리는 차를 달려 원통에 도착, 여러 가지 부식을 푸짐하게 지원받고 조선배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며 정필이와 스승으로 돌아 온다. 이렇게 물심양면 지원하시는 형님들의 얼굴을 한분 한분 떠올리며 캠프에 도착하였다.
금석이형과 부식정리를 마치고 꽁치통조림과 생두부를 안주로 소주 1병을 비우며 오늘의 등반이야기와 내일의 등반계획을 의논했다. 금석이형은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를 부르며 녹차를 마신다. 이곳이 좋고, 금석이형이 좋고, 녹차가 그윽하다. 내일은 소승을 세 번하기로 했다.
92년 1월 6일(월) 눈 - 소승폭등반
전날은 9시에 취침하였다. 아침 7시에 일어나니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7cm의 적설량이었다. 아침을 서둘러 먹고 전날 고정시켜놓은 자일 2동 중 좌측자일을 이용 선트확보로 등반을 개시, 시간을 체크하여 보니 1시간이 소요되었다. 다시 하강. 금석이형이 30분만에 가볍게 오르신다. 나는 밑에서 노래를 부른다. 2번째 등반 40분이 소요되었다. 금석이형은 두 번째 등반에서 20분이 걸렸다. 세 번째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하강을 마치고 텐트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한다.
오늘 등반을 계획대로 소승폭을 세 번 올랐다. 오후에는 해가 들지 않았음에도 날씨가 푹해져 상단의 고드름에는 심하지 않을 정도의 물이 흘렀다. 금석이형은 두 번째부터 굳이 어려운 부분을 찾아 오르려는 노력을 보였다. 하루에 5번정도는 무리없이 할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내일은 5번을 코스를 조금씩 바꿔가며 올라 팔을 완전히 펌핑시키기로 하였다.
오늘은 하루 종일 눈이 내린다. 우리는 텐트는 소승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기에 눈사태가 은근히 걱정된다. 옮길만한 적당한 자리도 없고, 텐트위의 조그만 숲을 믿고 그냥 있기로 했다. 등반시간을 제외한 남는 시간이 너무 많다. 금석이형의 눈빛에서 내일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갈 각오를 읽을 수 있다.
92년 1월 7일(회) 바람과 눈 - 휴식
전날 10시에 취침하여 아침 6시에 일어나니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눈도 많이 쌓여 있다. 텐트주위의 눈을 치우고 아침을 준비한다. 개스도 많이 끼어 있지만 전날밤에 떠놓은 물이 얼지 않은 것을 보아 기온은 상당히 푹한 것 같다. 밖으로 나와 소승폭을 관찰하며 등반여부를 판단한 끝에 얼음질이 불확실하므로 날씨를 살피다가 오후에라도 기온이 떨어지면 등반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후에도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어 등반을 포기하고 캠프주변정리와 장비, 의류, 식량을 다시 정리, 체크하고, 오후 2시경 나는 오늘 들어오기로 한 종수형을 마중 나간다. 옥녀탕 휴게소까지 히치 하이크하여 형님들에게 전화를 하였으나 왠일인지 한분도 자리에 계시질 않는다. 간신히 합승이형과 정필이에게 등반상황을 전해주고 종수형은 바쁜 일이 있어 금요일에나 들어 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매점에서 과자와 캔맥주 2개를 사들고 자가용을 얻어 타고 다시 캠프로 돌아 왔다.
금석이형과 캔맥주 1개를 나눠 마시고 칼국수로 저녁을 먹고서 가지다 픽켈을 손보고 벨트의 확보줄도 가는 슬링으로 교체를 한 뒤 라디오를 틀어 음악을 듣는다. 종수형이 들어 올줄로 예상했던 것이 상황이 바뀌자 휘발유, 개스, 건전지등이 소모품을 다시 체크하여 본다. 연료와 건전지는 최소한으로 절약을 해야 할 것이다. 내일은 5번등반을 해야 한다.
92년 1월 8일(수) 흐림 - 소승폭등반
5시에 일어나려던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고 7시에 일어났다. 금석이형이 먼저 등반을 한 후 내려와 어제 하루 쉬어다가 하니 몸이 무겁다 하신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두 번째 등반부터는 몸이 풀려 괜찮은 것 같았다. 3회 등반까지 휴식 없이 등반과 하강을 반복한다.
3회등반을 마치고 나니 낙수가 심해서 트라우져가 완전히 젖어 버렸다. 등반 중 자연낙빙도 상당히 심하게 있었다. 첫 번째 오버행의 스타트지점 스텐스가 없어 졌고 상단의 고드름 직벽은 바위에 떠 있어 상당히 불안하게 하였다. 라면을 먹고 나서 얼음상태가 불안하며 기온도 높아져 있으니 저 빈약한 얼음을 그만 찍어 대고 내일 얼음이 두텁게 얼수 있도록 하자고 마음 약한 금석이형을 유혹하여 텐트로 돌아왔다.
텐트안에서 동태찌게를 끊이는 동안 금석이형은 텐트 밖의 눈도 치우고 물도 떠다 주시고 한다. 단 둘이니 등반대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빨리 종수형, 상규형, 홍준이가 들어와야 금석이형이 대장으로서의 위엄을 갖출 수 있을텐데. 저녁을 먹기전 금석이형은 내일 아침 한번 깨울 때 일어나지 않으면, 둘이서 얼음에 10분간머리를 박자고 하신다. 기필코 일찍 일어 나야겠다. 오늘 아침도 5시에 금석이형이 나를 툭툭 건드려 보았으나 계속 잠만 자기에 깨우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92년 1월 9일(목) 저녁에 눈 - 소승폭 등반
5시에 금석이형의 움직임을 느끼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차를 준비한다. 콜맨버너에 휘발유를 넣다가 넘쳐 흐르며 텐트바닥의 종이박스밑에 묻는다. 버너를 펌핑하고 점화전에 바닥에 남은 휘발유가 남았나 확인하려고 바닥에 라이타를 대는 순가 바닥에 불이 번져 나간다. 몇초간을 지켜보다가 옆에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덮는다, 어택색으로 불을 덮기 시작 손으로 성급히 이것저것을 덮어 댄다. 불길은 다행히 매트리스를 조금 녹였을 뿐 별다른 피해없이 진화되었다. 그런데 금석이형의 새끼손가락에서 굵은 핏방울이 떨어진다, 순간 금석이형의 얼굴이 굳어지고 상처부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깊이 찢어진 것 같다. 원인을 생각해 보니 불을 덮느라고 손을 덮는 손간 콜맨버너 바람막이에 손을 쓸린 것 같다. 무딘 콜맨버너의 바람막이에 저렇게 깊이 찢기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병원에 가서 봉합을 하자고 하였으나 금석이형이 한사코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대장인 금석이형의 명을 따라 나는 소승폭을 오른다. 5회를 쉬지 않고 오르려고 하였으나 세 번째는 수월치 않다. 스윙기술이 아직 원숙되지 않아서 그런지 얼음의 파괴가 많고 한번에 박히지 않는다. 전날 기온이 푹하데다가 눈이 덮히고 그위에 낙수가 흘러 다시 얼으니 빙질이 매우 약하다. 상단고드름에서 아이젠이 밀리며 추락하였으나 션트가 잡아준다. 네 번째 등반때에도 같은 장소에서 추락한다. 아이젠이 약한 얼음에서 밀리고 깊숙히 막인 피크도 얼음째 떠버리고 만다. 아직도 나의 실력이 부족함을 다시 확인한다. 밑에서는 금석이형이 다친 손을 옷안에 집어넣고 나의 등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신다. 무척 외롭고 추워 보인다.
쉬지 않고 4회를 등반하니 손의 펌핑보다는 전체적인 지구력이 약함을 느낀다. 오늘은 4회만 하기로 하고 금석이형에게 내려가도 괜찮냐고 물은 뒤 자일을 옆으로 걷어 고정시키고 내려오니 금석이형이 무척 떨고 계신다.
원통을 향해 내려간다. 마침 운수좋게 차를 얻어 타고 원통에 도착 병원에서 다섯 바늘을 꼬맨다. 짜장면을 사먹고 형님들에게 전화를 한다. 기활형님께서 많이 걱정하신다. 합승이형과도 통화를 하고 사고 정황을 간단히 전한다. 종수형에게 전화를 하니 구곡에서 낙빙을 맞아 코뼈가 주저 않았다 한다. 다음주 월요일에는 들어오겠다고 한다. 다방에서 커피도 마시고 시장도 보고 버스를 타고 장수대 까지 와서 다시 좋은 분을 만나 차를 얻어 타고 소승폭 입구까지 편하게 온다. 입구에서 캠프까지 오는 동안 이렇게 편하게 산행하다 짐을 지고 위킹하는 것을 잊어 버리겠다고 하신다.
텐트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여 텐트밖으로 내놓고 텐트를 좀 더 넓게 쓰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밖을 보니 함박눈과 싸락눈이 교대로 내린다. 내일은 또 얼마나 쌓이려나 걱정이다. 그러나 걱정한다고 내리던 눈이 그치지도 안을 것이요 눈이 오면 오는데로 내가 여기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랴!
92년 1월 10일(금) 맑음 - 소승폭 등반
간밤에는 눈이 30cm내렸다. 8시에 일어나 우유와 빵을 식사를 마치고 나 혼자 폭포로 향한다. 금석이형은 손가락에 얼마나 신경이 쓰일까? 얼음이 눈에 많이 덮혀 있다. 두 번째에는 상단의 고드름을 좀더 어려워 보이는 좌측으로 올라보니 생각과는 달리 얼음질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얇은 푸석얼음에 고전을 한다. 두 번째 등반을 마치고 나니 더 이상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매번 등반하는 루트를 크게 벗어 날 수 없다. 우측을 오르자니 얼음상태가 너무 불량하며 오버행 위를 밟고 서야 하는데 그러면 무너질 것 같고, 그렇다고 같은 루트를 매번 조금 변형하여 오르니 얇은 얼음이 부서져 바위가 드러나고 얼음은 점점 빈약해 져 간다.
캠프로 돌아와 칼국수를 해 먹고 텐트주위의 눈을 치우고 있으니 낙빙소리가 들린다. 30분정도의 간격으로 몇번의 낙빙이 계속된다. 폭포의 좌우측에 걸렸던 얼음들이 푹해진 기온을 못이기고 떨어진 것이다.
돼지고기 남은 것을 후라이팬에 구워 소주를 혼자 마신다. 금석이형은 손가락 때문에 못마시니 얼마나 고플까? 녹음기에 나의 노래를 녹음해 들어보니 이상하게 들린다. 내일은 서울에서 형님들이 오실텐데.... 몇시쯤이면 도착할까 시간을 헤아려 본다. 저녁 10시가 넘어 금석이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줄 알았으나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 서브가 들린다. 수현이형이 오신 것이다. 오늘 저녁에 정필이도 온다고 했단다. 잠이 들어 있는데 정필이가 완용이형과 함께 새벽 3시에 도착한다.
92년 1월 11일(토) 맑음 - 소승폭 등반
8시에 일어나 전지분유를 타 먹고 수현이형이 먼저 등반을 시작한다. 올해 첫 빙벽등반이라서 그런지 무거운 동작으로 오르던 수현이형이 상단지점에서 내려온다. 내가 등반하는데 전날에 비해 얼음을 찍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상단에는 가로로 크게 균열이 가 있는 것이 상당히 불안하다. 소승폭 얼음이 몇일 못 갈 것 같다. 완용이형이 스타트하자마자 낙빙을 맞고 중단에 진입하고는 상단은 다음에 해야 겠다며 내려오신다. 정필이는 스윙을 상당히 힘있게 하나 중단 오보행 아래에서 겁을 먹었다 하며 등반을 포기 하강을 한다. 군대 제대후 첫 빙벽등반을 소승에서 했으니 무리일 것이다.
등반을 마치고 금석이형과 정필이는 서울로 전화를 걸러 외출을 하고 수현이형과 나는 설사면에서 설상등반기술과 프렌치테크닉을 연습해 본다. 캠프로 돌아와 고기를 구워 소주를 마시는데 금석이형과 정필이가 돌아 왔다. 저녁식사를 고기로 대신하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저녁 늦게 형님들이 서울에서 오셨다. 눈길을 달려온 형님들이 무척이나 반갑다.
92년 1월 12일(일) 흐림 - 소승폭 등반, 캠프이동
오랜만에 서울에서 오신 형님들로 텐트의 분위기가 밝다. 민박을 하고 올라 오신 종민이형과 형수님도 보인다. 종민이형은 고장난 대형버너와 씨름을 한다. 문기형이 등반을 시작한다. 문기형 역시 상단 고드름에서 후퇴를 한다. 상엽이형이 벨트를 차고 픽켈을 한 자루 달라기에 제로엑스를 권해 드리니 곧 등반을 시작하신다. 직벽 10미터를 오르신 상엽이형은 갑자기 이상한 자세를 취하더니 잘 나가던 페이스를 완전히 버리고 얼음을 껴안는 자세를 취하고 만다. 밑에서 지켜보던 형님들이 폭소를 터트리고 문기형이 상엽이형을 도우러 출발한다. 조선배님이 등반준비를 한다. 지난주에 중단까지 등반을 해 보신 조선배님은 차근차근 신중하게 오르신다. 상단 크럭스에서 상당한 고생을 하신 끝에 완등을 하신다. 모두 조선배님의 완등을 축하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 토왕골로 캠프이동에 들어간다.
뉴월드콘드에 집결하여 목욕을 하고 종민이형과 문기형 그리고 나는 소승폭을 완등한 기쁨으로 조선배님이 내놓으신 50,000원으로 속초 중앙시장을 찾아간다. 모듬회, 불고기등등으로 정말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신 형님들이 서울로 올라 가신다. 금석이형도 "산"자의 인터뷰 때문에 종민이형 차편으로 서울로 올라가신다.
콘도에 남은 인원은 종선형님. 용문이형, 상엽이형, 혜영누나, 나 이렇게 5명이 됐다. 콘도에서 형님들은 고스톱을 즐기시고 나와 혜영누나는 밀린 빨래를 한다. 오늘 등반에서 고생을 하신 상엽이형이 끝발을 올리신다. 저녁 늦게 지하의 볼링장에서는 용문이형의 완전한 독무대였다. 종선형님은 볼이 생각대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시고 상엽이형은 완전히 힘으로 밀어 부친다. 혜영누나는 계속해서 용문이형에게 강의만 받는다. 방으로 돌아와 형님들은 고스톱을 2년 더 치시기로 하고 혜영이누나와 자는 저녁참을 준비해 술을 곁들여 먹는다.
92년 1월 13일(월) 흐림 - 토왕골입구 캠프설치
11시경에 기상하여 밥을 먹고 짐을 챙겨 토왕골로 달린다. 토왕골입구 아롱이네 상점의 새로운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대형 야외천막 밑에 속초에서 구입한 스치로폰을 깔고 텐트 2동을 설치한다. 옆에는 울산 고헌산악회 심영근씨 일행이 와 있었으나 그들은 토왕폭등반을 떠나고 자리에 없었다.
종수형과 홍준이에게 편지를 남기고 속초로 나가 횟거리와 장을 보고 콘도로 돌아왔다. 용문이형과 혜영이누나 그리고 나는 일주일간의 식량계획을 상의하여 작성한다. 오늘부터 용문형님이 가게부를 작성하라 하시어 훈련일지 뒷장에 구입한 것들을 기록한다. 아롱이네집에 전화를 해 보니 7시경에 도착한다는 종수형과 홍준이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심영근씨가 전화를 받아 토왕폭의 얼음상태를 전해 준다.
8시경 금석이형한테서 전화가 왔다. 원통에서 종수형과 홍준이를 만나 같이 오고 있는 중이라 한다. 금석이형은 11시경 콘도에 도착 "산"지와 인터뷰한 이야기와 그밖의 서울이야기를 해 주고 나는 오징어볶음 사리를 만들어 오징어회와 함께 맛있는 저녁식사를 한다. 종선형님은 술 많이 들라고 권하고 나서 훈련대원이 마실 술을 혼자서 독주하신다. 원정에 관한 사항을 토의하고 형님들은 고스톱을 즐기시고 나는 3시경 잠이 든다.
92년 1월 14일(화) 맑음 - 토왕골 캠프정리
간밤에는 눈이 약 20m가량 내렸다. 형님들은 서울로 가시고 우리는 캠프를 정리한다. 토왕골입구는 마치 우리의 터나 다름 없는 것 같다. 아롱이네 전화로 서울의 연락을 즉시 받을 수 있고 수년동안 이 곳에서 겨울 캠프를 치고 지내니 토박이 같은 대접을 받기도 한다. 토왕폭에서의 등반상황과 각종 조난 사고소식도 모두 이곳으로 모여 든다. 많은 산악인들이 겨울 토왕골에는 항상 청악이 진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인 것 같다.
내일은 전원이 토왕폭 하단을 등반하기로 하였다. 내일부터는 종수형과 홍준이가 취사와 잔일을 함께 하게 된다. 그들은 사실 훈련대원을 지원해 주기 위해 아니 나를 도와 주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도 볼수 있다. 자신들의 등반열을 식히고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형과 아우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92년 1월 15일(수) 맑음 - 토왕폭하단 등반
아침 7시에 종수형이 식사하라고 깨운다. 아침준비를 종수형과 홍준이가 일찍 일어나 조용히 해 놓은 것이다. 아침식사을 훈훈한 에너지와 함께 마친다. 비룡폭 위의 캠프터까지는 럿셀이 되어 있으나 그 위에는 우리가 럿셀을 하며 올라가니 파일이 흠뻑 젖는다. 토왕폭 근처에서 야영하는 팀은 인천대학팀과 마산팀 밖에 없다. 밑에서는 우리가 럿셀한 길을 따라 대학산악부가 따라 오고 있다.
하단에 도착 금석이형은 제일 왼쪽 나는 제일 오른쪽으로 등반을 시작한다. 금석이형쪽은 베라글라상태의 얇은 얼음이고 내쪽은 푸석얼음이다. 금석이형 체질에 맞는 얼음이다. 나는 푸석얼음과 싸우며 힘들게 오르고 내 뒤에 종수형, 홍준이가 올랐다. 하강후 라면을 먹고 홍준이와 쉬운쪽으로 오르려 하는데 용문형이 고드름 오버행쪽으로 오르라고 하신다. 오버행에서 체력훈련을 충분히 하고 하산한다.
저녁식사를 마친후 용문이형은 홍준잉에게 빙벽등반기술 특강을 하시고 금석이형이 촬영한 비디오를 같이 보며 각자의 등반이야기를 나눈다. 나의 등반모습을 보니 필요 없는 동작이 너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종수형과 홍준이는 자신들의 등반 모습을 관찰하며 미숙한 동작을 열심히 찾아보려는 눈치다. 오늘 저녁 후식으로 과일, 빵, 햄등을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 내일도 역시 하단에서 집중적인 훈련을 하기로 했다.
92년 1월 16일(목) 맑은 후 눈 - 토왕폭하단 등반
오늘 아침은 홍준이 혼자 조용히 준비한 것 같다. 홍준이는 오늘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의 형님들에게 훈련상황을 잘 전하라는 당부와 함께 작별을 하고 우리는 토왕폭으로 향한다. 날씨가 더워서 인지 전날보다 땀도 많이 나고 몸도 더 무거운 것 같다. 하단에 도착하니 인천 대학팀이 맨 우측으로 몇 미터 오르고 있었으나 수월치 않은 듯 오른쪽으로 트레버스를 하고 있다.
종수형과 나란히 출발한다. 하강 후 아까 설치한 확보물을 이용 다시 등반한다. 혜영이누나가 등반을 하니 처음부터 고전을 한다. 왠지 몸이 무거워 보인다. 점심식사 후 또 다시 리딩, 하강후 션트확보로 네 번째 등반을 마치니 장딴지에 힘이 든다. 하강중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캠프로 돌아와 보니 홍준이가 서울로 떠나기 전에 캠프를 말끔히 정리하고 갔다. 모두 쓸만한 후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울산의 고헌산악회와 함께 돼지머리 삶은 고기로 회식을 한다. 서로 즐거운 등반이야기를 하며 발전적인 지적을 나눈다. 내일 다시 하단에서 훈련을 하고 모래쯤 상단등반을 하기로 했다. 눈이 여러 날 온 다음에 아직 중단이상을 올라간 팀이 없어 중단렛셀에 상당한 힘과 시간을 소비할 것 같다.
등반토론중 용문이형은 종수형의 등반이 전날 지적해 준 점이 많이 개선되었다면 좀 더 많은 노력을 당부하신다. 웬일인지 금석이형이 금주를 하신다. 금석이형의 비디오카메라는 매일 저녁 그날 각자의 등반모습을 즉시 관찰하며 스스로의 결점을 발견하고 교정해갈 수 있는 좋은 장난감이다. 캠프의 5명은 모두 항상 즐겁고 호흡도 잘 맞는다.
92년 1월 17일(금) 맑음 -소토왕골 등반
전날 밤 나는 화장실옆에서 비박을 했다. 오늘은 원래 토왕폭 하단에서 훈련하기로 되어 있는데 대학연맹팀등 많은 팀이 토왕폭을 향하고 있어 계획을 변경 종수형과 함께 소토왕폭 정찰을 나선다. 소토왕폭밑에서 좌측으로 돌아 믹스 클라이밍을 한다. 지난해 선호형과 함께 이곳을 등반하였지만 올해는 수량이 적고 눈이 많아 상당부분을 힘들게 렛셀하며 오른다. 헉헉 거리며 안락암에 도착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하강-이럴때는 꼭 알프스에 온 것 같단 말야! 소공원에서 바로 금석이형이 촬영한 비디오를 보러 산악인의 집에 갔으나 TV가 없는 관계로 다시 C지구의 명보상회로 갔으나 이번에는 VTR이 없어 캠프로 그냥 돌아 온다.
캠프회의에서는 내일밤 토왕폭하단의 동굴에서 비박을 하고 새벽 일찍 등반을 시작하여 토왕폭을 2,3,4회..... 하는데 까지 등반하기로 결정했다. 오늘 토론에서는 나의 체력과 지구력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었다. 별 수 없다. 하는데 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밖에.... 내일은 종민이형과 운회형 그리고 다른 형님들도 서울에서 온다고 하나 금석이형과 나는 하단으로 올라가 비박을 하니 내일 모래에나 형님들을 볼수 있을 것이다. 밖에는 바람이 몹시 불고 있다.
92년 1월 18일(토) 맑음 - 토왕폭 등반준비
오늘 아침도 종수형이 준비해 놓고 기상을 외친다. 나로선 정말 황송할 뿐이다. 이번훈련만 끝나면 모두 내가 해야지. 아침을 들고 오늘밤 비박과 내일 토왕폭 등반을 위한 짐을 챙긴다. 2시경 캠프를 출발하여 토왕폭 하단에 도착하니 마산의 이기근씨일행이 상단에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금석이형과 나는 간단히 토왕하단을 등반한다. 용문이형과 혜영이누나, 종수형은 설동을 열심히 파고 있고, 나는 하단 우측을 오르락 내리락, 금석이형은 오보행으로 등반. 자일회수를 끝내니 형님들의 수고로 우리의 아늑한 청악설동이 완성되어 있다.
형님들은 캠프로 내려가고 종수형은 종민이형 뵈러 코오롱등산학교 숙소인 일진산장으로 내려간다. 금석이형과 나는 설동안에서 청국장을 끓여 먹고, 금석이형은 독수리 잡으러 눈보라 휘몰아치는 설동밖으로 씩씩하게 나갔다 오신다. 설동안은 조금 좁기는 했지만 무척 아늑하다. 더구나 형님들이 손수 파주신 것이니 마음 깊숙히 훈훈하다. 내일은 토왕폭을 2회이상 등반하는 날이다. 서울서 오신 형님들에게 열심히 훈련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기로 다짐을 한다. 마산의 이기근씨는 어둠속에 랜턴을 켜고 상단등반을 마치고 밤 늦게 캠프로 내려 간 것 같다. 밤늦게 종수형이 힘내라고 과일과 드링크제를 사가지고 올라 오셨다. 형님들 몰래 소주 1병을 마시고 잠자리에 든다.
92년 1월 19일(일) 맑음 - 토왕폭 등반과 구조
새벽 4시경 기활형님, 용문이형, 운회형이 올라 오셨다. 이 신 새벽에 잠도 안자고 올라 오신 형님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간단히 스프로 아침을 하고 출발하려는데, 기활형님이 새로 구입한 내셔날제 리튬전지 해드랜턴을 금석이형과 나에게 각각 안겨 주신다. 휘황찬란한 해드랜텐을 켜고 새벽 5시반에 금석이형의 선등으로 출발 상단 스타트지점에 도착하니 날이 조금씩 밝아 온다. 상단의 빙질이 별로 좋지 않은데도 금석이형은 어려운 곳으로만 골라 오른다. 어이구 두 번째는 내가 선등하며 회수않은 스나그를 따라 올라야 하는데 고생문이 훤하다.
정상에 도착 커피한잔을 마시고 하강을 시작 테라스에 설치된 스크류에 자일을 걸고 하강하는데 밑에서 사람이 보인다. 초암의 이상록형이 상단등반을 하고 있다. 하단에 도착 형님들이 준비한 음식을 간단히 먹고 내가 선등하여 출발한다. 상단테라스에서 다시 하강을 하는 상록이형을 만난다. 정상의 완경사를 열심히 헤집고 오르는데, 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 내가 헛소리를 듣다니. 거의 정신이 없구만! 하며 계속 올라 정상에 다달아 고개를 드니 웬 여자가 여러명 보이네? 이게 환상인가? 귀신인가? 대낮 토왕정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에게 환성을 지르고 있으니,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저마다 나에게 구조대원이냐, 그밑이 어디냐?, 헬기가 오느냐?, 우리 좀 살려 달라. 설악동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냐? 등의 수십사지 질문공세를 한꺼번에 받으며 묵묵히 소나무에 확보를 하고 밑의 형님들에게 무전을 넣는다. 밑의 형님들은 장난으로 여기고 믿지 않으신다. 끝내 5-7명정도의 등산객인 것으로 생각하시다가 결국 조난등한 등산객들과 직접 대질심문을 한 끝에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신 모양이다.
이분들의 말을 들어니 오늘 새벽 오색을 출발하여 대청을 경유 화채능을 타다가 길을 잘못들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으니 갑자기 나타난 엄청난 절벽에 기겁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금석이형은 벌써 출발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용문이형은 금석이형에게 정상의 사람(여자)들 신경쓰지 말고 조심스럽게 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르라고 교신을 한다. 밑의 종선형님은 짓궂게 80명중 여자숫자와 연소자, 고령자를 물어 오신다.
금석이형이 정상에 도착하니 80명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영한다. 그들에게는 금석이형이 설악산의 용감한 전사와 같이 보였을 것이다. 80명에게 몇가지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좌측계곡으로 하산하기 시작한다. 밑의 종선형, 명식형, 용문형, 완용형, 정필이, 운회형, 합승이형은 자일과 따뜻한 차를 준비하여 우리가 내려올 계곡으로 올라오고 있다. 80명중 10명은 하이포서미아 초기증상을 보이고 있다. 좌측계곡 하산길에 나타나는 2개의 빙폭을 걱정하며 럿셀하여 내려가는데, 첫 번째 빙폭에 벌써 형님들이 도착하여 로프를 픽스시켜 놓았다. 한사람씩 내려 보내며 중간 중간에서 우리가 잡아준다. 약 90명이 지나간 자리에는 깊이 1.5m의 눈통로가 생긴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여 마지막 사람을 토왕폭입구 삼거리에 내리니 이미 어두어져 있다.
삼거리에는 설악산 구조대원이 아롱이네집 아저씨가 따뜻한 차를 준비하여 맞이하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룡폭 밑에 가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선두는 아직 비룡폭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고 교신이 온다. 여자 1명이 하이포서미아증상이 심해 종선형님이 열내는 하마 2개와 장갑을 벗어준다. 대부분의 사람이 스패츠도 없고 장갑도 부실하다. 운동화차림도 많이 보인다. 남자 1명이 증세가 심해 마산팀의 텐트에서 응급 맛사지를 하고 아롱이네 아저씨가 엎고 내려오신다.
밤 10시가 돼서야 모두 아롱이네 집까지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오늘 하루는 토왕폭 2회등반과 80명을 구조했다는 뿌듯함에 피로를 잊고 늦게까지 술과 함께 이야기꽂을 피우다 잔다. 서울로 향하신 형님들은 얼마나 피곤하실까? 12시가 다돼서 종민이형님이 일진산장에서 올라 오셨다. 내일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이 토왕골의 허공다리골이란 곳에서 있기에 아침에 우리 텐트앞을 통과할 예정이므로 아침에 만나기로 하고 올라 오셨단다.
92년 1월 20일(월) 맑음 - 휴식
오늘 아침은 라면을 끓여 드시는 종민형의 목소리에 일어난다. 고기를 구워드린다고 했으나 사양하신다. 잠시후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들이 도착 금석이형, 운회형과 인사를 나눈다. 아침식사후 운회형과 형수님은 캠프를 지키고 우리는 척산온천으로 나가 사우나를 즐기고 속초로 나가 1주일치 식량과 운회형 신방에 깔 스치로폼을 구입한다. 명보상회에 들러 그동안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더빙한다. 일진산장에 들러 종민이형을 만나고 저녁 늦게 캠프에 도착 잠자리에 든다.
92년 1월 21일(화) 맑음 - 토왕폭하단 등반
7시에 기상하여 토왕폭으로 향한다. 그동안 션트등반만 해 왔던 하단 오버행을 리딩해 본다. 내가 오버행을 오르는 동안 금석이형은 제일 좌측의 베라글라를 리딩으로 오른다. 종수형과 운회형이 리딩으로 오르고 용문이형과 혜영이 누나도 오른다. 마지막으로 금석이형이 스나그를 회수하며 클라이밍다운을 하신다. 오늘은 전원이 토왕폭 하단을 2회씩 등반하였다. 용문이형과 혜영이누나만 제외하고. 운회형수는 추운 하단밑에서 종일 등반시간 체크에 수고하셨다.
92년 1월 22일(수) 맑음 - 토왕폭 등반, 소승폭 정찰
아침 일찍 운회형과 종수형은 록하켄을 챙겨서 개토왕폭으로 향하고 용문이형과 혜영이누나는 소승폭 정찰을 떠나고 난 빈 캠프를 금석이형과 정리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오후에 캠프로 돌아온 운회형과 종수형의 말로는 후랜드가 없어 암벽에서 얼음으로 접근하지 못한채 후퇴하여 토왕폭을 등반하고 돌아 왔단다. 저녁에 소승을 정찰하고 온 용문이형은 상단 직벽의 얼음상태가 휠씬 좋아졌다고 한다. 속초에서 용문이형이 구입해 오신 싱싱한 횟거리에 술한잔을 곁들이며 내일의 등반계획을 의논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92년 1월 23일(목) 맑음 - 개토왕폭 시도, 소토왕폭 등반
종수형과 함께 개토왕폭으로 향한다. 운회형, 금석이형은 소토왕으로 향하고 개토왕폭에 도착하여 록하켄을 치며 등반을 시작한다. 하켄 치고 레다 걸고 올라서서 피피 걸고 하켄 치고 레다 걸고... 한참을 오른 것 같은데 등반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등반이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데 확보중인 종수형은 심심한 모양이다. 오보행의 바위를 다 오르고 뽀죽한 얼음기둥의 끝으로 붙으려 하는데 빙질이 불량하여 최대한 왼쪽끝으로 멀리 찍어야 될 것 같다. 왼손의 아이스햄머를 찍기위해 헤매는 동안 오른손으로 하켄을 잡고 버티고 있는데 오른쪽 가슴이 걸리고 힘이 빠져 어쩔수가 없게 되었다. 몇번을 시도해 보다 실패하고 다시 하켄을 회수하며 다운을 한다.
캠프로 돌아오니 소토왕폭으로 등반을 가셨던 금석이형과 운회형이 곧이어 돌아 오셨다. 소토왕의 빙질은 작년과 비슷하게 형성되었다고 하신다. 개토왕의 상황을 말씀드렸으나 모두 아쉬워하는 표정들이다.
92년 1월 24일(금) 맑음 - 토왕폭 등반
4시에 금석이형이 우유를 끊여 놓고 종수형과 나를 깨운다. 금석이형은 결정적인 날에 항상 먼저 일어나 우유를 타서 후배들에게 주는 자상한 면을 볼수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새벽잠이 없다던데 그래서인가? 그러나 평소에는 제일 늦잠을 많이 자니까 그런 것도 아니고 알고보면 무척 자상한 형이다.
새벽에 도착할 줄 알고 있었던 완용이형은 아직 오시지 않았다. 뉴설악호텔로 나가 집에 전화를 하고 들어오니 곧 완용이형이 도착하셨다. 토왕폭 하단에 도착하니 등반중인 팀이 상당히 많다. 토왕골에도 많은 텐트가 있어 잦은 바위골 같은 분위기다. 종수형이 상단 스타트지점에 도착한 것을 보고 금석이형이 제일 왼쪽으로 출발한다. 기온이 낮아 낙빙이 많다. 곧이어 완용이형이 등반을 하고 혜영이누나도 따라 오른다. 잠깐 사이에 하단을 두 번씩 등반한다. 용문이형은 비디오촬영에 열중이고 상단에서는 종수형이 낙빙을 피해 상당히 어려울 것 같이 보이는 제일 왼쪽으로 차근차근 오르고 있다. 운회형, 종수형이 등반을 마치고 다시 하단으로 돌아왔다.
캠프로 돌아와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종수형은 화상 입은 발을 금석이형은 손가락을 치료한다. 내일은 금석이형-완용이형, 운회영-종수형이 상단을 등반하기로 한다. 잠자리에 들기전 맨소래담으로 결리는 데를 맛사지하나 차도가 없다. 몇일 지나면 저절로 낫겠지.
92년 1월 25일(토) 맑음 - 토왕폭하단 등반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조깅도 한다. 장비를 챙겨 금석이형과 완용이형, 운회형과 종수형이 먼저 출발하고 잠시후 용문이형과 혜영이누나 그리고 내가 따라 오른다. 운회형수는 캠프에 남아 있기로 했는데 오후에 올라 오셨다. 용문이형은 하단 밑에서 촬영을 하고 나와 혜영이누나는 좌측계곡을 통해 토왕폭 정상으로 올라갔다. 정상에서 30분정도를 기다리니 금석이형이 올라 오신다. 시원한 냉수 한잔을 드린다. 잠시후 운회형이 올라 오신다. 운회형의 2년만의 토왕선등을 모두가 기뻐하며, 또한 잠시후 도착한 완용이형의 숙원사업인 토왕폭등반을 축하드린다. 완용이형은 우리 모두의 손을 굳게 잡고 밀려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신다.
캠프로 내려온 완용이형은 맥주로 한턱을 내신다. 밤이 깊도록 웃음꽃을 피우다 새벽에 들어오신 서울형님들을 맞이한다.
92년 1월 26일(일) 맑음 - 소토왕폭 등반
지난주 토왕상단에서 길을 잃어 우리가 구조해준 80명의 산악회에서 답례로 많은 양의 소고기를 형님편으로 우리 캠프에 보내 주었다. 소고기를 물리도록 구워먹고 오랜만에 척산온천을 간다. 캠프로 돌아와 토왕폭에 간 정필이를 찾아 갔으나 토왕폭에는 정필이가 없다. 캠프로 돌아오니 정필이는 소토왕폭을 등반하러 갔다가 낙빙을 맞아 스크류 2개를 치고 내려 왔단다. 상처가 심하지 않아 다행이다. 형님들이 서울로 가시고 우리는 뉴설악호텔에서 커피를 마신다. 내일 등반은 소토왕폭으로 정했다.
92년 1월 27일(월) 맑음 - 소토왕폭 등반
지난 밤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금석이형은 밤새 잠을 설치셨다. 소토왕골로 향한다. 종수형과 혜영이누나는 소토왕폭을 등반하고 나는 상규형에게 프렌치 테크닉과 확보물설치, 회수법을 가르쳐 주었다. 운회형은 베르글라와 바위가 혼합된 믹스클라이밍을 하고 계신다. 용문이형이 뒤를 이어 오르고 금석이형은 비디오촬영에 열중이다. 종수형이 소토왕폭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 소공원쪽으로 마중을 간다.
캠프에 돌아와 내일 철수를 의논한다. 소고기와 소주로 푸짐하게 야식을 즐긴다. 금석이형은 아침부터 이가 아프고 저녁에는 몸살기운이 있는 것 같다. 그간 휴식다운 휴식이 없이 단잠을 못자며 지내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 것 같다. 우리 모두가 휴식과 충분한 수면을 필요로 할 만큼 피로가 누적된 것 같다.
92년 1월 28일(화) 맑음 - 소승폭으로 이동
캠프이동을 위해 서울에서 종선형님이 승용차를 가지고 오셨다. 짐만 소승폭으로 보내고 사람은 버스로 이동한다. 2번의 왕복 끝에 소승폭 입구에서 캠프터로 짐운반을 마쳤다. 엄청난 양의 짐이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짐만 늘어난 것 같다. 이번 캠프는 지난번의 소승폭밑이 아닌 계곡으로 많이 내려온 자리에 설치 했다.
92년 1월 29일(수) 흐림 - 소승폭 등반
지난번 훈련때의 얼음은 부분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새로 소승폭이 얼어 붙은 것 같다. 내가 선등하나 완등할 자신이 서지 않는다. 얼음이 부실하여 등반루트를 찾기 어렵다. 직벽밑에 스크류를 설치하고 조금 올라가 보니 얇은 얼음 안으로 물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오버행 밑에 스크류를 하나를 더 치고 오보행위로 픽켈을 휘두르나 얼음이 크게 부서지며 박힐 곳이 없어져 버렸다. 밑으로 잠시 내려왔다가 다시 시도하나 동작이 연결되지 않는다. 추락을 각오하고 과감하게 시도할 수도 있지만 며칠 남지 않은 캐나다 원정을 앞두고 작은 부상이라도 당하면 곤란할 것 같아 빽을 한다.
형님들도 몸을 사려야 한다며 짧은 기간동안 컨디션 조절을 하며 감각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므로 지금와서 무리한 등반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우측능선을 통해 정상에서 하강을 하며 소승폭 얼음을 관찰하는데 바위에 떠 있는 부분이 많고 균열이 간 부분도 있다. 불안한 부분을 발로 차니 큰 얼음 덩어리가 통째로 떨어져 나간다.
92년 1월 30일(목) 맑음 - 훈련캠프 철수
어제밤 훈련회의에서 무너질 위험이 있는 소승폭을 계속 등반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동안 훈련도 할만큼 했고, 대원 모두가 장기훈련에 지쳐 있었다. 서울의 형님들께 철수를 알리고 바로 캠프로 철수해 서울로 향한다. 오늘은 마침 목욕집회일다.
모임장소인 전원다방에는 많은 회원들이 참석해 마치 정기총회 분위기를 띄었다. 형님들은 그동안의 훈련에 대한 노고를 격려해 주셨고, 다방주인 아주머니도 장도에 오를 우리를 축하해 주는 의미에서 찻값을 무료로 해주셨고, 우리의 단골 곱창집에서도 무료 대접을 받으니 종로5가 일대가 마치 우리세상 같은 분위기다. 우리의 원정과는 이해관계가 없는 분들의 후대를 받으니 정말 어느 물질적 지원보다도 훨씬 더 고맙다.
이제 며칠 각자 집으로 돌아가 휴식과 준비를 하고 패킹과 시차적응을 위해 돈암동 캠프로 집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