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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제에 무슨 매화 타령?
아,
그러지 말자. 나도 내 인생을 즐겨 보자......
위 편지를 다 마무리 지으면서 기로는 문득, 편지 내용과는 상반되는 어두운 생각도 했었다.
물론 편지 자체는 진심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편지로 써 내려간 것도 다 맞다.
그런데 편지를 다 쓰고 뒤에 세 줄을 덧붙였는데, 평소와는 다른 일이 분명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 상황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물론 이 덩어리는 나중에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은 내용인데, 그걸 돌이켜 보면,
편지를 쓸 때까지는 본심에 충실했지만, 마무리를 지으면서는,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고,
그런 자신이 싫어서,
'뭐가 어때서? 이제는 지난 일 떨쳐버리고, 내 맘대로 살아보자!' 하고 다짐하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행복해 하다가, 문득,
'이혼한 주제에, 아니... 여편네가 젊은 다른 놈과 눈이 맞아 바람나서 떠나간 이혼을 당해, 애들 둘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기고 혼자 사는 주제에... 무슨 '매화'에 '풍류'?' 하는, 그를 따라다니는 그 ‘이혼의 상처’가 그 순간에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건 마치, 홈페이지라는 '탈'을 쓰고 사람들 앞에(사이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기분인 듯했던 것이다. 맨 얼굴은 뒤에 감춰둔 채로......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기로는,
'이젠, 다 지나간 옛일(?)인데, 왜? 나는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서울 생활이야 그렇다고 치고, 여까지 내려오면서는 수도 없이 다짐에 다짐을 했던 일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젠 웬만큼은 그 문제에서는 벗어나 있기도 했고, 또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하다간,
'허기야, 그게 그리 쉽게 잊혀질 일이던가?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치욕적인 상천데......' 하면서도, '그렇지만 나도 이제 그 문제는 떨쳐버리고 훨훨 날아가 보자. 남아 있는 내 하나 밖에 없는 인생에 집중해서, 나다운 삶을 찾아 즐겨 보자. 아니, 꼭 즐기지는 않는다 해도, 지난 일에서는 자유로워지자. 더구나 큰맘 먹고 이 시골까지 내려온 거니, 여기서까지 그 추잡한 일에 얽매이지 말고, 나대로 내 인생을 즐겨보자. 그래야 덜 억울하니까.' 하고 다짐까지 한 뒤,
'그래, 내가 언제(여태까지는) 매화를 곁에 두고 살아봤던가? 그리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그럴 일이 일어나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면서,
'그래, 그러자! 비단 ‘매화’ 뿐만은 아니라도, 이제, 내 인생을 즐겨보자. 여기 현실에 몰두하고 매진하자!' 하고, 자신을 다독였다.
비록, 매화를 처음 대하기 때문에 그 실체를 잘 모르긴 해도......
*
오후 들어 위성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걸어 어찌된 영문인지를 물어 보았다.
그런데 그 회사는, 인터넷을 설치하는 업체와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주부터 통화를 했던 택배 회사의 여자는 왜 이리 연락을 하지 않는지, 전주에 있는 택배거나 이런 회사사람들은 왜 이리 서비스 정신이 없는 건지......
자기네가 연락을 해준다고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왜 소비자가 기다리다 지쳐서 연락을 하면, 그제서야, 뭐가 어째서 못했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는지,
그런 일들로 짜증만 나고, 울화까지 치민다.
내가 두 번이나 전화를 걸은 뒤에야, 오후 네 시경에 인터넷 설치해주는 사람의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여기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전화를 기다리다 지쳐서, 마당에 징검다리식의 길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흙을 파고, 넓적하고 판판한 바위를 골라다가 걷는 내 보폭에 맞게 마당에 박아 놓는 작업이었다.
날마다 땅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걸을 때마다 진흙이 신발에 묻어나서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해야지......' 했는데, 인터넷 대문에 애를 태우다, 안 되겠다 싶어 일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돌 몇 개를 심어 놓으니 의외로 재미있어 보였다.
불규칙적이면서도 정감이 나는 징검다리 식의 돌길이 내 불안했던 마음을 느긋하게 해주고도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결국 차 한 대가 서서히 이 마을로 들어왔다.
그리고,
드디어 인터넷 연결 수신 위성 안테나를 설치하고, 또 모뎀을 연결하여 새로운 전화를 한 대 놓고......
그런 사이에 나는 친구와 몇 번의 통화를 했고, 그런 복잡하고 지겨운 과정을 거쳐 내 컴퓨터와 선을 연결했는데,
그 기사 왈,
내 하드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프로그램을 다운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친구에게 전활 걸어, 그에게 있다는 하드 하나를 가져오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인터넷 설치해주는 문제도 그에게 떠맡겨 미안해 죽겠던 참에, 전화 한 대를 또 신청하고 또 컴퓨터 하드까지 가져오라고 하다 보니... 그에게 미안한 건 둘째였고, 그런 것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내 무능력이 싫어,
난 모든 걸 다 때려 치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 길로 서울로 돌아가고도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 범상이 오는 시간이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얘길 들은 기사는, 내 하드의 C와 D를 교환해서 새로 프로그램을 깔아보자며 시도를 했다.
그렇게 걸린 시간 역시 거의 한 시간......
결국 인터넷에 접속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 여직원이 서둘러 오전에만 일을 챙겨주었어도, 이미 아무 이상없이 일이 다 끝나고 남을 상황이었는데,
전화를 늦게 신청하는 바람에 새로운 번호와 인터넷 모뎀을 연결시키지 못한 채, 기존 전화로 시험을 해 본 것으로, 결국은 이중낭비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전화를 걸어 항의할 수도 없어 관둘 수밖에 없었지만,
좌우지간, 자기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성실한 사람이 많지 않은 세상임에는 분명하다.
어쨌거나 인터넷에 연결된 김에 이것저것 확인해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그러자면 몇 시간 동안 전화하는 셈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라,
친구 범상도,
"내일 새 전화와 정식으로 연결시킨 뒤부터 인터넷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 고 했고,
나 역시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를 했다.
여태까지도 참았는데 하룻밤을 못 참겠는가.
그래서 친구에게,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가라."고 했더니,
"라면은, 무슨......" 했는데,
허기야 그는 자기 집에 가서 밥을 먹지, 이런 곳에서 무슨 라면을 미리 먹고 돌아가겠는가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을 했더니, 몸이 더럽다." 며, "집에 가서 샤워를 해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너는 좋겠다." 했더니,
그가 의아하다는 듯,
"왜?" 하고 물었다.
"샤워할 수 있어서......"
그렇게 친구도 돌아갔다.
그렇지만 나는 며칠 째 샤워도 못한 채로, 시간이 늦어 통나무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걸로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夢想?'에 왔는데, 작업 방은 위풍이 너무 셌다.
다행히, 안방은 인터넷을 설치한다고 오후 내내 보일러를 틀어 놓았기 때문에 아늑해서,
오늘 밤은 안방에서 자기로 했다.
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에 매달려, 결국은 접속이 됐지만, 아직도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쨌건 접속은 됐다. 아쉬운 대로 이 정도만 돼도 괜찮다.
아, 지겨운 놈의 인터넷......
어쨌거나 이제, 내일부턴 인터넷 생활이다.
3 . 11
*
네 시경에 일어났다.
방바닥이 차가워서 다시 보일러를 틀어놓는 사이, 잠은 다 달아나 버렸다.
멀거니 누워 있는데, 첫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씨가 제법 차거웠다.
그래도 오늘은 전화를 가설하고 나면 인터넷을 맘대로 할 수가 있을 것이라 희망적이었다.
인터넷을 놓으려다 실패하고 돌아갔던 엊그저께의 그 성실한 젊은이가 다시 왔다.
오늘도 그는 역시 열심히 일을 했고, 내 부탁대로 (전선주에서 직선으로 선을 연결시켜 마당을 가로지르는 선을 구석으로 몰아 처마로 통과시켜 달라는, 그리고 나중에 공사를 하게 되면 혹시 그 선도 부족할지 모르니, 여유 있게 선을 몇 번을 돌려 달라는) 일을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성실한 젊은이에게 내 판화 한 점을 선물했다.
이미 지난번에 그렇게 하리라고 맘 먹고 준비했던 일인데, 그 날은 그러지 못했고 오늘 했던 것이다.
그가 새 전화가 개통됐다는 연락을 했고, 나는 전화국에 확인을 해보고 인터넷에 들어갔다.
그렇게 인터넷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보니,
내가 그토록 애태웠던 것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너무나 싱거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더니, 전선주 설치 작업하는 사람들이 동네에 정전이 된다는 통고를 하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내 인터넷이 접속 돼, 뭔가를 하려던 찰라에... 그 것도 복이라고......
그래서 전원을 끌 수밖에 없었고, 나는 솟대 나무껍질을 벗기러 밖으로 나갔다.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완연한 봄날이었다.
마을에 새 전선주들이 들어섰고, 그들은 일을 끝내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가 동네에 나뒹굴고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의식도 없는 놈들. 한 두 놈도 아닌, 열 명 안팎의 그룹이었는데... 그들 모두가 뒤처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러면 그들이 가는 마을마다 쓰레기는 그렇게 남을 것이었다.
자기들이 일한 뒤처리는 말끔히 해놓고 돌아가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일만 하면 그뿐인가? 나머지 뒤치다꺼리는 마을주민이 하라고? 더구나 이곳은 일급상수원 보호지역인데, 이토록 오염이나 공해에 대한 인식도 없는 공무원들이 그렇게 많으니......
그것 역시 답답하고 울화통이 치미는 일이었다.
내가 이 시골로 와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는데,
왜 그런 모습들이 눈에 띄고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지 모르겠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다운 받으려고 시도하는데, 잘 안 되었다.
FTP가 작동을 안 하면 내 자료를 사이트에 올릴 수가 없는데......
그리고 인터넷뱅킹을 해보려니 인증서 문제 역시 해결이 안 돼, 내 조회가 뜨지 않는 것이었다.
그 전의 하드를 그대로 썼다면 그럴 염려는 없었을 텐데, 그 것도 바뀌어서...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혼자서 애만 태우다 말았는데,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해가 넘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날씨가 다시 스산해졌다. 아니, 추웠다.
여기도 춥고 저기도 춥고......
오늘은 군불을 지피지 않을 생각이다.
작업방에 군불을 지펴봤자 위풍이 세서, 오늘도 안방에서 자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면서 느낀 건, 역시 컴퓨터가 되니 나만의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작업을 못하는데......
이 건 이율배반적이다.
인터넷을 안 할 수는 없는데, 하자니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고......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왔던 인터넷인데, 막상 그 문제가 해결되니... 내 일을 못할 상황으로 변해있다.
통나무집에서,
'뭘 해먹을까?' 생각하며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그냥 밥으로 하자고 정했다.
쌀을 물에 불려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라, 다시 '夢想?'으로 돌아오는데,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입은 옷에 먼지가 묻어 얼룩이 지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지저분하게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닌데, 어느새 이 시골 생활에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물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 빨래는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있으니......
서울 생활이 그립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럴 땐, 어디 따뜻한 곳에 가서 저녁도 먹고 하룻밤 자고 오고 싶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점점 발이 묶여간다.
어딜 나가려 해도, 이제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내 물건이 있는데(특히 작품), 그리고 앞으론 계속 늘어날 텐데, 그 걸 놓아두고 어딜 나돌아 다닌단 말인가?
서울에서처럼 열쇠만 잠그고 다니면 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夢想?'은 담도 없고 다 오픈 된 공간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 굴레에 내가 묶여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쩐지 답답했다. 그리고 이래저래 걱정스럽기만 하다.
뭔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많이 어긋나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오늘은 생각마저 부정적이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고 보면, 나도 참으로 못 말리는 사람이다.
고생마저 스스로 사서 하고 있으니......
3 . 12
막상 그토록 애를 태우던 인터넷에 연결이 되자, 싱거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시골에 내려와서 다소 넉넉해졌던 기로의 하루 일정이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니, 군불 때는 것도 귀찮아지면서 미적대기만 했다. 그러니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보일러가 들어오는 편리함 쪽으로, 자신의 마음이 자꾸만 쏠리는 걸 기로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식사 문제도 어떻게든 간단하게 해치우려 하는 식이었다.
그나마 낮에는 기온이 다소 온화해지면서, 스스로 밥도 해 먹고 또 활동하는 것도 별 무리는 없는 것 같은데, 아침 저녁으로 춥다 보니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고, 어떻게든 따뜻한 곳에 처박혀 있으려는 경향이 생기고도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꽃샘추위'는 기로의 발목을 잡고 있었고, 시골에서의 생활에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
오전엔 인터넷을 했다.
여기저기 그 동안 밀려있던 메일을 썼고, 내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상황을 살피는데... 약 3 주 정도 업로드를 못 시켰더니 이제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홈페이지의 생명은 바로 업그레이드라는 걸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 컴퓨터 하드의 C와 D를 바꾼 관계로 프로그램을 다시 깔아야 한다는데, 그래서 작업을 할 수가 없고 FTP도 접속이 되질 않아 이래저래 애를 먹긴 마찬가지다.
솟대 새 모양을 깎았다.
내가 햇볕 양지쪽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뒷집 아주머니가,
내 친구가 가져온 축대 쌓고 남았던 돌이 자기 밭의 싹을 덮는다고 혼자서 궁시렁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간접적으로 날더러 들으라는 모양이었는데,
나도 이제 그 목소리마저 지겨워, 그저 못 들은 척했다.
(친구 범상은 이미 나에게, 그 여자가 그러면 아예 듣지 않은 척하라고 알려주었었다.)
내가 굳이 그 사람에게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주머니는 혼자서 내내 지껄이다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사실, 시골 인심이라고... 기대했던 것처럼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더 각박한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있다.
'산장 가든' 사장이란 사람도, 아예 나를 아는 척도 안 하잖는가 말이다......
오후 들어, 서울에 있는 제자와 통화하며 인터넷 문제를 해결해보았다.
그가 올려놓은 걸 내 컴퓨터에 내려 받으며 설치하는 식이었는데, FTP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설치업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랜 카드회사에 전화를 걸어보면 대답해 줄 거라고 해서, 전화를 걸어보니, 위성인터넷은 FTP와 접속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큰일인데......
그렇다면 굳이, 인터넷을 그 비싼 돈을 주며 설치할 필요가 없었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통신회사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와 통화하는 둥, 나는 마음이 바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거, 왜 이렇게 속을 썩이나?
그러다가 설치 업자와 통화를 했더니,
'코넷(Konet)'은 모뎀을 이용해서 속도가 늦기는 하지만, 선으로 이어진 것이라, 어쩌면 FTP도 이상 없이 연결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위성을 차단하고 코넷으로만 접속해 보니, 그제야 FTP가 작동을 하던 것이다.
나에게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다행이다. 이것마저 안 된다면, 정말 큰일이었는데......
고맙다고 말하려 다시 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받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음성으로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제 확실해졌으니,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하면 된다.
어느덧 해는 힘을 잃어가면서, 호수에선 찬바람이 불어온다.
근데, 오늘밤은 어떻게 한다지?
원래 작업방에 군불을 때고 거기서 자려고 했는데, 날씨가 스산해지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하는 수 없었다. 안방에 보일러를 때고 위풍 없이 잘 수밖에......
이제, 불을 때는 것도 귀찮기만 하다.
저녁은 라면으로 때웠다.
이미 그럴 생각으로 점심에 밥을 여유 있게 해서 조금 남겨 놓은 찬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라면을 끓여 찬밥을 말아, 맛있는 김치와 후루룩 먹었다.
그렇게 먹는 것도 나쁘진 않다. 요즘 내 식생활은 그렇다. 밥 빼고는 먹는 게 없다.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뭘 사올 수가 있어야지......
저녁을 먹고, 안방에 들어와 스케치북 앞에 앉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앉아 있다가,
연필을 들었다.
'호수 나라'.
괜찮다.
약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다.
그래서 나중에 이것을 크게 유화로 그리기로 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러니까 언뜻 보기엔 뭘 뜻하는지 모를 것이지만,
애착을 가지고(?) 잘 보면, 내가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드로잉 때문에 마음이 가벼워졌던 나는, 김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거의 한 시간에 가깝게 통화를 한 것 같다.
'이 거 전화가 너무 길어지는 것 아닌가?" 불안감도 없지 않았는데,
선생님의 말씀이 길어져서 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긴 통화를 끝내고 마루에 나오니, 밤하늘엔 반달과 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
시골이라 별들도 깨끗하게 보인다.
'매화가 언제 피려나?'
'아, 이 봄엔... 매화를 느껴보리라.'
3 . 13
이 대목에서 관심을 가지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살짝 비춰지는데, 바로 ‘산장 아저씨’ 박 만석에 관한 얘기다.
‘산장 가든 사장이란 사람’으로 적은 것으로 봐도, 당시 기로가 박 만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 마을로 이사 온지 보름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그는 기로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는 모습이었으니까......
*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우선 인터넷에 접속해 내 홈페이지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여전히 내가 업그레이드를 시키지 못한 상태니, 들어오는 사람도 없는 것일 텐데,
책을 냈다고는 해도 사람들이 내 사이트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혹시 들어와 보고도, '회원가입제'라 망설일지도 모를 일이고......
아무튼 예상했던 것 보다는 훨씬 적은 사람이 내 사이트를 찾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허기야 홈페이지란 게 그렇긴 하다.
콘텐츠를 좇아 방문객이 들어오는데, 업그레이드 상황에 따라 냉정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내가, 내 홈페이지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 걸 바라며 시작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책에다 광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는 것 역시 예상 밖이다.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난잡해 질 거라고, 내가 지레 겁을 먹고 너무 과민한 반응을 해서 그런가?
어쨌거나 아직 내 PC에 프로그램을 깔지 못해서 작업을 할 수가 없어, 업그레이드를 시키질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건 분명한데, 그 사이에 들어오던 사람들의 발길도 뚝 끊긴 것 같다.
어제는 한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내 PC에 설치했으나 실패했다.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인데, 내가 알 수가 있어야지......
더구나 홈페이지 작성 프로그램인 ‘드림위버’ 역시 깔려있지 않아서, 미리 작업해 둔 것도 올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무튼 이놈의 컴퓨터 문제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3 . 14
*
밖에선 못 느끼는데, 방에만 들어오면 초르르르 새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매화나무에 앉아 우는 것이리라......'
사실 나는 그 새가 지저귀는 모습이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문을 열고 그 모습을 보고 싶긴 하지만, 내가 문을 열고 보면 그 새들은 깜짝 놀라 날아가 버릴 것이었다.
그래서 문을 열지도 못한 채 새 소리만 듣기도 했다.
그러면서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 어제 다운 받았던 한글 프로그램은 오늘도 애를 먹이면서도 설치마저 되지 않아,
나는 제자와 전화 통화로 '드림위버'를 다운받아 설치했고,
드디어 FTP로 업로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게 얼마 만인가!
'일러스트레이터'도 다운을 받는데 2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서 그 사이에 시간을 쪼개 솟대를 깎았다.
그러다 보니 일단 새는 세 마리로 늘어, 기둥 나무에 한번 붙여 봤더니... 느낌이 썩 괜찮았다.
오늘은 날씨가 깨끗하질 않았다.
더구나 오후 들면서는 호수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나는 안방에 처박혀 컴퓨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가 시간 때우기엔 적격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 저녁을 해 먹고 안방으로 와서 컴퓨터를 확인한 다음,
스케치북을 펴놓고 앉아있는데 무슨 소린가 들려왔다.
보일러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그런데, 그 소리 말고도 무슨 싸라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니,
가로등 불빛에 내가 마당에 징검다리 식으로 박아 놓은 돌들이 반짝 빛나는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숨어 내릴 일도 없을 텐데, 비는 감쪽같이 숨어서 내리고 있었구나...... 저녁을 해 먹고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리고 앞 언덕에선 마을 첫 집 산장아저씨가 마른 잡풀에 불을 놓고 있어서,
'마치... 어둑해지는 산그늘에 산불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비가 내리다니!
그러고 보니 아홉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둠에 쌓여있는 마을은 이미 한밤중이었다.
스케치북을 펴놓기만 한 채 뭔가를 하려고 시간만 보내던 나는, '밤비'를 떠올리며 바로 연필을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수채 물감의 붓을 들었다.
곧이어 오디오에선 사계 중 ‘여름’이 흘러나왔는데,
나는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은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물감도 음악처럼 리드미칼하게 칠해졌고, 음악 사이사이에도 바깥의 빗소리는 들려왔다.
그렇게 한 시간여......
나는 내 자신 속에 있었다.
행복했다. 그게 절로 느껴졌다.
비 오는 이 밤이 아름답다고도 여겨졌고, 어디 먼 곳에 나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건 맞았다.
서울의 원룸에서도 혼자였지만, 여기선 더욱 더 뚝 떨어진 곳에서 혼자 있다는 것이 절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근데, 이 비가 ‘밤비’인가 ‘봄비’인가? 그래, 봄을 재촉하는 밤에 내리는 비다. 그러니, 밤비면 어떻고 봄비면 어떠하리?
행복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내 자신 속에 있다.
3 . 14
#생활의 변화
물이 안 나오니 빨래를 할 수가 없어서 있는 옷만 꺼내 입어댔더니, 남아 있는 입을 옷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형수님 편에 보낸 빨래는 아직 형이 오지 않아서, 더욱... 입을 옷이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옷만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샤워도 못하니 몸에도 때가 끼었을 것이어서, 옷도 그 전보다 쉬 더러움을 탈 것입니다.
그렇다면 빨래를 더 자주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니......
아, 이런 식으로 내 생활이 확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머리를 감으면서 남방 두 개와 양말 세 켤레를 손으로 빨았습니다.
빨래를 했다기 보다는 쓱쓱 비누를 묻혀 두 번 정도 물을 짜낸 것으로 끝냈지만요.
그런데 그 빨래를 옷걸이에 걸어놓았더니, 지난 밤 사이에 다 말라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유가 생겼습니다. 속옷이야 아직은 두어 벌 더 여유가 있으니, 남방과 함께 옷을 갈아입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마저도 맘 한 구석의 여유로 남는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또 재미있기도 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생활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또 아십니까, 내가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나는 물을 아끼느라 그 머리를 감고 나서 빨래를 한 물도 화장실 변기에 부을 때 써먹을 요량으로 바케스에 모아두었습니다.
정말 철저하게 물을 아껴 쓰는 생활을 하고있는 겁니다.
사실, 그 물이 바로 요 코앞에 있는 호수로 들어갈 것 아니겠습니까?
그 물은 1급 상수원인데요. 그러니 수시로 생활 오수를 버리는 것도 환경오염이니까요.
아무튼, 내가 근검절약의 생활로 접어들었습니다.
평소에도 마구 소비하는 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이 시골로 내려와서 환경에 따라 그런 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상한 것은, 하루도 샤워를 하지 않으면 찝찝해서 못 살겠던 나는,
이제 샤워를 하지 않는 생활에 적응이 되는 건지, 그런 몸의 반응이 이미 없어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처음 며칠은 샤워를 못해 온 몸이 찝찝하고 근질근질한 것 같았고 또 뭔가 군더더기를 달고 사는 것 같이 불편했었는데, 요 근래에는 그런 기분마저 없어진 것입니다.
씻지 않은 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더러워져(?)있을 게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몸의 느낌은 그런 식으로 변해 가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을 때마다,
'이런 옷을 또 걸쳐?' 하는 개운하지 않은 기분만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래 입어서 때가 탄 옷인데 다시 입어야 하는(양말도 기본이 이틀이고 어떤 때는 삼 일도 신습니다) 기분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나 봅니다.
더러운 옷을 다시 걸치는 기분.
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선 춥기도 한데다 어차피 밖에 나가 다른 일을 하려면 옷이 금방 더러워지기 때문에,
날마다 새 옷을 걸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입던 옷을 계속 입을 수밖에요.
정갈한 편인 나는 평소에도 옷을 오래 입지는 않는 사람이거든요.
물론 요즘에야,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편한 세상이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전방의 군대에서도 나는, 옷은 남들보다 자주 빨아서 입는 깔끔(?)을 떨던 사람이었습니다. 겨울의 그 찬물에다에도 말입니다.
근데, 그 건 집안 내력입니다.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어머니도 정갈하셨고, 우리 형제들도 다 정갈한 편이거든요.
아무튼,
'이러다간, 명절 때나 목욕하는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만,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이곳에도 지하수 수도 시설을 개통시켜준다고 하니까요.
군(郡)에서 몇 채 안 되는 이 마을 주민을 위해 지하수를 끌어 올려 탱크를 만들고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달아 놓았는데, 이제 개통시켜준다니... 물로 인한 고생은, 내가 여기로 온 20 일이 되어 가는 시간으로 다 끝난 셈입니다.
그렇다고 이제는 물을 정말 '물 쓰듯' 쓸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서울에서도 그랬지만, 여기라고 더 풍부하게 사용할 생각이 아닌, 오히려 더 조심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버리는 물이 바로 호수를 오염시킨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여기 통나무집 화장실에 정화시설이 되어있다고는 해도, 생활오수는 오수지요.
적게 쓰면 그만큼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비록 혼자만의 생활이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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