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6장 12-20절
오늘 묵상할 본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도덕적으로 무질서한 생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책망과 권면을 한 편지 기록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고린도 지역은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고, 당시 번화한 그리스 항구 도시의 사회적 풍습을 따라 우상의 신전에서 일하는 여자사제들이 남자들을 상대로 돈을 받고 매춘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사람처럼 행하다.’라는 말은 ‘매춘행위를 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 일부가 여전히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가졌던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그 지역 사람들과 같이 창기와 음행을 하는 죄악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성도란, 즉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과 합하여 영적으로 하나가 된 사람”인데 만일 창기와 간음을 한다면, 창기와 한 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임을 깨우치고 책망합니다. 15절입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성도가 자신의 몸을 음행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악이 됩니다.
19절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단호하게 18절에서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고린도교인들이 이처럼 음행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단지 그 당시 관행을 따라 살았기 때문일까요? 물론 과거의 습관과 풍습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얻은 ‘자유’를 오해한데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이 휩쓸고 있었던 당시에는 인간에 대한 이원론적 사고 즉, 육체와 영을 철저하게 구분하여, 육체는 악하고 더러운 것이며 어떻게 사용해도 관계없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반면에 영은 완전히 다른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육체는 아무렇게나 해도 영혼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영지주의자(Gnostics)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모든 죄에서 용서를 받아,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점에서는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그리스도 밖에서의 방종으로 바꾸어 “사랑의 자유”가 아니라 “범죄의 자유”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논리를 정확하게 정리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법리적 측면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은 무한한 자유를 갖지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영적 도덕적 책임을 갖고 있고, 균형과 질서라는 현실적 이유에서도 절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죄책이 면제되었다고 해서 선악의 구분과 성도의 도덕적 의무마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사람에게 영혼과 육체(몸)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에, 영적 성결함과 도덕적 책임은 성도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본분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그러면 우리의 육체는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성도의 몸에 대하여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첫째, 몸은 주님을 위하여 있으며, 주님은 우리의 몸을 위하여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13절 후반입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여기서 몸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를 사도 바울은 ‘소마(soma)’를 사용하였는데 이 단어는 전인(全人)을 나타내는 인격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성도의 영혼뿐만 아니라 성도의 몸(육체)을 위해서도 내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도 주님을 위해 사용하고, 주님께 쓰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기 때문에 깨끗하게 구별되어야 하고,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 20절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하고 정결하게 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 몸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을 분만 아니라 장차 완전히 새롭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 4절, 5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오늘 이 본문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오늘 날 한국사회는 SNS를 비롯한 인터넷과 대중 매체들을 통해 고린도교회 시대만큼이나 성적으로 타락하고, 음란한 시대입니다. 이런 문화는 성인들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도 아무런 여과 없이 선악의 구별도 못한 채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에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이런 삶의 방식과 환경을 바꾸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이 책망했던 고린도교회 교인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부끄러운 책망과 심판을 맞게 될 것입니다. 단지 음란한 일을 하지 않는데서 더 나아가,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전으로서 우리 몸의 정결함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절제하고 구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고린도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과 해방의 자유를 오해하면서 당시 세상 풍조를 따라 음란한 생활을 했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세속의 음란한 생활을 쉽게 받아들이고, 죄를 범하는 자리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질책하며 경고한 말씀을 따라 “우리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전”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는 우리의 몸을 구별되고 거룩하게 관리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신 구원받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