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권력의 토대]
명제 7 — 대의명분은 권력의 연료다
동물의 세계에서
늑대 무리는 자신들만의 울음소리 패턴을 가진다. 다른 무리와 구별되는 정체성의 표현이다. 이 정체성이 무리를 묶는 명분이다. 우리는 같은 무리다. 우리는 함께 사냥하고 함께 새끼를 키운다. 이 명분이 개별 늑대들의 의사결정을 무리를 위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런데 늑대 무리의 명분에는 조건이 있다. 알파가 실제로 무리를 이끌 때만 그 명분이 작동한다. 알파가 사냥에 실패하고 무리를 보호하지 못하면 명분은 공허한 울음소리가 된다. 명분은 현실로 증명될 때만 연료가 된다.
여왕벌의 페로몬은 단순한 화학물질이 아니다. 군집 전체를 하나의 방향으로 묶는 명분이다. 페로몬이 말한다. 우리는 하나의 군집이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간다. 이 신호에 수만 마리의 일벌이 자신의 의사결정을 위임한다. 페로몬이 약해지면 군집이 흔들린다. 명분이 사라지면 위임도 사라진다.
1. 뜻풀이
대의명분(大義名分). 큰 뜻의 이름과 명분. 권력은 힘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왜 이 권력에 위임해야 하는가를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납득의 근거가 대의명분이다.
대의명분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 권력이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한 권력인가. 구성원이 이 질문에 답을 얻을 때 위임이 자발적으로 따른다. 둘째, 권력에 방향을 준다. 명분이 있는 권력은 그 명분을 향해 움직인다. 명분을 잃은 권력은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
대의명분은 세 가지 층위로 나뉜다.
이익의 명분은 가장 낮은 층위다. 우리가 함께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이익이 사라지면 명분도 사라진다. 가치의 명분은 우리가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자유, 평등, 정의. 이익보다 강하고 오래간다. 사명의 명분은 가장 높은 층위다. 우리가 역사 앞에 부여받은 사명이 있다는 것. 개인의 이익을 초월한다. 이 명분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까지 위임한다.
그러나 명분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진실해야 한다. 거짓 명분은 반드시 드러난다. 드러나는 순간 위임은 한꺼번에 무너진다. 현실로 증명되어야 한다. 말로만 있는 명분은 공허한 구호다.
구성원을 향해야 한다. 권력자 자신을 위한 명분은 연료가 되지 않는다.
시민운동에서 대의명분이 중요한 이유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은 연대의 동력이 다르다. 보수의 연대는 이해관계에서 온다. 돈과 힘으로 묶인다. 균열이 생겨도 돈과 힘으로 봉합된다. 내부 갈등이 있어도 정리가 비교적 쉽다.
진보의 연대는 가치관에서 온다. 그런데 가치관은 이해관계보다 훨씬 쉽게 구분된다. 나와 당신이 같은 가치관을 가졌는가 아닌가가 즉각 드러난다. 그리고 진보 세력이 공공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높은 기대치를 만든다. 그 기대치가 내부 지위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한다. 이 권위를 둘러싼 내부 권력 갈등이 보수보다 상대적으로 격렬할 수밖에 없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이 여기서 나온다.
여기서 역설이 있다. 허위를 바탕으로 한 내부 총질은 반드시 드러난다. 집단 전체의 의사결정을 방해한 결과가 드러나는 순간, 총을 쏜 자가 오히려 다친다. 진보 공동체에서 신뢰와 위임은 가치관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허위로 동지를 공격한 것이 밝혀지면 그 자에 대한 위임이 철회된다. 집단을 떠날 수밖에 없다. 대의명분을 연료로 하는 권력의 본질이다.
명분이 강할수록 내부 균열의 폭발력도 크다. 명분은 연료인 동시에 화약이다. 그러므로 명분을 다루는 자는 항상 진실해야 한다.
동지에게 총을 쏘는 순간 그 명분은 연료가 아니라 독이 된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1930년대 독일이다. 나치가 집권하기 직전, 독일 공산당(KPD)은 사회민주당(SPD)을 '사회파시스트'로 규정하고 주적으로 삼았다. 같은 진보 진영의 노동자 정당을 나치보다 더 위험한 적으로 본 것이다. 공산당원들이 사민당 집회를 습격했다. 두 당이 힘을 합쳤다면 히틀러는 집권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분열이 나치에게 길을 열었다.
스페인 내전(1936~1939)도 같은 비극이다. 공화파는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아나키스트·자유주의자의 연합이었다. 그러나 공화파 내부는 끊임없이 서로를 숙청하고 응징했다.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스페인 공산당은 아나키스트와 다른 좌파를 말살하기 시작했다. 조지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이 비극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했다. 내부 분열이 공화파를 약화시켰고 프랑코가 승리했다.
한국도 이 패턴에서 자유롭지 않다. 두 번의 촛불혁명이 명분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명분이 변질하여 동지들을 향한 칼이 될 때 위임은 소진된다.
검찰개혁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이들이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자들을 공격하는 순간, 동지를 향한 총이 된다. 명분도 잃고 정권도 잃을 수 있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이 환공을 패자로 만들기 위해 내세운 명분은 하나였다. 존왕양이(尊王攘夷). 주나라 왕실을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친다. 이 명분이 강력했던 이유는 세 가지가 동시에 충족됐기 때문이다. 전통적 정당성의 권위를 빌렸다. 오랑캐의 침입이라는 현실의 위협에 응답했다. 제후들이 함께할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했다. 그리고 관중은 이 명분을 현실로 증명했다. 초나라의 위협을 막고 주나라 왕실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냄으로써. 명분이 현실로 증명될 때 비로소 연료가 된다.
마키아벨리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떤 권력이 오래 지속되는가. 그 답의 중심에는 항상 시민의 향배가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말했다. 시민이 공화정의 명분을 믿었기 때문에 로마는 외적에게 여러 번 패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경고했다. 명분이 현실과 너무 멀어지면 오히려 신뢰를 무너뜨린다.
한나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을 구별했다. 명분이 있을 때 사람들은 함께 행동한다. 그 함께하는 행동이 권력이다. 명분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흩어진다. 흩어진 곳에 권력은 없다. 폭력만 남는다. 명분을 잃은 권력은 폭력이 된다.
▷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1906~1975. 독일 출신 미국 정치철학자. 전체주의와 권력의 본질을 분석했다. 권력과 폭력을 엄격히 구별하여 명분 있는 집단행동을 권력으로, 명분 없는 강제를 폭력으로 정의했다.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1951), 《폭력론》(1970).
3. 역사적 사례
규구의 회맹 — 명분이 현실로 증명된 순간
기원전 651년 규구의 회맹. 관중이 설계한 이 역사적 사건에서 환공은 중원 제후들의 맹주가 됐다.
회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관중은 존왕양이의 명분을 말로만 하지 않았다. 초나라가 북진하여 중원을 위협할 때 제나라 군대가 실제로 막았다. 위나라가 북방 오랑캐의 침입으로 도성이 불탔을 때 환공이 군대를 보내 회복을 도왔다. 연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달려갔다. 존왕양이가 구호가 아니라 행동이었다.
규구의 회맹에서 환공은 다섯 가지 맹약을 선언했다. 불효자를 죽이지 말 것. 적자를 바꾸지 말 것. 첩을 처로 삼지 말 것. 여자로 나라를 다스리지 말 것. 이웃나라의 장관을 임의로 임명하지 말 것. 이 맹약은 개별 제후국의 내정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명분이 제후들의 이익과 일치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명분이 현실로 증명되고, 그 명분이 구성원의 이익과 일치할 때 — 이 두 조건이 충족되면 명분은 가장 강력한 연료가 된다.
촛불혁명 — 사명의 명분이 만든 기적
2016년과 2024년 한국의 촛불은 단순한 이익의 명분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사명의 명분이었다. 이 명분이 수백만 명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개인의 이익과 상관없이, 추운 겨울 날씨와 상관없이. 사명의 명분 앞에서 사람들은 개인의 불편을 초월한다.
그러나 촛불의 명분이 제도로 뿌리내리지 못하면 명분은 소진된다. 광장이 비워지고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명분이 살아 있으려면 제도가 그것을 담아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민주주의 설계의 출발점이다.
촛불로 잡은 정권이 명분을 제도로 담지 못하면 독을 삼키는 것이다.
삼국지 — 명분이 전쟁의 승패를 바꾼다
삼국지에서 명분이 가장 극적으로 작동한 장면이 있다. 조조가 천하를 거의 통일할 뻔했던 208년 적벽대전 직전이다.
조조는 83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다. 그의 명분은 한나라 황제를 받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명분에 균열이 있었다. 황제를 받든다면서 실제로는 황제를 허수아비로 삼은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와 손권이 연합할 수 있었다. 유비의 명분은 한실(漢室)의 부흥. 한나라 황제의 정통성을 실제로 회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조보다 훨씬 약한 유비와 손권이 연합할 수 있었던 것은 명분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다. 유비 사후 제갈량이 북벌에 나서면서 쓴 이 글은 명분 선언의 고전이다. "한나라 황실을 부흥하고 옛 도읍으로 돌아가는 것이 선제의 유업입니다." 군사적 승산이 없는 북벌을 그럼에도 감행한 것은 명분 때문이었다. 명분이 살아있는 한 싸움도 살아있다. 명분이 사라지면 싸울 이유도 사라진다.
촉한은 결국 북벌에 성공하지 못하고 망했다. 그러나 제갈량의 명분은 18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다. 명분은 현실의 승패를 넘어서는 힘을 갖는다.
4. 종합정리
권력은 힘이다. 그러나 힘만으로는 권력이 되지 않는다. 그 힘에 방향이 있어야 한다.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명분이다. 명분은 연료다. 연료가 없으면 엔진이 멈춘다.
관중은 존왕양이의 명분으로 제나라를 패자의 자리에 올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의 향배를 권력의 명분으로 봤다. 아렌트는 명분을 잃은 권력은 폭력으로 전락한다고 경고했다.
명분의 세 가지 조건을 기억해야 한다. 진실해야 한다. 현실로 증명되어야 한다. 구성원을 향해야 한다.
진실하고 현실로 증명되며 구성원을 향한 명분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초월하여 위임한다. 그것이 가장 강한 권력의 토대다.
명제 7 — 대의명분은 권력의 연료다. 진실하고 현실로 증명되며 구성원을 향한 명분 앞에서 사람들은 이익을 초월하여 위임한다. 관중의 존왕양이가 그랬고 촛불혁명이 그랬다. 그러나 명분을 잃은 권력은 방향을 잃는다. 방향 없는 힘은 결국 스스로 독이 되거나 폭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