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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승천하신”이라는 표현이 추가됩니다.
이는 예수님이 단순히 인간의 대표자로서 땅에서 사역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신 대제사장이라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따라서 14절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입니다.
이것이 15절과 16절의 토대입니다.
B.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14b절)
14절 후반부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굳게 잡아야 하는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단순히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계신다.
→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것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즉, 신앙의 견고함은 자기 확신에서 나오기보다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에 근거합니다.
히브리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주제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버리지 말고 끝까지 붙들라.
당시의 독자들은 신앙 때문에 고난과 압력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명령은 단순한 교리적 권면이 아니라 “뒤로 물러나지 말라”는 목회적 권면입니다.
C.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대제사장(15절)
15절은 14절의 명령을 뒷받침하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여기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외부에서 관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인간의 고통과 시험을 실제로 경험하셨습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진리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으셨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
예수님은 인간의 삶을 실제로 경험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연약함, 고난, 시험, 유혹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셨다
“죄는 없으시니라.”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인간적 공감은 죄를 경험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를 범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와 완전히 동일한 죄인이 아니라,
죄가 없으시면서도 인간의 시험과 고통을 경험하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히브리서의 독특한 강조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15절은 사실상 14절과 16절을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구조를 보면 아주 아름답습니다.
14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15절: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인간적인 대제사장이시다.
16절: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긴장이 있습니다.
초월성과 공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권위를 가지십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입니다.
→ 그러므로 그분은 인간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우리를 데려갈 수 있을 만큼 높으시면서,
우리를 이해하실 만큼 가까우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4:14–16의 핵심적인 신학적 메시지입니다.
D.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16절)
16절은 결론적인 권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기서 다시 “그러므로”가 등장합니다.
논리 구조는 명확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시다
+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
+
그분은 죄가 없으시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① “은혜의 보좌”
“보좌”는 본래 왕의 권위와 통치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신 왕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보좌가 “심판의 보좌”가 아니라 “은혜의 보좌”라고 불린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그 보좌는 은혜를 경험하는 장소가 됩니다.
②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기서 “담대함”은 무례함이나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확신입니다.
왜 담대할 수 있습니까?
내가 충분히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죄가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적 담대함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긍휼”과 “은혜”
16절에는 두 가지 중요한 결과가 등장합니다.
긍휼하심을 받고
은혜를 얻는다
둘은 서로 밀접하지만 뉘앙스가 다릅니다.
긍휼
우리의 비참함과 연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 연약합니다.”
라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은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은 의미에서, 연약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필요한 긍휼과 은혜를 실제로 받으라는 권면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이 표현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본문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즉,
그 상황에 필요한 하나님의 도움을 말합니다.
따라서 16절은 성도의 기도생활에 대한 매우 실제적인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필요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필요한 바로 그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본문: 히4:14–16
오늘 새벽 우리가 붙들 말씀은 히브리서 4장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에게는 때때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어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너무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어제의 실패와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다.”
1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의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15절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시험과 고난을 친히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죄는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들 때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너무 힘듭니다.”
“주님, 제 믿음이 약합니다.”
“주님, 제가 또 넘어졌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습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
하나님의 보좌는 거룩한 보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보좌를 “은혜의 보좌”라고 부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를 위해 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근거는 내가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내가 실수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의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연약함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우리의 문제보다 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본문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가 있습니다.
가정에 필요한 은혜가 있고, 일터에 필요한 은혜가 있고, 관계 속에 필요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시다.
“주님, 오늘도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오늘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 기도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오늘도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