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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붕 세 쁘레시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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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둡시다 스크랩 지옥의 역사3
아오스딩 추천 0 조회 5 08.08.29 15: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종교개혁   The Reformation
   
  12세기 이후, 교회에 대한 불만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날로 높아갔다. 성직자들의 부패, 무
지, 위선, 자가당착적 태도는 순수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괴롭혔다. 특히 면죄부를
팔아먹는 뻔뻔스러운 행위는 큰 반감을 샀다. 수도원의 막대한 부, 세금이 면제된 광대한 토
지( 유럽 전체의 1/3에서 1/2에 이를 정도였다),  집요한 헌금 요구, 정치 간섭 그리고 교회
법 집행을 위한 교회 법정  소유권 등은 세속 군주들을 분노하게  했다. 중산층 상업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독재적 계층 구조의 봉건 제도는 급속도로  쇠퇴하였다. 14세기에는 교황 두
세 명이 동시에 존재하였고, 이는 교회 성무를 업신여기는 경향을 부추겼다. 당시에  공개화
형은 대중의 여흥거리였고, 사람들은 이단자, 유태인, 문둥이, 마녀를 당연한  사냥감으로 여
겼지만, 그런 시대에도 이단심문의 잔혹함은 지각 있는 사람들을 격분하게 했다.
  15세기 중반, 인쇄기의 발명은 민중의 이러한 저항에 엄청난 도움을 주게 된다.  당시까지
교회는 평신도가 성서를 읽는 것은 이단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신자의 국어로 번역된 것
은 말할 것도 없고, 라틴 어 성경을 읽는 것조차 금하고 있었다. 그러나 13세기 이후로 번역
사본들이 암암리에 떠돌았고, 아무리 교회가 번역본을 없애려고 안간힘을 써도(번역자를 체
포했을 경우에는 번역자도 함께 태웠다.), 인쇄기의 보급은  교회의 희망을 꺾어 버렸다. 게
다가 참신한 사상을 담은 새로운 책들이 곧바로 더 많은 독서 인구를 확보하면서 유포되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 시대에  처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은 에라스무스(1466?-1536)였다.
그의 책은 수십만 부나 팔려  나갔다. 품위 있는 작가이자 깊이  있는 휴머니스트였던 그는
'우신예찬The Praise of Folly'(1511)에서 풍자한 바와 같이, 중세  교회가 곧 붕괴할 것이라
고 보았다. 그러나 그도 교회의 붕괴와 함께 일어날 대학살은 예견하지 못했다.  에라스무스
는 플라톤을 옹호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수용한 스콜라 학파의 형이상학과 신
학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반대했다. "그들은 마치 연옥이 수학 공식으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항아리쯤 되는 것처럼, 그곳에서 보내는 기간을 연, 월, 일, 시간까지 정확하게 계산
하며, 마치 지옥에서 여러 해 살아 본 것처럼 그곳 풍경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는 교회가 벌이는 장사치 같은 사업, 예를 들면 면죄부매매, 순례 여행, 죽은 자
를 위한 미사, 그리고 구원을 위해 여타의 재정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성
서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고, 이성과 지적 자유에 기반을  둔 평화로운 도덕 개혁을 주
창하였다. 한편, 여러 세기 동안 금서로 묶여 있던 오리게네스의 저작이 그 무렵 다시  읽히
기 시작하자, 에라스무스는 죽기 직전에 오리게네스의 신판을 준비했는데, 이 또한 시의  적
절한 일이었다. 에라스무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종교라는 이름 하에 자행된 16세기의 소름
끼치는 학살을 회상하면서, 그의 온건성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들은 에라스무스의  온건성
이 신념 부족 탓이라고 여겼다. 만약 에라스무스가 앞장을 섰더라면 낡고 사악한 예전의 교
회를 조화롭게 개혁해서 단일성을 유지하고, 한 세기에 걸친 학살과 박해와 대량 살상을 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실제로 그 시대의  지도자가 된 사람은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사제 마르틴 루터
(1483-1546)였다. 주석 광산 인부의 아들로 태어난 루터는 활달한  달변가였다. 그는 1517년
자신의 신념에 목숨을 걸고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반대하는 95개조의  논박문을
게시했다. 그는 색다른 투사였다. 스콜라 철학 타도, 성경으로의 복귀, 면죄부를 비롯한 부패
척결 등 그의 목표는  에라스무스와 다르지 않았지만, 루터는  점진적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대단한 정열과  의지가 있었으며, 하느님이  자신을 수도원으로 불렀고,
개혁자의 임무도 하느님이 직접 주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루터는 독일 국민과 제후들
에게 교회에 불복할 것을 직접 호소했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는 자기 운명
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수도원에서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공부하였고, 중세 학자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를 추종한 스콜라 철학자들이 정도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독서를 하면서 그에게
가장 감명을 준  생각은 예정론predestination이었다. "오직  하느님만이 인간을 구원하거나
벌할 수 있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루터가 볼 때
교회가 사후세계에 간섭하는 당시의 모든 구조는 잘못된 것이었고, 탐욕을 채우려는 사악한
인간들이 꾸며낸 것에 불과했다. 그는 곧 로마 교황청을 "사탄에 사로잡힌 적그리스도의 권
좌"라고 여기게 되었다.
  루터는 연옥Purgatory이란 개념을 거부했다. 또, 중재자로서의 성모 마리아, 신격으로서의
성모 마리아를 포함하여 연옥과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했다.  그가 믿는 지옥은 아우구스티
누스의 무섭고 영원한 지옥, 즉 전능하신 하느님이 사악한 자들을 벌하기 위해 창조한 지옥
이었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은총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하며, 그 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선행을 쌓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나타내는 표시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고, 죽은 자를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였다. 또 하느님은 악마를  창조하여
타락의 운명을 짐 지웠다. 루터는 옛날 사막의 교무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악마가 그를 괴롭
힌다고 믿었고, 전형적인 중세인이 그랬듯이 그의 창자와 악마를 연관해 생각했다. 말하자면
몸의 고통을 모두 악마의 장난으로 간주한 것이다. - 그는 실제로 위장에 가스가 차는 병과
심한 변비에 시달렸다고 한다. 루터는 마녀들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마녀들이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믿었다. 이는 마녀 사냥이  카톨릭 쪽보다 개신교 쪽에서 더  잔혹했던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종교개혁의 두 번째 지도자는 칼뱅(1509-1564)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주로
제네바를 무대로 활동했다. 칼뱅은 학생 시절에 루터의 사상을 접했으며, 20대 초반에  개종
했다. 칼뱅은 루터가 내세운 원리들에는 동의했으나, 예정론에 대해서는 훨씬 앞으로 나아갔
다. 그는 태초부터 하느님이 미리 정해 놓은 계획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했
다. 17세기 중엽 케임브리지의 칼뱅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든 천사든,  어떤 자에
게는 영생이, 어떤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리스
도는 만인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었다. 사탄은
신의 명령에 따라 사악한 자들을 벌하는 행동을 한다. 기도, 선행, 임종 때의 참회, 사죄, 그
어떤 것도 냉혹한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칼뱅은  '이중 예정설'이 가혹하다는 것을 인정하였
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전제하는 이상, 그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된 견해였다.
  종교개혁의 세 번째 지도자인 츠빙글리(1484-1531)는 루터, 칼뱅과 함께 연옥Purgatory을
부정했다. 그러나 그는,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의 영혼이 머무는 림보의 존재를 인정
했고, 죽음과 '최후의 심판'사이의 중간 상태도 인정했다. 이 기간 동안 선택받은  자들은 아
브라함의 '품'으로 간다고 칼뱅은 생각했다.
 
   신에게 버림받은 인간의 운명은 의심할 여지없이 '유다 서'에서 악마가 받는 운명과 동일
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벌을 받기 위해 끌려갈 때까지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다.
 
  부활, 마왕의 존재 그리고 영원한 지옥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오리
게네스의 말에 따라 사면의 보편성을 주장한 재세례파는 루터 파와 카톨릭 양쪽에서 비난받
으며, 이중으로  박해받았다. 반면에  아르미니우스(1560-1609)는 '조건부  예정론conditional
predestination'을 제안했다. 조건부 예정론에서는 자유의지로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받도록
예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아르미니우스 파는 그 교의를 의심받기도 했지만, 프로테스탄트 교
리 속에 점진적으로 파고들어 결국 이를 장악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거의 모든 프로테스탄
티즘은 어느 정도 아르미니우스의 색채를 띠고 있다.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마침내 종교 전쟁이 끝났다. 유럽의 어떤 나라도 이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었다. 스위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나라는 종교 문제를 시민 투표에 붙였
다. 이탈리아의 경우, 비록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 개혁주의자들이 불평불만을 터뜨렸고, 몇
몇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의 스위스로 이주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카톨릭으로 남아  있었다.
그 이유는  일찍이 문예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그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던  고전적 고대
classical antiquity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곳이 바로 이탈리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교황적 위계 질서가 이탈리아 귀족 정치와 친족적 연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종
교 재판을 엄격히 행한 덕에 스페인에도 그럭저럭 카톨릭의  통제가 미쳤다. 또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도 카톨릭으로 남았고, 오스트리아, 동부 유럽, 그리고 불안하지만 프랑스도 그랬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모든 나라들은 루터주의를 국교로  채택하였고, 16세기 중반에는 독
일에서도 루터주의를 합법화했다. 독일은 지금도 어중간한  프로테스탄트 국가로 남아 있으
며, 루터 파와 칼뱅 파로 반분되어 있다.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의 위그노 장로교를 채택한 존
녹스(1505-1572)가 주도해서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칼뱅을  추종했다. 네덜란드에 대해 이단
심문을 하려고 했던 스페인 왕 펠리페 2세는 격렬한 저항을 받았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프
로테스탄트의 홀란드와 카톨릭의 벨기에로 나뉘었다.
  영국에서는 헨리 8세(1491-1547)가 신앙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와 불과하기
시작했고, 영국 국교회는 '교황 없는  교황권'을 행사하고자 했다. 헨리8세는 새로  유행하는
프로테스탄트 사상의 동조자들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했고, 교회와 국가의 결합에 대해
불안감을 표시한 주교들의 목을 베었다. 그는 수도원들을 해산하고, 그 땅과 소유물들을  빼
앗았다. 그는 영어판 성서의 편찬을  장려했고, 카톨릭의 우상 숭배적 요소를  제거하면서도
고래의 미덕을 충실히 담은 영어판 '공동 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를 권장했다. 아들
에드워드 6세도 헨리의 정책을 유지했다. 그리고 '피의 메리 여왕Bloody Mary'이 영국을 카
톨릭 국가로 되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영국으로서는 엘리자베스 1세의 오랜 통치(1558-1603)가 큰 행운이었다. 여왕은 동시대의
다른 통치자들이 갖지 못한 타고난 능력으로 협상과 절충이라는  두 기술을 한껏 활용했다.
영국 국교회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최고 통치자Supreme Governer(이 용어는 여자 '우두머리'
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불쾌감을 피하기 위해 쓰는  것이었다.)로 삼는 국교를
유지했다. 카톨릭 교도들은 벌금형에 처해졌지만, 박해받지는 않았다. 영국 의회가 교황권과
미사를 거부한 다음 해인 1560년에 스코틀랜드 장로파도 교황권과 미사를 거부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엘리자베스 시대는 영국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아주 중요한 시기에 현명한 통치
자를 얻었다는 점에서, 행운의 여신은 영국을 향해 이중으로 미소짓는 듯 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광은 그  시기에  등장한  희곡 문학,   특히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1616)의 희곡에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주제를 다루지 않은 것은
약간 놀랄 만한 일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당시에는 그 주제를 다루지 못하도록 되어있
었다. 전통적인 기적극miracle drama은, 자체의 저급하고  소란스런 장면 때문에 16세기 중
엽에는 거의 전 지역에서 금지되었다.  영국에서 기적극은 1584년 코벤트리에서  열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영국 의회에게 마지막 남은  눈엣가시 같은 작품은 1589년  말로우가 내놓은
'파우스투스 박사의 비극적인 이야기Tragical  Historie of Doctor  Faustus' 다. 1594년에서
1597년 사이에 그 작품이 23차례 상연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포고령을 내린 뒤 이런 종류
의 극들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종교극religious play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
도 유일한 대중 연극으로 남아 있었지만, 이것도 금지되었다. 이 해는 셰익스피어가  작가의
삶을 시작한 바로 그해(1589)였다. 이런 극들이 금지된 마당에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
들에게 남은 길은, 새로운 형태의 세속적  민중 오락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  시대까지
통속극은 현학적이고 부자연스러웠으며, 한정된 상류계급 관객을 위해 상연되었다.
  따라서 '파우스투스 박사'는 시대의 전환점에 위치한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파우스투
스  박사'는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극이었고,  그  작품의  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우
(1564-1593) 역시 물의를 일으킬 여지가 있는  젊은이였다. 그의 적들은 그가 무신론자이며
불경스럽고, 첩자 노릇을 하며 부도덕하다는(동성연애를 한다는) 비난을 하였다. 사실 이 모
든 비난은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말로우의 아버지는 제화공으로서 길드  회원이었다.
아버지의 경제적 형편상 말로우는 장학금을 받아야만 케임브리지에 갈  수 있었다. 그는 몇
가지 경범죄 때문에 학위를 못 받을 뻔했지만 직접 중재에 나선 국왕이 "거장 말로우는 '국
익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  때문에' 학업을 소홀히 했던  것 같다." 면서  그를 옹호한 덕에,
1584년에는 학위를 받았고 3년 후에는 다시 문학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세간에는 그가 예수
회원들을 염탐하기 위해 몇 달 동안 랭스에 파견된 적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대학 당
국에서는 그것을 오인하여 그가 카톨릭으로  개종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당시 영국에서
카톨릭 교도들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는 있었지만, 학위를 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말로우는   극작가로서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다.   23세에  발표한   '탬벌레인  대왕
Tamburlaine'(1587?)에서는 강인한 영웅을 창조해 냈고, '말로우적인' 무운시에서는 낭랑하면
서도 구르는 듯한 언어를 구사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유명한 희곡은 역시 '파우스투스  박
사'이다.
  '파우스투스 박사'는 '요한 파우스텐 박사의 이야기Historia von Dr. Johan Fausten'이라는
1587년판 독일어 책을 기초로 한다. 이 책은 1592년 신사 피 에프라 불린 사람이 영어로 번
역했는데, 말로우가 희곡을 쓴 시기는 이보다 앞선 1589년쯤인 것 같다. 피 에프의 책표지에
는 "요한 파우스투스 박사의 비난받아 마땅한 삶과 응분의 죽음에 대한 역사- 새로 인쇄한
판본이며, 필요한 부분은 수정했고,,,, '라고 써  있으므로 그 전 판본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지금은 소실된 이 책을 보통 '파우스트 서Faust book'라고 부른다.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된 것이며, 기독교 전설에서는 사마리
아의 시몬 마구스까지도 올라간다.  시몬 마구스는 1세기 영지주의자이자  마법사로서 사도
빌립에게서 세례를 받았다.(사도행전 8장 5절). 그리고 2세기의 외경인 '베드로 행전Acts  of
Peter'에 따르면, 베드로가 그를 떨어뜨려 머리가  깨져 죽는데, 죽기 전에는 로마 공장에서
요술을 부리며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과거에 창녀였던 헬렌이라는 여자가
그와 함께 여행을 하는데,  시몬은 그녀가 환생한 트로이아의  헬레네(그리고 소피아, 이브,
노아의 부인,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헬렌이 처음으로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의 항상 그 책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신성한 물건들을 팔고  교환하는
것을 일컫는 '시모니'라는 말은 시몬 마구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트에게는
로마 카톨릭의 면죄부와 성직 판매가 어리석은 시모니로 비쳤기 때문에, 시몬이라는 이름은
종교 전쟁 동안 수없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시몬은 '거짓 예언자'의 전형이었고,  모든
기독교 이단의 아버지로 여겨졌다. 단테는 제 8환에서 그를  아주 깊은 곳으로 떨어뜨려 놓
았고, 적그리스도의 표상으로 여겼다.  이 시기에 프로테스탄트들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며
경멸했다.
  중세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삽화로 자주 그려졌던 이야기는  테오필리스의 역사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테오필리스 아르다나라고 불린 터키의 한 도시  교회의 부제가 아닌가 싶
다. 새로 임명된 주교가 자신을 해고하자, 테오필리스는 악마와 접촉하기 위해 유대 인 마법
사에게 간다. 거기는 그는 성공과 부에 대한 대가로 영혼을 교환한다는 계약서에 피로 서명
을 한다. 성공과 재물을 얻었지만 양심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악마와 다시 흥정하려고 시도
해 보았지만 실패하였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던 도중 잠이 든 그는 꿈을  꾸었는데,
성모 마리아가 그가 맺은 계약증서를 들고 나타났다. 성모는  자신이 지옥에 내려가 악마에
게서 그것을 몸소 빼앗아 왔다면서, 테오필리스가 용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잠
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그 증서가 옆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 고백성사를 하고, 평화 안
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 이야기는 성모 마리아와 악마가 맞붙어 싸우는 수십 가지의 구
원 이야기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다.
  실제 인물 파우스투스 박사는 1509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다음에
나오는 그에 관한 일화는 일단 역사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감옥에 있을 때, 그는 그곳  사제
에게 만일 공짜로 포도주를 마시게 해 주면, 그 대가로 면도칼 없이 얼굴과 머리에 있는 털
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주겠노라는 제안을 했다. 포도주가 도착했고 파우스투스는 사
제에게 비소가 들어 있는 고약을  주었다. 물론 이 고약은 사제의  머리카락뿐 아니라 그의
피부까지도 없애 버렸다. 분명 이  가학적인 익살꾼은 점성가나 연금술사, 마술사로  개업을
했던 듯 하다. 또는 지금 우리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자라고 생각하는 모든  인물들,
예를 들어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 존 디(1527-1608), 타코 브라헤(1546-1601),
지오르다노 브루노(1548?-1600), 프란시스 베이컨(1562-1626), 갈릴레오  갈릴레이, 요산네스
케플러 모두에게 어울리는 호칭인 '철학자'이기도 할 것이다. 17세기도 꽤 지난 시기에 뉴턴
은 연금술을 공부했고, 한 세기가 지난 후에 괴테 역시 연금술을 공부한 것이다.
  스콜라 철학이 프로테스탄트들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종교적인  연구는 카톨릭
교도에게 골칫거리였다. 모든 학식 있는 사람들이 '금지된'  지식을 추구하면서 얼마간 악마
와 협력하고 있다고 믿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핵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라고 해서 이런
태도를 성급히 조롱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대략 1590년에서  1620년까지는 마녀 사냥의 거
대한 물결이 유럽을 휩쓴 시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말로우가 '파우스투스 박사'를 집필하던
당시 '멕베스'에 나오는 것과 같은 '악마적인 인간들' 또는 '악마와의  계약'이라는 개념은 상
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
  '파우스트의 서'는 독일의 악명 높은 의사에 대한 여러 전설들을 하나로 모아 뒤섞은 책이
다. 말로우의 희곡 내용이 도중에 어수선한 흐름으로 바뀐 것은, 원본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
이다. 그는 여기서도 새로운 전통을 창조한다. 파우스트의 긴 계보에 속하는 주요  저작물들
은 한결같이 어수선하다는 특징이 있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
같은 단편 작품들도 도중에 혼란스러워 진다. 결국 지옥의 특징  중 하나가 혼돈chaos인 것
이다. )
  메포스토필리스는 말로우가 '파우스트의 서'의 새 등장인물인 '위대한  루시퍼의 하수인'에
게 붙였던 이름이다. 사탄이 구약성서에서 여호와의 세속적 대리자였던 것과 꼭 같다.  메포
스토필리스는 그리스어로 빛을 증오하는 자Not-light-lover라는 뜻이다.  보통은 메피스토라
고 쓰는데 이것은 라틴어의 메피투스, 다시 말해 '악취가 나는stinking'의 뜻에 가깝다. 말로
우의 이 악마는 때때로 전통적인 야단스런 도깨비들imps의 시중을 받기도 하지만, 침통하고
심술궂고 심지어는 감상적인 구석도 있다. 그는 라블레의 작품에 나오는 고상하고 약아빠진
마법사, 파뉘르즈('모든 것을 만든다'는  뜻이며, 영지주의의 조물주  데미우르고스를 흉내낸
이름)를 원용한 듯하다. 메포스토필리스는 유혹자도 거짓말쟁이도 아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운명에도 파우스투스의 운명에도 개의치 않는다. 파우스투스는 회의주의적인 '과학적'사고방
식 때문에 영혼도 지옥도 믿지 않는다. 사후에 어떤 세상이 있다면, 파우스투스는 흔쾌히 그
리스, 로마 신화의 내세를 택할 것이다.
 
    '천벌damnation'이란 말도 나를 위협하지 못한다.
    나에게는 지옥도 낙원도 하나이므로,
    내 영혼은 옛날의 철학자들과 함께 하노라.
 
  그렇지만 파우스투스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메포스토필리스에게 이것저것 캐묻
는다.
 
파우스투스 : 루시퍼와 함께 사는 너는 대체 누구냐?
메포스토필리스 : 루시퍼가 하느님께 대항할 때  함께 했고, 그가 떨어질 때 함께  떨어졌고
그와 함께 영원토록 저주받은 불행한 영혼이다.
파우스투스 : 너는 어디에서 영벌을 받느냐?
메포스토필리스: 지옥에서
파우스투스 : 그렇다면 어떻게 지옥에서 나왔느냐?
메포스토필리스 : 무슨 얘기를 하는가?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나는 지옥 밖으로 나오지 않
았다 . 생각해 보라. 하느님의 용안을 뵙고  천국의 열락을 누리던 내가 영원한 행복을 잃게
되었는데, 그 고통이 만개의 지옥과 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자 다시 묻는다
 
파우스투스 : 그렇다면 지옥은 대체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라.
메포스토필리스 : 하늘 아래에.
파우스투스 : 아니, 이 세상 만물은 다 하늘 아래 있지 않은가. 지옥은 어디쯤 있는가?
메포스토필리스 : 우리가 고통받으며 영원히 머무는 곳에 있다. 지옥은 경계도 없고 고정되
어 있지도 않다. 우리가 있는 곳이 지옥이다. 또 지옥이  있는 곳에 우리도 영원히 있다. 요
컨대 온 세상이 해체될 때 모든 피조물은 깨끗해지고 모든  곳이 지옥이 되고, 천국은 어디
에도 없으리라.
파우스투스 : 죽고 나면 어떤 고통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나 파우스투스가 생각하고 있는 줄
아느냐? 아니다. 그런 것들은 한 푼 값어치도 없는, 늙은 아낙들이나 하는 사설에 지나지 않
는다.
메포스토필리스 : 그러나 파우스트, 내가 그 증거가 아니냐? 나는 저주받은 몸이고 지금 그
대로 지옥에 있는 것이다.
파우스투스 : 어째서 여기가 지옥이란 말이냐? 오냐, 좋다.  이곳이 지옥이라면 나는 기꺼이
여기서 벌을 받겠다. 어떻게? 잠자고, 먹고, 걸어다니고, 입씨름하면서.
   
  파우스투스는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만, 메포스토필리스는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영지주의적 견해를 내세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메포스토필리스는 '유죄 선고
를 받는 고통poena damni'과 '죄인들이 육체로  경험하는 고통poena sensus'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  두 가지 벌을 교묘하게 뒤틀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진
악마가 육체의 고통보다는 박탈감이라는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파우스트 서'의
지은이보다 학식이 놓았던 말로우는 자신이 프로테스탄트이기 때문에 그러한 이분법의 사용
도 용인될 수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연옥이라는 정화의 장소를 얻은 카톨
릭 교도들에게는 그런 이분법이  허용되지 않았다.) 물론  파우스투스는 마침내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지옥을 앞두고, 눈물을 자아내는 통속극에서처럼 육체의 고통poena sensus을 당하
게 된다. 이런 결말은 관객들이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다.
  루시퍼, 바알세불, 메포스토필리스가 천둥 속에서 나타나 파우스투스가 마지막으로 고뇌하
는 모습을 지켜본다. 중세의 세밀화에서 볼 수 있듯이, 임종에 처한 사람의 영혼을 차지하려
고 서로 다투는 선의 천사와 악의 천사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선한 천사들이 권리를 포기하
자, 장막이 걷히고 무서운 지옥의 입이 열린다.
  "오 파우스투스여 이제 네 생명은 겨우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파우스투
스의 처절한 독백은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연기해 보고  싶어하는 대목으로 유명하다. 그
리고 명배우 에드워드 알렌은 이 독백이 그를 위해 씌어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부분에
서 무대 전체를 뒤흔드는 열연을 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감동적인 시구와는 별도로, 여기에
는 미묘한 사상적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 파우스투스 이야기는 테오필레스 이야기와  달리,
주인공이 지옥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파우스투스의 죄악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티즘이 어떤 중재자의 중재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스스로 선택한 것 같지만) 파우스투스의 지옥행은 예정된 것이었고, '하느님의 엄청난 진노'
를 피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전대미문의 매우  아름다운 시구로 그리스도에게 호소
한다.
  
  아아, 우리 주님 계신 곳으로 올라가련다!
  나를 밑으로 끌어당기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보라, 보라,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창공을 보라.
  그의 피 한 방울만으로도 나는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오 그리스도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내 가슴을 찢지 말지어다.
  나는 그리스도께 청하련다......오 나를 살려다오, 루시퍼......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교리 안에서는 그 누구의 자비도 엄정한 심판을 누그러뜨릴 수 없기
때문에 임종 직전에 회개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루시퍼는 예전
에 이미 파우스투스에게 경고해 두었다.
 
  그리스도는 네 영혼을 구해 줄 수 없다.
  그는 엄정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길 말고 다른 방도가 없구나.
 
  파우스투스의 가슴 저미는 애원도, 그가 상기한 피타고라스의 철학(윤회설)도, 그 어떤 것
도 그가 받을 영원한 벌을 한  치도 덜 수 없고, 지옥문 안에서  그의 사지를 찢어발기려고
괴성을 지르는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그를 벗어나게 해 주지도 못한다. 그리스도의 피 한 방
울이라는 이미지는 성서에서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물 한 방울을 청했던 것을 언급하는 것이
다.
  말로우는 말다툼을 하다가 칼에 찔려 죽었는데, 그가 서른 살도 되기 전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퀸 맵의 말솜씨로 능변을 구사하는 익살꾼 머큐쇼는 말로우를  모델로 한 것이
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매우 타당성 있는 추측이다.
  셰익스피어는 부분적으로는 그의 경쟁자인 말로우 덕택에 종래의 문학 전통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그것은 셰익스피어 자신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 그의 희곡에는 당시의  미신
이나 믿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매력적인 장면들이 많고, 그러한 것들은 그가 종교적 주제들
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아주 잘 보여 준다. 가령 '햄릿'(1602)은- 신학적으로 건
전한 '파우스투스 박사'와는 달리-온갖  종말론적 모순의 혼란스런  총체였고, 또한 민중의
격식 없는 신앙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었다.
  '햄릿'에는 우선 망령ghost이 등장한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령을  믿었고, 카톨릭
교회는 망령들을 연옥과  관련지었다. 셰익스피어도  ('맥베스'에서는 아니지만 )'햄릿'에서
망령의 입을 빌어 연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는 카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데다가,
영국 국교회 '공동 기도서' 제  22조는 연옥이 '분별 없는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에 모순
하는 것'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시대의 일상적인 신앙 속에는 연옥이
아직 남아 있었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망령이 그릇된  교리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 자체
가 망령이란 변장한 악마와 다름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네 아비의 망령,
  밤에는 겨우 정해진 시간을 헤매 다니지만
  낮에는 겁화 속에 갇혀서 단식의 고통을 당한다.
  생전에 저지른 비열한 악행이
  불에 타서 깨끗이 씻길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내가 말하는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네 정신은 완전히 혼란해지고 그 젊은 피는 얼어붙을 것이며
  두 눈알은 유성처럼 튀어나가고
  헝클어진 네 머리카락도 온통 풀어져서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곤두서게 되리라.
   
  햄릿은 숙부 클로디어스가 부왕을 죽였다는 사실을 '쥐덫'의 계략을 써서 알아낸다. 하지
만 숙부가 기도하고 있을 때 죽이면 자칫  그를 천국으로 보내게 될까봐 살해를 뒤로 미룬
다. 그리고 클로디어스가 육체의 향락에 빠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때에 일격을 가하면 놈의 뒷발은 하늘을 차고
  오욕스러운 영혼은 지옥 같은 시커먼 빛깔에 물들어
  그대로 거꾸로 떨어질 것이다.
 
  그것은 아주 전통적인 생각이었지만-종막 부분에서 호레이쇼가  읊는 대사, '천사들의 노
래에 실려 안식의 세계로 가소서.'라는 구절을 빼면, 극중에서  유일하게 전통적이고 종교적
인 사고방식을 담은 부분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햄릿이 선왕의 망령을 보고도 진짜인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세운 단순한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밖에  다른 장면에서
보이는 내세관은 불분명하다.
 
  누가 이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지루한 인생 고에 신음하며 진땀을 빼겠는가.
  사후의 어떤 것에 대한 공포,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저 미지의 나라가
  우리의 의지를 흐려놓지 않았던들,
  그리고 그 미지의 나라로 날아가기보다
  오히려 이 세상의 번민을 짊어지도록 마음먹게 하지 않았던들.
 
  햄릿 왕자의 명상은 당시 프로테스탄트나 카톨릭 교회의 어느 쪽 생각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어떤 면에서 오히려 더 근대적인 것이었다.
  묘지에서 햄릿은 해골을 가지고 놀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카이사르의 유해가 진흙이
되어 맥주 통의 구멍을  메우는데 쓰일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하고, '죽음의  무도Dance of
Death'를 인용하기도 한다. ("자, 내 아내의 방으로  가서 이렇게 말하고 오너라. 얼굴에 분
을 한 치나 발라도 결국 이런 꼴이 되는 거라고.") 이것은 사후 세계가 아니라 죽음 자체를
강조한 15세기의 죽음의 표정memento mori이다.  '맥베스'1606)에 나오는 '먼지 같은  죽음
dusty death'도 역시 마찬가지다. '맥베스'는  마법적이고 악마적인 것에 깊이  기대고 있지
만, 거의 과도할 정도로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을 기피하고 있다. 그보다 30년 전쯤에 씌어진
이야기였다면, 맥베스와 그 아내는 곧장 지옥의 입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1604)에서 클로디오는  햄릿의 위대한 대사를 재현하
고 있다. 불길과 얼음,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처럼 바람에 갇힌 영혼,  고문 때문에 신음하는
소리 같은 지옥의 오래된 광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전적으로 중세적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죽어서 어느 곳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차디차게 꼼짝 않고 누워서 썩는다는 것은,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따스한 육체가
  이겨 놓은 진흙이 되고
  즐거워하던 영혼이 불바다 속에 빠져 든다든지,
  또는 두껍게 둘러싸인 몸서리쳐지는
  얼음 지옥 속에 파묻히게 된다든지
  공중에 매달려 있는 지구 둘레를 쉬지 않고 강렬하게 불어대는
  형체 없는 바람 속에 갇혀 있게 된다든지
  또 무법 천지의 덧없는 생각으로도 상상 못 할
  가장 고약한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무서운 일이야.
  늙는다든지 병고라든지 감옥에 갇힌다든지
  이런 가장 진저리나고 가장 싫은 이승의 일도
  죽음의 공포에 비하면
  그래도 마땅히 극락이라 할 수 있지.
 
  여기까지가 셰익스피어가 이 주제에 대해 표현하는 전부다. 확증할 수는 없지만, 필경  극
작가들은 중세 풍의 진부한 표현들cliches에 식상해 있었을 것이다. 비록 이아고와 맥베스는
자신을(득의양양하게)악마들에 비유하고 있고, 앤 여왕은 리처드 3세를 악마라고 노골적으로
힐난했으며, 그녀의 남편은 '리어 왕'에 나오는 고네릴을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가 묘사한 극악무도한 자들은 여전히 철저하게 인간적이다. 공포에  대한 서술들은 존 웹스
터와 시릴 터너의 복수극에서 특별히 점점 더 잔인해지고  파렴치해지는데, 그런 경향은 셰
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어떤 희곡에서
도 웹스터의 '몰피 공작부인The Duchess of Malfi'(1613)만큼 무시무시한  죽음을 연상시키
는 구절은 없다.
 
  나는 지옥에 대한 이런 저런 의문으로 어지럽다.
  지옥에는 단 한 가지, 영겁의 불길만이 있지만
  모든 이가 한결 같은 고통을 당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를 썩 꺼지게 하라, 죄지은 자의 양심이란 얼마나 끈질긴가!
  뜰에 있는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갈퀴가 달린 것 같은 어떤 것이
  나를 때리려 하는 듯하다.
 
  프랑스 테카당트 파의 어떤 작가도 이와 같은 심상이나 염세성을 표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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